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82화 (82/252)

82화. 추억 만들기 (2)

추석 면접 캠프를 준비하는 동안 학생들은 나름대로 이것저것 연습을 해 보았다.

먼저 스터디를 꾸린 은장이네팀. 각자 준비한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를 두고 기출문제들을 찾아보면서 연습을 했다.

“우리 학과에 지원한 동기가 무엇인가요?”

“동아리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같은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 질문에 맞춰 답변을 했다.

나는 녀석들의 그런 모습을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봤다.

답변 자체는 일차원적이라 매력적이지 않았고, 더듬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녀석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명천이도 은장이, 동석이에게 자극을 받아 열심히 서류면접 준비를 했다.

MMI준비가 메인이지만, 이것도 준비해두면 기본적인 말하기 실력은 높아질 것이니 필요하다면 필요한 연습이었다.

그래서 명천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명천이는 하는 건 좋은데 이게 메인은 아니잖아? 수능최저가 꽤 높으니까 영향 없게 해라.”

은장이네팀 옆에서는 정아의 주도하에 모인 논술준비팀이 논술 모임을 했다. 논술준비팀은 각자 기출문제 답안을 두고 첨삭을 해주면서 공부를 했다.

그 외에도 여러 학생들이 자기에게 필요한 전형을 준비하고자 나름의 모임을 조직했다. 수학 등급이 부족한 학생들은 수학 스터디를, 사회탐구 과목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은 사탐스터디를 조직하는 식이었다.

‘참 다 좋은데….’

나는 동아리실이나 과학실 등에서 연습을 하는 있는 학생들을 다시 교실로 모이게 했다.

“아 쌤 왜요? 지금 한참 분위기 탔는데!”

“너희들 지도교사는 있냐?”

“아뇨? 그냥 저희끼리 하는 거예요.”

그럴 줄 알았다며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각자 스터디 만든 거 목록 제출해. 다음 모임부터는 지도교사 선생님과 스터디해라.”

“네? 왜요?”

“너희들이 합격을 했어 뭘 했어? 아직 준비하는 입장에서 잘못된 피드백만 하다가는 못된 습관만 생긴다.”

학생들은 그럼 전부 선생님들한테 검사 받아가면서 해야 하냐, 쌤들하고 시간 안 맞으면 어떡하냐 등 각종 불만을 내뱉었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씨익 웃으면서 동석이를 불렀다.

“김은장!”

“네, 선생님!”

잔뜩 긴장한 채 은장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생들은 그게 테스트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은장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와는 달리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차렷 자세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각을 딱 잡고 서 있는 은장이에게 독서활동 중 하나를 물어봤다.

“2학년 때 읽은 도서를 보면 ‘메모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던데, 직접 메모를 하면서 공부한 경험이 있습니까?”

“…?”

은장이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당황한 채 나를 가만히 쳐다만 봤다.

“생기부 내용 보면 이 책을 읽고 공부할 때 메모하는 습관을 길렀다고 되어 있는데요?”

“어, 어….”

내 질문에 어버버하는 은장이를 보며 학생들도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은장이라면 발표력 하나만큼은 학급, 아니 학교 전체를 통틀어서 1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은장이가 테스트를 받았는데, 첫 질문에서부터 답이 막혔다.

“답변하기 어려우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저기 잠시만…!”

“방송부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했던데….”

이번 질문에는 은장이가 자신이 있다는 듯 자신 있는 표정을 했다.

“행사를 기획할 때 아쉬운 점은 무엇이고 어떤 신기술이 추가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나요?”

“기, 기술이요?”

은장이는 입을 뻥긋거리다가 자신감이 확 떨어진 채로 답했다.

“그… 장비 옮겨 주는 리어카… 같은 거… 시나리오 인쇄기가 고장 나서 프린터기나….”

“그게 신기술인가요?”

“…아니요.”

믿었던 은장이가 면접 연습에서 완패를 당하자 학생들은 충격을 받았다.

