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71화 (71/252)
  • 71화. 자기소개서 특강 (2)

    “학생들한테 전해 주세요. 애들 공부하느라 힘들 텐데.”

    느닷없이 학생들을 전달하라며 홍삼스틱과 비타민 알약 세트를 꺼낸 학부모회장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약들을 다시 포대로 곱게 포장했다.

    “필요 없습니다. 애들 먹을 간식이나 비타민제 정도는 저희가 샀습니다.”

    “강 선생님. 이건 학부모회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주는 수험생 응원과 같은 겁니다. 이걸 이렇게 거절하실 건가요?”

    학부모회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교사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주는 것이라면 명분도 나름대로 섰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역시 말이 안 되었다.

    “다른 학부모님들 동의는 받고 하시는 겁니까?”

    “동의는 나중에 받으면 되죠. 당장 오늘부터 특강 시작이라던데 언제 절차 밟아서 해요?”

    “간식은 좋은데 하실 거면 제대로 공식 행사처럼 해 주세요. 아니면 직접 전달해 주시든가요.”

    여기까지 말하자 학부모회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직접 전달하러 가면 명천이 눈치가 보일 게 뻔할 테니 말이다.

    “명천이는 모르죠?”

    “그렇죠.”

    “그럼 이건 집에서 명천이 먹이시고, 돌아가세요. 아니면 다른 상담 건이 있습니까?”

    내가 묻자 학부모회장은 트렁크를 닫으라며 수행비서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잠깐 차에 타라며 다시 권했다.

    “…어디 납치해 가는 건 아니죠?”

    그러나 학부모회장은 내 질문에 대답이 없었다. 옆에 있는 수행비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진짜 납치하는 거예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학부모회장은 불안하게 팔짱을 끼고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밖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으니까, 좀 타 주세요.”

    심각한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차에 탈 생각은 없었다.

    “불법적인 일이면 듣지도 않겠습니다. 어떤 일이기에 그럽니까?”

    학부모회장은 나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자 그런 잠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자며 학교 건물 뒤로 돌아갔다.

    “명천이가 글을 잘 못 써요.”

    수행비서는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지금은 학부모회장과 둘만 있었다. 다행히 방학이기도 하고 고3 학생들은 공부 중이어서 학교 뒤에는 우리뿐이었다.

    “게다가 그… 비교과라고 하나요? 그 부분들도 애가 기억을 잘 못 하고요.”

    “그래서 본인이 열심히 기억하도록 이끌어 줄 생각입니다.”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실 수는 없을까요.”

    갑작스런 학부모회장의 요청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시즌이 오면 많은 학부모들이 나를 찾아와서는 물었으니까.

    [우리 아이는 글을 잘 못 써요.]

    레퍼토리도 똑같았다.

    [고1 때 이야기를 애들이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명천이도 그렇고 다른 애들도 1학년 활동은 잘 기억 못 할 거고요. 그쵸?”

    학부모회장은 입시코디 시절 숱하게 들어왔던 학부모들의 레퍼토리를 똑같이 읊고 있었다. 나는 그 말들에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의는 당연하게도 대필이었다.

    나는 학부모회장이 먼저 대필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전에 선수를 쳤다.

    “아무리 학생들이 기억을 못하더라도 본인들이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학생이 쓰면 학생이 쓴 티가 나고, 어른이 쓰면 어른이 쓴 티가 난다.

    물론 1차까지는 합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대부분 2차인 면접에서 판가름이 난다. 특히 서류 기반의 심층면접일 경우, 본인들이 작성하지 않은 자기소개서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MMI면접도 본인의 활동 기반으로 답변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안 됩니다.”

    “1차 합격하고 그때부터 준비하면 되죠. 지금은 1차 합격이 우선 아닌가요?”

    게다가 대부분 이런 식의 논리였다.

    나는 이번에도 안 된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간식은 정식으로 학부모회 활동으로 해 주시고, 오늘은 돌아가세요. 다시 올라가 봐야 합니다.”

