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75화 (75/252)
  • 75화. 결과물

    류지훈의 수리논술 특강은 매주 토요일에 오픈되었지만, 학생들의 성화에 힘입어 평일에도 첨삭을 봐주기로 결정된 상황이었다.

    이에 여러 학생들이 류지훈을 찾았다. 그 중에는 최동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동석의 답지를 한껏 기대하면서 받았다. 하지만, 두어 차례 답지를 반복해서 받으면서 류지훈은 의문을 가졌다.

    ‘뭐가 문제지?’

    동석이 들고 오는 답지를 보면 분명 정답은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설명하는 논리성에서 구멍이 났다.

    재미있는 건 하나하나 짚으면서 물어볼 때는 분명 명확하게 대답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왜 혼자서 글로 작성해 올 때는 그게 되지 않는 걸까.

    류지훈은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다가 세 번째 답지를 보면서 확신했다.

    ‘최동석은 천재다.’

    어느 정도였냐면, 기출문제를 보면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곧장 답을 내는 정도였다. 그 정도로 정답을 찾고, 풀이 과정을 혼자서 떠올려서는 우회적으로라도 답을 찾아나갔다.

    그러나 동석은 그 ‘혼자’가 문제였다.

    즉, 모든 답을 구하는 과정이 본인만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망할, 이걸 어떻게 가르치지.’

    심지어 동석은 지금까지 류지훈이 만나본 여러 학생들 중에서 수학과 과학 측면에서는 최고의 천재였다. 고등교육에 맞춰 길들여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 지식이나 활용능력은 어지간한 대학생 이상이었다.

    아니, 어쩌면 대학원생 이상으로 평가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동석이는 어떻지?”

    류지훈이 가장 난감한 이유는 바로 한명심 교감과 민지정 교무부장 때문이었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동석의 실력이면 수리논술에서는 탑을 찍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직접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동석은 이렇게도 물어봤다.

    [제가 왜 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해요?]

    답을 구하는 본인이 그 과정을 알고 활용할 수 있으면 됐지, 왜 이걸 설명하고 있어야 하느냐는 거였다. 그 말에는 ‘이렇게 쉬운 문제를?’ 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그…게….”

    그래서 류지훈은 민지정의 질문에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하게 말할 것인가, 아니면 꾸며서 말할 것인가.

    “왜?”

    그러다 류지훈은 하나의 답을 찾았다. 동석이가 안 되면 다른 학생을 목표로 삼았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그는 한 학생을 떠올리면서 마치 정치인이 선거철에 말하는 공약처럼 민 부장에게 말했다.

    “동석이보다는 명천이가 훨씬 잘합니다.”

    “나명천?”

    류지훈의 답변에 민지정이 미간을 좁히며 말도 안 된다며 물었다.

    “또 허튼소리 하는 거면 이번에는….”

    “아닙니다, 정말로 동석이보다 명천이 실력이 더 좋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풀이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동석보다는 명천이 나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명천의 수리논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키워야 한다.’

    이제 포커스는 명천에게 맞춰질 것이고, 동석은 멀어질 것이다.

    “동석이는 뭐라고 할까… 본인은 감각으로 풀다 보니 풀이과정 설명을 너무 어려워합니다. 반면에 명천이는 실력도 있고 나름대로 풀이과정도 보여 주고 있어서….”

    “그게 말이나 돼?”

    하지만 민지정은 류지훈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똑똑한데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못 한다고? 지금 자네 실력 부족하다고 광고하는 거야 뭐야?”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정말 동석이보다는….”

    “지금 밥을 떠다 먹여 줘야 해?”

    민지정이 소리를 지르자 류지훈도 더 이상 답변을 하지 못했다.

    “내가 교감이랑도 한 판 하고, 이사장에게도 어필하고 해서 겨우 수리논술 오픈했는데, 지금 이딴 식으로 할 거야?”

    “그게….”

    “류 선생.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강명문의 힘을 줄이기 위해 민지정이 생각했던 건 수리논술을 통한 의대생, 스카이 공대생 배출이었다.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K대학원 부교수로부터도 러브콜을 받은 최동석이었다.

    그런데 류지훈은 그 최동석의 실력이 좋지 않고, 나명천을 언급했다. 정말로 실력이 좋고 안 좋고는 차치하고, 나명천을 언급한 것 자체가 민지정에게는 불쾌하게 다가왔다.

