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존재
동석은 가방을 메고 연천대 교문 앞에 내렸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연천대는 동석에게 있어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자신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 대학 문턱이나 밟아 볼까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당하게 면접대상자로 선발되어 여기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린 동석은 전날 담임이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평소 하던 대로 해.
어디 그게 쉽겠냐마는, 담임이 이야기해 준 건 또 특이했다.
-적당히 긴장하되 너무 쫄지는 마. 어차피 떨어지면 거기 교수님들 전부 동네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야.
그 설명에 학생들이 모두 피식 웃었다. 동석도 웃으면서 담임의 말을 메모했다.
-게다가 너희들 나랑 이야기할 때도 긴장하고 말하잖아? 그 정도면 된다.
-전 긴장 안 하는데요?
-넌 빼고 인마.
농담을 던지는 정석에게 담임이 분필을 던졌다. 분필은 화살처럼 날아서 정석의 이마에 정통으로 꽂혔다. 정석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그 모습에 학급 내에 웃음이 돌았다.
동석은 어제 일을 떠올리면서 담임의 이야기를 적어둔 메모장과 로봇도감을 손에 들었다.
아직 아침 8시라 그런가 학교에는 다른 대학생 선배들이 없었다.
담임의 말처럼 잘못하면 아침 일찍 준비해야 할 수 있다고 그랬는데, 동석의 면접 시간이 딱 그 시간이었다.
미리 연습을 해두지 않았으면 벌써부터 하품을 해대고 있을 뻔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석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 하….”
그리고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일러준 대로 면접관에서는 각종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기본 질문 시뮬이나 한번 돌려보고, 보던 책이랑 다 덮어.
-네? 그래도 되나요?
동석의 물음에 담임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서 연습 한두 번 한다고 얼마나 하겠냐? 명상이나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 해.
그래서 동석은 담임이 알려준 대로 기출문제지는 가방에 넣어서 전자기기와 함께 반납했다.
면접대기실에서 동석은 평소 즐겨보던 로봇도감을 꺼냈다.
면접 조교가 면접 진행 방식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은 후 주위를 둘러봤다.
면접을 준비하는 많은 학생들이 준비해 온 여러 종이들을 이리저리 넘기면서 보고 있었다.
‘역시 안 보기를 잘 했어.’
그런 종이를 보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긴장감이 가득해 보였다.
옆에서 면접 조교가 조금 걱정이 되었는지, 면접 공부 해도 된다고 물었지만, 동석은 이미 하고 있다고 답했다.
면접 조교는 동석이 보고 있는 논문을 보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석의 차례는 앞번호였다. 그래서 오전 11시가 채 되지 않았을 때 동석의 면접 차례가 되었다.
“이거 받고 15분 동안 풀면 들어갈게요.”
면접 조교가 건네준 종이에는 총 3개의 문제가 적혀 있었다.
하나는 췌장암 발병 확률 및 신약 판매부진과 관련된 확률을 구하는 문제였다.
또 하나는 카메라의 지지대가 왜 세 개인지 설명하는 문제였다.
세 번째는 세계의 영토분쟁과 관련된 문제였다.
동석은 어렵지 않게 세 문제를 모두 풀었다. 정답과 과정을 빼곡하게 십 분 동안 적고서는 종이를 뒤집었다.
면접 조교는 아직 5분 남았으니 좀 더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석은 고개를 젓고 다시 눈을 감았다.
확률 문제는 기본 수학 실력이 있으니 쉽게 풀었다. 카메라 지지대는 시사RPG대회 준비 때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점들을 떠올렸다.
-아 삼각대 잘못 설치했네.
은장이 무대 설치를 준비하면서 삼각대 때문에 애를 먹은 일이 있었다. 그때 동석은 다이아몬드 형태의 삼각대가 발명되면 중력이나 무게중심의 문제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영토분쟁은 시사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정석과 대화한 덕분이 컸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 문제는 너무 심하지 않냐?
동석은 자신이 잘 모르는 시사문제를 정석으로부터 듣는 게 즐거웠다.
면접 캠프 기간에는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시사 주제로 토론 아닌 토론도 했었다.
담임이 잡담하지 말고 공부할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라 그래서 정석이 매일 다른 주제의 신문기사를 들고 온 덕분이었다.
“들어갈게요.”
눈을 뜬 동석은 면접 조교의 지시에 따라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의 앞에는 두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반가워요.”
동석의 인사를 받은 젊은 남성이 앉으라며 의자를 가리켰다. 동석은 한 번 더 인사를 하고서 자리에 앉았다.
“그럼 제시문에 대한 답변부터 해 볼까요?”
동석은 자신이 작성한 답변을 설명했다. 동석의 답변을 듣던 면접관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한 번씩 추가질문을 했다.
추가질문은 어렵지 않았다. 만약 발병률이 절반 더 내려가면 어떻게 되겠는지, 영토분쟁의 대표적인 사례와 자신의 입장은 어떤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럼 이제 서류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면접관의 이어진 질문들도 어렵지 않았다. 우수성입증자료를 보면 전국로봇대회에서 수상을 했는데 어떤 로봇을 만들었는지, 그때 사용한 과학 원리는 무엇이었는지 따위였다.
이어진 질문들에도 쉽게 답변을 해나가자 면접관들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학생이 답변을 너무 잘 해서 우리가 더 물어볼 게 없네요.”
“아, 아닙니다, 많이 부족한데, 감사합니다.”
동석이 앉은 채로 머리를 꾸벅 숙였다. 그런 모습도 기특하게 보이는지 나이가 더 많은 면접관이 질문을 했다.
“마지막 질문인데….”
동석은 다시금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학생은 어떤 마음으로 로봇을 만드나요?”
남자의 질문에 동석이 잠시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아니,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면접관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로봇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거니까.”
