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수시 2차
수능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는 고역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기다리는 나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학생들은 수시를 지원했어도 수능 최저 컷에 걸리면 불합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나는 서윤수 교수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강 선생, 오래간만이야!]
서윤수 교수는 지난 여름에 만났을 때와 똑같이 활기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냈지! 은숙이한테 전화 받았는데, 애들 수시랑 수능 준비 때문에 바빴다며?]
“네, 오늘 수능 당일이라 잠깐 전화드렸습니다.”
핸드폰 너머로 서 교수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그래, 그래서, 고민 좀 해 봤어?]
서 교수는 나에게 입학자문위원을 승낙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잠깐 망설이는 척, 대답을 미뤘다.
“그게….”
[아, 이 사람, 빨리 좀 말해! 답답하게!]
핸드폰 너머로 가슴을 팍팍 치고 있을 서 교수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하는 건 좋은데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네. 입학자문위원으로 저랑 몇 분 정도 더 추천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몇 명이나?]
손가락으로 셈질을 하다가 새끼손가락을 접은 나는 준비한 숫자를 말했다.
“저 포함 넷입니다.”
구체적인 인원은 말하지 않았지만, 서 교수는 대충 어떤 상황인지 이해한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잠깐의 고민도 없이 흔쾌히 이를 승낙했다.
[좋아. 강 선생이 추천하는 인원이면 믿을 만하겠지!]
“감사합니다.”
그 뒤로 우리는 한참 동안 시시콜콜한 잡담을 했다. 그중에는 이번 입시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아직 면접을 어떻게 치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조심스러웠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다만, 서 교수의 생각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는 한목대의 의예과 면접 전형 변화가 지원 학생들의 변화에도 한몫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설명회 이후에 MMI면접에 대한 관심은 좀 늘었나?]
“의대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 돌았습니다. 수능 끝나면 준비할 녀석들도 조금 있겠죠.”
서 교수는 그 말에 잠깐 침묵했다. 그러더니 평소와는 다른 진중한 목소리를 하고는 말했다.
[강 선생, 이번 MMI면접이 끝나면 우리나라 대입의 허점이 면밀하게 드러날 거야.]
“그럴 겁니다.”
실제로 MMI면접 시행 이후 공부만 잘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심어진다. 이는 공부‘만’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약점으로, 공부‘도’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더 큰 기회로 이어졌다.
물론, 이후에도 면접용 답변만 준비해 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1차 필터링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내가 나중에 강 선생에게 듣고 싶은 건 그거야. 입학자문위원으로서 우리 학교의 전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핸드폰 건너에서 물을 마시는지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흐. 특히나 의학, 간호, 보건 계열 학과.]
“한목대의 주력 학과들이군요.”
[그래. 그 학과만큼은 제대로 살릴 수 있어야 해. 그게 대학 관계자들의 입장이야.]
그는 이번 입시 방식의 변화가 큰 시도였음을 설명했다.
[그러니 입학자문위원에게 듣고 싶은 거야.]
만약 눈앞에 서 교수가 있었다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여름에 봤었던 서 교수의 시선을 떠올리면서 이어지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한목대 의예과 전형 변화가 가져온 변화를 실제 학교, 학원의 현장 목소리를 듣고 싶네.]
만약 그의 말대로 이번에 입학자문위원으로 추천 받아 내년부터 활동을 하게 되면 이건 큰 기회였다.
우리나라 입시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의대 전형에 대한 자문위원이었으니까.
“네, 준비 제대로 해두겠습니다.”
[강 선생이야 뭐, 실력은 의심할 바 없지! 껄껄!]
나는 서 교수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은 뒤 수능이 끝날 시간이 다 되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우리 반 학생들 전체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능 보느라 고생했다. 다들 잘 봤는지 내일 이야기하자.>
핸드폰을 구석으로 던지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지금 2학년인, 예비 고3들 중 입시 실적을 내기에 좋은 학생이 누가 있을지를 기억 속에서 더듬어 봤다.
* * *
“와… 미친… 나 진심 미친 듯.”
정석이는 수능 가채점을 한 뒤 친구들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이 정도면 나 잠재력 쩌는 거 아니냐?”