    “학부모회장이랑 무슨 거래라도 한 거야?”

    류지훈은 그 말에 손을 휘저으며 해명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오히려 지금은….”

    과외도 잘리게 생겼습니다, 라는 말은 삼키면서 류지훈은 숨을 들이켰다. 민지정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눈으로 류지훈을 바라봤다.

    “진짜 나명천이 더 똑똑한 거야?”

    “똑똑하다기보다는 우리나라 시험 문제에 익숙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동석이는 설명을 잘 못 합니다.”

    “설명을 못 해?”

    “네, 혼자만 답을 알고 있는 그런 식입니다.”

    이제야 민지정이 이해를 하는 것 같아 류지훈은 슬쩍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류지훈의 예상대로 민지정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했다.

    “그럼 최동석 대신 나명천을 합격시켜. 당연히 의대논술이야.”

    그 말에 류지훈은 조금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에 명천을 잘 합격시키기만 하면 학부모회장을 통해 내년에도 과외자리를 소개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또한, 학교에는 자신의 실력을 입증할 수도 있었다.

    ‘더 나아가면 강명문식 강의들은 싹 다 무산시킬 수도 있다.’

    비록 동석은 수리논술 합격 예상자에서 벗어나지만, 그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류지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명천이 꼭 합격시키겠습니다.”

    “강명문이 입사관제로 합격시킨다느니 뭐니 하는데, 합격시키게 두면 안 돼. 수리논술에 집중하도록 시켜. 알았어?”

    민지정의 말에 류지훈은 불안감과 기대감이 반반씩 섞인 감정으로 답했다.

    -오늘 담임쌤이 명천이 맞춤법 멘토 해달라고 하셔서 지금 그거 하고 있어요.

    아침에 받은 은장의 보고를 보면 명천은 자기소개서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나명천을 수리논술에 집중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논술에 올인하지 않으면 지금 명천이로서는 답이 없다.’

    그게 솔직한 류지훈의 평가였다. 명천의 실력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의대논술에 합격할 실력이라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러나 민지정에게 호언장담을 하듯 말한 것처럼, 분명 방법은 찾아야만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류지훈은 핸드폰을 꺼내 학부모회장 연락처를 찾았다.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류지훈의 손가락이 떨려왔다.

    * * *

    “네!?”

    “미쳤어요!?”

    “내가 하자고 한 게 아니라 학부모회에서 건의가 왔다니까? 당연히 교장, 교감쌤이 오케이 하셨고!”

    나는 아침에 공부를 하기 위해 모여 있는 학생들로부터 있는 그대로 불평을 받았다. 그리고는 정말 모르는 일이라며 양손을 들고 항복의 자세를 취했다.

    “쌤도 반대는 안 하셨을 거면서!”

    “나는 모르는 일이야.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남은 날도 잘 부탁한다.”

    내가 악마의 미소를 보이며 대답하자 학생들이 열불이 나는지 가슴을 팡팡 쳤다.

    “어우, 왜 우리 엄마는!”

    “우리 아빠도 그랬을 거야! 왜 가둬서 공부시키려고….”

    “너희가 집에서 얼마나 공부를 안 했으면 그러겠냐? 학원 안 다녀서 강제성이 없으니까 자기주도학습이 안 된다는 거잖아. 잔말 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 보자!”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간식 세트에 있는 음료들을 가리켰다.

    “각성제는 충분하니까 힘들면 이야기들 해라.”

    “아, 쌤!”

    또 다시 시작된 스파르타식 특강에 학생들이 눈물을 흘릴 것처럼 절규했다. 특히 정석이와 태성이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다 끝났다고 한탄을 했다.

    “이러면 데이트도 못 할 텐데….”

    “이정석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야, 논술 공부나 해. 모의고사도 금방인 거 몰라?”

    정석이의 한탄에 은장이가 한소리를 했다. 그러자 정석이는 도끼눈을 뜨고 은장이를 쳐다봤다.

    “넌 남친 없어서 그러는 거야, 너도 연애했으면….”

    “조용, 조용!”

    내가 교탁을 두드리자 정석이와 은장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연애든 뭐든 다 좋은데, 지금 중요한 건 입시야. 앞으로 4달도 안 남았어! 그리고 이정석.”

    “…네.”

