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80화 (80/252)
  • 80화. 필요합니다.

    류 선생은 모의수리논술대회가 있고 며칠이 지난 뒤 이사장실에서 볼 수 있었다.

    한 교감에게 류 선생을 한 번 만나달라 부탁을 받은 이사장은 낌새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나에게 연락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이사장과 함께 서 있을 수 있었다.

    류 선생은 이사장실에 들어오면서부터 얼굴색이 창백했다.

    “기회를 주십시오!”

    다짜고짜 이사장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하는 류 선생은 어딘지 안쓰러워 보였다. 몸과 고개를 바짝 숙이며 어딘가의 조폭처럼 예의를 갖추는 류 선생에게 이사장이 다가갔다.

    “교감 선생님께 연락 받았을 때 의아하기는 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말씀하시죠.”

    “이사장님,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아니, 제가 몹쓸 쓰레기입니다!”

    류 선생은 한 번 더 고개를 숙이면서 거듭 외쳤다.

    이사장실이 떠나가라 맹세를 반복하던 그를 이사장이 간신히 말렸다.

    “그만, 그만! 무슨 일 있으셨어요?”

    류지훈은 이사장에게 지금까지 자신의 행적을 낱낱이 밝혔다. 민 부장과 한 교감 사이에서의 거래, 학부모회장과의 거래는 물론, 그 외 각종 대회와 은장이 동아리 협박 일까지.

    그 모든 일들을 들은 이사장은 미간을 좁히며 류 선생을 노려봤다. 그러나 다시금 평소의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모든 죄를 뉘우칠 테니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류 선생이 이렇게 필사적으로 이사장에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어제의 댓글 때문이었다.

    나는 라인을 갈아타라는 댓글과 함께 ‘이미지를 세탁해라’ 라고 추가 댓글을 달아두었다.

    그걸 확인한 류 선생은 어떻게 세탁해야 할지를 물었고, 나는 ‘잘못한 거 밝히고 일단 학교에 잔류해라’ 라고 적었다.

    아, 물론 적은 건 정석이고.

    나는 그런 속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 이야기는 이사장에게 비밀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모든 일들에 있어 비밀로 끌고 갈 생각이었다.

    ‘여차하면 팽시키기는 해야겠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 류 선생이라는 수학 분야의 실력자는 반드시 필요했다.

    교과목 세특 등을 담당하는 건 물론이고 내년에 있을 경제동아리나 경영동아리 담당교사를 해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인문계열의 수리논술 수업도 가능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한 번에 내치기에는 아까워서, 입시 실적으로 최대한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댓글로 그가 라인을 갈아타도록 유도했다.

    ‘결단이 좀 빠르기는 했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류 선생을 보면서 몰래 미소를 지었다.

    “류지훈 선생님.”

    “네, 이사장님!”

    “방금 말씀하신 게 모두 사실이라면 교감선생님, 교무부장 선생님은 물론, 류 선생님도 징계, 아니 해고감입니다. 정말인가요?”

    해고라는 말에 류 선생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무릎까지 꿇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마, 맞습니다! 그러나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신 것도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겠지요. 강 선생님?”

    이사장은 나를 부르더니 눈짓으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이사장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류 선생님처럼 수학의 일타강사급 선생님이 빠지면 입결에는 좋지 않을 거기는 합니다.

    -그래도 학교 이미지가….

    -문제되는 부분들이 어떤 게 있는지 파악해두고 정리를 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 학교 이미지 이야기가 나오면 실력은 있지만 인성이 부족한 교사들의 인성 교육 및 지도를 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이사장은 그게 쉽게 되겠냐며 조용히 물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류 선생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자세 그대로였다.

    -입결이 좋으면 절반은 먹고 들어갈 겁니다.

    인성, 심성은 별로지만 류 선생의 입시 실적만큼은 확실했다. 수학 수능 강의에서만큼은 대치동 강사들도 한 수 배워 갈 정도였다. 게다가 어지간한 수험도서 출판사에서 자문 및 출제자를 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 류 선생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강문고에는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지만, 입시는 잇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사장님.

