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89화 (89/252)

89화. 설마가 사람 잡는다

동석이의 연천대 합격 발표가 있고 다음 날, 학교에 문의전화가 많이 오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한 교감과 강 교장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기자들이 학교로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 안 오는데요?”

옆에 앉아 있던 박 선생이 의외라며 놀라워했다.

사실 한 교감이나 강 교장이 아니어도 연천대에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연천창의IT인재전형은 여러 학교에서 주목하고 있는 전형이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만 뽑는 건 아닌지, 과학고 학생들처럼 특목고 학생들 위주로 선발하는 건 아닌지 등 각종 추측이 난무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동석이 합격 사례는 자신들이 소신 있게, 정말 성장가능성만을 보고 선발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기에 적합했다.

“흐음… 뭐 안 오면 다행이죠.”

그러나 문득 학생들의 sns를 떠올렸다. 트위티에 한 마디라도 들어갔다면….

“에이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등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어제 이사장이 했던 말을 곱씹어봤다.

* * *

“한목대 입학자문위원을 말입니까?”

솔직히 놀랐다.

서윤수 교수는 한목대학교 자문위원으로 나를 추천하려 했다. 이제 막 2년차가 넘어가려 하는 초임교사에게 말이다.

한목대로서는 엄청난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서 교수랑 이야기해 보세요. 동의하신 걸로 전달하면 되겠지요?”

이사장은 기쁜 속내를 살짝 숨기고서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초임교사라는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실력 검증이 필요하다면 올해 실적과 함께 현장에서 보여 주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하자 이사장이 표정을 밝게 바꿨다.

* * *

‘한목대라….’

서 교수가 만들어 준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한목대가 입학자문위원에게 어떤 걸 기대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면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다가 핸드폰이 우웅 울려서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네 강명문입니….”

[대박! 대박!!!! 내신 5등급 연천대 붙었다면서요?]

번호를 보니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누구요?”

[누구요? 라니! 번호 저장 안 했어요? 저 미래교육 신미나 기자요!]

“아… 그래요?”

나는 별 감흥 없이 대꾸했다. 그러자 핸드폰 너머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느니, 우리 이런 사이였냐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에서 귀를 살짝 떨어뜨리고 신 기자가 진정할 때쯤 되자 궁금한 걸 먼저 물었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뭘요?]

“연천대 합격생.”

아, 짧게 반응한 후 이어진 신 기자의 말을 듣고 나는 손에 쥔 핸드폰을 부술 기세로 세게 쥐었다.

[트위티에 누가 올렸던데요?]

* * *

트위티에 동석이의 합격 결과를 올린 건 정아였다.

“죄송합니다….”

내 호출에 내려온 정아가 양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녀석도 처음에는 이게 그렇게 혼날 일인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교무실에서 들리는 수많은 전화벨 소리와 한 교감, 강 교장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네, 네… 아뇨, 지금은 안 됩니다. 학생들 공부도 해야 하고… 나중에 수능 끝나고….”

트위티 글의 여파는 신 기자의 전화 이후 얼마 있지 않아 여기저기 퍼진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여러 교직원들이 언론사 전화에 시달리고 있었다.

“트위티 탈퇴해.”

“네!?”

“너 논술 끝날 때까지 금지야.”

“하지만 쉴 때만 하는 건데….”

나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정아를 보면서 혀를 찼다.

“지금 너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거 안 보여?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말하는 유명 축구 감독도 있어.”

“그게 누군데요?”

“퍼거슨이라고… 그런 사람이 있어. 그러니까 이제 접어. 대학생 되면 자유롭게 하고.”

문득 퍼거슨 감독이 sns이야기를 했던 게 지금 시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말을 줄였다. 어쨌든, 지금 정아는 sns 하나 때문에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게 되었다.

“봐, 벌써 교감 선생님이랑 동석이가 면담하고 있잖아.”

한 교감은 방금 전까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동석이와 면담을 하고 있었다.

