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84화 (84/252)
  • 84화. 추억 만들기 (4)

    매점 앞에서는 정석이가 핸드폰을 들고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정석이는 나를 보자마자 황급히 달려왔다.

    “쌤 방금 명천이 어떤 아저씨한테 잡혀갔어요!”

    나는 그것 또한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정리 좀 해서 말해 봐.”

    “그러니까….”

    뒤따라 온 은장이가 상황을 설명했다.

    면접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명천이가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서 끌려갔다. 정석이가 경찰 부른다고 했는데 명천이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아는 어른이랑 밥만 먹고 오는 거 아니야?”

    “그런데 표정이 많이 어두워 보였어요. 아는 사람 같은데 친한 사람은 아닌 거 같고, 아무튼 그래서! 명천이 어떡해요 쌤?”

    나는 일단 다들 놀란 가슴 좀 진정하라며 학생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곧장 학부모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안 받네.”

    통화를 두 번 시도했지만 학부모회장은 받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두어 번 신호음이 울렸을 때 바로 받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안 받았다는 건 혹시….’

    미래에 명천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나? 매점 앞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뭐가 있었지, 뭐가 있었지.

    “명천이… 명천이… 학부모회장… 아버지… 성형외과… 수술… 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 사건이 떠올랐다.

    ‘쌍꺼풀 수술.’

    명천이의 아버지는 압구정에서 성형외과를 했다. 그리고 학부모회장인 어머니를 통해 강문고나 강남서초권 학부모들을 많이 연결을 해 줬었다.

    그런 고객 중에는 강문고의 학생들도 간혹 있었다. 특히, 외모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의 경우에 그러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채영이였다.

    스튜어디스를 꿈꾸고 있어서 외모에 관심이 많았는데, 명천이 아버지의 병원에서 쌍꺼풀 수술을 했었다.

    “하… 미친, 이게 지금 생각나네.”

    그러다 부작용이 좀 심하게 와서 채영이가 안대를 하고 온 적이 있었다. 채영이에게 눈 괜찮냐며 물어보자마자 녀석은 울음을 터트렸었다.

    그게 추석 전후로 해서 터졌었다.

    당시에는 학부모들끼리의 싸움이었다. 채영이는 추석 연휴 3일을 이용해 수술을 하려 했다.

    그러다 부작용 때문에 학부모들끼리 다투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는 나도 울고 있는 채영이에게 그런 사건이 있었다, 정도만 전해 들었기에 금새 잊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생과 달리 명천이가 내 특강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스치듯 지나갔던 사건도 코앞에서 겪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양쪽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눈을 찡그린 채 정석이를 불렀다.

    “정석아, 채영이 번호 알아?”

    “네, 알아요.”

    “전화 좀 해 봐라. 아니다 은장아, 네가 해 봐.”

    “네. 근데 채영이는 왜요?”

    은장이가 묻자 나는 은장이, 정석이, 동석이를 불러서 비밀스럽게 말했다.

    “너희한테만 알려 준다. 절대 놀라거나 딴 애들한테 알리면 안 돼.”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영이 지금….”

    심각한 사안을 듣는 사람들처럼 침이 꼴딱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 명천이 아버지한테 쌍꺼풀 수술 받고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을 거야.”

    ““네에에!?!?””

    * * *

    내 지시대로 은장이는 채영이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채영이는 쌍꺼풀 수술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야 은장아 훌쩍… 내가 너한테만 말하는 거지만… 훌쩍.]

    울먹이며 말하는 채영이와 통화를 끊은 은장이가 한숨을 쉬었다.

    “아니 미친 거 아니야, 수험생이 갑자기 성형을 왜 해!”

    어이가 없다면서 화를 내는 은장이는 진심으로 채영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건 정석이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그나마 동석이가 채영이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거라 추측할 뿐이었다.

    “부작용 때문에 학교 오기 쪽팔려서 울고 있었지?”

    “헐 쌤 어떻게 알았어요?”

    역시나.

