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미래 준비
“오, 그럼 잘 답변 했겠네. 잘 했어.”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학생들과 달리 태연하게 말했다.
“쌔, 쌤!”
“미팅, 그거 진짜였어요!?”
“아니 그걸 면접 때 말해도 되냐고!”
동석이, 은장이, 정석이가 기겁하면서 나를 돌아봤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이게 말이나 되는 답변이냐며 묻는 녀석들을 향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크흠, 당연하지. 설명을 하자면….”
* * *
태성이가 면접을 보기 하루 전, 파이널 모의면접 수업을 마친 때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태성이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발음이 이상한 부분은 보완했고, 답변 내용이 부실한 부분은 다시 한번 정리를 했다.
“쌤 근데요.”
그렇게 연습을 하던 태성이가 나를 부른 건 교실 불을 막 끄려던 때였다.
“입학 후 학업계획이 아니라, 활동계획 물어보면 뭐라고 답변해야 해요?”
“갑자기 왜?”
태성이는 그게 생각보다 답변하기 어렵다며 인상을 썼다.
“사실 공부 어떻게 할 거냐, 강의 뭐 듣고 싶냐, 고딩 때 뭐 했냐, 이런 거는 어렵지 않잖아요. 답이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응.”
“그런데 학교에 입학하면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볼 때는… 좀 어려워요.”
나는 불을 끄려던 손을 내리고 태성이에게 자리에 앉으라 말했다.
“요컨대 정말 현실적인 답변이 필요할 때를 물어보는 거 같은데?”
“네, 맞아요.”
“태성이 네가 제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정말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 떠올려 봐. 그게 정답이야.”
내 말에 태성이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지. 입학 후에는 어떤 공부를 하고 싶냐? 가 아니라, 대학생이 되면 뭐부터 하고 싶어요?를 물어보는 형태겠지.”
“네네, 맞아요 그거! 진짜 솔직하게 답변해도 되는 거예요?”
“상관없어. 그리고 내가 면접 특강 때 설명했지? 진로나 전공이랑 연결 지을 수 있으면 뭐든 좋다고.”
당연히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건 제외하고.
이 말을 덧붙이자 태성이가 키득 웃었다.
“그럼 대학생이 되어서 뭘 하고 싶은지, 한 번 만들어 보자.”
“네!”
태성이는 대학생이 되어서 하고 싶은 걸 하나하나 말했다. 세계여행, 봉사활동 등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원하는 활동들이었다.
“너 왜 솔직해지지 못하냐?”
내 타박에 태성이가 머뭇거렸다.
“미팅이나 소개팅 하고 싶다며.”
“아 근데 쌤, 그걸 어떻게 말해요.”
“왜 못 해? 미팅하면서 연애에 도움을 주는 맛집, 데이트 코스 안내 홈페이지나 어플을 만들어 볼 수도 있고, 그런 사이트를 ‘경영’할 수도 있잖아. 아니면 미팅을 통해 여러 분야 전공자들을 만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도 있겠지?”
태성이는 내 말을 들으면서 눈을 껌뻑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서 열심히 샤프로 메모를 했다.
“쌤 저 이거 써먹어도 돼요?”
“네 걸로 만들어서 쓸 거라면 얼마든지.”
* * *
만약 태성이가 나와 연습했던 내용대로만 답변했다면, 나쁜 답변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분위기가 좋았다면, 그 답변은 재치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다.
“야,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태성이가 나에게 말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성이가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미팅이 하고 싶다. 나는 남녀 간의 감정을 잘 모른다. 숫기도 없어서 이성친구들 앞에서는 벌벌 떨기도 한다.”
“와 벌써부터 거짓말했네 이거.”
“아냐, 나 진짜 은장이나 정아 정도 아니면 벌벌 떨어. 아무튼!”
태성이의 답변에 정석이가 태클을 걸자 태성이도 억울하다며 설명을 했다. 잠시간 정석이와 옥신각신한 태성이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연애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애가이드 페이지를 만들고 싶다. 그걸 만들어서 지역의 숨겨진 맛집이나 데이트 코스를 소개해서 지역 사회 발전도 돕고 싶다.”
