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72화 (72/252)
  • 72화. 자기소개서 특강 (3)

    특강 둘째 날 아침 7시부터 나는 학교 근처 편의점 앞을 찾았다. 이곳에서 약속했던 사람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오셨습니까?”

    나는 편의점에서 나오는 한 교감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양손으로 봉지를 들고서 나에게 하나를 건넸다.

    “이거 이따 학생들 주게.”

    그가 건넨 봉지에는 간단히 간식으로 먹을 만한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이렇게 일찍부터 무슨 일인가?”

    한 교감이 검은 봉지 안에서 캔 커피를 꺼냈다. 그는 조용히 캔 뚜껑을 따고는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교감 선생님, 이 종이 어제 봤습니다.”

    그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내가 앞으로 내민 종이를 바라봤다. 종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물었다.

    “학생들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민 부장이랑 같이 모아 본 건데, 어땠나?”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질문이 진지한 분위기를 풍기자 한 교감도 살짝 긴장한 얼굴을 보였다.

    “말해 보게.”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내가 조금 강하게 말하자 그의 표정이 다소 일그러졌다.

    “어떤 점에서 말인가?”

    “무엇보다도… 비슷한 내용으로 꾸미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가자들은 친구들끼리 보고 베낀 게 아니냐, 이런 의혹을 주게 됩니다.”

    여기까지 말하자 한 교감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히려 이런 예시들을 많이 보여 주는 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건가?”

    “네, 맞습니다.”

    “민 부장은 의견이 좀 다르던데….”

    그 말에 나는 속으로 망할, 하며 욕을 했다.

    “민 부장은 학생들이 쓰기 힘들어하니까 좋은 예시를 많이 보여 주라고 그러던데.”

    “학생들은 아직 자기소개서가 어떤 건지 잘 모릅니다. 작성하기 어려운데 좋은 예시가 바로 앞에 있으면 그걸 그대로 따라 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비슷한 컨셉의 스토리가 많이 나오게 되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나는 일부러 대필이라는 단어는 제외하고 말했다. 예상대로 이번 일은 한 교감과 민 부장의 합작이었다.

    아마, 민 부장이 먼저 의견을 제시했을 것이고, 한 교감은 실적 때문에 허가했을 것이다.

    “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학생들이 직접 쓸 수 있도록 지도하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자신을 소개하는 글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창작능력이 있지 않은 이상 참고 사례로 쓰다가 더 헤맬 수도 있습니다.”

    내 설명에 한 교감은 고개를 하늘로 살짝 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한 교감이 걱정된다면서 물었다.

    “애들이 잘할지 모르겠단 말이지. 입사관제가 아직 익숙하지도 않을 거고 우리….”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내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한 후 말했다.

    “아무튼, 괜찮겠어 정말? 내가 강 선생을 못 믿어서가 아니야. 그냥 마음이 그래서 그래.”

    한 교감은 본인을 포함해 강문고의 모든 교사들이 입사관제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유일하게 입사관제를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 한 명뿐이었다.

    ‘만약 과거 그대로 돌아온 거였다면 나도 햇병아리였겠지.’

    당시의 나 역시 다른 강문고 교사들과 다를 바가 없기는 했었다. 입학사정관제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강문고는 여전히 정시만 준비시켜 주는 학교였고, 학생들과 교사들은 그게 당연한 줄로만 생각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은 회귀한 나 때문에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고 있다.

    한 교감이 생각하는 우려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걱정이었다.

    “딱 1주일만 기다려 주십시오.”

    “왜 1주일인가?”

    “이번 자소서 캠프 특강이 끝나는 날이 광복절입니다. 그때까지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최종본을 도출한 후 교감 선생님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한 교감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그가 불안해하는 건 결국 학생들의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까 봐서였다.

    “정말 괜찮겠나?”

    그는 여전히 불안해 보였지만, 그래도 최종본을 보여 주겠다는 말에 다소 안심이 된 듯 보였다.

    “네,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한 교감에게 학생들의 자소서를 보여 줄 생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전문가가 어설프게 확인하고서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면 혼란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고, 어설픈 교사들의 조언은 입시를 산으로 이끈다.

