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93화 (93/252)
  • 93화. 오감 프로젝트

    마치 퀴즈 대회라도 하는 기분으로 나는 오 선생의 물음에 답했다. 오 선생은 내가 이에 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지 옅게 웃었다.

    “올해는 수능이 어렵게 나왔기 때문에 교과 내신 대비 점수가 낮게 나온 경우에는 무조건 수시 2차를 지원할 겁니다.”

    “흠….”

    “특히 논술이나 적성고사처럼 별도의 시험을 볼 수 있는 전형의 경우에는 더 인기가 많을 겁니다.”

    내 말을 들은 오 선생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만약 자네 지도 학생이. 말한 것처럼 내신이 2.5등급이고 수능이 4등급이 나왔다면 어떻게 할 건가?”

    “학생의 상황, 역량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논술, 적성은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했을 때, 일성대를 인서울 마지노선으로 넣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성걸대 정도를 기준으로 해서 수시 2차로 지원하라 하겠습니다.”

    2011학년도 수능은 난이도가 높았던 탓에 많은 학생들이 안정지원을 하게 된다. 특히 수시 2차의 경우에도 많은 학생들이 몰리게 되어, 2010년 대비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허수는 있었다.

    신설되는 전형이 있는 일성대의 경우 그 미지수 때문에 안정지원을 고려하던 학생들이 다소 기피하게 된다. 성걸대 또한 2010년에 경쟁률이 20:1을 넘었기에 안정지원을 생각한 학생들이 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점수가 낮아야 할 대학의 합격 컷이 높아지고, 반대로 일성대와 성걸대의 합격 컷이 낮아지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었다.

    나는 그 점을 기억해 내서 오 선생에게 답한 것이었다.

    오 선생은 눈을 매섭게 뜨고서는 나에게 물었다.

    “모든 대학이 25일 마감이던가?”

    “학교에 따라 26일 마감도 있지만, 주요 대학은 모두 25일 마감이지요.”

    여기까지 답하자 오 선생이 사람을 신기한 동물이라도 본 것처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더니 표정을 풀고서는 말했다.

    “이상해.”

    “뭐가 말입니까?”

    “강 선생 말이야. 원래 이렇게 잘 알았었나?”

    뭐, 갑자기 이렇게 많이 알면 이상하게 여길 수는 있겠지.

    그렇다고 내가 회귀한 사실을 알 리는 없지만 말이다.

    “올해 들어서 공부 좀 많이 했습니다. 동석이와 은장이 같은 학생들 덕분에 자극이 좀 되었죠.”

    “학생들한테 자극을 받았다고?”

    오 선생은 그 부분에서도 감탄을 하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내 시선을 느끼고는 헛기침을 했다.

    “내가 좀 흥분한 것 같군. 아무튼 의견 고맙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자네는 아무래도 다른 대가리 빈 교사들처럼 놀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듣고 흘리기 어려운 단어가 나오자 임 부장이 다시 한번 달려드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주변의 교사들은 나와 오 선생의 문답을 듣더니 입을 떡 벌리고 서 있을 뿐이었다.

    다소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이며 오 선생에게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아직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수시1차, 2차 준비하는 녀석들은 더더욱 말이죠.”

    “음.”

    “그래서 희망자에 한해서 입시 준비 파이널반을 만들까 합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종이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자 오 선생이 종이를 받아들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 계획이 있었구만 그래.”

    “어쩌다 보니 타이밍이 맞았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척 순진한 미소를 짓자 오 선생이 미간을 좁혔다.

    “되도 않는 거짓말은 하지도 마. 내 성격 몰라?”

    오 선생은 정말이지 오석상이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사람을 석상 보듯이 하는 사람이었다.

    학생이라면 교칙을 어기는 자, 교사라면 비도덕적인 행동을 일삼는 자, 그런 이들이 오 선생에게는 석상으로 취급받았다.

    최고의 형벌은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바로 오 선생이 그런 무관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도 선을 넘는다 싶으면 주먹부터 나가는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버서커 모드였다.

    내가 학교를 오기 3년쯤 전이었다.

