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73화 (73/252)
  • 73화. 자기소개서 특강 (4)

    자기소개서 특강 둘째 날, 이제 초안을 거의 완성해나가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우선은 은장이. 학생들 중 가장 먼저 완성에 가깝게 마무리를 했다. 물론 부족한 활동을 채운 후 몇 개 문단 정도는 추가할 예정이었다.

    동석이 역시 글을 정리하는 방식을 이해한 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지금까지 했던 활동들이 화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석이는 모든 활동을 잘 기억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로봇대회 수상이 가장 컸다. 당시의 공부 내용, 활동 내용을 동석이가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금방 작성할 수 있었다.

    태성이는 조금 아쉬운 실력이지만 그래도 절반 이상은 완성을 해 가고 있었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느 정도 자신만의 글을 갖추어 나갔다.

    다만,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명천이만은 예외였다.

    “이거 네가 쓴 거 맞냐?”

    나는 명천이가 들고 온 종이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봐도 이건 명천이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명천은 내 말에 흠칫 놀라면서도 태연한 척 말했다.

    “네.”

    “솔직하게 얘기해. 이거 네 문장 아니잖아.”

    명천이 들고 온 인쇄본에는 누가 봐도 어른의 문체의 글이 적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저는 의료학적 관점에서 본 실험을 탐구하고자 노인 허약의 생리학적 임상 증후군을 알아보았습니다. 조사 결과 이에 따른 sarcopenia, 균형감각 저하 등 여러 소견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명천이의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명천이의 태도를 살폈다.

    예상대로 명천이는 살짝 몸을 움찔거렸다. 물론,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한 척했다.

    “지금까지 내가 봤던 네 글에는 어려운 한자어나 딱 떨어지는 문장으로 구성된 일이 한 번도 없었어. 아버지가 써 주셨니?”

    “… 제가 썼어요.”

    “sarcopenia가 뭐야?”

    갑작스런 내 질문에 명천은 답변을 하지 못하고 더러 화를 냈다.

    “아, 제가 썼다면 쓴 줄 아세요 쫌!”

    그런 명천에게 나는 들고 있던 종이몽둥이로 명천이의 허벅지를 팡 때렸다.

    “아! 이런 씨ㅂ….”

    “어린놈의 자식이 못 하는 말이 없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나는 욕이라도 할 것 같은 명천이의 말을 끊고 책상을 두드렸다. 그리고 죽일 듯이 명천이를 노려봤다. 녀석은 내 기세에 다시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미쳤냐?”

    오늘 이 시간이 되도록 명천이는 자신이 쓴 자기소개서를 나에게 들고 오지 않았다. 녀석이 거북해하며 인쇄된 종이를 들고 온 건 저녁시간이 되기 직전이었다.

    이때까지 명천이가 자신이 쓴 글을 들고 오지 않은 건, 이걸 가지고 와도 되나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향후 자기소개서가 활성화되던 시절에는 대놓고 대필을 하겠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런 학생들은 당당하게도 대필 받은 자소서를 나에게 첨삭해달라고 들고 왔다.

    당연하게도 그 글들은 모두 첨삭해 주지 않았다.

    명천이도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보아 아버지에게 이번 일을 부탁했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 정확하게는 학부모회장이 아버지에게 요청했을 가능성이 더 크긴 했다.

    어쨌든, 그렇기에 지금 명천이는 내가 혼을 내자 고개를 푹 숙이고 정말 자신이 없다는 듯 속삭였다.

    “저… 저는 진짜 못하겠어요.”

    “뭘?”

    “….”

    “네가 못하겠다는 게 자기소개서야? 아니면 입시야? 그것도 아니면 지금의 이 생활이야? 어떤 게 힘드냐?”

    내 질문에도 명천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녀석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복도 바닥만 바라봤다.

    “나명천. 입시에서는 여차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못해.”

    입시는 결국 학생들의 싸움이다.

    “입시가 왜 힘든지 아냐? 결국 진짜 싸울 때는 본인이 해야 하니까 그래. 게다가 입시를 망치잖아? 지필고사나 모의고사 망했을 때 수준이 아니야. 스스로에 대한 모든 걸 부정하게 될 거다.”

    입시는 학생 자신의 싸움이기에 옆에서는 어떻게든 그걸 도와주려 애를 쓴다. 제일 가깝게는 부모가, 과외 선생이, 아니면 학원 선생이 도와준다.

    “수시에서는 대학교에 진학해서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는 녀석을 뽑으려 하지 캥거루족이나 되려는 녀석을 뽑으려고 하지 않아. 그걸 원하면 정시 공부나 해.”

    “… 정시로는 의대 가기 힘들다면서요.”

