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86화 (86/252)

86화. 또 하나의 연습실

동석이가 연천대 면접대상자가 됐다는 소문은 하루가 가지 않고 온 교내에 퍼졌다.

여러 교사들이 놀랐지만, 가장 놀란 건 한 교감과 민 부장이었다.

“지, 진짜로?”

한 교감이 나를 호출했고, 민 부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조금 달라진 것 같네.’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정말로 네가 해냈다고?’ 였다.

머리는 좋아도 입시에서 성공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동석이가 천재성을 갖추고 있고, 로봇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것은 그 둘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당연했다. 한 교감은 동석이가 전국대회 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 이외에는 특출난 재능이 없다고 여겼다.

민 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석이가 상을 받은 건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연천대에서 이번에 작정하고 준비한 창의IT융합인재 전형에서 면접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그것도 3학년 막판에만 준비해서.

이건 동석이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녀석을 지도한 교사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저 둘이 나를 향해 던지는 시선이 이전과는 달라진 것이었다.

“네, 진짜입니다. 2주 뒤 금요일에 면접 있습니다.”

“허허, 허어… 내신 몇이었지 동석이가?”

한 교감의 질문에 나는 덤덤한 척 말했다.

“평균 내면 5.5등급 정도 됩니다.”

“5.5등급이 연천대라니!”

“아직 합격은 아닙니다. 1단계 통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1차 합격은 수많은 학생들이 이루어내는 성과다.

진짜 싸움은 2차 면접부터. 그때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1차를 지원한 대학교 모두 합격해도 의미가 없었다.

“강 선생님 말이 맞습니다. 아직 2차가 남아 있잖아요.”

민 부장이 내 말을 거들었다. 그 말투는 어떻게든 동석이가 실패했으면 한다는 마음을 안에 숨겨둔 것만 같았다.

민 부장은 류 선생과도 떨어지게 되어서 자신의 힘이 약해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가장 걸림돌이라 생각했던 내 지분이 많아진다면, 민 부장에게는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게 된다.

‘표정 한번 볼 만하구만.’

그래서 저렇게 온갖 인상을 쓰면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거겠지.

“그래, 두 사람 다 맞는 말이야. 동석이 면접 준비는 잘 하고 있나?”

“네. 추석 캠프 이후로도 다들 3인 1조로 해서 방과 후 1시간씩 연습 중입니다.”

학생들에게 지시한 숙제가 있었다. 바로 방과후 1시간 면접 연습이었다.

평일은 방과 후, 주말은 오전 10시였다.

[아, 이것도 오전에 해야 해요?]

라며 불만을 표시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면접 아침에 보면 어쩔 건데? 일찍 보게 되면 아침 6시부터 준비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미리 습관으로 만들어 놔!]

라는 내 설명에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각자의 스터디 플래너에 꼭 면접 연습 시간을 추가해두라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어제 오늘, 열심히 연습을 했다.

다소 소극적으로 반응하던 녀석들도 동석이의 합격 소식이 전달되자 덩달아 긴장하는 모습도 보였다.

“강 선생, 동석이 실력은 어때?”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감각 잃지 않도록 지속 지도하겠습니다.”

한 교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창문을 열었다.

“보이나, 강 선생?”

한 교감이 가리킨 곳은 교문 방향이었다. 그곳에는 동석이의 전국대회 수상 현수막과 은장이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후배들이 만든 선배들 응원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이런 걸 본 적이 여태 없었네.”

강문고에 지금까지 붙어 있던 현수막은 스카이를 몇 명 보냈는지 등 입결 관련 현수막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외부 대회 수상이나 언론에 알려져서 나오는 현수막들이 붙어 있어.”

입결에는 재학생뿐 아니라 재수생 등 n수생도 포함이 되었다. 한 교감이 지금까지 봐왔던 강문고의 현수막은 재학생이 아니라 대부분 재수생 이상의 졸업생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강문고 교문 앞에는 이제 재학생인 동석이의 전국대회 수상 축하 연수막이 달려 있었다. 선배의 활동을 보고 응원하는 현수막을 고2, 고1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이런 변화가 지금까지 강문고에 있었던가. 한 교감이 중얼거렸다.