    어떤 학부모가 오 선생의 주먹질에 대해 신고를 하려고 했고, 오 선생은 학부모와 1:1 면담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학교를 찾은 학부모는 학생의 잘못이 크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숙제를 해 오지 않아 혼내고 있는데, 오 선생 앞에서 숨겨뒀던 담배를 꺼내고는 불 붙이는 행위를 보이며 조롱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 선생은 항상 소지하고 다니던 나무 몽둥이인 엑스칼리버를 휘두르지도 않고, 주먹부터 나갔던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학부모는 자식놈의 새끼를 더 패달라고 요청을 하면서 나갔었다.

    -뭐, 당시 그 녀석이 고1이라 사대천왕을 잘 모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예의가 없는 학생이기는 했지.

    지석 선배에게 강문고 사대천왕에 대한 정보를 들을 때 생각했다.

    ‘이 사람은 선악 구분이 확실하다.’

    과거 사학비리 폭로 때에도 그런 점을 얼추 느끼기는 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오 선생과 교류가 많지 않았고, 그가 나를 상대해 주지도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더 상세한 특징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물론, 지석 선배도 오 선생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경력이 많거나 실력이 뛰어난 교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사건은 지석 선배에게도 꽤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별명도 생겼잖아.

    -아, 침묵의 권왕이 그때….

    들어보니 담배 피우는 행위를 하던 그 학생은 오 선생의 주먹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그의 역사 수업을 듣는 교실 전체 인원 20여 명이 오 선생의 주먹 뻗는 모습조차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주먹이 퍽, 소리도 아니고 턱에 쾅! 소리가 났다는 거야. 거기에 때리는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주먹만 휘둘렀다고.

    -그 정도면 복서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복싱 배웠다는 소문도 돌았지. 준 프로급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어.

    -그럴 만 하네요.

    -엑스칼리버는 오 선생의 힘을 봉인해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고, 난리도 아니었지.

    어쨌든, 그 사건 이후 오 선생의 명성이 더 드높아진 건 사실이었다.

    사대천왕 중 ‘침묵의 권왕’으로 학생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더 크게 성장한 것도 맞았다.

    그러나 또 챙겨줄 때는 한 없이 잘 챙겨주는 교사였다.

    -그래서 스승의 날에 오 선생님 찾아오는 애들이 꽤 많아.

    -전부 공부 잘했던 애들입니까?

    -그게 또 신기해. 전문대를 갔던 애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 턱주가리 얻어맞은 고1 있지? 걔도 졸업하고 왔었잖아.

    그렇기에 지금 나는 오 선생과 마주하고 있었다. 오 선생을 같은 편으로 끌어오면 내 입시 결과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정말 물심양면 도와주는 교사였기에 학교에서 평판, 인기 모두 좋은 편이기도 했다.

    침묵의 권왕이라는 별명도 인기에 한몫했다.

    ‘본인은 엄청 싫어하니까 꺼내면 안 되는 별명이지만.’

    물론, 실력이 없는 교사가 생각 없이 다가가면 그건 그거대로 무시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지금처럼 나름대로 내 실적이 학교에 돌고 있는 시점에서 그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그런 속내를 전혀 모르는 오 선생은 내게 이 계획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말했다.

    “어떻게 할 계획이지?”

    “우선, 수시1차나 수시2차를 준비하는 학생들, 정시에 있어서도 면접을 보는 학생들을 위한 파이널 준비판을 오픈하려 합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하지?”

    “MMI나 교직인적성 면접, 서류기반면접, 논술시험 내지 적성고사 등등이 있겠습니다.”

    “그걸 우리 학교에서 전부 준비할 수는 없을 텐데?”

    “네. 하지만, 중간중간 한 번이라도 봐줄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 이 녀석들에게는 붙잡혀서 공부할 수 있도록 관리해 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밖으로 쏘다니겠지.”

    나는 오 선생의 말에 맞다고 답했다. 현 시점에서는 사설학원에서도 수능이 끝났기에 자습실을 개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독서실을 수능 끝난 애들이 자발적으로 갈 리도 없었다.

    때문에 지금 녀석들에게는 학습습관, 생활패턴 등을 잡아 주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도록 도와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오 선생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더니 또 한 번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민망해질 때쯤, 그가 눈을 살짝 감았다.

    “신기하네…. 내가 이런 선생을 못 알아 봤다고?”

    “워낙 작년까지는 조용히 다녔으니….”

