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83화 (83/252)

83화. 추억 만들기 (3)

앞에 앉아 있는 세 학생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2학년 자치활동, 벌점부과제에 대한 학급토론을 통해 학업과 벌점의 상관관계에 대해 공부했다고 되어 있잖아?”

“그게 왜요?”

“거기에서 파생해서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야.”

은장이는 그런 게 어디 있냐며 학생부를 뒤졌다. 그러더니 2학년 자치활동 부분에서 넘기던 종이를 멈추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번 면접 특강의 포인트는 <겉으로 보이는 항목에 매몰되지 말자!> 다.”

나는 녀석들에게 학생부에 있는 항목들을 하나씩 보여 주었다.

캠프 전에 미리 준비했던, 학생부 안에서 녀석들이 어려워하던 내용들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활동들을 잘 기억하는 것도 힘들었지?”

실제로 많은 학생부의 내용들은 허구가 많았다. 본인이 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기재가 된다거나, 팀원 중 한 명이 다 이끌어간 활동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 못 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건 은장이와 동석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자시소개서를 쓰면서 주제라도 좋은 활동들은 기억을 복구해 놓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항목들도 많았다. 캠프를 하기 전 스터디 모임에서, 학생들은 학생부 내용을 준비하는 것을 가장 어려워했다.

그나마 활동을 열심히 해서 기억을 잘 하고 있는 은장이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그런 활동을 응용해서 본인만의 생각으로 이끌어 낸다?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이런 답변이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해. 이번 캠프 듣는 이유는 부족한 내신이나 스펙을 역전하기 위한 거잖아?”

내 설명에 학생들은 나와 상담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눈을 다시금 빛내며 동석이가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러니 복잡한 질문에도 센스 있게 대답을 해야 하고, 나름의 창의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메모를 하라며 손짓을 했다.

“응용질문들을 연습해야 한다.”

“입학 후 뭘 연구하고 싶은지도 준비해야지.”

“마지막으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세 가지를 설명하자 동석이가 메모하던 샤프를 멈추고는 물었다.

“쌤, 연구계획 같은 거면 되나요?”

“그거면 된다. 입학한 다음에 어떤 걸 공부하고 싶은지를 말해야 해. 단!”

나는 은장이를 바라보며 강조했다.

“지원하는 학과에 맞춰서.”

아무래도 은장이는 원하는 학과라기보다는 전략적으로 선택한 학과였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은장이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녀석은 침을 꼴딱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요?”

“명천이는 의학 관련 상식들을 키울 필요가 있어. 시사 상식 공부는 좀 하고 있니?”

캠프 전에 나는 명천이에게 시사 상식 책, 잡지, 기사 등을 보면서 상식을 키우라고 지시했다. 특히 의료, 약학 관련해서의 상식이었다.

“네 적당히는요.”

“좋아. 순서대로 질문할 테니 준비해라. 은장이부터 마저 진행하자.”

학생들은 1인당 20분씩, 총 3회로 회전했다. 그렇게 해서 각자 3번의 연습이 끝나면 그 뒤부터는 조별 연습 시간이었다.

은장이에 이어서 동석이, 동석이에 이어서 명천이의 연습이 끝났다. 그렇게 3번씩, 총 3시간의 연습을 진행한 녀석들은 이미 녹초가 되어서 자리에 털썩 엎드렸다.

“미쳤다… 이게 제일 힘들다….”

“하루종일 말해야 해…쉬지도 못해….”

녀석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나는 한 명이 연습을 할 때 다른 둘도 연습을 도와주라고 지시했다.

예를 들면 은장이가 연습할 때 동석이와 명천이는 은장이의 태도나 발음 같은 것들을 지적해 주는 식이었다.

“명천이도 추가질문 해 봐.”

“네!?”

“동석이. 방금 은장이 답변의 장점 단점을 분석해 봐.”

게다가 중간중간 즉석 숙제까지 내주니 학생들은 쉴 틈도 없이 3시간을 내리 달리면서 말하고, 분석해야 했다.