“스터디를 만들어서 공부하는 건 당연히 좋다. 하지만, 제대로 연습을 하지 못하면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해. 그러니 스터디를 하는 방법을 알려 주마.”

나는 칠판에 <입시스터디 조직 시 주의점>을 적었다.

1. 기본적인 사항 연습을 위주로 한다.

2. 어려운 부분은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말고 지도교사 선생님을 찾아간다.

이렇게 두 개를 강조하면서 칠판을 쾅 쳤다.

“운동을 배우는 사람들이 처음 스텝을 잘못 배우면 그 습관을 고치는 데만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입시 준비도 마찬가지야. 너희끼리 스터디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역량을 키우는 거라고 봐야 한다.”

학생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면접이면 딱 기본 질문이나 답변하는 태도, 발음, 억양 같은 것들을 봐라. 답변 내용이 좋은지 아닌지는 지도교사와 함께 확인해. 그것도 캠프 전에는 학생부 내용 중 기억 못 하는 내용들 공부하는 게 먼저야. 알겠지?”

당연히 면접의 지도교사는 내가 될 것이다. 은장이와 동석이를 비롯해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힘차게 “네!” 대답했다.

“논술팀은 오탈자는 없는지, 원고지 작성법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문장이 너무 길지는 않은지 따위를 확인해라. 내용의 부족함은 지도교사쌤한테 부탁드리고.”

논술 지도교사도 내가 해 주고 싶었지만,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가 있었다. 이는 박 선생에게 추가적으로 요청할 계획이었다.

“수능은 말 안 해도 대충 알지?”

내 말을 듣던 명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 되는 애들은 다른 친구들 교과목 공부 도와주고.”

나는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칠판에 적은 내용을 강조했다.

“스터디를 하는 건 좋은 거다! 다만, 그것도 전문 선생님의 도움이 있어야 해. 안 그러면 안 좋은 습관만 생긴다. 알겠냐?”

““네!””

전에 없이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를 던지는 학생들을 보며 나 역시 웃어 보였다.

그렇게 학생들은 자기들만의 스터디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도교사로는 인문논술에 박 선생, 수리논술에는 류 선생으로 결정되었다. 면접스터디는 내가 담당했고, 지석 선배는 수능 스터디 중 사탐 스터디에 집중 투입되었다.

“네가 요청하는 게 이제는 이상하지도 않다.”

“진짜 입시 시즌 끝나기만 해 봐요 쌤. 나 가만 안 있을 거예요.”

선배와 박 선생의 눈총을 실컷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내 요청을 잘 받아서 실행해 주었다.

류 선생이야 뭐 말할 것도 없었다.

“내가 수학 스터디도 봐 줄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학 스터디까지 자청할 정도였다.

우리는 이렇게 학생들은 학생대로, 교사들은 교사대로 최선을 다해 입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추석 면접 캠프 첫날이 다가왔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추석 면접 캠프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 8시부터 모인 학생들은 지금까지 스터디를 하면서 준비를 한 덕분인지 나름대로 자신감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그런 녀석들을 향해 상냥하게 웃으면서 캠프 일정표를 나눠 주었다.

일정표를 확인한 학생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각오한 바라고 말했다.

“그럼 이번 캠프를 도와주실 선생님들을 소개한다. 선생님들, 들어와 주세요!”

내 신호에 지석 선배, 박 선생, 윤 선생, 류 선생이 들어왔다.

이번 캠프에는 문이과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을 받았기에 그 인원도 꽤 되었다. 그래서 윤 선생에게도 도움을 요청했고, 이번에 같이 준비를 하게 되었다.

류 선생은 솔직히 면접 지도에는 재능이 없었기에 합류시키지 않았다.

물론, 그는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 계속 추석 면접 캠프에 참여하겠다고 말하기는 했다.

‘하겠다는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미래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는 류 선생에게는 조별 학습 감독관을 요청했다. 그는 알겠다며, 자기만 믿으라는 등의 허세를 잔뜩 부렸다.

뭐, 어쨌든 학생들 공부시간 감독도 필요했으니까.

