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76화 (76/252)
  • 76화. 같이 받을래요

    수리논술 특강이 계속됨과 동시에 자기소개서 특강은 이제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다. 특강 수강생들은 곡소리를 내면서도 단 한 명의 이탈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드디어 길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은 자기소개서 특강이 끝났다!”

    “우와아아!”

    학생들이 단체로 소리를 질렀다. 평소 조용한 성격을 지닌 녀석들도 오늘 이 시간만큼은 기쁨에 겨워 살짝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명천이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은장이가 등을 마구 때리자 살짝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용, 조용! 이제 특강이 끝났지만….”

    “자기소개서 계속 뜯어고치고, 자기주도학습 들어라! 이 말씀 하시려고 그러시죠?”

    은장이가 내 마음을 읽었다면서 어깨를 당당히 펴며 말했다. 나는 은장이의 태도에 코웃음을 치고는 모두를 향해 당부했다.

    “오늘부로 자기소개서는 지원 직전까지 봉인이다!”

    “네!?”

    “그리고 오늘까지 작성한 최종본 자기소개서가 들어 있는 노트북은 전부 반납해. 각자 USB나 이메일로 백업해뒀지?”

    자기소개서는 한번 완성 단계에 접어들면 더 이상 수정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전체 글의 구조를 부술 수도 있고, 괜히 한두 문장 고친다고 몇 시간이나 허비할 수도 있다.

    ‘절대 그렇게는 못 두지.’

    입시코디를 할 때 학생들 몇 명이 자기소개서를 지원 직전까지 수정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다 녀석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넣지 못해 아까웠는지 소재 자체를 바꿔 버렸었다.

    당연하게도 모두 수시 6개 대학 광탈을 겪었다.

    “자기소개서를 쓴 너희가 전문 작가는 아니잖아?”

    “네.”

    “그래서 어느 정도 문장이 어설퍼도 봐준다. 표현이 다소 직설적이어도 괜찮아. 중요한 건 전체 구조와 소재, 줄거리, 느낀 점이다.”

    이번 특강을 통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학생들은 모두 완성도가 높은 글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지금 너희가 쓴 글을 믿어라. 남은 시간 동안에는 논술 준비도 병행하는 녀석들은 논술 준비, 아닌 녀석들은 수능 준비해.”

    “쌤, 저처럼 수시 올인은요?”

    태성이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질문에 혀를 찼다.

    “인생 어떻게 될 줄 알고? 다 떨어지면 재수할 거야? 너 최저 안 맞춰?”

    “…아니요.”

    “그럼 수능 공부도 해야지?”

    입꼬리를 한쪽으로 올리면서 태성이를 노려보자 녀석이 슬쩍 내 눈을 피했다. 피식 웃으면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고생들 많았다. 생기부 정리해야 하는 녀석들은 상담일 잡고, 다른 애들은 해산!”

    “수고하셨습니다!”

    거의 몇 날 며칠을 학교에서 동거동락 하다시피 해서 학생들은 어느새 자기네들끼리 친해져 있었다. 몇몇은 이미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어디 놀러 가자며 엠티 날짜를 잡기도 했다.

    “역시 전우애가… 그 속에서 싹트는 우정과 사랑….”

    계속 전우애 타령을 하는 지석 선배의 말은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강 선생님, 이제 남은 시간에는 뭐 하실 거예요?”

    박 선생의 질문에 나는 캘린더를 살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계획해뒀던 일정은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남은 건 몇 개의 교내 대회와 모의고사였다.

    “스토커 좀 만나보려고 합니다.”

    “스토커요?”

    내 말에 박 선생이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강 선생님이 어딜 봐서 스토커가 붙어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군요.”

    “사실이 그렇잖아요.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고, 돈이 많지도 않고, 연애 쑥맥에 여심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그러는 박 선생님도 다를 건 없어 보이는데요?”

    “뭐라고요?”

    우리는 교실을 정리하고 나가는 순간까지 네가 잘났네 못났네 이야기하면서 티격태격했다.

    그런 우리를 보면서 지석 선배가 조용히 전우애… 라고 중얼거린 것 같았지만, 역시나 모른 척하기로 했다.

