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70화 (70/252)
  • 70화. 자기소개서 특강 (1)

    자기소개서 특강 첫날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동석이와 은장이, 태성이를 비롯해 학급 내에서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모두 이번 특강을 수강했다.

    …물론, 논술 특강 들은 이후 소문이 퍼져서 신청을 취소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오대천왕은 무슨. 근성 없는 놈들 같으니.”

    내 혼잣말에 은장이가 흠칫 놀라며 동석이와 무언가를 속닥였다. 동석이는 그저 웃으면서 내 강의를 기다렸다.

    “이번 특강에 신청한 너희들을 환영한다. 앞으로 이틀 동안 자기소개서 캠프 특강을 통해 입시 자소서를 초안부터 완성하게 될 거다. 시간은 5일!”

    내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5일이나!?”

    “하루이틀이면 쓰는 거 아니에요?”

    학생들이 볼멘 소리를 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교탁을 두드렸다.

    “글 제대로 써 본 적도 없는 놈들이 김칫국은…. 일기라도 쓰는 녀석 있냐?”

    에이 쌤 누가 요즘 일기를 써요! 하며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듣다가 씨익 웃었다.

    “일기라고 해 봐야 SNS나 미니홈피, 블로그 정도만 쓰는 녀석들이니 입시용 글은 알 리가 없지! 그러니까 이틀 동안 빡쎄게 작성한다!”

    나는 준비해둔 종이를 앞에 펼쳤다. 그리고 A4용지로 인쇄해둔 종이를 한 장씩 나눠 주었다.

    <강문고 자기소개서 캠프>

    일시: 8월 9일 월요일, 8월 10일 화요일 초안 작성 캠프

    8월12일, 13일, 15일 첨삭 캠프

    일정

    9일: 자소서 공통 특강(2H)

    특강 이후 1인당 15분의 상담 동안 자기소개서 소재 도출

    1개 문항 완성될 때마다 현장 피드백 진행

    10일: 현장 피드백 통한 자소서 초안 완성

    12, 13, 14일: 자소서 수정 및 완성(12H)

    비고: 먼저 작성 다 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14일 12시간 동안 머리 쥐어짜 내면서 최종 초안을 만들 것!

    종이를 확인한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소리를 질렀다.

    “쌤 이게 뭐예요!”

    원래 특강은 하루 걸러 하루씩 날짜가 잡혀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녀석들에게 하루의 여유 시간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논술 특강을 해보니 학생들은 생각보다 끈기가 없었다. 겨우 하루 14시간 공부한 것 가지고 우는소리를 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여유를 준 하루를 공부하는 데 쓰지 않고 쉬는 데 썼다. 억지로 녀석들을 학교로 부른 이유도 첫날 특강이 끝날 때 이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정아야, 내일 놀러 갈래?

    -가자! 강남역?

    -문화의 전당도 좋고!

    라는 정아와 태성이의 말만 없었어도 이렇게까지는 할 생각이 없었다.

    “원망하려면 논술 특강 들었던 너희 친구들을 원망해라. 하루라도 여유 시간 따위 주지 않겠다. 빡쎄게 당기고 빡쎄게 완성하자!”

    말을 끝내며 주먹을 쥔 손을 한껏 위로 올렸다. 파이팅을 의미하는 포즈였지만, 어느 누구도 파이팅을 외치지 않았다.

    이미 눈에서 생기가 싹 사라진 녀석들에게 미리 준비해둔 간식카트를 보여 주었다.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하면 여기 있는 거 먹어. 전부 쌤 월급에서 사는 거다. 감사히 먹도록!”

    기본 세팅은 논술 특강 때와 비슷했지만, 여기에 에너지 드링크를 섞어 두었다.

    자기소개서는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다. 오히려 심층논술 문제를 푸는 게 나을 지경이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심층논술 문제는 정해진 답변이 있기 때문에 방향성만 맞춰서 작성하면 되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는 그렇지 않았다. 문제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정해진 공식이 없기 때문에 어떤 문장을 써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은 프린터기도 구비해 두었다. 아무래도 자기소개서는 노트북으로 보는 것보다는 직접 인쇄해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첨삭도 매번 인쇄를 해서 해 줄 생각이었다.

    “먼저 자기소개서에 대해 설명하겠다.”

    우는소리를 하는 녀석들을 뒤로하고 나는 칠판으로 얼굴을 돌렸다.

    “오대천왕이야….”