아마 연천대 합격에 대한 축하와 지금 사태에 대한 위로와 격려, 정도일 것이다.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을 하는 정아를 보면서 나는 박 선생에게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전달했다.

-선생님 일 났어요.

-왜요?

-반에서 내신 낮아도 연천대 가는데 공부 왜 하냐고 물어보는 애들이 생기네요.

-벌써 소문났습니까?

-네. 걔들도 트위티로 봤다고 하네요.

소문이 퍼지는 거야 괜찮았다. 어차피 같은 학교를 다니면 누군가의 합격 소식은 금방 퍼지니 말이다.

하지만, 그 출처가 sns였다는 게 문제였다.

sns만 아니었다면 학습 분위기를 바로 하루 만에 망치지는 않았을 테니까.

물론 고3이 되어서도 sns를 하는 녀석들도 문제가 많았고.

“학교 분위기를 다 망쳐서 입시 준비하는 애들 싱숭생숭하게 만들었어. 보이지?”

“…네.”

“그래도 그걸, 굳이, 지금 시점에서! 계속 하고 싶냐? 한 달만 참아.”

정아는 내 말에 알겠다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동석이가 한 교감과 함께 교감실에서 나왔다.

“강 선생, 이사장님 전화네.”

한 교감이 핸드폰을 건넸다.

“네, 강명문입니다.”

[오늘 일들 전해 들었습니다. 언론에는 최대한 수능 전까지는 자제해 주라고 이야기했어요.]

“감사합니다.”

[혹시 몰라 연천대에 아는 지인에게도 연락해두었어요.]

이사장은 학생들이 아니라 연천대측에서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역시 한 교감이나 강 교장보다는 더 상황 판단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네 딱 한 달만 버티면 그 뒤부터는 언론에서 와도 괜찮습니다. 그때까지만 꼭 부탁드립니다.”

이사장은 걱정하지 말고 학생들 마인드 컨트롤 잘 해주라고 당부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한 교감에게 핸드폰을 건네고 나는 동석이에게 현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녀석도 대략적인 내용은 한 교감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언행 조심해라 동석아.”

누군가가 합격하게 되면 그 한 명으로 인해 학급 분위기가 망가질 수 있다.

특히, 강문고 학생들은 최상위권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자칫 잘못하면 동석이 사례를 일반화해서 지금의 고1, 고2 학생들이 따라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업 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 후에도, 혹시나 학생들로부터 이상한 소문은 돌지 않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은장이와 정석이도 반에서 면학분위기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니들이 붙었냐? 닥치고 집중 좀 하자.

심지어 명천이조차도 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소식을 은장이로부터 전해 듣고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동석이의 합격이 어떤 학생들에게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렸지만, 또 어떤 학생들에게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지 않기는 하지만.’

어쨌든 명천이가 의욕을 더욱 불태우게 된 건 좋은 일이었다.

어수선했던 학교 분위기는 그렇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각자의 입시전략에 맞춰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학생들은 하나둘 쓴맛과 단맛을 함께 맛봐야 했다.

“망했다….”

수시 1차 합격자 명단에 없는 학생들도 있었고

“아싸!”

그 명단에 포함된 학생들도 있었다.

그중 은장이와 태성이는 각각 서울한국대와 국인대 발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떴어!”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긴 동석이가 미리 사이트에 접속해서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두 학교는 미리 공지했던 발표 시간인 오후 2시에 딱 맞춰서 발표자 조회 링크를 열었다.

교무실로 내려 온 은장이와 태성이는 각자의 수험번호를 체크하고 1차 합격자 조회를 했다.

“어….”

“왜 그래?”

내 교무실 컴퓨터에서 조회를 하던 은장이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는 나를 돌아봤다.

“쌤… 진짜 붙었어요.”

<김은장님은 2단계 면접 대상자입니다.>

모니터에는 서울한국대 인문광역계열 1학과 면접 대상자이니 신분증과 수험표를 꼭 지참하라는 등의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저, 저 됐어요!”