    “그래. 정시로 방향 바꿔서 적당히 인서울 상위권 아무 학교, 아무 학과나 갈 거면 정시 공부하라고.”

    명천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르다 명천이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1차 합격만 하면 되잖아요. 어차피 MMI면접이라 이런 거 안 물어본다면서요.”

    “내 상담 잊었어? MMI면접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활동에 기반해서 답변해야 한다고 했지?”

    나는 지난 상담 때의 설명을 한 번 더 반복해 주었다. 명천이는 무언가 화는 났지만,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직접 쓴 거 가지고 와 봐.”

    명천이는 이에 살짝 놀라며 손을 휘저었다.

    “쌔, 쌤, 안 돼요. 제가 쓴 건….”

    “됐으니까 가지고 와. 거지 같은 초고를 빨리 써야 뭐든 수정하면서 고쳐나갈 수 있다고 했지? 아무리 개판이어도 쌤만 믿어.”

    나는 다시 교실로 들어가서 명천이의 자리에 있던 노트북을 들었다. 명천이가 급하게 나를 쫒아와서는 노트북을 든 내 손을 잡았다.

    “쌤, 잠깐만요!”

    “왜 이래. 설마 하나도 안 쓴 건 아니지?”

    반항하는 명천이를 떼어내고 노트북에 열어 둔 한글파일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예상하지 못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이 활동을 통해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이 무엇인지 께 닳았습니다.>

    <생명과학탐구대회에서 발표 준빌 할 때 자료가 만치 안았습니다.>

    화면을 잠시간 들여보다가 명천이를 돌아봤다. 명천이는 치부라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노트북을 훽 빼앗았다.

    “왜 훔쳐 봐요!”

    “이게 네 개인 노트북이냐? 학교 소유 노트북인데 내가 확인할 수도 있지. 그나저나 명천아, 그거 네가 쓴 거 맞냐?”

    명천이는 벌겋게 익은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녀석을 다시 복도로 불렀다.

    노트북을 들고 나온 명천이에게 화면을 띄우라고 말했다.

    “내용 자체는 괜찮아. 줄거리는 잘 잡고 있고, 기억 못 할 거 같은 활동도 제출했던 결과물 보고 공부한 거 잘 했어. 그런데 야….”

    내 평가가 의외였는지 명천이는 표정을 조금 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썼어요?”

    “당연히 보완은 해야지. 그래도 초안에서 이 정도면 잘 썼어. 근데 내용보다도… 맞춤법 검사기좀 돌려 봐라.”

    명천이는 흔히 틀리는 맞춤법이라며 인터넷에서 유행처럼 돌고 있는 맞춤법을 죄다 틀리고 있었다.

    “게다가 ‘께 닳았습니다’가 뭐냐? ‘께 닳았습니다’가. 이참에 맞춤법 공부도 좀 하고 그래. 나중에 논문 쓸 때 어떡하려고?”

    명천이는 맞춤법 이야기를 하자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올랐다. 펴진 표정도 다시 일그러졌다.

    “… 검사기 돌릴게요.”

    “그래. 인터넷 검색하면 있으니까 해 봐. 아니면 맞춤법만 은장이에게 물어보고. 은장이가 맞춤법은 잘 보더라. 대신 내용은 건드리지 말고. 내용 가지고 뭐라 하면 나한테 말해.”

    나는 명천이의 자소서 파일을 프린터기로 인쇄했다. 그리고는 내용을 짚으면서 설명을 했다.

    “아무튼, 내용에서는 이 부분에 느낀 점이 들어가 주면 좋아. 실제로 명천이가 생각했다고 하면서 발표했잖아? 자료 봐보니까 그런 생각이 좀 드니?”

    “네, 대충은요.”

    “그럼 여기서부터는 허구를 넣어 주는 거야. 여기에….”

    나는 예시 느낀 점을 메모지에 적은 후 종이에 붙여 주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명천이는 내 설명을 조금씩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종종 질문에 답변도 했다.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아.’

    우려했던 것만큼 내용상의 문제는 없었다.

    문제라면 맞춤법. 이건 검사기를 돌리기도 하겠지만 나도 체크를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명천이의 자기소개서 첨삭이 끝나고 나는 박 선생과 교대를 했다. 박 선생은 방금 전까지 은장이 글을 첨삭해 주었는데도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나를 보며 빙긋 웃고는 책상 위에 있는 에너지 드링크를 벌컥벌컥 마셨다.

    “쌤 그거 맥주가 아니에요….”

    태성이가 뭐라 중얼거렸지만, 나는 못 들은 척하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교실 안에서 태성이의 짧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 *

    저녁밥 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다시 모였다. 명천도 은장과 동석이 자꾸 권유해서 억지로 편의점으로 향했다.

    “야 김밥 먹자.”