    “미쳤어, 이거 할 수는 있어?”

    “그냥 최상위 악마라고 해도….”

    “…지금 그렇게 중얼거린 안태성의 학생부 내용을 토대로 내가 예시를 보여 주마.”

    나는 담임 교사에게 최상위 악마라고 별명을 붙인 태성이의 학생부 중 일부를 타이핑한 프로젝터 화면을 보여 주었다.

    <타고난 성품이 긍정적이며 학급 내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냄. 선생님, 친구들에게 교내 생활 복지를 만들어 주고자 ‘즐거운 스쿨라이프’ 책자를 만들어서 배부하여 서로의 별명을 통한 즐거운 학교 생활이 될 수 있도록 힘씀. 학생의 소통 능력을 기반으로 경영CEO를 희망하고 있으며 학교에서의 활동 역시 인사경영이라 생각하고 있어 향후 발전이 기대되는 학생임.>

    학생부의 일부가 오픈이 되자 태성이가 놀라며 물었다.

    “쌤, 이거 제 생기부예요?”

    “그래. 수업용으로 살짝 바꾸기는 했는데, 괜찮니?”

    “네, 네 그럼요! 제 사례로 보여 주세요!”

    어느새 태성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김은장.”

    “네!”

    “자기소개서란 뭘까?”

    “어… 나를 소개하는 글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나를 소개하는 글이기는 하나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없는 거도 있는 척 포장해서?”

    “자소설 아니에요?”

    이어진 학생들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성장한 내용을 토대로 소개하는 글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며 학생들이 눈을 찌푸렸다. 고민을 하는 녀석들에게 나는 준비해둔 예시 화면을 프로젝터로 보여 주었다.

    <고등학교 재학 동안 제 목표는 학생들과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년 내내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별명을 지어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특히, 3학년 때 제작한 ‘즐거운 스쿨라이프’ 책자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학교 생활에 대한 인식을 바꿔 주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활동이었습니다.>

    나는 예시로 작성해둔 자기소개서 내용을 보여 주면서 설명했다.

    “이건 서울한국대의 자기소개서 문항 중 2번 문항의 작성 사례다. 학생부 내용과 비교했을 때 훨씬 자세하고 학생의 시선이 담겨 있지?”

    그리고 작성 예시의 가장 마지막을 보여 주었다.

    <간접적으로나마 인사 경영을 체험해 보면서 구성원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꿈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에서의 생활, 사회에서의 활동 모두 구성원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후배, 동기들, 교수님들과 우리만의 복지를 만들어 최고의 HRD전문가로 성장하겠습니다.>

    나는 프레젠테이션 화면 중 가장 마지막 부분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많은 학생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 나열식으로 자신이 뭘 잘했고, 뭘 했는지만 보여주는 녀석들.”

    그렇게 작성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지 몇몇 학생들이 헛기침을 하거나 눈치를 봤다.

    “그런 자기소개서는 빵점이다. 평가할 요소가 단 하나도 없는 빵점짜리 자소서.”

    모든 자기소개서 문항에서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배우고 느낀 점이었다.

    비록 이 당시에는 자기소개서 문항 자체에 ‘배우고 느낀 점을 기술하라’ 하는 멘트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자기소개서의 기본은 똑같았다.

    “어떤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거나 금상을 받았다거나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정말 중요한 건 그 대회를 통해 본인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했느냐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만들어진 스펙을 지니고 있는 학생들을 둘러봤다. 각 반에서 공부 좀 한다고 하는 녀석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명천이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내 말을 듣자마자 입술을 꽉 깨물고는 볼펜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대부분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걸 했는지 기억하기조차 힘들 거야. 그러니 나와 상담을 한 학생들은 본인의 활동 중 가장 기억이 잘 나는 활동이 어떤 건지 미리 체크를 해둬라.”

    설명을 하면서 프레젠테이션에는 자기소개서의 기본 구조를 보여주었다.

    <동기 / 과정 / 결과 / 배우고 느낀 점 / 나의 변화>

    “절대적인 구조라기보다는 이 기본 틀을 생각하면서 작성하면 더 편할 거다. 이제 시작해 볼까?”

    나는 교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석이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윤 선생과 지석 선배가 정석이를 비롯한 학생들과 함께 노트북 50대를 들고 왔다.

    “이사장님께서 직접 지원해 주시는 노트북이야. 후배들도 쓸 거니까 조심히 다뤄!”

