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연장수업
“어… 은장아?”
나는 복도 옆에 간이 책상을 하나 더 두고 명천이를 가르치고 있는 은장이를 바라봤다. 은장이는 무슨 일이냐며 나를 돌아봤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내가 시계를 가리키자 은장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명천이 맞춤법 공부하는 거 안 보이세요? 당장 자소서 특강이 며칠 뒤에 끝나는데 시간이 없어요!”
“좀 조용히 말해 쪽팔리니까….”
명천이는 얼굴을 보이지 않게 돌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둘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지금 밤 12시가 다 되었는데 들어가야지. 방금 명천이 부모님에게도 전화 왔었어.”
“쌤 아니에요. 지금 하루 12시간 이상씩 공부하는 게 익숙해진 시점에서 더 바짝 땡겨야 해요. 나명천! 할 수 있지?”
“왜 이딴 스파르타식 멘토링을 지금 받아야 하냐고…. 쌤도 뭐라고 좀 해 주세요.”
은장이는 아무래도 내 특강을 보고 배운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조금 흐뭇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늦은 건 늦은 거였다.
“그러니까 하는 건 좋은데 지금은 늦었으니까 가야 한다고. 대신 내일 아침에 일찍 와.”
나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명천이의 얼굴이 한없이 구겨졌다.
“내가 내일 아침 7시쯤에는 학교 올 거거든? 8시에 와서 밤 10시까지 자소서도 쓰고, 중간중간 수능 공부도 하고 하면 된다. 교실 오픈해 줄게.”
“진짜요? 감사합니다!”
오히려 은장이가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고, 명천이는 계속해서 궁시렁 댔다.
“아직도 안 끝났어?”
보니까 정석이와 동석이도 은장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석이는 명천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생이 많다며 위로를 했다. 명천이가 정석이의 손을 툭 치며 으르렁거렸다.
“너흰 또 왜 안 갔어?”
“얘들 기다렸어요.”
“공부는?”
“아 쌤, 당연히 열심히 하고 있죠. 저 내일 답지 첨삭 받으러 가도 돼요?”
정석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일 첨삭해 주겠다고 답하면서 빨리 짐 정리하라고 말했다.
그나저나 쟤네들이 언제 이렇게 친해졌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학생들을 학교 교문까지 인솔해 준 후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냈다.
“끝났냐?”
교문 앞에서 지석 선배가 나를 반겼다.
“선배 아직 안 갔어요?”
“후배가 이렇게까지 일하는데 어떻게 먼저 들어가냐. 타. 데려다줄게.”
나는 선배의 차에 타면서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했다. 차에 타자 선배는 궁금하다며 이야기를 했다.
“어떤 거 같아?”
“나름대로 결과물들은 괜찮을 것 같아요. 일요일까지는 완성을 좀 해야 할 거 같고….”
“한 교감이 뭐라고 말은 안 하고?”
“네, 별 이야기는 없었어요. 그 종이는 미안하다 그랬고요.”
일부러 한 교감과 했던 깊은 이야기들은 제외하고 말했다.
“이사장님도 아시려나?”
“그렇지 않아도 내일 뵙기로 했습니다. 내일 말씀드려야죠.”
이사장에게는 저녁을 먹으면서 잠깐 짬을 내어 연락을 했다. 자기소개서와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다고 했으니 이때 한 교감의 이야기도 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번 입시 끝나면 제대로 회식 한번 하자.”
“소고기 먹습니까?”
“소고기는 무슨. 제주도 정도로는 휴가 떠났다 와야 하지 않겠어?”
지석 선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답하면서 핸드폰으로 열심히 메모를 했다. 내일 있을 이사장과의 면담 때 이런 이야기도 좀 해 볼까 싶어서였다.
* * *
“다녀왔습니다.”
은장은 친구들과 헤어지고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그런 은장에게 그녀의 어머니인 최예진이 다가와서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거 네가 한 거야?”
은장은 어머니가 내민 핸드폰 속 화면을 응시했다. 거기에는 SNS와 사진, 그리고 짧은 멘트가 적혀 있었다.
<대박. 우리 학교 특강 하는데 노트북에 이런 문구 뜸.>
SNS에 적혀 있는 문구는 은장이 친구들을 위해 했던 이벤트 때 사용한 문구였다.
그리고 노트북 화면이라며 찍은 사진을 보니 은장 본인이 만든 배경화면이었다.
“엄마 이거 어디서 봤어?”
“어디긴. 지금 트위티에서 난리야. 블로그에서도 여기저기 홍보하고 난리 났다. 우리 회사에서도 이거 컨셉 잡아서 빨리 광고 찍자고 그러는데?”
최예진은 한껏 들떠서는 은장에게 잘했다고 칭찬을 하다가 돌연 표정을 바꿨다.
“입시 준비는 잘 하고 있지? 이런 거 한다고 소홀히 하는 건 아니고?”
“어휴, 엄마 당연하지. 내일도 6시에는 일어나서 학교로 갈 거야.”
은장의 말에 최예진이 만족스럽다며 웃었다. 강명문과의 트레이닝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뭣하면 건의를 더 해 볼까?”
“건의? 뭘?”
“아냐, 아무것도. 배고프면 치킨 남은 거 먹어.”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에서 학부모회장을 검색했다. 특강 기간을 더 늘리자고 건의 문자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밤이 늦었으니 써두기만 하고 내일 보내자고 생각한 순간, 먼저 학부모회장으로부터 전체 공지문자가 왔다.
