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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90화 (90/252)
  • 90화. 하고 싶어요

    며칠 전, 민지정은 최동석의 합격 소식을 들으면서 이빨을 까득 깨물었다.

    강명문. 분명 올 초까지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6월부터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처럼 여러 활동들을 해 왔다. 그리고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었다.

    ‘초짜라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학부모들로부터 환심을 사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이 되었다.

    지금은 학부모회장을 비롯해 여러 학부모들이 강명문의 특강이 또 언제 열리냐는 문의가 교무실로 올 정도였다.

    ‘이게 학원이지 학교냐고.’

    민지정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핸드폰 너머에서 민지정의 전화를 받은 남성은 간단히 용건만 말하라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아도 할 말만 하고 끊겠습니다.”

    메모할 노트와 펜을 꺼낸 민지정이 상대를 향해 물었다.

    “이번에 학원에서 국내 컨설팅 준비한다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그치. 이번에 팀 오픈해서 성과도 기대하고 있지. 왜?]

    이것저것 메모를 하다가 민지정이 물었다.

    “혹시 정시컨설팅 저희랑 해 볼 생각 없습니까?”

    * * *

    민 부장의 눈을 본 나는 그녀의 속셈이 뻔히 보여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티 나게 하나.’

    최근 내가 거둔 입시 실적과 류 선생이 자신의 라인에서 이탈한 일. 이 두 가지만 해도 민 부장이 나를 견제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하필 그 대상이 퓨쳐컨설팅이었다.

    “수시는 최근 전형이 많이 바뀌었으니까 괜찮지만, 정시는 또 그렇지 않으니까.”

    민 부장은 한 교감도 구워삶은 모양이었다. 아마 수시에서의 성과가 나오고 있다면, 정시에서는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다, 라는 식으로 어필했을 것이다.

    “그래서 정시 전문 업체와 협업하면 어떨까 해서 퓨쳐컨설팅으로부터 제안서를 받아왔지.”

    “네, 알겠습니다. 설명회 순서는 어떻게 되나요?”

    여기에서 바로 반대의견을 말하기에는 그만한 근거가 부족했다.

    퓨쳐컨설팅이 실제로 유학 컨설팅 업체로서 입지를 다져온 것은 사실이었다.

    대필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경찰 조사를 받는 건 앞으로도 몇 년이 지난 후이기 때문이다.

    “올해 수능 문제 분석, 앞으로의 정시 준비 방법, 지원 전략. 이렇게 3개 목차를 기본으로 깔고 갈 거야.”

    민 부장은 손가락을 세 개 들어 보였다.

    “그럼 고1, 고2 학부모들도 들을 수 있는 형태입니까?”

    “그렇지. 역시 강 선생, 딱 보면 사이즈 나오는구만!”

    아마, 고3뿐 아니라 고1, 고2까지 합치는 형태의 설명회를 기획한 건 민 부장 본인이었을 것이다.

    그 예상이 맞았는지 한 교감이 나를 칭찬하자 민 부장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가 다시 펴졌다. 나는 그 얼굴을 짐짓 모른 척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괜찮은 것 같다고 답했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고3 대상이 아니라 고1, 고2까지 아우르려 한다는 게 이상하기는 합니다만….”

    “미리 준비해둬서 나쁠 건 없잖아? 그리고 항상 이 시기에 사설 학원 설명회가 많았지만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으니까.”

    수능이 끝나면 많은 학원업체에서 관련된 설명회를 오픈한다. 다만, 대형학원이나 대치동 유명 학원의 경우에는 제한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는 아직 온라인 설명회가 활성화 되어 있던 시기도 아니었다. 따라서 민 부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목표로 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민 부장을 향해 나는 순진한 어린 양처럼 미소를 지었다.

    “교무부장님의 아이디어가 정말 좋으신 것 같습니다. 특히 퓨쳐컨설팅에서 선수를 데리고 왔다면 퀄리티도 보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잠깐 뜸을 들이는 나에게 한 교감이 얼른 말하라며 재촉했다.