국어를 제외하고는 1등급을 받지 못했던 정석이가 이번에는 꽤 등급이 오른 모양이었다.
“웬일이야 네가?”
“이정석 정신 차리고 공부 좀 했나 보네.”
정아와 태성이도 정석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오직 동석이만이 정석의 가채점표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정석아 이거 계산 잘못했는데?”
“뭐가?”
“이거 2점 아니고 3점이야.”
정석이는 동석이에게 가채점표를 다시 받고서 점수를 대조해 보았다.
“아… 미친… 나 망한 듯.”
다시 채점을 한 정석이는 절망감에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미란이가 최저도 못맞추면 헤어질 생각 하라고 했는데.”
“넌 아직도 연애 타령이냐?”
“야!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누구 덕분인데! 이게 다 미란이 덕….”
“아주 훌륭하신 담임쌤 덕택이겠지. 안 그러냐?”
뒤에서 듣고 있다가 도저히 못봐주겠어서 나는 정석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야! 이번에는 왜 종이로 안 때려요!”
“종이도 준비했다 인마.”
미리 돌돌 말아둔 종이몽둥이로 정석이의 이마를 탁탁 때렸다.
“아! 아!”
“아! 아! 같은 소리하네. 채점 제대로 안 해?”
정석이의 모습을 보며 다른 학생들이 낄낄 웃었다. 나는 조용히 녀석들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너희도 채점 다시 해 봐. 그리고 동석아.”
“네 쌤!”
“넌 애들 제대로 채점하는지 확인해 보고. 정석이처럼 등급 잘못 알아오면 망한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물론, 제대로 된 점수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등급이 왔다갔다하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되었다.
지금 정석이는 수학이 3등급이냐 4등급이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이퍼 학습으로 보면 최저 딱 맞고….”
일루수에듀로 보면 최저가 아슬아슬하게 맞춰지지 않았다.
2011학년도 수능은 유례없는 고난이도 수능으로 회자되었다. 이전까지의 수능이 다소 난이도가 낮은 탓도 있었기는 했다.
하지만, 그 탓에 학생들의 긴장감이 다소 낮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 기억에 의하면 이번 수능 예상 등급을 모두 맞춘 곳은 하이퍼학습 데이터였다.
“쌤 다시 채점했습니다.”
정석이가 가채점 점수를 들고 왔다.
“국어 91, 수학 76, 외국어 82라….”
정석이 성적 중 탐구영역은 확인하지도 않았다.
“한문은?”
“한문은 만점이죠 쌤!”
“넌 한문학과를 준비해야 하나 싶다.”
내 혼잣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정석이가 왜요? 뭐라고 하셨어요? 라며 물었다.
“국어 1등급, 외국어 3등급, 수학 2등급이네. 계획한 등급까지는 나오겠다.”
정석이는 내 말을 듣더니 그럴 리가 없다면서 가채점표를 다시 확인했다.
“올해 수능은 좀 난이도가 있는 편이어서 하이퍼 학습 예상 컷으로 보면 된다.”
“쌤 그런 거도 알아요?”
“당연하지. 선생이라는 직함은 하늘에서 떨어져서 받았겠냐? 그러니까 정석이는 논술 준비 해. 은장이랑 명천이는 가채점 몇이야?”
은장이와 명천이의 성적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등급 컷을 맞추기에는 충분한 점수였다.
“좋아, 그럼 준비하자. 수능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 알겠냐!”
나는 반에 모인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아직 정시 지원도 끝나지 않았고, 수시 지원자들의 면접 전형도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점에서는 마음을 다잡는 방향으로 학교 프로그램도 준비가 되어야 했다.
“이제 수능 끝났는데 애들 적당히 영화나 보고 보내죠?”
그러나 나와 지석 선배, 박 선생 등 우리들을 제외한 다른 교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은 수능이 끝났으니 한숨 돌리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심에는 김영호 3학년 학년부장이 있었다.
“수능도 끝났으니까 성적표 나오기 전까지는 여유를 가집시다. 다들 올 한해도 고생했습니다.”
거기까지 말하던 김 부장의 말은 옆에 있던 다른 교사의 말에 중단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태평한 거 아닙니까?”
