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추억 만들기 (5)
채영이 아버지가 다시금 희망을 찾은 듯 밝게 웃었다.
일희일비가 심한 분이시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성적 안 좋아도 면접만 잘 보면 커버칠 수 있어.”
[하지만 거기는 예쁜 사람들만 가는….]
“재수술하고 해도 자리 잡는 데는 충분해. 면접 12월이잖아.”
내 설명을 들은 채영이가 잠시간 침묵했다. 은장이가 옆에서 작은 소리로 다독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친구들한테는 수술했다고 당당하게 말해. 항공관광학과 가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네!?]
“친구들 앞에서 쪽팔려 가지고 못 간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지금. 쪽팔릴 게 뭐 있어. 입시 준비한다고 하는 전략인데. 안 그래?”
사실 항공관광학과를 준비하는 데 있어 외모는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건 스튜어디스, 스튜어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편견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채영이에게 필요한 건 쌍꺼풀 수술을 한 거에 대한 명분이었다.
그리고 그 명분 중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입시 준비를 위함이었다.
“실제로 면접 비중이 높기 때문에 첫인상은 정말 중요해. 그 첫인상이 눈 처지고 자신감 없고 하면 되겠어? 그러니까 수술 잘 했다고.”
[쌔, 쌤 그럼 저 턱도 깎고….]
“떽! 미쳤어? 여기서 더 고치면 안 돼. 외모를 보기는 하지만 외모만이 전부인 건 아니야. 그럼 연예인들이 지원하면 싹 다 붙게?”
[그…건 아니지만요….]
채영이는 살짝 시무룩해져서는 입을 다물었다. 채영이 아버지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항공관광학과 면접질문은 항공 관련 기본 상식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 그러니까 넌 정시준비는 최소한으로 하고 면접 준비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
“듣고 있어?”
내 질문에 대답한 건 채영이가 아니라 은장이였다.
[쌤, 지금 채영이가 우느라… 아야! 알았어 말 안 할게. 아무튼 지금은 통화하기가 그런가 봐요. 이따 전화드릴게요!]
은장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핸드폰을 보며 씨익 웃고는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주변을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학부모 회장과 채영이 어머니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채영이 아버지와 명천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는지 채영이 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강명문 선생님이라 하셨습니까.”
이번에는 위협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어느새 말도 높이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채영이 아버님.”
“우리 딸, 진짜 수술 잘 한 거 맞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항공관광학과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입니다. 채영이가 외모를 열심히 가꾸고 해도 항상 이목구비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자 채영이 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만지작거리며 민망해했다. 양쪽으로 찢어진 눈. 그게 채영이에게는 콤플렉스였으니까.
“그런 콤플렉스를 갖고 있으면 면접 때 될 말도 안 나옵니다. 그러니 지금 한 게 오히려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잘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명천이 아버지를 돌아봤다.
“당연히 재수술은 최대한 빠르게 해 주셔야겠지만요.”
명천이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면서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선생님, 진짜 우리 채영이 한항대 갈 수 있는 겁니까.”
“아직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남은 3, 4개월간 필요한 사항들 공부하고, 면접 태도 등을 연습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실제로 한항대는 일반 면접 문항들과는 달리 시사적인 이야기나 전공 관련된 질문을 많이 한다.
그중에는 레지덴셜 호텔의 의미를 묻거나 호텔의 요금체계, RAFT 등을 물어보는 등 전공지식도 제법 있었다.
“그런 기본 상식을 키우고, 전공 분야 맞춤 문제들을 만들어서 연습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다양한 지식을 키워야 해서 책, 다큐멘터리, 영화를 많이 보고 공부를 해야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저, 저기 그럼, 우리 딸도 그 면접 캠프인가 그거 할 수 있나요?”
그렇게 물어본 건 채영이 어머니였다. 학부모회장이 빙긋 웃으면서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차분한 척 말했다.