그러니 당연히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캠프 시작 전에도 강조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수업이 될 거다. 이렇게 계속 말을 해야 해서 더 힘들어.”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닫혀 있던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산소 부족하면 농담 아니고 어지럼증 올 수도 있으니까 연습하다가 환기도 자주 해라. 알았지?”

셋은 내 말을 명심하겠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이번 캠프 때는 조별 연습실도 마련했다. 총 48명에 16개 조로 움직이다 보니 16개의 교실을 선별해두었다.

“자, 영상으로 셀프피드백도 꼭 해 보자!”

조별 학습 관리 담당인 류 선생이 교실을 하나씩 돌며 학생들의 면접 연습을 체크했고,

“목소리가 작다!”

“네, 네!”

“지금 그것밖에 못 내나! 그게 네놈들의 한계인가!”

“아닙니다!”

“슬프지만 입시는 전쟁이다! 자네들은 승리를 거머쥘 준비가 아직도 안 되었나!”

“아닙니다, 선생님!”

“어깨 펴고! 고개 들고! 전방에 3초간!!!! 함성!!!!!!”

“으아아아아!!!!”

박 선생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뭘 어떻게 가르치길래 저런 소리가 들려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 모른 척하자.

지석 선배와 윤 선생도 나름대로 서류기반면접 준비에 있어서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나는 물리 교사이지만 이런 면접 연습에도 나름대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윤 선생이 신기했다.

‘역시 끌어들이길 잘 했어.’

잠깐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금 스파르타 연습에 들어갔다.

우리는 반복해서 연습했고, 다음날에도 연습했다.

다음 날에는 학생들을 한데 모아두고 면접공통 강의도 진행했다.

“어제 한 번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면접은 진정한 실전이다.”

옆에서 박 선생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암, 암, 그렇고 말고, 라며 중얼거렸다.

어째 이상한 스위치가 켜진 것 같았다.

“면접 준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냐?”

학생들은 전공지식! 진로고민! 내신! 학생부! 하며 손을 들고 답했다.

“전공 지식, 등급, 학생부 모두 중요한 사항이지. 하지만, 그것들을 말하려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거다.”

칠판에 나는 큰 글씨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적었다. 그리고는 빨간 분필로 동그라미와 별표를 가득 그렸다.

“그래서, 너희가 이렇게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내용처럼 산 건 알겠어.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 가 핵심이다.”

나는 태성이를 분필로 가리켰다.

“안태성!”

“넵!”

“대학교 입학하면 뭐부터 하고 싶냐?”

“어, 어… 저, 저는 경영학 공부부터 해 보고 싶습니다!”

태성이는 자기 답변이 나름 정답이 아닌가 기대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도끼눈을 뜨고 다시 물었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야?”

“어, 쌤 진짜로 이야기해요?”

“그래.”

“저 미팅하고 싶어요!”

학생들은 물론이고 옆에서 지켜보던 교사들까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바탕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든 태성이가 민망하지만 너희도 다 똑같지 않냐며 핑계를 댔다.

“야! 너희도 하고 싶잖아! 박성태! 너도 미팅하고 싶다며!”

“뭐? 나만 그랬냐? 수연이도 하고 싶다 그랬어!”

“나는 왜 끌어들여!!”

갑작스런 폭로전이 시작되자 학생들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녀석들을 보면서 나도 입꼬리를 올렸다.

“자, 자 조용! 태성이 미팅하고 싶어?”

“네!”

“그럼 그렇게 답변해.”

“네!? 진짜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나에게 눈길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부연설명을 해 주었다.

“대신 학과와 연관지어서.”

“경영학과랑요?”

“그래. 대학교에 입학한 후 무엇을 가장 먼저 해 보고 싶나? 라는 거에 대해 답할 때는 반드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해라. 그게 정답이다.”

서류기반면접에서 중요한 건 나만의 특색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태성이처럼 대학생이 되어서 미팅이 가장 먼저 하고 싶다면 이걸 경영학과 연결시키면 된다.