“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지역 사회 발전이 뭐가 있겠냐 물어보셨고… 전통시장이나 역사유적지 같은 산책로 탐방 같은 거 말했지 뭐.”
“효령대군묘 예시로 들었지?”
내 질문에 태성이가 아! 하면서 손을 탁 쳤다.
“그건 까먹었어요 쌤… 아! 그걸 왜 안 했지!”
태성이가 아쉬워했지만, 친구들은 생각보다 답변이 괜찮다고 평가해주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도 이 정도면 태성이의 색깔을 잘 드러낸 답변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마지막에 예시만 제대로 들어주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아무튼 고생 많았다. 긴장 풀지 말고 수능도 열심히 준비해보자.”
“네!”
앞으로 수능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또 한 번의 중요한 시기가 남아 있었다.
* * *
학부모회장은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이전에는 이 정도만 갈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오히려 아들의 성적이 내려가는 것 같아 목표한 대학을 가지 못할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 불안감이 일부분 해소되었다.
<한목대 2차 면접 대상자로 선발되었습니다.>
오늘 오후5시에 발표된 한목대 1차 합격자에 아들인 명천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쟁률이 15:1이었는데!’
1단계에서 아무리 5배수를 뽑는다 해도, 떨어질 수도 있는 게 바로 1차 전형이었다.
게다가 한목대는 의예과에 있어서만큼은 나름 인지도가 있는 편이지 않은가.
학부모회장은 이 기쁜 소식을 먼저 아들인 명천에게 알렸다.
명천은 합격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기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다시 표정을 굳혔다.
“이제 수능 잘 봐서 최저부터 맞춰야 해.”
“면접 준비는 언제부터 하려고?”
“담임쌤이 수능 끝나고부터 하래.”
정해진 계획을 이야기하던 명천은 갑자기 말을 중단하고 투덜댔다.
“내가 왜 담임 말에….”
학부모회장은 그런 아들을 보면서 입이 귀에 걸려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강명문 선생과 1:1 과외를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실상 입학사정관제로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은 명천이뿐이었다.
그렇기에 자기소개서 특강, 면접 특강에 아들을 포함시켰다. 강명문은 학교 정규 프로그램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아들은 강명문 선생의 영향을 받아 많은 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명천의 변화들을 보면서 만족해한 학부모회장은 당연한 일일 거라 생각하면서 명천에게 물었다.
“그럼 수능 끝나고 MMI면접반도 오픈하신다고 하시니?”
그러나 돌아온 명천의 답변은 학부모회장에게 충격과 불안감을 주었다.
“아니? 그냥 기출문제만 주실 거라 하시던데. MMI준비생 나뿐이기도 하고.”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학부모회장은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 당장은 수능이 1주일도 안 남았기 때문에 움직이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그녀는 수능이 끝나고 강명문과 한명심을 찾아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우선 수능부터 잘 보자.”
물론, 명천에게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직 하나의 고민만이 이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강명문의 수업을 오픈할 만한 명분. 학부모회장은 여러 생각을 정리하면서 어딘가에 문자를 보냈다.
* * *
명천이가 한목대 수시 입학사정관제에 1차 합격하고 다음 날, 학생회에서 수능을 치르는 선배들을 위해 응원 이벤트를 준비했다.
재미있는 건, 이전과는 달리 현장 응원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뭐야, 이번에는 빨리 하네?”
몇몇 학생들, 교사들이 의문을 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행사를 주관하는 학생회 임원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벤트를 진행하기 며칠 전, 나는 지석 선배, 박 선생, 윤 선생과 함께 교무실에서 수능응원 관련 회의를 했다.
“당일 현장 응원이 학교 전통이었는데 그걸 없애도 되나요?”
내가 제시한 방안이 다소 파격적이라 생각했는지 박 선생이 물었다. 당연히 지석 선배, 윤 선생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당일에 응원하면 정신 사납기만 하고 집중도도 떨어집니다.”