    “1층에서 전화 적당히 해라. 내가 분명 경고했다.”

    정석이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정석이를 보면서 태성이와 은장이가 번갈아 가며 놀렸다.

    “아무튼, 자기소개서 쓰던 녀석들은 이제 완성까지 겨우 3일 남았다! 특강 끝나면 학생부도 완성해야 하니까, 은장이, 태성이랑 다른 애들도 다 상담 일자 잡을 거다. 준비해둬.”

    학생들의 힘 빠진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비록 녀석들은 죽는소리를 하지만, 대치동 학원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녀석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필요했다.

    다행히 동석이처럼 지금의 방향을 마음에 들어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은장이도 피곤해하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합격하면 다들 나한테 고마워할 거다. 힘들 내자!”

    “…쌤 진짜 몰랐던 거 맞아요?”

    너무 밝게 말했는지 몇몇 학생들이 의심스럽다며 중얼거렸다. 녀석들을 모른 척하면서 자기소개서 특강 일정을 한 번 더 알려 줬다.

    그리고 나는 남은 첨삭 시간 동안 최선의 자기소개서가 나올 수 있도록 녀석들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지원까지는 앞으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 * *

    이사장은 한명심과 민지정을 불렀다. 이사장실로 들어온 둘이 꾸벅 인사를 하자 이사장은 소파를 가리켰다. 신호에 맞춰 자리에 앉은 한명심과 민지정은 이사장의 분위기를 살폈다.

    “오늘 두 선생님을 모신 이유는 자기소개서 때문입니다.”

    한명심과 민지정은 자기소개서 이야기가 나오자 괜히 뜨끔했다. 혹시 자신들이 학생들에게 돌린 자기소개서 샘플 이야기가 이사장에게도 알려진 건 아닌가 싶었다.

    “자기소개서 특강이 끝나면 학생들마다 결과물이 생길 겁니다.”

    이사장은 둘을 지그시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그 결과물은 최종합격 전까지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1차 합격 전까지도 지도교사가 아니면 공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 말에 한명심은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민지정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쓰디쓴 침을 삼켰다.

    “자기소개서는 학생들의 개인사가 들어가는 글입니다. 이걸 만천하에 공개할 생각입니까?”

    이사장은 그 말과 함께 한명심을 노려봤다. 이미 사고전적이 있었던 한명심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요즘도 기자들이 학교로 전화를 해서는 최동석이 어디에 지원하는지를 물어봅니다. 교무부장님도 괜히 잘못 이야기가 흘러가서 학생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해 주세요.”

    민지정은 자기소개서 특강이 마무리되면 한명심, 류지훈과 함께 모든 결과물을 검토할 생각이었다.

    자신과 류지훈의 실적을 인정받으려면 수리논술 특강을 통한 합격 사례가 더 많아야 했다. 강명문의 특강을 들은 학생들의 합격생 수가 더 많다면, 능력의 차이로 이야기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민지정은 검토를 하면서 결과물이 너무 좋을 경우에는 일부러 완성도를 낮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과물이 잘 나올 수 있을까요? 여러 선생님이 검토를 해야….”

    민지정의 반대 의견에도 이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입니다. 그건 지금까지의 대회들로 충분히 입증이 되었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사장은 강명문이 주도했던 여러 대회들을 사례로 들며 설명했다. 실제로 로봇대회는 윤기준 혼자 도맡았고, 시사RPG대회는 학생들에게만 온전히 맡겨두었다.

    반면, 여러 선생님들이 붙어서 도와주었던 전교권 학생들의 결과가 오히려 좋지 않았다.

    그런 사례를 들자 민지정도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자기소개서는 꼭 합격한 이후에, 그때도 학생들의 동의를 받은 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이사장은 민지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교무부장님도 지금은 강문고의 전체 입시실적에 힘써 주세요. 류지훈 선생님과 당신이 어떤 관계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민지정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이사장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두 분이 어떤 거래를 했는지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그 거래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학교는 물론, 특히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세요. 이미 몇 가지 일들이 제 귀에 들리고 있습니다.”

    민지정은 거기에 딱히 반박을 하지는 않았다. 억지로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답한 민지정은 미팅이 끝나자마자 바로 건물 바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한 대 피우며 이빨을 뿌득 갈았다.

    ‘내가 반드시 네년만큼은….’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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