그렇게 만들면 그게 바로 입학 후 연구계획, 학업계획이 되는 것이다.

“쌤 그러면 어느 정도가 될 때까지 연습해야 하나요?”

은장이가 손을 들고 묻자 나는 그렇지 않아도 준비를 했다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다를 떨 수 있을 때까지.”

그게 또 무슨 소리인가, 이번에는 지석 선배와 박 선생도 의아해했다.

“대학 입시, 진로, 전공 관련 내용으로 친구들과 편하게 대화 주제로 수다를 떨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라.”

입학사정관제,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 중 면접을 가장 잘 보는 학생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진로면 진로, 전공이면 전공. 그런 정보들과 지식들이 쌓이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자연스럽게 전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연스러움이 면접 시험장에서 나타나면 금상첨화였다. 즉, 이 학생은 만들어진 학생이 아니라 진짜 해당 분야를 희망하는 것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자주 찾아보고, 분야와 관련된 상식을 키워라. 그리고 그걸 대화 주제로 삼으면서 연습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동석이를 가리켰다.

“동석이가 그거 제일 잘 할 거다.”

그러자 학생들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며 맞네, 맞아, 맞장구를 쳤다. 오직 동석이 본인만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남은 시간도 힘내 보자!”

공통 강의가 끝난 이후에는 또다시 면접 연습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전공, 진로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리고 식사를 할 때 나는 순찰을 돌았다.

“전공 이야기 해.”

“너 서비스기업 창업하고 싶다며. 경영 이야기 안 해?”

“진로 관련해서 책 하나 읽었잖아. 책 친구들한테 추천해야지?”

그렇게 하나하나 도시락을 먹고 있는 학생들 주변을 돌면서 녀석들의 대화 주제를 바로잡았다.

“강 선생님,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해야 습관으로 잡힙니다. 지금이 어렵지 한두 번 물꼬 트면 금방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박 선생의 우려가 있었지만, 사실 학생들의 대화 주제는 진로와 전공으로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저기 보세요.”

실제로 동석이와 같이 밥을 먹고 있는 녀석들은 이미 대학생이 되었을 때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박 선생은 그런 동석이를 보면서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방구석 오타쿠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요.”

“그쵸. 박 선생님도 방구석 오타쿠 아니에요?”

“…나 빠져도 되나 봐요?”

“어제 군대식으로 엄청 빡쎄게 돌리시던데, 재밌어하시는 건 아니고요?”

이렇게 우리는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무사히 면접 캠프 수업을 이끌어 나갔다. 지석 선배가 김밥을 챙겨 주기도 했고, 윤 선생이 자연계열 시사상식 모음집을 출력해서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류 선생도 학생들이 영상을 보며 피드백 받을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갔다.

이제 학생들은 나름대로 답변을 연습하고,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 활동을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어려워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 활동은 만들어라.”

정말로 기억에 나지 않는다면 그 활동은 꾸며서라도 만들어야 한다.

“죄송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고 핑계 대는 건 딱 한 번이다. 조커 같은 거니까 기본적으로는 절대 쓰지 않는다고 생각해라.”

결국 기억에 없는 활동은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적혀 있는 주제를 검색해서 알아보고, 관련된 책들을 공부하고, 읽지도 않은 책이 있다면 블로그라도 검색해서 봐야 했다.

만약 다른 친구와 함께 했던 활동이면 그 친구를 찾아서 의견을 나누라고도 말했다.

“당연하지만, 적당히 의미 있었다는 표현도 넣어서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조작할 수밖에 없는 학생부.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면접 현장에서 학생들은 크게 당황한다.

내 현실적인 조언들까지 겹쳐지면서 면접 캠프가 막바지로 향해 달려갈 때였다.

저녁을 먹기 전 수업을 마무리하고 기지개를 펴는데 교실 문이 세차게 열렸다.

“쌤! 큰일 났어요!”

은장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도 맺혀 있었다.

“무슨 일인데?”

“명천이가 잡혀갔어요!”

“뭐?”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