“이번 캠프에서의 기본 목적은 서류기반 면접에서 우위를 점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화된 질문들도 준비할 수 있어야 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류기반면접을 준비할 때는 제출한 서류들만 공부한다.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더 나아가면 추천서 정도까지.

그 정도의 준비는 기본 중의 기본일 뿐이었다.

“헐 쌤 저 대학교 교재 없는데….”

중얼거리는 태성이를 살짝 째려보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심화질문이라는 건 전문지식을 말하는 게 아니야. 너희들한테 국문학과 지원한다고 랑그, 빠롤, 일반 언어학 이론 이런 거 물어보겠냐?”

“… 그게 뭐야?”

“나도 몰라.”

그게 뭔지 속닥이는 학생들을 무시하고 교탁에 몸을 기댔다.

“너희가 했던 활동들이 정말 의미가 있었는지, 그걸 통해 학교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알아보는 거야. 은장아.”

“네, 쌤.”

“저번에 책 ‘메모의 기술’ 물어본 거 기억나지?”

“네네!”

“그렇게 책을 읽었다면 실제로 활용을 해 본 적은 없는지, 그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생활이나 가치관이 바뀌었는지 등이야. 그런 추가적인 질문들을 심화질문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숨을 죽이며 종이를 마구 넘겼다. 각자 준비한 학생부와 인쇄한 자기소개서였다.

“그래서 준비했다. …민주야!”

“넵!”

2학년 학생회장인 민주가 교실로 삼각대를 십여 개 들고 들어왔다.

“조를 편성해서 할 거다. 조에 1개씩 삼각대를 가지고 가도록!”

면접 캠프는 3인 1조로 각 조당 3시간씩, 하루 1회씩 수업이 진행된다. 지도교사들은 해당되는 조를 번갈아 가면서 지도해 주게 된다.

즉, 한 교사가 하루에 열두 명의 학생을 지도해 주어야 한다.

월요일인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총 4일간 진행이 되니 48명을 봐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교사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빠듯하고 고된 일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일정을 이야기했을 때 지석 선배는 계속 투덜댔다.

그러나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하자 그런 고된 일이 있냐는 듯 선배를 비롯한 지도교사들 모두가 열의를 키웠다.

“매번 영상을 찍으면서 셀프피드백을 해본다. 그리고 사전에 기출문제지를 나눠 줄 테니까 이거 위주로 공부하고 있어. 그렇다고 거기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하지 말고. ”

학생별 기출문제를 나눠주고 삼각대까지 분배한 후 모두 각자의 시간표에 맞춰 움직였다.

교사들은 지정된 교실에 들어가 대기를 했다. 학생들이 조별로 시간에 맞춰 해당 교실에 들어갔다.

“아….”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녀석들을 보면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들 앉아.”

동석이, 은장이, 명천이가 한 조가 되어서 내 앞에 앉았다.

명천이가 살짝 눈을 찌푸린 것 같았지만, 무시했다.

“기출문제들 좀 봤냐?”

“많이는 못 봤지만,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동석이와 은장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문제가 다른데….”

“명천이 넌 MMI도 겸해서 할 거야.”

명천이의 질문은 서류기반 질문도 있었지만, 오히려 MMI에 나올 법한 질문들을 많이 할 생각이었다. 미리 제시문도 나눠 주고 풀이시간도 줄 예정이었다.

“그럼 은장이부터 시작하자. 다른 둘은 은장이 하는 거 보고.”

나는 은장이의 학생부, 자기소개서, 기출문제 종이를 번갈아가며 본 후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벌점 부과 제도가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나 공부에 대한 열의를 높여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은장이는 무슨 황당한 질문이냐면서 기출문제지를 다시금 훑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에서 질문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옆에서 동석이와 명천이는 왜? 왜? 하며 속삭이고만 있었다.

못 찾는 게 당연했다.

“없어.”

“…네?”

망연자실한 표정의 은장이를 보며 나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기출문제지에 없다고.”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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