    운동장에 있는 시계를 한 번 슥 바라보면서 학부모회장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학부모회장의 이어지는 질문들을 무시하고 교실로 올라왔다.

    교실에서는 열심히 학생들이 뽑아준 소재들도 자소서를 쓰고 있었다.

    아니, 있어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교실은 실패의 기운이 극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지석 선배가 나에게 종이를 하나 건넸다. 종이에는 어떤 스토리들이 적혀 있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들 같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말이다.

    “누가 주고 갔습니까?”

    “한 교감.”

    “뭐라고요?”

    나는 종이를 꾸깃 구기며 인상을 썼다.

    “이런 드라마틱한 스토리로 만들라고 했습니까?”

    이리저리 구겨진 종이를 창밖으로 집어 던지면서 화를 냈다. 지석 선배도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자소서는 자소설이라 불리는 거 본인도 안다면서 우선은 1차 합격하고 보자고 그러더라.”

    “그렇다고 이렇게 쓰라고요? 무슨 영화 시나리오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한 교감이 주고 갔다는 종이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둥,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있다는 둥, 부모 없이 혼자 살았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서 끝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학교폭력에 고통받는 친구를 상담사인 부모님의 도움으로 교실을 눈물바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경찰인 아버지와 함께 길 잃은 아이의 부모님을 찾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이외에도 다양한, 학교 내의 활동이 아닌 다른 활동들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것도 억지스러운 설정과 함께 말이다.

    “쌤 그래도 이거 참고하면 안 되나요?”

    문제는 학생들이 이런 유혹에 당하기 쉽다는 점이었다.

    “아니, 참고도 하면 안 돼.”

    실제로 적혀 있는 내용들은 자기소개서 문항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감동적이랍시고 적힌 스토리들일 뿐이었다.

    “자, 자 교감 쌤한테 받은 종이 다 제출해!”

    나는 학생들이 종이의 내용에 현혹되기 전에 용지를 모조리 회수했다.

    종이를 다시 제출하면서 학생들은 아쉽다며 나를 원망했다.

    “일단 붙고 보는 게 좋지 않아요?”

    “결과가 좋으면 좋은 거죠!”

    그 말을 하는 녀석들을 향해 돌돌 만 종이몽둥이로 손목을 한 대씩 때렸다.

    펑! 펑!

    “끄응….”

    태성이가 얻어맞은 손목을 풀면서 엄살을 부렸다.

    “안태성. 내가 첫 시간에 PPT로 보여 줬던 내용 기억나냐?”

    나는 다시 한번 컴퓨터 화면으로 첫 강의 때의 PPT를 언급했다. 태성이는 잠깐 생각을 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하죠!”

    “교내 활동을 하면서 인사경영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떤 점에서 그러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갑작스런 면접형 질문에 태성이가 눈만 끔뻑거렸다.

    “하나.”

    “….”

    “둘.”

    “… 아 쌤.”

    “셋.”

    “쌤 잠시만요.”

    “넷.”

    “저 대답할 수 있어요 잠깐….”

    “다섯. 왜 대답이 없어요? 너무 긴장했나?”

    나는 상냥하게 태성이를 향해 다시 질문을 했다.

    “아, 아닙니다!”

    “그럼 다시 말해 볼래요? 인사경영 측면을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나요?”

    “어… 슬기로운 학교생활 책을 만들었는데….”

    태성이의 답변에 학생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슬기로운 스쿨라이프!”

    “즐거운 학교생활 아니야?”

    여기저기서 오답이 속출하는 가운데 박 선생과 지석 선배도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 안에서 걷어 둔 한 교감의 종이를 부채처럼 팔랑거렸다.

    “봐. 면접 때 제대로 답변이나 되겠어? 특히, 중상위권인 애들, 너희는 면접 대부분이 서류 기반 심층면접이야. 알지?”

    태성이가 만들어진 글로 지원했을 때 2차 면접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몸소 보여 준 덕분에 학생들은 내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활동, 진정성이 없는 활동은 답변도 이런 식이야. 그걸 평가자들이 모를 거 같냐?”