    * * *

    어두운 오피스텔 안에서 류지훈은 컴퓨터를 켰다. 등 뒤가 푹신한 의자에 몸을 대자 나른한 기분을 느꼈다. 곧 모니터에 영상이 올라왔고, 류지훈은 즐겨찾기에서 커뮤니티를 찾았다.

    [엿 됐다.]

    게시글 제목부터 자극적으로 작성하자 반응이 빠르게 나타났다.

    -뭐야, 관리자님 뭐야.

    -뭔데?

    -또 그 선생이랑 한판 함?

    -원조교제 걸림?

    여러 댓글이 달렸고, 류지훈은 막힘없이 글을 적어나갔다.

    -개노답 학생 합격시킨다고 허세부림.

    -님 허언증?

    -뭐 어떤데?

    -깜냥 안 되는데 의대 논술 붙이겠다고 함.

    -누구? 그 쭉빵 여고생?

    -걔는 돈 줘서라도 의대 보내고 휘어잡아야 하는 거 아님?

    별 의미 없는 댓글들에는 딱히 대꾸를 하지 않던 류지훈은 하나의 댓글에서 시선을 멈췄다.

    -근데 꼭 합격시켜야 함? 그냥 쓴이가 열심히 했는데 애가 망했다 하면 안 되나.

    그 댓글을 보면서 류지훈은 잠시간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아이도 아니고 나명천이었다. 자신이 고1 때부터 과외를 봐준 학생이고, 그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민지정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과외를 해 준 학생이 입시에서 떨어진다? 자신의 무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너무 고액으로 과외 해준 애라 그게 안 됨.

    -얼마 받았길래?

    -대충 억.

    류지훈의 댓글에 그를 부러워하는 댓글이 갑자기 수십 개가 달렸다.

    -미친.

    -그걸로 차 좀 뽑았겠네.

    -ㅅㅂ나도 교사나 할 걸.

    류지훈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조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쭐한 마음에 한 마디를 보탰다.

    -근데 걔만 과외한 건 아님.

    -그럼 그 개노답 학생만 억이 넘음?

    -ㅇㅇ

    -캬, 요즘 선생 돈 벌기 쉽네.

    ‘네놈들이 해 봐라 벌기 쉽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류지훈은 두 발을 책상 위에 올리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근데 그 허언부린 애는 합격시켜야 하는 거?

    -ㅇㅇ걔 놓치면 이제 과외 못할 듯.

    -그럼 합격시키면 되지 않나.

    -어떻게?

    -대치동은 뭐 기부도 하고 대필도 한다던데 거긴 어떰?

    류지훈은 역시 이 녀석들은 급이 떨어진다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으니까.

    -그걸 생각 안 해봤겠음? 내가 볼 땐 걔 논술 못하는 거 같은데 대외적으로 잘 하는 척은 해야 하고, 그렇다고 그냥 맡기자니 당장은 실력 떨어지고. 그거 아님?

    이번에도 어떤 댓글 하나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금 전의 그 댓글의 작성자로 보였다.

    -님 입시 좀 아는 듯 ㅇㅇ

    -ㅇㅇ나 학원 강사 출신.

    학원 강사 출신이라는 말에 류지훈은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실력이 있든 없든, 그에게는 색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오 뭐야 입시 정보 터지냐.

    -갑자기 게시판 고퀄되는 듯?

    자잘한 댓글들이 계속해서 달렸고 그 사이로 방금의 작성자가 글을 추가로 올렸다.

    -못하는 애를 억지로 끌고 갔다가 망하는 것보다는 교감, 교장한테 책임전가하셈. 의대 논술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차라리 수능이 낫다, 그런데 걔들은 잘 모를거 아님? 그리고 과외비가 억이 넘을 정도면 학교에도 돈 많이 썼을 듯?

    -ㅇㅇ맞음.

    -그럼 논술 합격하려면 최저도 준비해야 하는데, 의대논술이랑 최저랑 같이 준비하면 개빡쎄다 이런 소리로 입 좀 털었는데 교감, 교장이 논술 밀어붙였다, 이러면 될 듯.

    댓글이 잠시간 잠잠해졌다. 다들 류지훈과 댓글 작성자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 ㅅㅂ 님 감사. 제갈공명인 듯.

    -ㅇㅇ.

    -근데 얘가 어설프게 깜냥이 된다는 걸 어떻게 보여줌?