    내 설명에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이사장이 류 선생에게 다가가 몸을 일으켰다.

    “이러고 있지 말고 앉아서 이야기하시지요.”

    “가,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류 선생님이 강문고 학생들의 수학 내신과 수능 등급을 책임지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류 선생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입을 틀어막았다. 아마, 평소 하던 자기자랑을 습관처럼 하려던 듯했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류 선생은 자기자랑보다는 겸손을 기본 자세로 장착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학생들이 잘해서….”

    “그렇지 않다는 건 선생님도 잘 아실 겁니다. 그렇지요?”

    인자하게 웃는 이사장의 말에는 뼈가 들어 있었다.

    그 정도를 내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그리고 네가 지금까지 했던 일이 잘못된 일이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모를 정도로 네녀석은 바보가 아니다.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나에게 이렇게 오느냐.

    류 선생에게는 방금 이사장의 한 마디가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예상대로 류 선생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나조차도 그 모습이 딱하게 보였다.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사장은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를 열었다.

    “지금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고, 앞으로 반드시 변화해서 강문고와 학생들을 위해 힘쓰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세요.”

    그리고는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확실한 증거를 남기기 위함이었다.

    이 정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류 선생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다 결심을 하고는 핸드폰 앞에 자세를 잡고 섰다.

    “저, 저는….”

    류 선생은 핸드폰 앞에서 절대 이 마음 변치 않겠다, 앞으로는 잘못된 일에는 반드시 불응하겠다, 강문고와 학생을 위해 힘쓰겠다는 등의 다짐 아닌 맹세를 했다.

    약 1분여간 영상이 촬영되었다.

    촬영이 끝나고 이사장은 만족한 듯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오늘의 맹세를 꼭 잊지 마세요. 류 선생님께 거는 기대가 큽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여기 강 선생님과 함께 이번 입시 마무리를 위해 힘써 주세요. 입시 강의 및 전략 전반을 총괄하여 움직이고 계십니다.”

    이사장은 나를 그렇게 소개하며 앞으로 내 부탁을 지시처럼 따르라고 말했다. 류 선생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내 앞에서는 숨기려 노력했다.

    류 선생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는 게 코앞에서 보이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류 선생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후 이사장의 설명을 추가로 들으면서 나와 류 선생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이사장실에서 나온 우리는 잠시 교무실 바깥 화단에서 커피를 마셨다.

    “강 선생, 내가 아까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 알잖아. 이게….”

    “류 선생님. 강문고에서 입결 대박을 내고 싶으시면 제가 말씀드리는 걸 우선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나는 핑계를 대려는 류 선생의 말을 끊고 핸드폰으로 화면을 하나 보여 주었다. 류 선생은 화면을 바라보더니 헉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너, 너, 너가 어, 어떻….”

    “강문고의 수학교사, 나름 교육방송이나 대치동 강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교사가 알고 보니 혐오사이트의 유저이자 관리자였다면 어떨까요?”

    잠시간 핸드폰의 화면이 류 선생의 커뮤니티 활동 중 최근 게시글을 보여 주었다.

    자동 화면 꺼짐이 되면서 게시글이 화면에서 사라진 후에야 류 선생은 다급하게 말했다.

    “혀, 혐오, 혐오사이트? 난 저 하루최고 같은 데서 활동 안 해. 내가 무슨….”

    “X¥*#$*.”

    “!!”

    남녀의 생식기와 관련된,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닉네임을 이야기하자 류 선생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게시판에서 선생님이 올리신 글도 봤습니다.”

    나는 류 선생이 최근에 해 왔던 일들은 물론, 이전의 게시글까지도 모두 알고 있었다. 대부분 학교 여학생들을 어떻게 해 보고 싶다거나, 밤에 몰래 데리고 가고 싶다거나 하는 위험한 발언들이 많았다.

    “그, 그런 건 그냥 그, 그런 거야! 그… 왜 그런 거 있잖아? 불알친구들끼리 술 마시고 하면 하는 그런 농담이야, 대단한 게 아니야.”