“이제 재학생들의 입결만 대박 나면 되네.”

학기 초부터 입결대박을 외치던 한 교감은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니 동석이가 꼭 붙어야 해.”

“네, 알고 있습니다.”

“동석이에 한해서는 캠프 계속 열어도 괜찮아. 밤 10시 넘어서도 연습하게끔 허가해 줄게.”

어차피 말 안 해도 스파르타식으로 굴릴 예정이었다. 동석이는 수능도 포기한 수포자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감사인사를 했다. 민 부장은 옆에서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무언가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교감은 스스로의 기분에 도취되어서 그런 민 부장을 확인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교감실을 빠져 나왔다.

‘그럼 최우선적으로 준비를 해야할 게 있지.’

* * *

지석 선배, 박 선생, 나. 이렇게 셋은 학교 테니스장에 모여서 책상을 세팅 중이었다.

“명문아.”

“네, 선배.”

책상을 옮기다가 땀을 손등으로 닦은 지석 선배가 투덜거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하다보니 익숙한 장소였잖아요? 대학 면접은 강의실에서 하니까 분위기 자체가 다릅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만 면접준비를 하면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익숙함이었다.

그렇기에 면접 캠프를 할 때도 같은 면접관이 아닌, 다른 면접관으로 돌아가면서 수업을 해 주었던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많은 인원을 수용해야 했기에 장소는 학생들에게 익숙한, 교내 교실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꼭 여기에서 할 필요는… 비라도 오면 어쩌려고요?”

테니스장에 간이 면접 연습실을 세팅하던 박 선생도 품고 있던 의문을 나에게 물었다.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테니스장 한쪽에 숨어 있던 캐노피 천막을 들고 왔다.

“와… 미친 저런 게 있었네.”

지석 선배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 하는 연습을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

“아니 말이 되냐, 저기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애들이 우리 쳐다본다.”

“이렇게 쳐다보는 와중에도 면접 연습을 제대로 해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 말에 박 선생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하면 당황하지는 않겠네요.”

“네, 그겁니다. 지금 학생들한테는 그게 필요해요.”

윤 선생을 비롯한 테니스 매니아 교사들이 불만을 내기는 했지만, 한 교감이 정리해주었다.

그렇다고 강당을 통으로 다 빌릴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학년 학생들도 사용하는 공간인데.

‘여기는 교사들 아니면 안 쓰니까 괜찮지.’

살짝 미소를 짓고 있으니 동석이, 은장이, 명천이, 태성이가 테니스장에 도착했다.

“헐….”

“면접고사실…?”

은장이와 태성이가 테니스장 입구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며 탄식했다.

“이젠 하다하다….”

“야, 천막도 있다.”

“이 정도면 비닐하우스 특강인데….”

학생들이 황당하다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런 와중에도 동석이만큼은 잔뜩 긴장한 채 천막 봉대를 세웠다.

“도와줘.”

진지하게 움직이는 동석이 덕분에 다른 셋도 농담을 그치고 동석이를 도왔다.

“이번에 설치해두면 너희들도 하게 될 거야. 수능 끝나고도.”

“네? 그땐 겨울인데요?”

“너희들 대학교 강의실이 얼마나 추운지 모르지? 추워가지고 입 얼어서 벌벌 떨어봐라. 말이나 제대로 나오나.”

“감기 걸리는 게 더 최악일 거 같은데….”

중얼거리는 녀석들을 조용히 시킨 건 내가 아니라 박 선생이었다.

“그러지 말고, 남은 기간만 열심히 달려 보자. 합격하면 담임쌤한테 선물 하나씩 사 주라고 해.”

“에이 쌤한테 선물 살 돈이 어디 있다고.”

“맞습니다. 저 거지예요 거지.”

“에이 성과급 나오잖아요 붙으면.”

무슨 소리냐며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면서 박 선생이 여태 그걸 몰랐냐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선생님 진짜 모르셨어요?”

“뭘요?”