    내 말에 교실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진지한 말투에 학생들도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는 꼼수로 갈 수 있는 전형이 아니야. 게다가 대필 검사 안 할 것 같냐? 혹시라도 잘못해서 입학 후에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실제로 입학사정관제,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다가 대필 문제로 입학이 취소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심지어는 대학 3학년 때 발각되어서 퇴학처리를 받기도 했다.

    그 정도로 대필은 민감한 사안이었고, 이걸 알고도 묵인한 지도교사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잘못해서 조사라도 나오면 끝장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인터넷에서 이상한 거 복사해 오거나 그러기만 해라. 그때는 교실에다가 간이 침대 놔두고 한 달간 합숙시킨다.”

    학생들이 숨을 흡 삼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은장이와 동석이만이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쌤 전 한 달 합숙해서라도 완성할게요!”

    “…동석이 넌 가장 빨리 쓸 거 같은데.”

    옆에서 태성이가 중얼거렸다. 그런 둘을 바라보던 은장이가 생각났다는 듯 손을 올렸다.

    “쌤, 그럼 자소서에 쓰려고 계획해둔 활동이 있는데, 아직 하지 못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요?”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인지 이야기를 해 보면서 가능하면 빨리 활동을 하는 게 좋지. 그리고 학생부에 기재되기 전에 미리 자소서에도 녹여내 보고.”

    은장이는 아직 3학년 비교과 활동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물어본 것이었다. 동석이는 이미 활동도 마무리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소개서를 일필휘지로 작성해 나갔다.

    ‘원래 저렇게 글을 잘 썼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석이의 글을 본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동석아, 1번 다 쓴 거 같은데 잠깐 나와 봐라.”

    동석이를 복도의 간이 책상으로 불러서는 지금의 글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쉽게 말하면 동석이가 쓴 글은 논문 형태의 글이었다. 평소 읽었던 글이 논문이었다 보니 문장과 구성도 비슷하게 따라간 것이었다.

    “자기소개서는 분석하는 논문이 아니야. 네가 했던 경험을 토대로….”

    나는 동석이의 글을 잡아 주면서 노트북에 샘플 문장을 적어 주었다.

    “이거 참고해서 작성해 봐. 단,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하면 죽는다.”

    “네! 감사합니다!”

    요즘 들어 묘하게 힘이 들어간 동석이를 보면서 어깨를 토닥이고는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남은 시간 동안, 나와 박 선생, 지석 선배는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주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특강 첫날이 마무리되었고, 학생들은 곡소리를 내며 자리에 쓰러졌다.

    “으어어… 논술로 끝난 줄 알았는데 이걸 또 해야 해?”

    “야 논술 특강 전부 올클한 너희가 진짜 대단하게 느껴진다….”

    태성이와 은장이가 지친 어깨를 돌리며 풀었다. 학생들이 모두 의자를 뒤로 젖히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수고들 했다. 내일도 아침 8시까지 와라!”

    “네!? 10시부터 아니에요?”

    “8시에 미리 와야 노트북 세팅도 하고 학생부 한 번 더 보고, 캠프 시간에는 온전히 자소서 작성에 힘쓸 수 있지! 일찍 오면 내가 직접 붕붕드링크도 만들어 줄게!”

    내 말에 학생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내며 소리를 질렀다.

    ““안 마셔요!””

    그래도 교실을 나서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 보였다. 서로서로 얼마나 썼는지 물어보고, 남은 힘든 시기를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고난 속에 싹트는 전우애 같구만.”

    지석 선배가 흐뭇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박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나도 선배의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짐을 정리했다.

    “먼저 들어가세요. 전 잠깐 통화 좀 하고 가겠습니다.”

    나는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을 먼저 보내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통화를 시작했다.

    “네, 네. 네,”

    나는 한참을 끄덕거리기도, 옅게 웃기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긴 이야기가 끝나고, 전화를 끊을 준비를 하며 나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미리 챙겨둔 한 교감의 시나리오 대본 같은 스토리 종이였다.

    “좋습니다.”

    나는 그걸 살짝 바라보며 핸드폰 너머의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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