    특히나 지금 수시 전형에 익숙하지 않은 한 교감이나 민 부장이면 더더욱 위험했다.

    게다가 초임교사가 주도해서 가르친 학생들의 결과물이 좋다?

    경력과 실력에의 자부심이 엄청난 민 부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녀 성격상 뭐든 꼬투리를 잡고 지적할 게 뻔했다.

    어쨌든 한 교감은 내 말에 납득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강 선생만 믿네. 다음 주에는 꼭 보여 주고.”

    우선 하나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나는 알겠다고 답하면서 그가 건넨 봉지를 들고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이번 자기소개서 특강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제발, 이 특강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 * *

    “… 너희 괜찮냐?”

    정석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듣던 말을 이제는 친구들에게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변화에 황당해하면서도 정석은 피골이 상접한 친구들을 보며 걱정했다.

    “마왕… 마왕이야….”

    은장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매점 테이블 위에 턱만 대고 엎드렸다. 몸을 축 늘어뜨린 은장과는 대조적으로 태성은 의자 위에 온몸을 길게 뻗었다.

    “야… 나는 이걸로 특강 두 번째야….”

    “… 힘내라.”

    태성의 한탄에 정아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잠시 숨을 돌리러 온 은장, 동석, 태성은 정석과 정아와 만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그리고 매점에 모여서 미리 사둔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 꼭 커피로 사 왔어야 했냐?”

    “너희도 우리 논술 들을 때 커피 줬잖아. 그 복수다 인마.”

    키득거리며 정석이 커피를 건넸다. 동석은 그 커피를 고맙게 받아들며 꿀꺽꿀꺽 마셨다.

    “이야… 동석아 넌 안 힘들어?”

    “응? 괜찮은데?”

    실제로 동석만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미리 인쇄해둔 자기소개서 인쇄본을 보고 있었다.

    “쌤이 오대천왕급으로 엄격하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덕분에 꿈이란 걸 가질 수 있어서, 나는 지금이 훨씬 좋아.”

    동석은 샌드위치를 다 먹고 손을 털었다.

    “솔직히 재밌기도 해.”

    “야, 넌 이게 어떻게 재밌냐? 피곤하기만 하지.”

    “난 3년 동안 친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너희랑 이렇게 같이 있잖아.”

    그 말에 다른 네 명의 학생이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만약 강명문의 상담과 수업이 없었다면, 그들은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들 수시준비가 아니라 정시 준비한다고 학원만 다녔을 테니까.

    때문에 동석의 말은 강명문이 학생들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심어 주었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건… 씨, 부정할 수는 없네.”

    “무슨 극기훈련도 아니고.”

    정석과 태성이 투덜거렸다. 그 옆에서 은장도 힘들어하는 눈치였지만, 동석의 말을 이해한다며 마저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래도 자소서는 1주일이면 끝나니까, 금방이지 뭐.”

    “그래서 은장이 넌 많이 썼어?”

    “난 초안 다 쓰고 쌤한테 첨삭도 받았지. 2번까지는 완성했지롱.”

    현재 자기소개서 특강에서 가장 속도가 빠르고 완성도가 높은 학생은 은장이었다. 강명문도 은장의 글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하고 싶은 활동들을 많이 했다 보니까 기억도 잘 하네! 변한 지점들도 잘 보여 주고 있고!]

    물론 그 변화와 느낀 점이 다소 빈약해서 강명문과 함께 허구를 섞기도 했다.

    [자기소개서가 자소설이라는 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사실에 기반한 내용이 70%, 허구가 30%. 솔직히 학교에서 시키니까 대회 나가지 무엇무엇을 느껴 보고자~ 알아보고자~ 하는 걸로 대회 나가냐? 그리고 살다 보니까 활동하게 된 것들도 있잖아?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그 경험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건 글로 풀어낼 때 허구를 섞을 수밖에 없어.]

    그래서 일부는 허구를 섞으면서 약간의 느낀 점이나 변화지점을 추가했다.

    물론 아직 완료되지 않은 활동도 있었다. 그런 활동은 3학년 1학기 학생부에 포함시킬 계획이었다.