은장이의 1차 합격을 축하해 주면서 들뜨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2차는 교과 없이 서류랑 면접으로만 평가하는 거 알지? 면접 준비 확실하게 하고,”

은장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어서 태성이도 국인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합격자 조회를 했다.

태성이도 1차 합격자가 되었고, 면접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헐… 진짜 됐어.”

“당연하지. 누가 상담하고 관리했는데.”

나는 은장이와 태성이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둘은 나에게 고마워하면서도 아직 남은 면접 전형 준비를 위해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내신도 낮고 입시 정보도 부족해서 대학교는 생각도 제대로 못 하던 동석이.

교과 내신이 낮아서 서울한국대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은장이.

입시 전형을 전혀 알지 못해 논술만 생각하던 태성이.

이 셋 중 동석이는 이미 최종합격을 했고, 은장이와 태성이도 1차 합격을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교무실에 있던 지석 선배, 박 선생은 물론이고 류 선생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너, 너 뭐야?”

“네? 뭐가요?”

지석 선배는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올 초여름부터 이상하다 싶기는 했는데, 너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전부?”

“선배, 아직 동석이 말고는 아무도 최초합격자 나온 거 없습니다.”

“어쨌든 동석이도 동석이야! 그런 전형들은 어떻게 알았고, 준비 방식이나 평가 요소는 또 뭔데!”

2년차 초임교사가 지금 정도의 실적을 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입시와 관련해서는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서 한목대 서윤수 교수로부터는 입학자문위원 제의까지 받았다.

그런 여러 일들이 겹치다 보니 지석 선배가 나를 수상하게 여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솔직히 동석이가 진짜 합격할 줄은 저도 몰랐어요. 게다가 최초합이잖아요?”

“그래. 추합(추가합격)도 아니고 최초합이 말이나 되냐고!”

“그건 그렇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강 선생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 그렇게들 생각하지 않으세요?”

류 선생은 심지어 나를 띄워주기까지 했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할 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실력일 수도 있고. 다른 학생들 결과 나오면 알지 않을까?”

오직 윤 선생 한 명만 침착하게 다른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런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때, 뒤에서 강 교장이 나를 불렀다.

“강 선생, 잠시만.”

강 교장을 따라 교장실로 들어가니 민 부장과 한 교감도 있었다.

“이제 수능이 한 달쯤 안 남았는데….”

잠시 말을 흐리던 강 교장은 종이를 하나 집어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강문고 x 대치 퓨쳐컨설팅, 입시 절대고수와 함께하는 정시지원전략!>

종이를 보자마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게 뭡니까?”

“아직 하기로 결정한 건 아니고, 제안이 온 거야. 누님… 아니 이사장님이 강 선생에게 꼭 물어보고 하라더군.”

옆에서 한 교감이 강 교장을 대신해서 말했다. 민 부장은 나를 보면서 살짝 웃어 보였다.

다른 학원도 아니고 퓨쳐컨설팅이라니, 안 될 말이었다.

“여기는 유학 전문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정시를….”

“이번에 전문가 선생님을 많이 모셔와서 국내 입시팀이 꾸려졌다고 하더군요. 학원에 연고도 있는 분도 있고 해서 한번 받아 봤어요.”

민 부장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내 표정을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굳이 퓨쳐컨설팅과 하려는 이유가 있나?

‘설마.’

이 자리에서 강 교장과 한 교감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사람.

‘뭐가 있네.’

민 부장이 음흉한 미소를 띠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나는 그런 민부장을 보며 싱긋 웃었다.

잔잔한 미소와 달리 두 눈은 붙박이처럼 고정된 채였다.

휙.

그러자 못 버티겠던지 민 부장은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재밌는 걸 꾸몄나 보네.’

그게 무엇이든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 교무실에 있는 사람 모두, 뛰어 봐야 손바닥 안이니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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