    “저는 그런 농담 안 합니다만.”

    류 선생은 정말 아무런 가책도 없이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들을 해 왔을 것이다. 그건 그쪽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기에 문제의식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옳은 사고방식은 아니었다. 잘못되었다면 잘못된, 사회의 상식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개념이었다.

    ‘15년쯤 뒤에는 사이트가 아예 법적으로 폐쇄됐지.’

    그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했던 사이트는, 먼 미래에 결국 폐쇄가 된다. 물론, 하루최고 사이트의 유저들은 또 다른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었지만.

    어쨌든, 지금 류 선생은 당장 여기에서 탈퇴하고,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만약 사이트의 게시글, 댓글이 남은 상태로 입시 결과를 내면, 반드시 정해진 미래가 올 것이었다.

    류 선생이 실력은 있지만 인성이 쓰레기라 강문고의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학교가 불명예를 얻게 되는 일 말이다.

    “… 날 어디부터 조사했냐?”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학생 협박해서 제 뒷조사 시키신 분이.”

    나는 눈을 치켜뜨고 류 선생을 맹렬한 기세로 노려봤다.

    “감히 우리 반 학생에게, 좋은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유혹해 놓고 이제는 그걸로 협박을 합니까?”

    류 선생은 방금 이사장실에서 두 가지 고백을 빼먹었다.

    첫 번째는 류 선생이 하루최고 사이트의 열렬한 유저라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은장이와 같이 동아리 관련에 자신의 힘을 쓴 점과 더불어 나의 뒷조사를 한 사실이었다.

    뒷조사는 이전에 한 번 내가 언급한 적이 있었기에 예상은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최고 사이트 이야기는 달랐다.

    여태까지 잘 숨기고 있었던 은밀한 취미생활.

    평소의 망상을 두고 서로 영웅놀이를 하듯 떠드는 생활.

    그런 생활들에 대한 정보를 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류 선생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류 선생님.”

    초점을 잃은 동공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류 선생이 이사장 앞에서처럼 무릎을 꿇었다.

    “알리지 말아 줘.”

    “….”

    “제발! 내가 하루… 그 사이트 관리자라는 거, 내가 쓴 글들에 대한 거! 전부 비밀로 해 줘!”

    “그럼 류 선생님, 앞으로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십시오.”

    류 선생은 귀를 쫑긋 세우며 알겠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게시글, 댓글 싹 다 지우고, 계정 삭제하고 관리자 그만 버리세요. 관련 규정에 보시면 삭제된 계정 정보는 1년간 보호하다 폐기한다고 하더군요.”

    “알았어, 오늘 당장 할게.”

    “그리고 류 선생님 평소 가치관… 그게 어떤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게 비도덕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알지, 알아.”

    “잘 아신다면 이제는 그 과거를 모두 씻어내셔야 합니다. 은장이에게 바로 사과하고 제 뒷조사 중단시키세요. 그리고….”

    나는 핸드폰으로 지금의 대화를 녹음했음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허튼 수작 부리려 하면, 그때는 선생님이 지금까지 어떤 일들을 했는지 모두 밝히겠습니다.”

    “뭐, 뭐?”

    “제가 지금 왜 참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류 선생의 지금까지의 행적,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

    그 일들이 발생할 경우 강문고의 입시 결과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게다가 수학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이걸 직접 알려 줄 수 있는 교사가 필요했다.

    비록 지금과 같은 형태의 모습이더라도, 류 선생은 내 편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저는.”

    나는 류 선생에게 내가 지금의 입시와 관련된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 이유를 밝혔다.

    “이 학교와 학생들이 좋습니다.”

    “…어?”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의 실력이 필요합니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류 선생이 내 손을 맞잡았다.

    “죽을 만큼 노력하십시오. 입결 성과 제대로 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손을 나는 온 힘을 다 해 꽉 쥐었다.

    “교육계에서 매장되는 게 뭔지, 직접 겪게 해주겠습니다.”

    그것은 백의종군하라는 서슬 퍼런 협박이었다.

    “입결대박. 잘 부탁드립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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