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수치심과 열의
방심했다.
언론에 나온다는 생각에 이미지, 인맥 관리만 생각했던 내 실책이었다.
사전에 이사장이나 한 교감에게 어떤 언론사인지, 어떤 목적으로 오는지를 세밀하게 따져 봤어야 했다.
“네, 네?”
그런 내 속을 모르는 신 기자는 여전히 당황한 채 입만 뻐끔거렸다.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지레 겁에 질려 온몸을 움츠렸다.
“꺅!”
“대답해 주십시오. 진짜 왜 왔습니까.”
미래교육은 사학비리 폭로 사건 때 한 교감의 편을 들었던 언론 중 하나였다. 기억하기로는 당시 한 교감이 미래교육 대표와 술자리를 많이 가졌었나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한 교감이 당시에 그렇게 힘을 썼던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탑 중 하나라는 미래일보. 그 미래일보 중에서도 교육 담당 언론이 바로 미래교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교감은 당시의 노력 덕분에 미래일보와 미래교육으로부터 이미지 세탁을 했다. 모든 잘못은 초임교사들이 실수를 한 탓이었고, 위에서는 그런 사실들을 전혀 몰랐다는 식이었다. 현금을 주고받는데 그걸 알 도리가 어디 있느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걸 주도한 언론에서….’
미래교육이 지금 시점에서 은장이의 인터뷰를 편집한다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편집될 가능성도 있었다.
“목적이 뭡니까.”
“쌤 무섭게 왜 그러세요!”
은장이가 옆에서 나를 말렸다.
“잘 들어. 미래교육은 악질 중에서도 악질인 언론이야. 자본이 움직이면 기사 내용도 바꿔 버리고 자극적이다 싶으면 소설처럼 지어내기도 하는 곳이야. 오늘 인터뷰 내용, 오해하기 딱 좋게 바꿀 말들이 많았어.”
은장이는 내 설명을 듣자 입을 틀어막고 신 기자를 바라봤다. 신 기자는 그렇지 않다며 도리질을 했다.
“그, 그건 아니에요!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저는 아니에요!”
“선배들 압박 때문에 취재도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는 신입 기자인데, 어떻게 그걸 장담할 수 있습니까?”
신 기자는 억울하다며 자신의 녹음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원을 켰다.
“맹세할게요! 여기 있는 이야기들, 전부 한 치의 오해도 없이 기사 쓰겠다고!”
“….”
그럼에도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아 신 기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수첩 보여 주시죠.”
“…이딴 언론사 진짜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어휴.”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수첩을 내밀었다. 나는 그걸 훽 낚아채고는 내용을 읽었다.
“여기 적은 내용대로만 기사 내보내시는 겁니까 그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지금 이거 때문에 기분 나빠서라도 기사 내용 바꾸고 싶은데요?”
톡 쏘아대는 신 기자를 나는 똑바로 노려봤다. 살짝 움츠러들기는 했지만, 내가 조금은 믿으려고 하는 듯 보이자 이내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 의심하는 건 다 이해해요. 선배들 기사들 중에는 왜곡된 내용으로 피해 본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이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미래교육의 기사는 자극적이다 싶으면 타이틀을 바꾸거나 인터뷰 내용의 구성을 이상하게 변경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오해를 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었다.
“미래신문이 그런 계열인 걸 모르고 입사했습니까?”
“알기야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죠. 그리고 취업하는데 사상을 어떻게 따져요?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도 생계를 찾기 위해 학원을 차렸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저는 믿으셔도 돼요. 오히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믿을 만하지 않나요?”
“오면서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하고 온 사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까?”
“그, 그건… 혹시나 싶어서….”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수첩을 돌려주었다.
“한 치의 왜곡이라도 있으면 바로 법정싸움으로 갈 겁니다. 은장이 아버지 변호사이신 건 아시죠?”
“헉! 진짜로요?”
“아, 쌤!”
은장이가 옆에서 나와 나를 말렸다.
“신고하는 일 없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아, 하하하… 학생, 자, 잘 부탁해.”