“재학생 스카이 보내면 성과급 나오잖아요.”

듣도 보도 못한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안 속습니다. 그리고 준다고 해봐야 십만 원 정도….”

“서울한국대 합격자 1인당 200만 원, 연천대나 고구려대 합격자 1인당 150만 원.”

“….”

나는 조용히 지석 선배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자 선배가 진짜 몰랐냐면서 말했다.

“진짠데? 나 그래서 작년에 300만 원 받았잖아.”

진짜로?

나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며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윤 선생, 류 선생에게 번갈아 가며 전화를 했다.

[응 있잖아. 몰랐어?]

[당연히 있지. 내가 왜 실적실적하겠어?]

윤 선생과 류 선생과의 통화를 마친 나는 학생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붙어라.”

“네?”

“빡쎄게들 준비하라고! 너희들 선물 사 줄 테니까!”

어쩐지 평소보다 더 의욕을 키울 수 있는 동기가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동석이 재료값에 캠프 때 애들 간식에 돈이 풍족할 날이 없었다.

동석이, 은장이만 붙어도 350만 원이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자자, 빠릿빠릿하게들 움직여! 친구 연천대 붙는 꼴 보고 싶지 않냐!”

“쌤 누가 꼴을 그런 식으로 써요.”

“국어쌤 맞냐고 진짜로….”

* * *

동석이는 테니스장에서 매일같이 면접 연습을 했다. 다른 학생들 중에서도 희망자는 테니스장 면접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게 오픈해두었다.

“인문광역학부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인문학 공부를 보다 다양하게 해보고 싶습니다. 특히 철학과 문학, 미디어를 함께 융합해서 분석해 보고 싶은데….”

“제가 제시문의 A와 같은 상황이라면 저는 환자 김씨에게 우선 사과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가 동아리에서 돼지 심장 해부 실험을 할 때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제가 읽은 책 중 한 권을 추천한다면 저는 ‘통계의 거짓말’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은장이, 명천이, 태성이를 비롯해 열 명이 넘는 학생들이 테니스장 면접연습실을 사용했다.

“효과 있을 거라고 했죠?”

내가 빙긋 웃으면서 박 선생에게 말했다.

“밖에서 해도 진지하게 하네요.”

“이제는 밖에서도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고.”

테니스장이 어떻게 변했나 궁금해서 찾아온 윤 선생도 지금의 광경에 신기해했다.

나는 중간중간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해 주기도 하고, 기출문제를 즉석에서 만들어 물어보기도 했다.

동석이에게는 특별히 하나를 더 고민해 보라고 말했다.

“동석아, 너 로봇 만들 때 어떤 기분으로 만드냐?”

“재밌는 기분?”

“확.”

동석이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웃었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정말 재밌다 말고는 생각이 안 나요.”

“정말 재밌기는 하겠지. 그런데 입시용 답변은 따로 있어.”

동석이의 면접까지 남은 기간은 일주일. 다른 활동들이나 지식을 물어볼 때는 완벽하게 대답하는 동석이가 딱 하나 답변하지 못하는 게 있었다.

바로, 로봇을 대하는 동석이만의 가치관이었다.

특히 연천대 창의IT인재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을 가진 학생을 선호했다.

그건 앞으로 5년쯤 뒤, 입학사정관제를 평가하기 위해 여러 대학이 모인 컨퍼런스에서 밝힌 사항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면접 당일까지 꾸준히 고민해 봐. 알았지?”

동석이는 자신이 없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 안 되겠으면 이거라도 만들면서 생각해 보고.”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미리 준비해둔 MG프라모델 하나를 꺼냈다. 박 선생에게 미리 부탁해서 받아둔 제품이었다.

-이거 진짜 레어한 거니까 나중에 두 배로 받을 거예요!

물론 공짜는 아니고 두 배나 받겠다고 했다. 그냥 투명하기만 한 거 말고는 다를 게 없구만, 사람이 쪼잔하게.

“아, 쌤 감사합니다.”

동석이는 프라모델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연천창의IT인재전형의 면접날이 다가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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