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88화 (88/252)
  • 88화. 첫 결과

    강은숙 이사장은 강명문에게 문자를 보낸 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웬일이야?”

    [웬일이기는, 내가 대학 동기한테 연락도 마음대로 못 하나?]

    핸드폰 건너에서 서윤수 한목대 의과대학장 교수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사장은 살짝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누르면서 물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연락하면 위험한 거 아니야?”

    [뭐 우리가 청탁을 하나 뭘 하나. 괜찮아. 강 선생은 잘 있고?]

    서윤수는 학교로 돌아간 뒤에 교수들과 비슷한 주제로 토의를 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의견을 내는 사람은 강명문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한 자신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강명문에 대한 점수를 더 높이 측정하게 되었다. 지금은 입시 시즌이라 강명문에게 직접 연락하기가 어려웠고, 시즌이 끝나면 식사 자리라도 한번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요즘 학생들 입시 준비한다고 정신없지.”

    [하긴 강 선생이 강문고 에이스 아닌가?]

    그 말에 강은숙 이사장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핸드폰 너머에 있는 서윤수도 그 낌새를 눈치챘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자기 사람 칭찬했다고 입이 귀에 걸렸나 보구만?]

    “우리 강 선생이 에이스는 맞지. 그래서 그런 이야기나 하려고 전화했어?”

    이사장은 서윤수에게 어떤 목적이 따로 있지 않은지를 살짝 건드려 봤다. 서윤수는 이사장의 의도에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조만간 우리 한목대에서 강 선생을 초대하고 싶은데.]

    “초대?”

    서윤수는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이사장에게 이야기했다. 서윤수의 이야기를 들은 이사장은 기쁨과 놀람이 섞인 얼굴로 물었다.

    “그래도 괜찮은 거야?”

    [문제 될 게 있나?]

    “대외적으로 경력이라든가 그런 부분에 문제가 있지는 않냐고.”

    이사장의 물음에 서윤수가 껄껄 웃었다.

    [안될 게 뭐 있어! 괜찮아, 괜찮아. 내가 추천한 사람이라고 하면 돼.]

    서윤수 정도의 힘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기는 할 것이었다. 이사장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전달하겠다고만 말했다.

    [그나저나 지금 강 선생은 뭐하고 있나?]

    “지금 아마 연천대 입학처 보고 있을걸?”

    [연천대?]

    대학 입학처 사이트를 보고 있다는 이사장의 말에 서윤수가 어떤 연유인지 궁금해했다. 이사장은 그저 대답 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 * *

    동석이, 은장이, 정석이, 태성이까지 교무실의 내 컴퓨터 앞에 모였다.

    나는 조용히 연천대 입학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연천창의IT인재전형 합격자 조회>

    홈페이지에는 첫 화면부터 합격자 조회 배너가 걸려 있었다.

    동석이는 내 자리에 앉아서 수험표를 꺼내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합격자 공지사항>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나온 건 <합격자 공지사항> 글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적혀 있는 문장.

    <연천창의IT인재전형 글로벌융합공학과 최동석 합격>

    우리는 몇 초간 정지된 화면처럼 모니터에 뜬 글씨들을 차분히 읽어나갔다.

    혹시나 수험번호 입력에 실수하지는 않았는지, 합격자에 동석이 이름이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환호했다.

    “쌤!!!!!!!”

    동석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모니터를 가리켰다.

    “저, 저저저, 진, 진짜 연천대, 연천대!!!! 붙은 거 맞죠!?”

    그 말에 내가 아닌 친구들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동석아!!!!!”

    “진짜 축하해!!!!”

    “내가 너 붙는다 했지 어!!!”

    정석이와 태성이가 동석이를 뒤에서 얼싸안고 머리를 마구 만지면서 축하해 주었다. 동석이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지 시선을 모니터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동석아.”

    내가 부르고서야 동석이는 정신이 들었는지 헤드락을 걸고 있는 정석이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태성이도 동석이를 덮치면서 교무실은 한바탕 난장판이 되었다.