확연히 달라진 신 기자의 모습에 은장이도 당황해했다. 그도 그럴 게 신 기자는 몸을 뻣뻣하게 세우고 말을 더듬고 있었으니까.
판검사, 변호사, 의사는 대치동에서나 많지, 조금만 바깥으로 나가면 사적으로는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이었다.
워낙 강문고는 그런 동네이다 보니 익숙했는데, 신 기자를 보면서 다시금 이 동네가 특이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무튼 그런 거니까, 내일 기사 올라오면 바로 확인할 겁니다.”
“그, 그럼요. 그리고 애초에 왜곡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신 기자는 테이블 위에 방치해 둔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를 썼다.
“…그거 꼭 해야 합니까?”
“첩보영화 같고 재밌지 않아요?”
“….”
“… 죄송해요, 얼른 갈게요.”
여전히 실눈을 뜨고 노려보는 내가 신경쓰였는지 신 기자는 후다닥 교무실을 나섰다. 은장이가 잠깐만요! 하며 신 기자를 배웅해 주었다.
‘미래교육이라.’
신입기자이기는 하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위 선배들에게도 기사 내용을 간섭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신 기자의 의사와는 다르다, 라는 핑계는 댈 수 있겠지만.
“은장아.”
신 기자를 배웅하고 다시 돌아온 은장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내일 기사 올라오면 바로 확인해 보고 이상한 내용 있으면 정정보도 요청하자.”
“에이 쌤, 그래도 언니가 그 정도는 아닐 것 같던데요?”
어느새 은장이는 신 기자를 언니라고 부르게 된 모양이었다. 새삼 녀석의 친화력에 놀라면서도 한 번 더 당부했다.
“미래교육은 믿을 만한 언론사가 아니야. 알았지?”
“어휴 알았어요. 꼭 확인하고 이상하다 싶으면 말씀드릴게요.”
은장이의 확답을 듣고서도 도통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사장에게도 문자를 보내두었다. 여차하면 이사장과도 대응책을 논의할 생각이었다.
‘한 교감이 미래교육을 불러온 것도 수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스팸은 아닌, 평범한 핸드폰 번호였다.
학부모인가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강명문 선생님?”
그리고 이어진 핸드폰 너머의 이야기에 허탈하게 웃었다.
“미래교육입니다. 학교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 * *
정리를 하자면 이랬다.
신미나 기자가 이번 취재를 처음 기획했다.
그러나 편집국에서는 신입기자가 실수할까 봐 경력자에게로 역할을 넘겼다.
그래서 담당하게 된 사람이 방금 전화를 한 추자인 기자였다.
추 기자는 후배의 치기 어린 행동을 사과했다. 그래서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다.
결국 우리는 추 기자와 추가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질문 자체는 매우 평이했다.
딱히 강문고나 은장이를 공격하려는 듯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 기자가 기관총처럼 질문을 쏟아내서 공격적으로 들렸다면 공격적으로 들렸지, 추 기자는 그렇지 않았다.
다만,
“이거 재밌게 나오려나.”
더 깊이 있는 이야기는 신 기자와의 인터뷰 때 많이 나왔다는 점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추 기자도 돌아가자 은장이도 의아하다며 말했다.
“아까 그 언니가 더 재밌었던 거 같아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미래교육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언론에 오른다는 건 조심해야 하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앞으로 있을 사학비리 폭로 사태 때를 위해서는 이미지 관리가 중요했다.
그렇기에 신 기자와 나누었던 세밀한 이야기들이 기사로 나오는 것이 좋았다.
물론 왜곡 하나 없이 말이다.
기사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증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교무실을 나섰다. 은장이는 다시 공부하러 간다며 교실로 올라갔다.
* * *
은장이의 인터뷰 기사는 예상했던 날짜보다 하루가 늦은 이틀 뒤에 올라왔다.
기사에는 추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신 기자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더 많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기사 타이틀에는 은장이가 아니라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적혀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내 인생의 길라잡이-강문고 이벤트 마스터 김은장 학생 인터뷰->
-신미나 기자-
신 기자는 약속했던 것처럼 선배와의 다툼을 이겨내고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담아주었다. 나는 신 기자가 꽤나 파워를 발휘했다는 점에서 놀랐고, 미래교육이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점에서도 놀랐다.