“그럼요. 특강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쩌다 보니 채영이의 면접까지 신경쓰게 되었다. 나는 명천이가 괜찮은지 돌아봤다. 명천이는 이제 마음을 조금 추슬렀는지 허리를 쫙 펴고 앉아 있었다.
“괜찮냐?”
“…괜찮습니다.”
괜찮다 이거지. 나는 명천이에게 다짜고짜 꿀밤을 먹였다.
“아야!”
명천이가 왜 때리냐며 나를 노려봤다. 동석이가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맞장구를 쳤다.
“맞을 만했다, 명천아.”
“네가 뭘 알아!”
나는 소리를 지르는 명천이에게 이번에는 딱밤을 때렸다.
“아! 왜요!”
“다음부터는 문자라도 보내.”
명천이는 자신이 두 대 얻어맞았다는 사실에 억울해했다. 녀석의 불만을 뒤로 하고 나는 명천이의 부모님, 채영이의 부모님과 상담을 했다.
명천이와 동석이는 먼저 밖에 나가 있었다.
상담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재수술을 오늘이나 내일 당장 한다.
두 번째. 채영이는 전략적으로 수술을 한 거다. 이게 입시에서 중요한 거다. 채영이에게도 꼭 이걸 강조해라.
세 번째. 사태가 이렇게 커진 건 못난 어른들의 행패 때문이다. 교양있게 대처해라.
이렇게 세 가지를 강조하자 처음에 말다툼을 하던 두 남성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럼 다시 학교로 가 보겠습니다. 가자.”
나는 밖으로 나와서 동석이와 명천이를 데리고 택시를 잡았다. 다른 학부모 넷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우리가 떠나간 길만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쌤.”
택시를 타고 가는데 명천이가 입을 열었다.
“왜?”
“저 목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설마 헛된 목표라도 이야기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지만, 이어진 명천이의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저 피부과 전문의가 되겠습니다.”
“왜?”
동석이도 갑작스런 명천이의 변화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냥 남들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러더니 부끄러웠는지 명천이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석이가 더 자세히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녀석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런 녀석들을 룸미러로 훔쳐보면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은장은 강명문과 통화를 끊고 채영을 돌봤다.
채영은 십여 분을 더 울다가 진정이 되어가는지 끅, 끅 소리를 내며 물을 마셨다.
이제 우는 소리가 조금 그쳤을 때쯤 채영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채영아?]
채영이 어머니였다. 그리고는 방금 있었던 일들을 요약해서 알려 주었다. 강명문 담임선생님이 들렀던 것, 입시 전략적인 부분을 설명해 주신 것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일 오전에 바로 재수술 들어가자는 약속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잡아 줄게.]
잠깐 전화를 바꾼 명천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미안하다. 꼭 잘 해줄게.]
전화를 끊은 채영은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신기하다면서 은장에게 말했다.
“야 진짜 웃기지 않냐?”
“뭐가?”
“담임쌤 말야. 성형수술 했다고 칭찬하는 쌤은 처음 보네, 하하하하!”
은장이 생각해도 이상하기는 했다. 성형수술을 했다고 칭찬을 하는 선생님이 있다? 그것도 입시전략적으로 잘 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학생마다 상담 방향이 달라지고, 그게 또 들어맞게 이야기를 하는 게 담임선생님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은장은 자신이 상담을 받았을 때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믿게 되었던 경험을 떠올렸다.
“담임쌤이 원래 그러신가 봐.”
“아하하하… 아무튼 고마워. 그리고 나 면접 준비 도와줄 수 있어?”
“나도 한참 멀었는데? 지금도 혼나.”
“에이 그래도 나보다는 잘할 거 아냐. 부탁 좀 할게 응?”
은장은 채영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대신 나도 봐 줘야 해?”
“좋아!”
신이 나서 눈물 자국을 닦던 채영이 퍼뜩 생각이 났다는 듯 은장에게 물었다.