    “아, 아! 야 아파!”

    “이제 연천대생! 최동석이 네가 일 냈구나!!!!”

    일은 내가 냈지. 나는 동석이를 상담해 주고 지금까지 가르쳐 줬던 일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천재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적절한 진학지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내신 5.5등급의 신화, 바로 여기에 쓰여지다.

    라는 언론의 타이틀까지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석이에게 달라붙어 있는 정석이와 태성이를 떼어내고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동석이가 고개를 돌리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 뒤로 박 선생과 명천이, 정아까지 들어왔다. 정아는 교무실로 들어오자마자 동석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서는 아직까지 난리를 치고 있는 정석이와 태성이를 진정시켰다.

    은장이가 의외라면서 명천이를 보며 웃었다.

    동석이도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쌤, 박쌤.”

    그리고는 나와 박 선생을 보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쌤들 덕분에 붙었습니다!”

    동석이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 하고 있었다. 가장 기뻐해야 할 녀석의 목소리가 친구들과는 대조될 정도로 차분한 척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녀석이 기특하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동석아.”

    “네 쌤.”

    항상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용한 성격을 보여 주던 동석이가 기쁨을 주체하기 어렵다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런 녀석을 보며 나도 환하게 웃었다.

    “오늘은 질러라.”

    내 말에 동석이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나와 박 선생을 돌아봤다. 박 선생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의 표시를 했다. 우리 둘의 허락을 받은 동석이가 숨을 참기 힘들어하더니 두 손을 번쩍 위로 들었다.

    “나 이제 연천대생이다!!!!!”

    교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동석이에게 친구들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명천이만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따라가고 싶으면 빡쎄게 준비하자.”

    그런 명천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명천이가 흠칫 놀라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중얼거렸다.

    “…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했나요.”

    명천이를 향해 피식 웃으며 지갑을 꺼냈다.

    “쌤이 오늘 치킨에 피자 쏜다!!”

    “헐 진짜요?”

    “와 웬일?”

    “짠돌이가 아니었네!”

    마지막 멘트는 정석이였다. 성큼성큼 다가가 정석이 머리를 돌돌 만 종이몽둥이로 팍 내리쳤다.

    퍼엉!

    “아!”

    “짠돌이는 무슨. 나도 쏠 땐 쏜다. 시켜시켜!”

    회귀 후 첫 입시 실적.

    다시 교사가 되고 나서 약 5개월간의 장정이었다.

    그간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순서대로 지나쳐 갔다.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동석이의 입시. 천재였지만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지방 국립대로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동석이.

    그런 동석이는 이번 생에서 연천대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것도 석박사 7년 장학금을 받는 전형으로.

    어렵다면 어렵고, 힘들다면 힘들 수 있었겠지만, 잘 따라와 준 동석이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이 치킨과 피자는 그런 동석이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쌤 근데 저 진짜 선물 주실 거예요? 그럼 노트북 사 주세요!”

    뻔뻔하게 노트북을 요구하는 동석이의 말에 내 감상이 와장창 무너졌지만 말이다.

    퍽!

    “아야!”

    “정석이처럼 맨날 뒤통수 맞고 다닐래? 앙?”

    나는 종이몽둥이로 동석이의 이마를 쳤다. 은장이는 어느새 옆에서 치킨, 피자를 주문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동석이가 준비를 했었는지에 대해 마치 영웅담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가 재미났는지 모두 몇 시간이고 동석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 박 선생도 옆에서 녀석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배달음식이 와서도, 다 먹고 난 뒤에도, 늦은 시간까지 우리는 교무실에서 동석이의 합격을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동석이의 2011학년 입시가 연천대 최초합격으로 마무리되었다.

    * * *

    “들었어요. 학생들한테 치킨이랑 피자 쏘셨다면서요?”

    학생들을 먼저 보낸 나는 밤 10시가 넘어서 이사장과 미팅을 하고 있었다.