    “조용히는 얼어 죽을. 학부모들 서너 명이 쳐들어와서 대판 싸우고 그랬던 거 모를 줄 알아?”

    “아….”

    이제 막 부임했는데 담임을 맡게 되어서 학생들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그래서 학부모 셋이 한꺼번에 나를 찾아와서는 항의를 했었다.

    누가 잘했네 못했네 하다가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고 알아서들 들어간,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계시네요.”

    내가 살짝 민망해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다시 입시 프로그램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금 말씀드린 그 프로그램. 선생님도 같이 준비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오 선생은 조금 흥미가 간다면서 나와 뒤에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는 세 명의 교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자네가 리더구만?”

    “네?”

    “뭐 좋아. 이번에 잘하는지 한번 보자고.”

    그는 방금 전까지 김 부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때와는 다른, 기대감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순진한 척 하하하, 웃기만 했다.

    * * *

    “네!?”

    “아니 쌤!”

    “우리에게도 놀 권리가 있는데!”

    예상대로 학생들은 향후 있을 여러 전략들 준비를 위한 <오감 프로젝트>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나 수능 끝나고 어딘가에 놀러갈 생각이 만연했던 녀석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이다.

    “조용, 조용! 아직 입시가 제대로 끝난 사람은 동석이 한 명뿐이다! 그런 동석이도 너희를 위해서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너희가 그러면 쓰냐!”

    동석이는 이번 프로그램을 보자마자 바로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학교 아니면 갈 곳도 없으니까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픈 이유를 들면서 동석이는 신청서를 휙휙 작성했다.

    게다가 나로서도 동석이가 먼저 와준다고 하면 땡큐였다.

    ‘동석이한테 애들 감시역이나 평가지 같은 거 시킬 수도 있고.’

    머릿속에서 학생들마다 정해둔 역할을 적절히 배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잔말 말고 다들 프로젝트 과정이나 읽어 봐. 이번에는 안 빡쎄다니까?”

    실제로 이번 프로그램에는 빡빡한 수업 일정이 잡혀 있지는 않았다. 그저 기숙 학원처럼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는지 안 하는지를 점검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장 오늘 밤부터 시작한다는 문제는 있었지만, 그 정도로 빡빡하게 잡아두어야만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내일을 모두 노는 데 할애하고 논술이나 적성고사를 치르러 가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쌤, 왜 오감이에요? 오감만족할 때의 오감이 맞아요?”

    은장이가 단어 사용이 이상하다면서 물었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오감에 추가되어 있는 점에 집중하라고 했다.

    “오. 감. 이야. 오감만족이 아니고.”

    “그럼 뭔데요?”

    나는 대답 대신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리면서 새어 나올 웃음을 참았다.

    “또 뭐가 있나 보다.”

    “아… 제발 쌤.”

    그러다가 정석이가 열린 교실 문으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헉 소리를 냈다.

    “왜?”

    몸을 오들오들 떠는 정석이의 옆에 앉아 있던 태성이와 정아도 무슨 일이냐며 정석이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 순간,

    교실 문이 쾅! 세게 닫히면서 중년의 남성이 거대 나무몽둥이를 들고 들어왔다.

    “그 오감은 ‘오늘도 감금’이다.”

    그의 상징인 엑스칼리버 막대기가 교실을 휘저었다. 붕-붕- 소리를 휘날리던 엑스칼리버는 이내 교탁 옆에 쿵! 세워졌다.

    “헐, 미친.”

    “…침묵의 권왕?”

    “야! 소리 줄여!”

    “이거 실화냐고….”

    나는 엑스칼리버를 디딤돌 삼아 서 있는 오 선생 옆으로 다가가 신청지의 뒷면을 펼쳤다.

    “자 여기 주목! 이번 <오감 프로그램>의 메인 관리 선생님을 소개한다!”

    학생들은 절망에 빠진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다.

    쌤, 제발 그것만은… 하는 시선들을 무시한 채 구석에 개미만 한 글씨로 적어둔 부분을 가리켰다.

    <오감 프로그램 관리 교사: 오석상, 강명문>

    오 선생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신호에 맞춰 나는 전에 없었던 사악한 미소를 띄우며 천천히 말했다.

    “입시가 끝나는 그날까지! 우리가 너희를 책임진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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