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미래교육
정석이는 모니터 화면을 빤히 바라보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키보드에서 손을 내리고 마우스로 유저들의 반응을 살폈다. 보아하니 제법 나쁘지 않은 연극이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 정도면 되나요?”
그리고는 녀석의 뒤에서 핫바를 쩝쩝거리며 먹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잠시 정석의 마우스를 잡고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했다.
“괜찮네! 잘했어.”
나는 정석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아, 쌤! 왁스 발랐는데!”
“PC방에서 누구 보여 준다고 왁스까지 바르고 나왔냐? 됐고, 고생했으니까 핫바랑 라면 쏜다.”
굳이 이 댓글 작업을 위해 사이트에 가입까지 한 정석이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녀석은 신이 나서는 피시방 카운터로 달려가 주문을 했다. 나는 정석이가 자리를 비운 좌석의 모니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모의수리논술 좋지.’
나는 정석이를 불러서 우리 동네 근처의 피시방에 데리고 갔다. 피시방에서 어떤 사이트에 접속해서 커뮤니티 글을 탐색해 보라고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석이는 딱 봐도 학교 교사가 쓴 것 같은 글을 발견했고, 나는 그 글에 댓글을 달라고 지시했다.
내용은 모두 내가 알려 주었고, 정석이는 그대로 받아 적기만 했다.
“그런데 쌤, 이거 누구예요?”
“내가 아는 선생님인데, 요즘 많이 지쳐 보이셔서.”
“그냥 가서 도와준다 하시면 되잖아요.”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시거든. 아무튼 고맙다.”
얼마 후 녀석은 핫바와 라면, 콜라를 들고 와서는 식사를 했다.
“전 쌤이 이 사이트에서 놀려고 하는 줄 알고 첨에 깜짝 놀랐잖아요.”
핫바를 먹으며 헛소리를 하는 정석이에게 꿀밤을 한 대 먹였다.
“아야!”
“내가 이런 쓰레기 사이트를 왜 다니냐?”
“그럼 이런 쓰레기 사이트 다니는 쌤은 왜 도와주는 거예요?”
“이유가 있어.”
나는 거기까지만 답하고 정석이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이트의 주인공이 류 선생이라는 걸 알리는 건 지금보다는 나중이 나았으니까.
“입시 시즌 지나면 댓글 다 지우고 탈퇴해.”
정석이가 알겠다면서 계속 먹거리를 탐했다. 머릿속에서 류 선생과 나눈 댓글들을 떠올리며 다음 스텝을 준비했다.
* * *
정석이와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이사장의 전화가 왔다.
“인터뷰를요?”
[네. 은장이가 꼭 선생님과 같이 하겠다고 그러네요.]
은장이의 이벤트가 인터넷 상에서 꽤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학생부에 녹여낼지도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동석이에 이어서 은장이까지 인터뷰 요청이 왔다.
[강 선생님의 능력이 이렇게 나타나네요.]
“아… 그런가요.”
이사장은 핸드폰 너머로도 들릴 정도로 놀라며 물었다.
[안 기쁘세요?]
“기쁘기야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성과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입시니까요.”
아무리 기사가 많이 나와도, 인터뷰를 해도 결국 대학교를 보냈느냐 못 보냈느냐가 전부였다. 적어도 대치동에서는 그런 이미지가 중요했다.
입시코디 시절 상담을 했던 학생 중 여러 과학 대회 수상을 하고 전국 대표로 출전한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서울한국대나 K과기원에 입학하지 못했다.
내신과 비교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학생에 대해 학부모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대회 수상 많으면 뭐해요, 걔도 상 많이 받았는데 스카이도 못 갔더만.>
그렇기에 동석이의 수상, 은장이의 인터뷰는 모두 메인이 될 수 없었다. 메인 성과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입 실적이 있어야 했다.
그것도 어설픈 학교가 아닌 스카이급은 되어야 했다.
그래야 언론에서도 다시 한번 주목하고, 이를 기회로 학교와 나를 알릴 수 있으니까.
[그럼 인터뷰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거절할까요?]
“아뇨, 해야지요. 대신 그 요청을 준 기자분 한 분만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히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친한 기자 한 명 정도 만들어두면 나도 좋고.