    첫 질문이 치킨과 피자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지만.

    “네, 정석이랑 태성이는 1인 1피자, 1닭 하더군요. 카드값이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호호 웃으면서 말했다.

    “그 나이대는 많이 먹고 많이 자라야지요.”

    이사장은 동석이의 결과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이미 교무실에서의 떠들썩한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런 모습은 교무실의 다른 교사들은 물론이고 한 교감에게도 전달되었다.

    [강 선생, 축하하네!]

    라는 문자를 받았기에 알 수 있었다.

    “동석이한테 선물해 주실 건가요?”

    “성과급이 있다고 들어서 그거 받으면 주기는 할 겁니다.”

    “그럼 노트북 하나 사 주세요.”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사장이 의외라며 물었다.

    “왜요? 동석이가 노트북은 싫다고 하나요?”

    “그게 아니라 성과급으로 산다고 해도 동석이는 공학계열이라 고성능으로 사 줘야 하는데, 그걸로도 못 사 줍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그런 일이었냐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제가 사 줄게요.”

    “네? 공대 애들 쓰는 노트북은 200만 원 정도는 들여야….”

    “그게 뭐 대순가요? 앞으로 천재로 이름을 날리게 될 우리 강문고 졸업생에게 그 정도는 해 줘야지요.”

    이런 투자는 전혀 아깝지 않다면서 말하는 이사장의 눈빛이 이건 진심임을 말하고 있었다.

    사실 동석이에게는 입학하고 나서도 좀 걱정이 되기는 했었다. 과외를 당장 한다고는 해도 동석이가 천재형이라 과학을 쉽게 알려 주거나 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게다가 아직 대학생이 아니어서 과외를 구하려면 내년 봄은 되어야 했고.

    그렇게 되면 학교 수업을 따라가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사장이 공학프로그램도 돌릴 수 있는 고성능 노트북을 사 준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어쩌면, 그 노트북 하나로 동석이의 연천대 1학년 1학기 캠퍼스라이프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정말 좋지요. 동석이도 정말 좋아할 겁니다.”

    “그럼 좀 알아봐야겠네요. 당장 내일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의견에 나는 반대 의사를 표했다.

    “내년 졸업식 때쯤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유가 있나요?”

    나는 이사장에게 생각하던 바를 이야기했다.

    “동석이가 합격하기는 했지만, 아직 다른 학생들 입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학습 분위기 유지를 위해서도 가급적 졸업식 즈음에 지급되었으면 합니다.”

    실제로 주변 친구가 수시에 합격했다고 학급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그 반의 입시는 폭망하기 십상이었다.

    그렇기에 방금 학생들을 보내기 직전에도 그런 주의를 주었다.

    -분위기 해치지 마라. 동석이도 학교에서 계속 공부해.

    -네. 공학수학 공부를….

    -아니, 고등학교 과정 공부해. 다른 자연과학들도 알아야 나중에 도움 된다. 화학1, 생명1 공부해.

    자칫 잘못해서 대학 과정을 공부하고 있어도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옆자리 앉은 친구는 대학교 합격해서 대학과정 공부하는데 자기는 입시 준비한다. 이 생각이 여기저기 퍼지는 순간 끝장이었다.

    그렇기에 동석이에게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라고 일러두었다.

    물론, 자연과학은 다 알아 두는 게 나중에 도움도 될 거고.

    “충분히 일리가 있군요.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이사장도 지금의 판단에 만족한 모습을 보였다.

    “오늘 서윤수 한목대 교수에게 전화가 왔어요.”

    “의과대학장님이요?”

    “네. 강 선생님에게 무언가 부탁하고 싶다고 그러던데….”

    서윤수 의과대학장이라면 지금쯤 한참 입시 업무가 있어서 또 정신이 없을 터였다.

    정말 친한가 보구나, 생각하면서 이사장의 말을 기다렸다.

    “자문위원을 물어보더군요.”

    “자문위원 말입니까?”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목대 입학자문위원. 생각 있어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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