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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81화 (81/252)

81화. 추억 만들기 (1)

류 선생이 우리 팀에 합류한 직후, 수시 지원의 막바지에 힘썼다.

특히, 수학 교과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내용을 채워야 하는 은장이와 태성이의 경우에는 류 선생의 합류가 매우 중요했다.

이미 이전에 다른 사람들의 요청을 들어주기도 했고, 이번에 나와의 계약 아닌 계약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모든 걸 까발릴 겁니다.]

각종 과외, 학교 내외부에서의 명성을 모두 놓칠 수 없는 류 선생은 내 말에 무조건 동의했다.

그렇기에 학생부 최종 정리에 있어 류 선생이 열의를 가진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게 이상하지 않다는 건 나만 아는 일이었다.

“은장아 미안하다.”

은장이의 수학 세특을 작성해 주기 전에 류 선생은 먼저 사과부터 했다. 내가 도끼눈을 뜨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류 선생은 나름대로 변하고자 노력했다.

[변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 역시 국물도 없을 겁니다.]

당연히 당근도 던져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대신 제대로만 하시면 선생님에 대한 평가는 이사장님에게 긍정적으로 보고하겠습니다.]

[저, 정말?]

[그러면 나중에는 더 큰 명예와 자본을 취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음지가 아니라 양지에서 말이죠.]

멀지 않은 미래에 강문고는 지역 지자체와 연계하여 각종 컨설팅과 수업을 하게 된다. 그때 나는 자리에 없었고, 류 선생도 하루최고 사이트 행적이 밝혀져서 강문고를 그만둔 때였다.

지석 선배를 통해 들었을 때, 한 교감을 비롯해-그때는 교장이 되지만- 그의 라인 사람들이 주력이 되어 지자체와 협업을 했었다.

평가는 물어볼 것도 없이 엉망이었다.

‘어쨌든 그걸 이번에 잡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걸 잡았을 때, 이를 실행할 전력이 필요했다.

전문 분야 실력이 있고, 나름대로 공신력도 있으며, 명예욕이 있어 적절하게 봉사정신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그에 적합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류 선생이었다.

류 선생은 그게 어떤 일을 말하는 건지는 몰랐지만, 양지에서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말에는 눈을 빛냈다.

그래서 나와 거래를 하는 데 있어 제시했던 조건들을 하나씩 수행 중이었다.

갑자기 변한 류 선생의 태도에 은장이는 다소 놀라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이내 이어진 상담을 통해 수학 교과목 세특을 채워나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후 나는 매점으로 향했다.

“야, 강명문.”

지석 선배가 매점으로 막 들어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너 뭘 어떻게 한 거야?”

“뭐가요?”

“야, 류지훈이 나한테 사과를 하잖아. 그때 이상한 청탁 제안해서 미안했다고.”

“청탁이요?”

“아, 그게….”

나는 지석 선배에게도 류 선생이 뒷조사를 의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어디까지 손을 뻗었을지 모를 사람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듯했으니 나름대로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냥 이사장님과 같이 계약을 하나 했습니다.”

“계약?”

“그런 게 있습니다. 그나저나 선배, 은장이 사회 세특 최종 마무리 좀 해 주세요. 융합인재로 보여져야 해서 챙길 게 좀 많습니다.”

능글거리지도 않고 당연하게 말하는 나를 보며 지석 선배가 혀를 찼다.

“너는 선배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냐?”

“커피 하나 드실래요?”

“너는 인마…. 에휴, 됐다. 입시 다 끝나면 진짜 두고 보자 너.”

장난스럽게 투덜대던 선배는 매점에서 제일 비싼 커피 음료를 골랐다. 나는 선배를 흘겨보면서 중얼거렸다.

“선배 되게 쪼잔… 아닙니다.”

“뭐 인마?”

그렇게 나한테 음료와 빵을 얻어먹은 선배는 교무실로 들어가서 은장이의 사회 세특 마무리 정리를 해 주었다.

이어서 박 선생도 미리 부탁했던 동석이의 동아리 특기사항과 영어 세특 마무리를 해 주었다.