“와 쌤 이거 진짜예요?”
“미래까지도 생각하는 강 선생님….”
“어흑, 저흰 쌤이 우릴 이렇게 생각하시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그 기사는 새로운 파장이 되어서 학생들로부터 각종 오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 담임쌤 장난 아니라니까?”
“그럼그럼. 지옥 같은 특훈은 좀 그렇기는 하지만, 다 우리 잘되라고 하시는 그런 거지!”
게다가 은장이와 정석이는 한 것 양 어깨를 올리면서 자랑스러워했다. 동석이도 그것 보라며 맞장구를 쳤다.
네놈들이 왜 좋아하냐고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잠깐 헛기침을 하고는 여전히 기사 내용으로 시끌시끌한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들 알겠냐?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들 차리고 공부해. 알았어? 개학도 했으니까 방심하지 말고.”
““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이미지를 살려서 가르치자. 그렇게 다짐하면서 앞으로 너무 선한 이미지만 보여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원 직전까지 학생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은장이, 동석이, 태성이, 명천이처럼 입학사정관제를 주력으로 준비하는 학생들은 부족한 학생부를 최대한 채워 갔다.
“수행평가 발표 주제 공부하면서 배운 게 있을 거 아냐. 생각해 봐.”
“꼭 그 진로여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 봐.”
“전공적합성, 계열적합성 모두 보여 줘야 하니까 여기서는 인문학과 IT를 융합한 책을 넣어 주고.”
“3학년 동아리는 사실상 자습이나 다름없었잖아. 의학 분야 탐구보고서 정도는 만들어야지.”
그렇게 상담을 해 주고 학생부를 채워나갔고
“여전히 근거가 빈약해. 제시문 (가) 내용은 어디 있어?”
“문제 3에서 요구하는 건 네 개인 의견이 아니야. 제시문 기반의 해석이야.”
“기본 상식이 부족하다 싶으면 관련 주제 책이나 기사를 읽어. 교양 철학이나 일반시사상식 잡지 정도는 읽어두면 좋아.”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논술 답지를 첨삭해 주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모의고사 문제를 분석해서 알려 주었고, 비문학 독해법 특강을 임시로 열어 주기도 했다.
학생들은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에 의해 평일이고 주말이고 밤 10시까지 자습을 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전에 없던 열의를 보여주었고, 열심히 따라와 주었다.
‘역시 이미지가 최고네.’
기사로 만들어진 내 이미지의 효과를 보게 되자 괜히 입술이 씰룩거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류 선생 주최의 수리논술 대회 당일이 되었다.
교무실에서 본 류 선생은 한껏 홀가분한 표정으로 논술 시험지를 챙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대회가 끝나고 답지를 채점하는 시점에 다시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했을걸.’
명천이는 최근 1주일 동안 미친 듯이 수리논술을 공부했다.
수리논술 문제지를 찢어져라 노려보면서 샤프를 놀리는 명천이의 등 뒤로 어떤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런 명천이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됐네.’
명천이를 따로 과외로 봐주지 않은 건 불법적인 요소를 피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바로 명천이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명천이는 과외만 해왔고 학원에서도 자기 잘난 맛에 제대로 된 경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경쟁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게다가 단순히 같은 의대를 목표로 하는 경쟁자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녀석에게 필요한 건 의외의 인물과 수치심이었다.
[쪽팔리잖아요.]
명천이의 학생부를 정리해 주기 위해 상담차 불렀을 때 녀석이 말했었다.
[김은장, 최동석, 이정석. 하나 같이 마음에 안 들어요.]
각종 대회와 발표, 그리고 자기소개서에서 겪은 패배감. 경쟁자들에게 받은 호의. 맞춤법으로 구겨진 자존심. 이 모든 것들이 명천이의 의욕에 불을 지핀 것이었다.
“애 좀 먹을 겁니다.”
그렇기에 진심을 다해 공부한 명천이의 수리논술 답지는 생각 이상의 수준이었을 것이다.
나는 류 선생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의주시하면서 신 기자가 보내 준 답례품 과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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