    “유학 전문 컨설팅 업체가 국내 입시를 대하는 거에 대해 학부모들이 의아해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강 선생 말도 맞아. 그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고민해야 하네.”

    한 교감의 말에 민 부장도 고민을 했다. 그 시간이 모래시계를 보듯 느리게 느껴질 때쯤 민 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럼 퓨쳐컨설팅 측에 연락해서 연사 소개문, 제공 입시 자료들을 보다 보완하라고 일러두겠습니다.”

    한 교감이 만족스럽게 웃었고 나도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이후 잠시간 입시 준비 현황에 대해 공유 같은 보고를 하고는 교감실을 나섰다.

    씨익-

    교감실을 나와서 내 자리에 앉자마자 조용히 웃었다.

    민 부장은 두 가지 실수를 했다.

    하나는 퓨쳐컨설팅의 실체를 내가 모르는 줄 안다는 점.

    또 하나는, 마지막에 보완해서 준비할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 하는데 보완하라고 명령하듯 말하겠다고 한 점.

    이 두 가지가 민 부장이 이번에 드러낸 허점이었다.

    꽤 재미있는 설명회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웃고 있을 때였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봐요?”

    박 선생이 내 옆에 다가와서는 태평하게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면 딴청을 부렸다.

    “넌 지금 뭐가 그리 좋아서 실실 쪼개고 있냐.”

    지석 선배도 나에게 태클을 걸며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나와 박 선생에게 말했다.

    “일 터졌어.”

    “무슨 일이요?”

    선배는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면서 컴퓨터의 절전모드를 풀었다. 그리고는 한 사이트에 접속해서 글을 하나 보여 주었다.

    “이런 미친….”

    선배가 보여 준 화면은 미래교육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하나의 기사였다.

    <강문고 5등급 학생, 연천대 꿈을 이루다!>

    기사를 보자마자 나는 신 기자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신 기자는 억울하다면서 자기가 쓴 게 아니라고 했다. 게다가 편집장도 이번 일에는 학교 측으로부터 전화도 받고 해서 조심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게다가 본인은 외부 취재 나와서 지금 어떤 기사가 올라왔는지도 지금 전화로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편집장도 반대한 일을 그 아래 직원이 썼다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어요. 거기 기자 이메일 안 적혀 있나요?]

    나는 다시 한번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의 마지막 귀퉁이에 bikachoo 라는 아이디의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 주소를 듣자마자 신 기자가 짧게 욕을 했다.

    [이 미친년이 또….]

    “누굽니까 이거?”

    [그거 추자인 선배예요. 자기 대학생 때 별명이 빛카츄였다면서 회식 자리에서 자랑을 엄청했어요. 확실해요.]

    추자인이라면 지난번 인터뷰를 왔던 그 기자였다. 신 기자보다 5년이었나 선배였던 걸로 기억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저희는 편집장님에게 전화하겠습니다.”

    [네, 네 꼭 전화 주세요. 죄송해요….]

    신 기자의 사과를 들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옆을 보니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은 벌써부터 학부모들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나한테도 문자가 몇 통 와 있었다. 나는 그 문자들을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이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사장님, 비상사태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사장이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해서 진동이 울렸지만, 나는 모두 받지 않았다.

    * * *

    사태가 그나마 조금 진정된 건 이사장이 미래교육 편집장에게 전화를 해서 기사를 내린 이후였다. 물론, 퍼질 만한 사람들에게는 기사가 퍼지기는 했지만, 더 큰 확산을 막았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추 기자는 편집장의 의도를 거부하고 글을 올렸지만, 따로 징계를 받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신 기자 역시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황해서 횡설수설 말하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하는 신 기자의 반응을 보면서 확신했다.