이어서 태성이와 은장이의 학생부도 전체적으로 정리하면서 나도 부족했던 독서목록을 채워 주었다.

“쳇, 그냥 적당히 블로그 보고 쓰면 되잖아요.”

투덜대며 독서록을 제출하는 태성이의 머리에 종이몽둥이를 날렸다.

“아야!”

“벌써부터 편법이나 생각하냐? 게다가 면접에서 독서 물어보면 어떡할 거야? ‘괴짜들의 통계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어, 어….”

“…넌 면접 특강 때 죽었다.”

머리를 감싸며 절규하는 태성이를 은장이가 뒤로 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은장이가 아무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속삭였다.

“쌤, 류지훈 쌤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이걸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은장이는 주변을 살짝 둘러보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쌤도 들으셨잖아요. 아침에 저한테 사과하시더니 조사도 그만하라고 그러는게 좀 이상해서….”

“귀찮으셨나 보지. 잘됐네, 이제 입시에 집중하자.”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역시 쌤이 뭔가 하셨죠!”

“하긴 뭘 해. 너 학생부 마무리나 제대로 해. 지원 얼마 안 남았다.”

“쌤이 뭐 한 거 맞네! 그쵸!”

“응? 담임쌤이 뭘 해?”

논술 답지를 잔뜩 써서 들고 온 정석이가 은장이에게 물었다. 은장이는 정석이에게도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정석이도 입을 떡 벌렸다.

“대박… 쌤 또 뭔가 한 거예요?”

“시끄럽고, 답지나 내놔.”

웅성대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나는 정석이의 답지를 첨삭해 주었다. 이어서 정아의 논술 답지도 봐주었다.

그렇게 나와 교사들, 학생들은 수시 준비를 위해 마지막 노력을 다했다. 모든 학생들의 상담을 해 주었고, 4년제면 4년제, 전문대면 전문대 추천까지 해 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어진 9월 모의고사에서 우리 반 학생들 중 몇 명은 1개 등급씩 상승했다.

“우와아아!”

그 학생들은 이번 방학 때 자기주도학습 캠프까지 수강한 인원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은장이, 정석이, 그리고 명천이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중에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정석이의 성과가 가장 돋보였다. 이제 녀석은 성실성대 논술의 최저 등급 정도는 여유 있게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지금 이 감각 유지할 수 있도록 하자!”

학생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명천이도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살며시 쥐는 모습을 보였다. 은장이도 최저등급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이번에 해소할 수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의 그런 모습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렇게 한 주가 더 지나고, 수시 지원날이 되었다.

학생들은 나와 사전에 상담했던 학교, 학과, 전형에 맞춰서 지원을 했다.

그런데 지원을 하고 이틀쯤 뒤, 학교 밖이 소란스러웠다.

“뭐지?”

지석 선배가 창문을 열고 확인을 해보았다. 선배는 곧 나를 불렀다.

밖에서는 학부모회의 학부모들이 비장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옆에서는 한 교감과 민 부장이 쩔쩔매며 그들을 말리려고 노력 중이었다.

“강명문 선생님.”

교무실 문을 활짝 연 학부모회장의 뒤로 약 십여 명의 학부모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나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고, 으름장을 지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학부모회에서도 학생들을 응원 좀 해 주려고 합니다.”

“그건 교감 선생님께서 봐 주시면 될 텐데 왜 저한테….”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학부모회장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다른 학부모였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 캠프 담당이라시면서요?”

그중에는 당시 수행평가의 평가방식 변화 때 불만을 가졌던 아주머니도 있었다. 아주머니는 앞으로 다가와서는 나를 노려보다가 내 손을 꽉 잡았다.

“감사합니다.”

“…네?”

“선생님 덕분에 우리 규찬이가… 집에서도 공부를 합니다.”

규찬이면 논술 특강을 들은 학생이었다. 아주머니를 기점으로 여러 학부모들이 와서는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이 황당한 상황에 학부모들을 번갈아 가며 돌아봤다.

“대치동 여러 학원들 보낼 때도 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학교에서는 공부를 하겠다고 꼭 가더군요.”

“애가 눈에 띄게 밝아졌습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특강이 도움이 되었다는 점은 확실했다.