    “대신 자소서 끝나면 할 게 많아. 책도 봐야 하고 Ted도 들어야 하고… 아, 나 너희들 설문조사도 해야 하는데 좀 도와주라.”

    “알았어. 학생부에 추가하는 거야?”

    정아의 물음에 은장이 맞다며 밝게 웃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었기에 뿌듯함도 묻어 있었다.

    그런 은장의 변화와 동석의 태도가 놀라운지 정석은 둘을 보며 감탄했다.

    “진짜… 너희는 강명문교 교주, 부교주 해도 된다.”

    “참나, 너도 담임쌤 덕분에 연애도 하고 공부하고 그러면서.”

    “어떻게 알았어!?”

    “1층에서 전화하는 거 다 들리거든?”

    정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항의를 하려 하는데, 동석이 말했다.

    “어, 명천이다.”

    매점 입구에서 명천이 김밥 한 줄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명천은 그들을 발견했지만, 이내 무시하고는 창가에 있는 자리를 잡았다.

    “어? 어디가?”

    태성이 말릴 새도 없이 은장이 명천에게 다가갔다.

    “뭐야?”

    “나명천, 밥 먹냐?”

    “먹으면 어쩔 건데.”

    “왜 이리 날이 서 있어. 그냥 물어본 거야. 옆에 앉는다?”

    은장이 의자를 꺼내며 명천의 옆에 앉자 명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도 그거냐? 비교과니 뭐니 하는 거?”

    “뭐래. 그냥 너 혼자 먹으면 심심할 거 같으니까 왔지. 우리랑 같이 먹자.”

    은장의 말에 동석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이 당황해했다. 그녀가 괜찮지? 라며 눈짓을 하자, 다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와서 친한 척 해 봤자 담임이랑 잘 지낼 생각은 없어.”

    “야, 너는 뭐 혼자 소설 쓰고 그러냐? 그런 거 아니고, 나는 반장으로서 우리 반 1등인 너랑도 친해지려고 하는 거야.”

    명천은 전교 성적으로 치면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3반에서는 1등이었다.

    그러나 그런 3반이기에 사실 강문고 3학년 학급 중에서는 최하위 반을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많이 썼어?”

    “… 그냥 대충.”

    “얼마나?”

    “이제 한 문제만 더 쓰면 돼.”

    은장은 자연스럽게 자기소개서 특강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명천은 단답형 답변을 해 가면서 대화의 흐름을 끊어 갔다.

    “흐음… 그렇구나, 쌤한테 첨삭도 받았어?”

    “… 아직 안 받았어. 왜? 네가 봐 주려고?”

    명천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면서 은장에게 물었다. 딱 봐도 잘 풀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은장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동석이 다가와서 말했다.

    “저기… 담임쌤이 친구들도 보여 주지 말라고 하셨잖아. 오로지 쌤이랑 둘이서만 하라고.”

    “오셨네, 강명문교 교주님. 넌 담임이 죽으라 그러면 죽을 거냐?”

    “그런 고민은 해 본 적 없는데, 함 해 볼게.”

    “미친놈….”

    명천이 쥐고 있던 나무젓가락을 내려놓고 동석을 노려봤다. 동석은 굳이 그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담임쌤한테 보여드려 봐.”

    “뭘?”

    “네가 쓴 거.”

    동석은 명천의 김밥 옆에 놓인 작은 인쇄지를 가리켰다.

    그도 점심을 먹으면서 자기소개서를 검토해 볼 생각이었다.

    다만 아직까지 강명문에게 가지 않았던 이유는, 본인의 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였다.

    “…그럴 거야.”

    명천의 대답과 함께 동석이 웃으면서 먹던 커피음료를 들고 명천의 반대편에 앉았다.

    여전히 명천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은장과 동석은 개의치 않았다. 다른 학생들도 그들을 보며 쭈뼛거렸지만, 이내 자리를 잡으며 하나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강명문에 대한 불평이었고 현실 한탄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명천은 동석과 은장을 예의주시했다. 둘이 웃으면서 떠드는 모습을 실눈을 뜨고 바라보며 소리 없이 이를 갈았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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