<불철주야 고생하는 학부모님들, 늦은 시간이지만 한시가 급하다 판단하여 공지문자를 드립니다. 우리 수험생 자녀들을 위해 간식 이벤트와 함께 학교 선생님들의 밀착 수업을 더 늘리자고 학교측에 건의하고자 해요. 동의하신다면 동의한다고 답문자 주셔요 ^^>
그 문자에 그녀는 ‘동의합니다^^’ 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는 남은 치킨을 먹는 은장을 보면서 얼마 남지 않은 입시 기간, 최대한 딸의 능력이 끌어올려지기를 기도했다.
* * *
이사장은 나에게 기대와 걱정을 담은 시선을 보냈다.
“학부모회에서 이런 걸 요청했다고 해요.”
예상대로 학부모들은 이번 특강 방식을 선호했다.
가장 선호한 학부모들은 학원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의 부모였다.
자녀가 공부에 뜻이 있건 없건 간에 누군가가 억지로라도 붙들어서 공부를 도와줄 수 있다면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대치동 학원을 섭렵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큰 도움이 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명천이까지 여기에 합류시키려 하는 줄은 몰랐지만.’
학부모회장의 주도하에 특강을 연장해달라는 학부모회 전체의 건의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연장된 수업 때 학부모회 차원에서 수험생 응원 간식을 배부하겠다고도 건의했다.
당연히 이 건의는 한 교감에게 먼저 들어갔다. 한 교감은 강 교장과 이사장에게 곧장 이 사실을 알렸다. 이사장은 예정되어 있었던 나와의 미팅 시간을 앞당기면서 이에 대해 내 의견을 묻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끌고 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괜찮겠어요?”
“어차피 입시 기간에 고3 담임은 쉬지 못합니다. 나와서 겸사겸사 관리형 독서실처럼 봐준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관리형 독서실처럼 학생들을 돌봐주면, 학생들의 합격 가능성도 올라갈 거고.
향후 내 실적에 더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이런 특강 연장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 연장을 해야겠네요.”
“네. 다만 자기소개서 특강 연장이라기보다는, 입시 자기주도학습 관리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11월 수능 전까지 방학 때는 매일, 개학 이후는 방과 후와 주말에 오픈한다는 형태로 가야겠습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알겠다며 핸드폰을 들었다. 한 교감과 잠깐 통화를 한 이사장은 내 의견도 들었고, 자신이 결정한 사항이라는 점을 추가했다.
“학생들은 어떤가요?”
“자기소개서는 그래도 많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건인데 말입니다, 이사장님.”
이사장은 무언가 심각하게 말을 하려는 나를 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일 있나요?”
“자기소개서 결과물에 대한 부분입니다.”
나는 굉장히 조심스럽다는 듯 잠시간 머뭇거렸다. 이사장은 괜찮다며 말해 보라고 독려했다.
“결과물은 합격하기 전까지는 지도 교사가 아닌 이상 비밀 유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째서요?”
“동석이처럼 자신의 내면 깊은 생각들을 오픈하기를 꺼려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예민한 시기이기도 해서…. 당장 저한테 보여 주는 것도 망설이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자기소개서를 보여 주었던 학생들 중에서는 자신의 개인사가 오픈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특히 이번 특강에 저소득층이나 한부모 가정 등 다양한 상황에 놓인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한 교감처럼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하나하나 관여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만약 그런 학생들의 자기소개서가 오픈되면 한 교감, 민 부장은 언제든 본인들 편한 대로 써먹을 사람들이었다.
‘만약 개인 정보가 잘못 알려지기라도 하며….’
특강이라는 빌미로 자신들의 명예나 실적을 챙기려는 속물 교사 집단으로 소문이 나겠지.
따라서 이사장에게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의견을 낸 것이었다.
“그럼 그렇게 해야죠. 최종 합격 이후에는요?”
“그때도 합격한 학생들에게 동의는 받아야 합니다. 너희가 합격한 사례를 학교 합격사례집으로 보여 줘도 될지, 입학설명회 때 사용해도 될지 등을요.”
미래에는 여러 컨설팅 학원에서 합격생의 자기소개서, 학생부를 두고서 설명회를 했었다. 그러나 그때, 상대의 동의를 받지 않고 무작정 학생들의 자료를 오픈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이에 학부모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었고, 관련해서 검찰의 조사를 받은 학원도 있었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최근 동석이의 막무가내 인터뷰 사건을 보면 이사장이 학생 개인 정보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알 수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교감 선생님께는 제가 전달할게요.”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내 의도를 모두 파악한 이사장은 먼저 자신이 한 교감에게 연락하겠다 말했다.
그런 이사장이기에 믿고 여러 일들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석이는 괜찮나요?”
“그때 그 사건이라면 이제는 괜찮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어서 수업하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강 선생님 아니면 동석이를 케어해 줄 수 없어요. 부탁 좀 드릴게요.”
“아닙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사장님께도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어 합니다. 노트북 지원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학생들이 노트북을 지급 받을 때, 그리고 그걸로 수업을 들을 때 말했던 내용들을 알려 주었다. 이사장은 그 이야기들을 듣더니 흐뭇한 표정으로 물었다.
“은장이의 센스가 또 한몫한 것 같네요.”
“네, 그래도 그걸 허락해 주신 건 이사장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뭘 그렇게. 저는 아부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강 선생님이 하시니까 또 느낌이 다르기는 하네요.”
이사장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수리논술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이사장은 현재 그쪽 상황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거기에 나는 최근 동석이에게 보고 받은 내용을 토대로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꽤 고전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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