    채영이는 스튜어디스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던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 하거나 논술을 잘 하는 건 아니었다. 전문대라도 좋으니 항공 관련 학과에 입학해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다보니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에서 머리카락 한 올 하나하나, 화장 색깔 하나하나 다 챙기는 게 채영이였다.

    가끔은 화장법을 친구들에게 알려 주는 모습도 보여 줬었다.

    그러나 채영이는 자신에게 결핍된 게 근본적인 이목구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기 전에 수술을 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더 외모를 가꾸려고 노력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 채영이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나는 머리를 감싸쥐고 망할, 욕을 했다.

    “왜 하필 지금이야. 명천이 입시도 중요한데….”

    내 혼잣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셋이 무슨 말씀 하셨냐며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후… 그래 수술 중요하지.”

    “진짜요?”

    “채영이 같은 경우에는 그래. 은장아, 오늘 채영이네 좀 가 봐라. 동석이는 나랑 같이 명천이 찾으러 간다.”

    “저는요?”

    “정석이 넌 오늘 나 빠지는 시간 한 번만 면접 수업 대신 들어가라.”

    정석이가 그걸 어떻게 하냐며 당황해 했다. 나는 오늘 수업 학생들 특징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말했다.

    “남은 시간 학생들은 태도 불량인 애들이 많아. 그러니까 태도랑 말투 이런 거 짚어 주면 된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지석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전화를 끊으면서 정석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도 선생님> 같은 멘토링 활동이라고 생각해.”

    “네, 해 보겠습니다!”

    군대식으로 손을 올려 경례를 한 정석이가 쏜살같이 교실로 뛰어 올라갔다. 나는 동석이, 은장이와 함께 학교를 나가면서 각자 맡은 일들을 해내기로 하고서 움직였다.

    * * *

    “네, 어머님. 네, 알겠습니다.”

    교문을 나서고 십여 분 후, 학부모회장과 겨우 전화 연결이 되었다. 지금 학부모회장은 명천이 아버지와 지금의 사건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고 한다.

    -부작용은 그래도 흔한 일이기는 한데….

    그렇게 말하는 명천이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찌어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지금은 삼자대면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명천이 입시 준비에 영향이 갈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명천이는 생각만큼 멘탈이 강한 아이가 아니다. 그건 지금까지의 여러 활동들을 통해서도 증명이 되었다.

    그런 명천이가 지금 시점에서 무의미한 싸움을 하게 된다면.

    ‘올해 의대 합격생은 물 건너간다.’

    그런 생각을 숨기면서 나와 동석이는 압구정의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는 명천이 아버지가 비슷한 연배의 제법 덩치가 큰 남성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나는 간호사의 제지를 피하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그게 할 말이야 이 사람아!”

    “그러니까 재수술 해 주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쌍꺼풀 수술하다가 생기는 부작용은 다양합니다. 그중 하나일 뿐인 건데 호들갑 떠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자 화를 내던 남성이 옆에 있던 책상을 쾅 내리쳤다.

    “지금 호들갑이라고 했냐? 동생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냈더니 호구 잡으려고 안달 났어? 어!”

    아무래도 저 사람이 채영이 아버지인 듯했다. 그의 뒤로 커튼이 쳐진 침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 익숙한 운동화를 신은 교복다리가 보였다.

    “나와 봐.”

    남성은 지체 없이 커튼 뒤에 숨어있던 학생을 끌고 나왔다. 그러더니 손을 위로 휙 들었다.

    “어디 자식놈도 수술해 봐. 부작용 나오게 수술해 보라고 이 개자식아!”

    눈을 질끈 감은 학생을 보자마자 나는 앞에 나섰다. 남성의 손을 피하고 학생을 끌어안았다. 동석이는 남성의 허리를 잡으면서 말렸다.

    “명천아, 괜찮냐.”

    명천이는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녀석은 나를 잠시간 누군가 하며 바라보더니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쌔, 쌤.”

    “괜찮아. 일단 진정하고 있어.”

    채영이 아버지가 한 성질 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마침 도움이 되었다.

    “누구야?”