나는 모의고사는 매번 1등급을 받다가 수능에서는 3등급, 4등급을 받아 온 학생을 떠올렸다. 입시 코디를 하던 시절, 삼수까지만 하고 더는 못하겠다면서 정시전략 상담을 온 학생이었다.
-멘탈 관리가 어려워요.
그게 녀석의 답이었고, 대다수 학생들이 수능에서 어려워하는 지점이었다.
“그럼 아예 없애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물어보는 지석 선배에게 나는 안 될 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년에는 지금 고2 학생들 입시 준비도 해야 합니다. 그 녀석들 때문에라도 이런 행사는 필요합니다.”
특히나 민주처럼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경영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행사 기획 경험과 이로 인한 고객의 만족도 조사를 통해 매력적인 비교과 활동으로 이어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사장, 한 교감, 강 교장에게는 이미 허가 받았고.
그런 부분까지는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세 교사들은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 선생님, 이거 혹시 민주 때문에 여시는 거예요?”
눈치 빠른 박 선생만 얼추 지금 이벤트를 왜 열려고 하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그런 것도 있기는 합니다.”
“오… 은혜를 도시락 까먹고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요.”
“누가 들으면 염치도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겠습니다.”
“어머, 아직 입시 시즌 안 끝난 거 아시죠? 끝나면 지금까지 고생시킨 값 톡톡히 치르도록 할 거예요. 선생님들도 동의하시죠?”
지석 선배와 윤 선생도 그 말에 동의한다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계획한 일들을 지지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박 선생을 보면서도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즌 끝나면 기대하시죠.”
그런 그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이번 입시가 끝나면 뭐든 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어쨌든, 이후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선 민주를 통해 학생회에서 준비하는 수능 응원 이벤트에 대해 설명했다. 민주는 당일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가, 내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하루 전에 할까요?”
“아니, 이틀 전에.”
그리고는 민주에게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이야기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이번 행사가 가지는 공적인 가치였다.
“경영학, 사회적기업, 공공성. 이 세 개를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해.”
민주에게 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알려 주었고, 그걸 토대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끔 이끌었다. 궁금한 것들, 효과성에 대해 물어보면서 민주는 학생회 임원들과 빠른 시간 안에 이벤트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민주는 작은 카드와 공정무역 초콜렛을 하나의 봉투로 담아왔다. 기존에 진행하려 했던 이벤트가 수기 응원 카드였기에 카드는 기존의 것을 활용했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된 게 공정무역 초콜렛이었다.
“선배님들 힘내세요!”
민주가 포장한 간식봉지를 3학년 학생들에게 나눠 주면서 소리쳤다. 그러다 은장이, 동석이, 정석이를 발견하고는 손을 휙휙 휘저으면서 반가워했다.
“동석 선배님 축하드려요!”
“어? 아, 아니, 아냐. 아직 공부해야 해.”
동석이는 내가 일러둔 말을 잘 지키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렇게 당황하면서 아직 공부 중이라는 대답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민주 입장에서는 저게 무슨 소리인가 했을 것이다. 고개를 갸웃하는 민주에게 은장이가 물었다.
“민주야 이 활동 생기부에 넣을 거야?”
얼씨구?
“네! 강쌤이 넣는 거 도와주신다 하셨어요!”
“그거 나도 도와줄게! 내가 올해 어떻게 준비했냐면….”
은장이가 민주에게 추가적인 조언을 주려던 때, 은장이 앞으로 다가갔다.
“김은장.”
“헉.”
“벌써부터 오지랖 부리지 말고, 공부하러나 가. 합격만 하면 후배들 도와주라고 지겹도록 불러 줄 테니까.”
은장이는 내 말을 듣자마자 역시 오대천왕이라고 중얼거리면서 교실로 올라갔다. 민주는 다시 수능 응원 이벤트를 재개했다.
그런 민주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번 3학년에게는 부족했던 것을 예비 3학년들에게는 채울 수 있었다.
‘2학년 때부터 작업 들어가면 좋지.’
올해와 내년을 잇는, 연계성 있는 입시 준비.
그 첫 번째 준비가 2학년 민주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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