    “난 칼로리바나 먹을까 생각 중.”

    “햄버거나 먹을란다 난.”

    다들 먹고 싶은 메뉴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명천은 생각에 잠겨서 걸었다.

    사실 여태까지는 누군가 항상 도와줄 거라고만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이든 과외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누구든지 간에, 자신은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특강이나 입시 준비는 버거웠다.

    모든 과정을 직접 해야 했다.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 가이드일 뿐, 결과물은 스스로가 만들어야 했다.

    명천은 그런 과정들이 버겁고 답답하면서 하나의 압박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수능 공부에 집중하려고 했던 것도 있었고, 여차하면 유학을 가려고도 했었다.

    그런 생각이 최근에 깨졌다. 담임인 강명문과의 상담과 수업도 있었고, 그 전에는 한목대 특강도 있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국내 의대의 꿈. 그 꿈이 조금은 보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주된 이유는, 명천 스스로의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의 변화였다.

    “동석아 넌 뭐 먹을래?”

    “난 샌드위치 먹을 거야.”

    “엥? 점심에 먹었잖아?”

    “아까는 에그샌드위치고, 이번에는 햄치즈 먹을 거야.”

    특히 최동석, 김은장, 이정석. 저 세 명의 변화는 명천이 이번 입시를 준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친구들과 교류가 전혀 없던 최동석. 반장이기는 했지만 공부에는 자신감이 없었던 김은장. 나사 빠진 것처럼 다녀서 진지한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었던 이정석.

    그랬던 녀석들이 지금은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 왔고, 반 친구들에게 이벤트를 열어주었다. 발표 대회에서는 나사 빠진 모습을 재치로 바꿔서 청중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왜 나는.’

    이들이 최근 보여 준 모습들은 명천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였다. 솔직히 이 셋은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 수 아래가 된 건 명천 자신이었다. 친구들은 이미 명천 자신보다 한 단계 위로 성장해 있었다.

    “명천이 넌?”

    “….”

    “나명천?”

    “어? 어, 난 컵라면.”

    명천은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학교 밖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있었다.

    “계산이요!”

    은장이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결제를 했다.

    “뭐야 네가 쏘는 거야?”

    “아니, 이거 담임쌤이 쏘는 거. 오늘은 이거 돌아가면서 쓰라고 하시던데?”

    “아 진짜? 그럼 나 삼각김밥 추가할래!”

    “난 핫바! 알바형, 잠깐만요!”

    정석과 태성이 소란을 피우며 메뉴를 추가하는 동안 은장은 명천에게 물었다.

    “뭐 고민 있어?”

    “너….”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냐고 물어보려다가 명천은 말을 말았다.

    물어보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는 창피한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자기소개서 때문에 그래?”

    은장은 정석과 태성이 들고 온 추가분을 결제했다. 학생들은 짐을 나눠 들고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이 열지는 않았지만, 테이블 사용 정도는 해도 되었기에 여기서 다 같이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지나가면서 봤는데, 명천이 담임한테 자소서 보여 주더라?”

    정아의 말에 명천이 흠칫 놀랐다.

    “노트북 뺏어갔잖아. 그거 왜 그런 거야?”

    “아니, 그….”

    명천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러다 포기라도 한 듯 은장에게 말했다.

    “담임이 김은장 너한테만 보여 주라고 했어.”

    “나한테만?”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하는 은장에게 명천이 얼굴을 붉혔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맞춤법을 봐달라고 요청해야 하다니, 스스로 생각할 때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야 너 왜 얼굴 붉히냐?”

    “내가 뭘.”

    “어? 야, 너 이거 봐라. 설마설마 그런 거냐?”

    “에이, 이렇게 대놓고 한다고?”

    옆에서 정석, 태성, 정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명천의 붉어진 얼굴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명천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기에 손을 내저으며 바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 맞춤법 좀 김은장한테 봐달라고 말하라 그랬다고!”

    “아 그런 거였어? 어떻길래?”

    명천이 조심스럽게 내민 종이를 본 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많이 안 틀렸네. 나는 초안 다 잡았으니까 이따 밥 먹고 봐줄게.”

    “… 알았어.”

    은장은 자기소개서를 넣고 이 자기소개서가 다른 친구들에게 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이 어떻길래 그렇게 숨기냐, 연애편지 아니냐 이상한 소리를 했지만, 은장은 비밀유지가 중요한 자료라고만 설명했다.

    실제로 강명문이 비밀유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명천의 글이 오픈되면 명천이는 정말로 학교를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은장은 명천에게 맞춤법을 좀 알려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명천은 강명문의 특강을 보고 배운 은장이 어떤 식으로 멘토링을 해 줄지는 생각도 못 한 채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을 먹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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