    ‘신 기자는 비리 사건 때 연루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입기자인 신 기자를 믿을 수는 있다. 큰 힘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언론의 정보를 얻기에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응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나를 비롯한 모든 교사들은 동석이 사례는 정말 이례적인 케이스다. 천재성을 지닌 학생이 아니면 어렵다. 그런 뉘앙스로 설명을 했다.

    현재 닥친 상황이 크게 변화를 주기 어려움을 알고 있는 고3 학부모들은 여기에 동의를 했다.

    “고1, 고2는 좀 걱정됩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짧게 신음했다.

    “만약 동석이처럼 준비한 사례가 일반화되었다가는….”

    “제1, 제2의 최동석을 꿈꾸는 학생들이 나올 겁니다.”

    사실 이미 동석이가 합격한 순간부터 이런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시 면접, 논술, 정시 준비에 집중해야 했기에 가급적 이런 사태를 미루고 싶었다.

    ‘그래서 언론에 알리는 것도 피한 건데.’

    생각지도 못한 추 기자의 돌발 행동 때문에 일이 벌써부터 불거지게 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 빨리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나는 이사장에게 말했다.

    “강문고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할 여지가 매우 높습니다.”

    입학사정관제와 학생부종합전형이 생기면서 발생한 부작용이 있었다. 특히나 특기자전형의 경우에는 그 전형의 설립 의도가 변질되어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내신 성적, 수능 점수가 좋지 않아도 최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이는 각종 편법을 야기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실제로 있는 집 자식과 없는 집 자식들 간의 학력격차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위 말하는 있는 집 자제들은 부모의 뒷배경 덕분에 화려한 활동을 만들어나갔다.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활동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실제 평가를 받을 때는 이런 부분들을 감안하는 등 공정성 강화를 위해 힘쓰게 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그런 격차가 바로 자신감과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내년 학생들 중 몇몇에게 그런 마인드가 발생하면 큰일이다.’

    이제 곧 수능이 끝나고 정시 지원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고3 학생들. 그 학생들이 졸업하는 시점에서 나는 또 다른 학생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학생들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 시기이기도 했다.

    “내년 학생들에게 이런 영향이 가서는 안 될 겁니다.”

    “나중에 강 선생이 설명회를 한번 열어 주면 좋겠는데 어때요?”

    “저야 열어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이사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나섰다.

    지금 당장은 문제 될 게 없었지만, 다가올 내년 입시를 위해서는 미리부터 준비를 해야했다.

    ‘그게 퓨쳐컨설팅 설명회로도 준비될 수 있겠지.’

    민 부장과 이야기 나누었던 설명회 컨셉을 잠깐 떠올리면서 씨익 웃었다. 그렇게 기쁜 마음, 설렌 마음을 반반씩 갖춘 웃음을 하고서 코앞에 닥친 입시 일정을 준비하러 이동했다.

    * * *

    태성이의 면접은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되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다른 친구들은 잠깐 쉬는 시간을 이용해 교무실에 내려와 있었다.

    “잘 봤냐?”

    내 물음에 태성이는 조금 멈칫멈칫하다가 어떤 질문이 나왔는지 이야기했다.

    잠깐 면접 후기를 듣던 학생들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들었을 때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다가 태성이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했느냐는 물음에는 대답을 하기를 머뭇거렸다.

    “왜 그래? 입학 후에 뭐 하고 싶냐고 물어본 게 그렇게 망했어?”

    태성이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눈치를 슬슬 보며 말했다.

    “그… 입학 후 계획 질문이었는데….”

    “아! 너 진짜 그걸…?.”

    태성이는 친구들의 설마설마하는 의문을 한 방에 날려버리면서 멋쩍게 웃었다.

    “미팅… 하고 싶다고 했어요.”

    학생들이 태성이를 나무라면서 한 마디씩 하려고 할 때, 나는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오, 그럼 잘 답변 했겠네. 잘 했어.”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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