무언가 빈틈을 찾으려는 듯 웃으면서 물어보는 면접관의 얼굴이 그 순간만큼은 야속해 보일 만도 했다.
그러나 동석은 담임이 건네준 투명 프라모델을 만들면서 고민했던 일을 떠올렸다.
‘나는….’
생각을 정리한 동석이 답변을 시작했다.
프라모델을 만들면서 생각했던 나만의 가치관. 로봇을 만들 때 고민했던 이 프라모델과 나의 조립. 그때의 이야기를 동석은 아낌없이 쏟아냈다.
답변을 경청한 두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수고하셨어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동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인사를 꾸벅하고는 강의실을 나갔다.
“푸하!”
동석은 면접 조교의 안내에 따라 짐을 찾고 건물 밖으로 나오고서야 크게 숨을 내뱉었다.
“저기.”
그런 동석에게 한 대학생이 걸어왔다.
“네?”
“창의IT인재 지원한 학생 맞지?”
“네, 맞아요.”
제대로 찾았다며 학생이 전단지를 하나 건넸다. 전단지에는 ‘오토모빌 공학 동아리’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우리 학교 입학하면 여기 찾아봐. 재밌을걸?”
“아…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내년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과잠을 입고 사라지는 선배를 보면서 동석은 전단지를 곱게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정말 이 학교에서 저런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면서 천천히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 * *
연천대의 공과대학 교수인 지성호 교수는 신이 났다.
‘존재란 말이지.’
면접 평가가 끝난 후에도 그는 기분이 고양되어 있었다.
오전에 봤던 학생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저그런 학생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학생부 내용을 보면 등급도 좋지 않고, 1, 2학년까지는 별다른 활동도 없었다.
하지만, 전국로봇대회 수상과 자기소개서, 추천서를 봤을 때 학생에게 성장가능성이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 면접 대상자로 선발해서 부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테스트를 해 보고자 제시문 답변에 대한 추가질문을 어렵게 던졌다. 이어진 서류기반질문에서도 일부러 과학 이론이나 공학 원리들을 물어봤다.
심지어는 대학과정에서나 심화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공학수학들도 질문해봤다.
그리고 학생은 그 모든 질문에 답변을 했다.
그것도 어렵지 않게, 마치 평소 친구들과 이런 주제로 자주 대화라도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독특해.’
솔직히 말하면, 하동기 선배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 천재로 보이는 애 있으면 무조건 잡아라.
-왜요?
-왜긴 왜야, 주변에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데 어설픈 애들 뽑아서 되겠어? 당연히 천재다 싶으면 뽑아야지.
-에이, 그런 천재가 뭐 매년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학생의 면접을 보면서 확신이 들었다.
선배가 말한 천재성을 지닌 학생이 바로 이런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런 천재성 하나만을 보고서 합격시킬 수는 없었기에 여러 가지를 테스트해 보았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답변을 잘 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약간 학생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심술도 생겼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으로 ‘지원자는 어떤 마음으로 로봇을 만드는지’를 물었다.
-저는 로봇의 존재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 말에 지성호는 눈이 번쩍 뜨였다.
-이 로봇은 어떤 필요를 가지고 어떤 이유로 만들어질까 고민합니다.
옆자리에 앉은 입학사정관도 학생의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대회 때 만들었던 로봇도 로봇이 갖게 될 가치에 대해 고민하면서 만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런 환경을 위하는 수륙양용 로봇을 구상했고, 직접 만들었다. 각종 이론에 빠삭하고 설계 과정까지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이니 본인이 직접 만든 것도 맞았다.
-프라모델을 만들 때도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즐겁게 하기 위해서, 또는 친구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
-그 일련의 과정들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이자 기쁨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만들 로봇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면서 로봇을 만들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만든 로봇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로봇은 미래에도 하나의 존재로서 남아 있게 된다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공학분야에 대한 철학적 사유까지.
지성호는 지친 몸을 이끌면서 연구실로 들어가 곧장 면접 평가지를 만들어 나갔다.
하나하나 점수를 매기는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서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 * *
연천 창의IT인재전형 면접을 무사히 치르고 온 동석이는 면접 후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만 남았다며 합격자 발표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전형보다 일찍 면접을 본 만큼, 발표날도 겨우 열흘 뒤에 나올 예정이었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동석이에게 면접 후기를 들어보니 답변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잘해 온 것처럼 들렸으니까.
몇 가지 걸리는 점은 있었다.
학생부 내용이 1, 2학년이 부실하다는 점, 빵빵한 수상실적이 전국로봇대회 이외에는 없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신 등급과 면접 때 일부 버벅였던 부분.
하지만, 연천대의 연천창의IT융합인재전형은 발전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으로도 미래에 유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분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정 안되면, 추가합격이라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만히 좀 있어라.”
나는 방과 후에도 교실에 남아 내 주변을 어지럽게 배회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잔소리를 했다.
동석이 본인도 이 정도는 아닌데, 오히려 주변 친구들이 더 난리였다.
“쌤은 긴장 안 되세요?”
“내가 긴장을 왜 해? 그리고 너희는 또 왜 하냐? 동석이가 하는 거면 이해라도 하지.”
동석이는 다른 녀석들처럼 발을 동동 구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얼굴을 보면 충분히 긴장과 기대를 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너희는 너희 준비할 거나 해. 태성이 빼고는 다들 수능 이후에 면접이랑 논술 싹 다 있으니까 페이스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하고.”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입시 일정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데 내 핸드폰이 소리를 내며 울렸다.
“잠깐만.”
이사장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문자를 확인한 나는 웃음기가 사라지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발표 났다.”
예상 날짜보다 하루 빠른 조기 발표였다.
“확인하러 가자.”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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