“근데 진짜 턱은 안 깎아도 될까?”
채영의 말에 은장은 강명문이 당부했던 말을 떠올렸다.
-수술 더 하겠다고 그러면 반드시 막아야 해. 무조건 예쁘다고 하고, 과하면 면접 때 불이익 받는다고 해.
통화를 끊고 한참 채영이 울고 있을 때 강명문이 은장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었다.
“야 너 정도면 충분히 예뻐. 그리고 과하면 면접 때 불이익 받을걸?”
그러자 채영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치, 더 예뻐지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냐?”
“담임쌤 말씀 까먹었어?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 하시잖아. 쌍수 재수술 끝나면 면접 준비나 하셔.”
채영은 조금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지금까지 외모를 가꾸는 데 있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선생은 한 명도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화장을 해도, 성형 이야기를 해도, 모두가 반대하고 부정적일 뿐이었다.
그런데 담임은 오히려 입시전략에 어울린다고 칭찬을 했다.
‘성형했다고 칭찬을 받네.’
그런 상황들이 황당했지만, 그 상황이 또한 재미있었고, 신이 났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긍정의 표시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학교 갈래.”
“응? 지금?”
“내일은 재수술해서 못가잖아. 오늘 가서 배워야 누워 있을 때 상상면접이라도 하지.”
채영의 말에 은장이 좋은 생각이라며 당장 학교로 가자고 끌고 나왔다. 아직 화장 못 했다고 당황해하는 채영이었지만, 은장의 손길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 * *
저녁 8시가 넘어서야 학교로 돌아온 나와 학생들은 서둘러 면접 연습으로 돌아갔다. 지석 선배를 비롯해 면접 캠프를 도와주는 교사들에게도 문자를 보내두었다.
-완료. 복귀 중.
짧은 문자였지만 담고 싶은 내용은 다 담았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은장아. 근데 한 명 늘어있다?”
나는 앞에서 쭈뼛쭈뼛 서 있는 채영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내일 재수술이라던데?”
“네! 그래서 오늘 속성으로라도 배우고 주말까지는 누워서 상상연습이라도 하려고요!”
채영이의 의지를 보며 동석이도 응원을 했다. 명천이와 눈이 마주친 채영이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하하… 미안 우리 아빠 때문에.”
“아냐 됐어. 나도 덕분에….”
명천이는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슥 돌렸다. 그리고는 면접 준비실로 준비했던 교실 앞 책상에 앉았다.
“아 뭔데! 왜 하던 말 끊어!”
“연습이나 해. 시간 없어.”
채영이 아버지에게 잡혀서 몸을 벌벌 떨던 명천이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저게 녀석 나름대로 보호하는 방식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피식 웃으며 동석이와 은장이에게 말했다.
“원래 지정된 시간이 있는데 지금 정석이가 대신 봐주고 있으니까, 우리는 보충 느낌으로 별도 교실 잡아서 한다.”
동석이와 은장이, 채영이의 힘찬 대답을 들은 후 보충수업을 진행했다.
다음 날 채영이는 재수술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누운 상태로 지원동기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고 했다.
그런 소식을 은장이를 통해 전달 받으면서 마지막 면접 캠프 수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어진 토요일, 연천대 창의인재육성전형의 면접 대상자 발표가 났다.
“최동석!!!!!!!”
정석이가 공부를 하러 학교에 왔다가 소리를 질렀다.
“야!!! 너 해낼 줄 알았어 인마!!!”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정석이와 태성이의 뒤통수를 종이몽둥이로 딱! 때렸다.
“으으….”
“축하해 줘도 뭐라 해….”
“시끄러워 이놈들아. 동석아, 1차 합격 축하한다.”
싱긋 웃는 나를 향해 동석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본 싸움은 2주 뒤. 그때까지 면접 올인하자.”
동석이는 컴퓨터 화면에 뜬 ‘2차 전형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