발언의 주인공은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신을 쳐다도 보지 않고서 말하는 교사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지 김 부장도 지지 않았다.
“태평이라니, 지금 말 다 하셨습니까?”
“김 선생님.”
남자는 김 부장을 향해 말했지만, 여전히 시선은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선생님네 학급 학생들 가채점은 했습니까?”
“지금 해 봤자 성적표 나오면 의미 없지 않습니까.”
김 부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하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살짝 도는 위압감에 다들 위축되는 기분을 느꼈다.
‘오래간만에 보네.’
강문고에는 여러 교사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두 가지 부류로 나눠졌다.
성과를 노리고 달려드는 교사, 학부모와 뒷거래를 하는 교사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교사들이 엉망이고, 양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지석 선배, 박 선생, 윤 선생이 있지 않은가.
물론, 나는 회귀하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교사에 불과했다. 2년차 초임교사로서는 담당 학급 학생들 상담해 주고 학교에 적응하는 데만 해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수시 2차 이야기 안 할 겁니까?”
“수시 2차요?”
“이번 수능, 분위기 어땠는지 보셨을 거 아닙니까?”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히 언론을 통해서 봤다고 말했다.
“뉴스에서 나오니 당연히 알고야 있지요.”
“그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물어봐야… 하… 아닙니다.”
“이것 보세요, 오 선생님. 지금 그게 부장 대하는 태도입니까?”
그러자 오 선생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오 선생에게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매년 입결 대박, 입결 대박 외치더니, 역시나 올해도 말뿐이로군.”
“뭐, 뭐야?”
오 선생은 김 부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수능 망친 애들이 많은 거 알지?”
“다, 당연히 알지.”
두 사람이 강문고에 발령받을 때 동기로 들어왔기에 다른 교사들은 이들의 어투가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럼 그런 애들은 정시가 아니라 수시 2차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
김 부장이 살짝 몸을 떨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너희도 나 좀 도와주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오 선생, 그만.”
“임 부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방금 상담하러 내려온 학생을 바로 올려보내던데, 왜 그랬습니까?”
“…네가 뭔 상관인데?”
오 선생이 이번에는 임대원 성적처리연구부장을 노려봤다. 그러자 임 부장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오 선생에게 다가갔다.
“내가 이런 인간들이랑 애들 대학을 보내려고 했다니….”
오 선생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폭발하기 직전인 임 부장이 손가락질을 했다.
“너 이 새X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수시 2차 마감일이 언제인지 알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잠시간 교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임 부장도 손가락질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선뜻 나서서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입시 일정도 제대로 모르는 병신들 천지에….”
“25일 마감입니다.”
내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그러자 처음으로 오 선생의 눈이 재미있다며 호기심이 서렸다.
“강명문 선생이군.”
“네, 오석상 선생님.”
“요즘 자네가 엄청 유명하던데, 내 한번 물어보자.”
나는 언제든 물어보라며 흔쾌히 대답했다.
오 선생은 나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테스트를 하고자 예열을 했다.
역사 담당 오석상.
그는 사학비리 폭로 사건 때 유일하게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 교감 라인의 교사들을 신고했던 사람이었다.
이후 학교에 남지도 않고 잠적했다가, 지역의 대안학교 교사로 들어갔다.
“강 선생, 자네가 보기에….”
평소에는 평교사에 관심도 주지 않던 오 선생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리고 그런 그가 우리와 함께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학교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이번 수시 2차, 경쟁률이 어떨 것 같나?”
강문고에 있는 사대천왕.
그건 학생들이 감히 반항하지 못할 정도의 막강한 권력과 물리적 파워를 보여준 교사들에게 부여된 별명이었다.
“그리고, 자네라면.”
마냥 무서워만 하는, 부정적인 평가의 별명으로 보일 수 있는 사대천왕.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갈렸다.
“평균 내신 2.5등급, 수능 등급 4등급이라고 가정했을 때, 어디를 지원하라고 추천하겠나?”
그리고 사대천왕 중 유일하게 학생들과 진심으로 마주하는 교사.
그게 바로 오석상 교사였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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