    “채영이 담임인 강명문이라고 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면서 명천이 아버지를 향해서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강명문입니다.”

    “아, 아 그… 집사람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어쩐 일로….”

    명천이 아버지는 방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런 일들을 많이 겪어 본 눈치였다. 오히려 능숙하게 핸드폰을 쥐고 있는 걸 보니 경찰을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명천이가 추석 면접캠프 수강 중이었는데 갑자기 사라졌다해서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 싸움에 등 터지고 있었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채영이 아버지와 명천이 아버지를 번갈아가며 노려봤다.

    “그게 우리 탓이다 이겁니까?”

    “일단 애들은 빼시죠.”

    키가 190은 넘어 보이고 몸무게도 100키로가 넘을 것 같은 채영이 아버지 앞에서 나는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채영이 아버지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지금 이게 뭡니까, 다 큰 어른들끼리.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 이렇게 싸우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무슨 소립니까?”

    “채영이가 지금 왜 힘들어하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지금 부작용 때문에 속상하겠지! 예뻐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추해졌잖아!”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동석이에게 말했다.

    “동석아 전화 좀.”

    미리 준비해둔 것처럼 동석이는 은장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간 신호음이 울리자 찰칵, 하고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은장아 스피커폰 할게 잠깐만.”

    동석이가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바꿨다. 나는 거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채영! 지금 듣고 있지?”

    [!]

    “너 수술 잘했어. 어차피 지금 했어야 했다.”

    [네!?]

    은장이가 이건 또 무슨 소리냐며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동석이가 쉿! 하며 신호를 줬다. 채영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뭔데, 무슨 일인데, 하며 의아해했다.

    “스튜어디스 되고 싶다며?”

    “우리 딸이 그거 하고 싶은지는 어떻게 알았소?”

    “담임인데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채영아, 너 항공관광학과 노려야지?”

    [네….]

    채영이의 대답에는 자신감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런 채영이에게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한항대 가자.”

    [쌤… 훌쩍. 저 거기 못 가는 거 아시잖아요.]

    “못 가긴 왜 못 가. 정시 모집 준비해야지.”

    내 말에 채영이 아버지가 다가오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애 성적 어떤지를 내가 다 아는데!

    “너 이번에 쌍꺼풀 수술 잘했어. 외모에 자신 있는 애들이 많이 지원하니까 쫄지 않으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해.”

    전화상담을 해 주는 나를 보며 명천이 아버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채영이 아버지는 그것 보라면서 애 눈 어떻게 할 거냐고 또 다시 항의를 했다.

    나는 그런 두 사람에게 제발 좀 조용히 하라고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어차피 해야 했던 수술이야. 너 그거 안 했으면 나중에 외모 부족해서 떨어졌다느니 그런 소리만 할 거 아냐.”

    [!]

    채영이가 핸드폰 건너편에서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식으로 입시 도망쳐 봤자 나중에 득 될 거 하나도 없어.”

    [쌤이 뭘 알아요!]

    채영이가 소리를 지르자 채영이 아버지가 나를 막아서려고 다가왔다.

    “한항대 항공관광학과 정시모집은 수능을 안 봐.”

    “아니 선생님, 그게 진짭니까?”

    내 말에 다가오던 걸음을 멈춘 채영이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부 성적이랑 면접으로만 선발해.”

    채영이의 학생부 성적은 대략 3점 후반. 몇몇 자신 없는 과목들은 6등급도 섞여 있었다.

    [저 내신 낮잖아요. 준비해 봤자 의미 없어요! 저도 많이 알아봤다고요!]

    그렇기에 채영이의 이런 반응도 예상했다.

    채영이의 말을 들은 채영이 아버지가 이제는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실질반영비율이라고 알고 있냐?”

    채영이를 비롯한 여러 학생, 학부모들이 모집요강을 살펴볼 때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실질반영비율이다.

    특히 한항대는 항공전문대학교이다 보니 면접의 비중이 매우 높다.

    “한항대 면접실기전형. 내신은 23%, 면접 77% 반영이야.”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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