“그래서 저희도 뭔가 해 주고 싶었거든요.”

학부모회장은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준비했는지 작은 현수막과 양손 가득 간식세트를 들고 왔다.

“오늘도 자기주도학습 있죠?”

“네 있습니다.”

“저녁에 간식으로 먹으라고 나눠 주세요.”

간단한 다과와 음료수, 그리고 학부모들의 응원 메모가 붙어 있는 간식봉지였다. 봉지에는 <학부모회 제공>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뒤에서 뭘 어찌해야 하나 불안해하던 한 교감은 호의적인 이야기가 오가자 신이 나서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강 선생님이 하는 건데, 잘 될 수밖에 없지요 하하하! 이 간식, 교감의 이름을 걸고 꼭 나눠 주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감 선생님.”

이게 교감 이름을 걸어야 하는 일인가 싶었지만, 어쨌든 고맙다는 인사는 했다.

“잘 전달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 준 학부모회의 학부모들을 나무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했고, 학부모들은 앞으로 이런 특강을 지속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이미 모든 특강 계획이 짜여 있던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 웃음에 몇몇 학부모들은 소름이 돋는다며 어깨를 감싸 쥐었다.

* * *

수시 지원이 모두 끝나자 학교에는 잠시간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 평화도 얼마 가지 않아서 깨질 예정이었지만 말이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제 남은 건….”

“면접과 수능! 맞죠?”

조회를 하는데 내 말을 끊고 은장이가 대답했다. 나는 은장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판서를 했다.

“맞아. 빠른 학교는 10월 초부터 면접 시작이다.”

나는 칠판에 간단하지만 커다랗게 캘린더를 그려 월별 중요 일정을 적어두며 설명을 했다.

“최저등급을 맞추기 위해 수능도 공부해야 하겠지만, 면접을 보는 녀석들은 지금부터 면접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캘린더에 적어둔 추석 부분에 <3박4일 추석 면접 캠프!> 라고 적어나갔다.

뒤를 돌아보며 학생들에게 3박4일을 강조하며 칠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추석은 21일부터 23일까지로 화, 수, 목이었지만, 한 교감과 이사장의 재량으로 고3들은 입시 준비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도록 조치해준 덕분이었다.

“추석 때 벌써부터 놀 궁리 하는 녀석들이 있을 거 같아서 또 한 번 우리가 준비했다!”

“쌤, 꼭 들을게요!”

아직 정확한 일정이나 방식을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여기저기서 캠프에 신청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저희는 벌써 스터디까지 만들었어요!”

은장이가 동석이와 태성이, 그리고 명천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명천이는 ‘내가 언제!’ 라며 입을 중얼거렸지만, 크게 반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동석이는 언제 만들었는지 <예상질문 리스트>라고 적힌 인쇄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것들 봐라?’

불과 한 달 동안의 기간이었다.

논술 특강과 자기소개서 특강. 그리고 학생부 정리를 위해 했던 각종 활동들과 자기주도학습 특강.

이어진 특강과 수시 준비를 위한 작업들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계기를 심어 주었다.

그게 입시가 되었든,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이 되었든, 어쨌든 학생들은 자신만의 이유를 찾아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특강을 듣지 않은 학생들도, 친구들의 변화한 모습을 보며 긴장감을 가졌다. 그 긴장감도 학생들에게는 하나의 학업 동기가 되었다.

“좋아, 그럼 확실하게 스파르타 캠프로 만들어 주마!”

나는 준비해 온 인쇄물을 학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거기에는 하루 12시간의 일정이 적혀 있었다.

종이에는 크고 굵은 글씨에 밑줄에다가 별표까지 해 가면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라는 멘트를 적어 두었다.

그러다 학생들은 핵심 포인트 3번과 4번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

1. 내 생기부 내용 기억하기!

2. 내 자소서 내용 기억하기!

3. 두 개 서류 내용들로 수다 떨기!

4. 내 희망 전공으로 놀아보기!

의문에 빠져 있는 학생들을 향해 나는 악마처럼 웃었다.

“내가 잊지 못할 한가위 추억 만들어 주마.”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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