[그래요. 그럼 내일 바로 진행하시죠. 개학 전에 얼른 하는 게 좋겠죠?]
“네, 부탁드립니다.”
이사장이 호호, 웃으면서 일정이 확정되면 문자를 넣어 주겠다 말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열어 캘린더를 확인했다.
내일 인터뷰, 인터뷰가 끝나면 상담, 상담 후 학생부 기록.
수시 지원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 * *
류지훈은 커뮤니티 댓글을 본 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리논술 특강생 대상 모의논술 간이 대회>
이미 한명심 교감과 민지정 교무부장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류지훈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학교를 거닐었다. 미소가 떠나지 않는 상태에서 특강 수강생들에게 모의논술 대회를 알려 주었다.
학생들은 류지훈이 뭔가 엄청나게 기쁜 일이 있는 줄로만 이해하고 별 의심 없이 대회 안내문을 받아들었다.
“앞으로 1주일 뒤에 모의논술 대회를 할 거야. 정식 대회는 아니고 여태까지 공개하지 않은 기출문제를 토대로 너희들의 실력을 평가하고, 간단히 부상을 주는 대회니까 열심히 해 보자.”
“네~”
특강은 없었지만, 자기주도학습 때문에 학생들은 특강처럼 교실에 모여 있었다. 류지훈은 실 안에 있는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수리논술 우등생들의 눈빛을 살폈다. 학생들은 부상인 문화상품권에 혹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 사이에서의 묘한 경쟁기류가 교실 내부를 감쌌다.
그 분위기에 다른 학생들도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다.
‘명천이는….’
명천은 류지훈이 서 있는 교탁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멀리서 보니 무언가를 계속 끄적이는 듯 보였다.
그게 어떤 건지 따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류지훈은 명천과 학부모회장에게는 따로 기출문제를 줄 계획이었다.
당연히 과외식의 기출문제 묶음을 주고 그중 하나를 낼 거다, 라는 식으로 설명을 할 생각이었다.
특강은 없지만, 할 일이 태산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류지훈은 커뮤니티발 조언을 떠올리며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둘 준비를 했다.
* * *
은장이의 인터뷰 당일이 되자 어디서 정보를 들었는지 학교 교무실로 각종 문의가 쏟아졌다.
대부분 본인들도 학교를 찾아가도 되느냐는 질문들이었다.
개중에는 기자들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학부모들도 있었고, 교사도 있었다.
누가 누굴 인터뷰 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생기자 은장이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쌤. 진짜 괜찮겠죠.”
“괜찮아, 뭐 어렵다고 이게.”
“쌤 이마에서 땀 흘러요.”
“더워서 그래 더워서.”
나는 손등으로 흐르는 땀을 훔쳤다. 한 여름의 날씨는 30도가 넘었기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흘렀다.
그런데도 밖에 나와 있는 이유는, 기자가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자 한 명 온다고 유난 떨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조건을 들어주는 대신 상대측도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다.
[저를 밖에서부터 안내해 주세요.]
조금 이상한 조건이었지만, 알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렇기에 지금 나와 은장이는 바깥에서 기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저기 온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경차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차에서 젊은 여성이 내리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김… 은장 학생…?”
“네?”
“어… 음….”
차에서 내린 여성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거기에 검정마스크까지 끼고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 좀 보호해 주세요.”
느닷없이 우리를 경호원 취급한 여성을 보며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은장이는 그 말을 진지하게 들었는지 자기만 믿으라며 007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적당히 하고 들어갑시다.”
반면 내가 성큼성큼 걷자 뒤에서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교무실로 들어오자 은장이와 여성이 헐레벌떡 나를 뒤따라 들어왔다.
“먼저 가시면 어떡해요!”
“신미나 기자님?”
은장이의 불평을 뒤로 하고 앞에서 여전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여성을 향해 물었다.
“저희만 있는 거 맞죠?”
“네, 저희만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야 안심했다면서 모자와 마스크, 그리고 선글라스를 벗었다.
딱 봐도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신입 기자였다.
“안녕하세요, 신미나 기자입니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한 신미나는 다짜고짜 질문을 했다.
“은장 학생은 평소 학교생활이 어땠나요? 좋아하는 동아리 활동이라든가, 이번 이벤트를 기획한 배경이라든가….”