    류지훈은 이제 댓글에 빠져들 듯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급하게 모의 논술 대회 자체적으로 열어서 기출문제 걔한테만 과외할 때 유출하셈. 적당히 부상 준다고 문상권이나 주고. 그럼 봐줄만하게는 풀지 않겠음?

    댓글을 읽던 류지훈은 손으로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명천이가 그나마 동석이보다는 잘하지만, 그렇다고 의대를 갈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한명심과 민지정은 그래도 어떻게든 해봐야 한다면서 명천의 글을 가지고 와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논술을 중단하라고 이야기했지만, 교감과 교무부장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회피할 수 있었다.

    -조언 감사.

    -끝났냐?

    -이 정도면 쓴이 밥 사야 할 듯.

    -밥으로 되나. 쭉빵여고생 소개 ㄱ?

    실제로 류지훈은 만약 자신의 옆에 이 댓글 작성자가 있었다면 커피라도 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다니는 커뮤니티에서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류지훈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준비해둔 맥주캔을 입으로 가져갔다. 시원한 청량감이 목구멍을 적셨다.

    당장 내일, 류지훈은 한명심과 민지정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는 커뮤니티에서의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 * *

    자기소개서 특강이 끝난 다음 날, 은장은 난데없이 한명심 교감과 이사장에게 불려갔다.

    “은장 학생, 이거 볼래요?”

    이사장이 건넨 파일철에는 인터넷 뉴스를 올리기 전의 내용을 작성해둔 언론 보도용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제목을 본 은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문고 또 일내다! 수험생 친구들을 위한 이색 이벤트, 강문고 김은장 학생!>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 강문고 학생이 준비한 청소년 맞춤 응원법!>

    <친구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울린 감동의 한 줄!>

    그 외에도 여러 타이틀이 인쇄되어 있었다. 은장은 내용을 쭉 읽었다. 자신이 이번 자기소개서 특강 때 보여 준 이벤트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고, 이걸 언론사에서 취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들이 취재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인터뷰 기사를 내보낼 건데 어떻냐고 보내 준 거예요.”

    “나는 우리 은장이가 한 건 해낼 줄 알았어! 훌륭해!”

    “교감 선생님, 아직 은장이의 의견을 듣지 못했습니다.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한명심이 이사장의 말에 몸을 움찔하며 입을 닫자 은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저 이거 나가도 되는 거예요?”

    “그럼요. 은장 학생이 이번에 많은 노력을 한 사실은 학교에서도 다들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사장은 기자들이 보낸 이메일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인터뷰에 응해 주면 소정의 기념품과 상품권도 준다고 하네요.”

    그 정도로 강문고는 세간에서 이슈가 되고 있었다. 최동석에 이어서 자기소개서 특강으로 교육사각지대 해소, 이번에는 김은장의 이벤트까지. 이미 소셜에서는 강문고의 이색 활동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고, 그 인기는 한국고를 넘어서기 직전이었다.

    심지어 중학교 3학년 학생들 중에는 강문고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식인에 물어보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언론에서도 주목을 했고, 무언가 하나 생겼다 싶으면 한명심에게 연락을 했다. 한명심은 지난번 동석의 인터뷰 문제도 있고 해서 이메일을 바로 이사장에게 포워딩을 했다.

    지금 자리는 이렇게 마련이 된 것이었다.

    “저, 담임쌤은….”

    “지금 다른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어요. 그런데 은장 학생의 의사라면 믿고 진행하시면 된다, 그렇게 말하더군요.”

    강명문이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란 은장은 다시 한번 파일철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는 결심을 한 듯 파일철을 이사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할게요.”

    “개인 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그런 건 엄마랑 아빠 일하는 거 보면서도 많이 봤어요. 괜찮아요.”

    “불편한 일들을 많이 겪을 수도 있어요. 댓글에서 인신공격 당할 수도 있고요.”

    “그럴 땐 아빠한테 말해서 고소하죠 뭐.”

    변호사 아빠 있다는 게 이래서 좋은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떠는 은장을 보며 이사장이 빙긋 웃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요.”

    이사장은 이제는 학생들도 강명문을 닮아가나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은장은 긴장한 듯 입술이 살짝 떨리기는 했지만, 듣기로는 당당하게 말했다.

    “담임쌤이랑 같이 받을래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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