“…잠깐.”
나는 질문을 마구 쏟아내는 기자에게 손을 내저으며 진정하라고 했다.
사실, 그 진정에는 내가 진정하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녀는 아차 싶었는지 두 손을 모아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갑자기 보호해달라 해서 죄송해요. 저 여기 오는 거 선배들에게 비밀이거든요.”
“네? 그럼 몰래 오셨어요?”
“편집장님은 허락하셨는데, 선배들이 하도 도끼눈을 뜨고 바라봐서… 치, 지들은 SNS는 하지도 않으면서요.”
신미나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서 빨리 인터뷰 끝내고 돌아가야 해요. 지금 밥 먹는다 핑계 대고 나왔거든요.”
그녀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연신 확인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지들도 트위티 하든가, 라고 중얼거렸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빨리 진행할게요.”
은장이가 서둘러서 이야기를 꺼내자 신미나는 그 말을 기다렸다면서 준비해 온 질문들을 던졌다.
대부분은 예상 질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 이 이벤트를 구상하게 되었는지, 평소 이런 일에 관심이 많았는지, SNS에서 화제인 건 알고 있었는지 등이었다.
때문에 은장이는 수월하게 답변을 했고, 나는 은장이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도끼눈을 뜨고 지켜봤다.
“이제 옆에서 무섭게 노려보는 선생님 차례예요.”
“네, 질문하세요.”
“최근 로봇대회 수상자도 그렇고 선생님 반 학생들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심정이 어떠세요?”
“아직 대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새파랗게 어린 녀석들입니다. 지금의 이슈 한두 번으로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기에 불안하기만 합니다.”
내 대답에 은장이와 신 기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아니, 그러니까 학생들이 공부나 수능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는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은장 학생의 평소 성품은 어땠나요?”
아무래도 표현이 좀 강했나 싶어서 이후의 답변부터는 최대한 듣기 좋은 멘트로 대답했다.
“워낙 친구들과 사이가 좋기도 하고, 맡은 바 책임을 정말 다 하는 학생입니다.”
“친구들한테는 분위기메이커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그렇게 인터뷰가 이어졌고, 슬슬 마무리할 시점이 되었다.
“은장 학생은 강명문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 담임쌤은 제 인생의 길라잡이나 다름없는 분이세요!”
그 말에 신 기자의 눈이 번뜩이더니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은장이는 지금까지 나와 했던 상담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꺼냈다.
자신이 꿈을 숨기고 살았던 점, 현실적인 목표를 알려 준 점, 미래 진로 가이드를 해 준 점, 입시 전략을 세워 준 점 등.
낯부끄러운 표현들도 들렸지만, 그런 건 알아서 필터링해 줄 거라 생각하면서 은장이의 답변을 들었다.
수 분 지나자 신 기자가 만족스럽게 녹음기를 끄고 수첩을 접었다.
“오늘 인터뷰 감사드려요. 소정의 선물은 제가….”
잠깐 주위를 둘러보던 신 기자가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었다.
“급하게 나온다고 챙기지도 못했네요. 다음에 잠깐 들러서라도 꼭 드릴게요!”
그리고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 나와 은장이에게 한 장씩 나눠 주었다.
“문의사항 있으시면 여기 있는 번호로 연락 주세요. 그리고….”
무언가 말을 이어나가려던 신 기자는 명함을 받아들고 헉 소리를 낸 나를 보며 이야기를 중단했다.
“미래교육이었습니까?”
교육언론 기자라는 이야기는 이사장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교육이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네, 미래교육에서 피플파트를 맡고 있어요.”
나는 그녀가 건넨 명함을 손에 꽉 쥐고 눈에 불을 켰다.
“오늘 인터뷰 기사는 내일 오전에 올라갈… 왜, 왜 그러세요?”
미래교육 주간지. 나는 이 언론을 알고 있었다.
“미래교육에서 왜….”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없던 일도 부풀리고, 있던 일도 숨기는 교육 전문 잡지.
과거 나를 저격해서 폭풍처럼 공격했던 교육 전문 주간지.
“강문고에 관심을 가지는 겁니까.”
그게 바로 미래교육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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