    지석 선배가 노트북을 보여주면서 학생들에게 외쳤다. 노트북의 겉면에는 <강문고 강은숙 이사장 지원 / 학생들의 대입성공을 응원합니다> 라는 멘트가 적혀 있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문장이 가진 의미는 특별했다. 바로, 교장이나 교감이 아닌 이사장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노트북이나 성능 좋은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에 그런 학생들에게는 이 노트북과 이사장의 멘트가 담긴 의미는 각별했다.

    게다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와….”

    노트북을 켠 학생들이 너나 할 거 없이 감탄했다.

    <할 수 있다고 믿어. 그게 너의 힘이야.>

    <넌 아직 실패하지 않았어.>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사회와의 싸움에서도 이기자.>

    <꿈이 없어도 괜찮아. 지금은 입시라는 꿈이 있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내 주변에도 기적이 일어날 거야.>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이외에도 여러 명언들이 노트북 바탕화면에 적혀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노트북을 켜고서 한동안 화면만을 바라봤다.

    “그 바탕화면은 은장이가 전부 준비한 거다. 같이 열심히 하자는 의미야. 다들 알았지?”

    은장이는 이사장에게 노트북을 받고 나서 모든 노트북의 바탕화면을 바꿔두었다. 수능 때 필적확인문구로 짧은 문장을 쓰는데, 그 문장처럼 짧은 명언으로 친구들과 응원을 나누고 싶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이사장은 흔쾌히 허락했고, 나도 찬성했다.

    은장이는 심지어 기존의 명언을 조금씩 바꿔 가면서 자신의 말로 보여 주기도 했다. 중간에 나도 미래인 2019년에 들어갈 수능 필적확인문구를 알려 주면서 문학 작품 속 문구도 활용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이건 무조건 학생부에 기재해 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학생들을 돌아봤다. 학생들은 서로의 바탕화면에 어떤 문구가 적혀 있는지 번갈아 보면서 신기해했다. 은장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 녀석들을 향해 자기소개서 특강 학습지를 팡팡 두드렸다.

    “어수선하게 있지 말고, 이제 초안 작성에 집중하자!”

    마치 스파르타 학원의 강사처럼 소리를 내자 학생들이 다시금 주목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써질 때까지 키보드를 두드려라! 활동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기재된 학생부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이라도 해 봐라! 마땅한 활동이 없다면 3학년 1학기 때 어떤 활동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라!”

    이제는 아까처럼 볼멘소리를 하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이 자리를 불편해하던 명천이조차도 긴장감을 가지고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한 명씩 상담한다. 밖에 준비해둔 간이 책상으로 순서대로 나와.”

    나는 순서대로 한 명씩 상담을 하면서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소재를 선정해주었다.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가 모두 다르다 보니 자기소개서 소재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나 2011 입시 때는 대학교육협의회 공통문항이 없었기에 더 어려웠다.

    학생들의 학생부는 예상대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대한 이 안에서 입학사정관제에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다.

    “고생했어, 잠깐 쉬어.”

    모든 학생들의 상담을 마치자 첨삭을 도와주기로 한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대신 교실을 감시해주었다. 그 틈을 타서 잠깐 바깥으로 나와 한여름의 공기를 쐬었다.

    이번 특강 신청자가 25명, 그중 취소자들을 제외하면 15명이 남았다.

    이 15명 중 절반이라도 합격시킨다면 나와 박 선생, 지석 선배의 실적이 된다.

    이 실적으로 강문고에서의 내 입지를 다시금 다질 생각이었다.

    “강 선생님.”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학부모회장이 서 있었다. 나는 들키지 않게 인상을 찌푸렸다가 다시 펴고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명천이 잘하고 있나요?”

    예상대로 그녀는 명천이가 자기소개서 특강을 잘 듣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학교를 찾은 것이었다. 나는 이제 막 상담을 끝냈는데, 활동 자체는 괜찮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학부모회장을 따라온 남성이 내 앞에 정중한 자세로 섰다.

    “제 수행비서예요.”

    “아… 예….”

    학부모회장은 살짝 콧대가 높아진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수행비서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수행비서가 옆에 세워둔 차량의 뒷문을 활짝 열었다.

    “잠깐 타세요. 제안 드릴 게 있어요.”

    나는 곧바로 거절하려고 했지만 학부모회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번 제안은 다를 거예요. 걱정하지 말고 들어오세요. 그리고…….”

    그녀는 트렁크를 향해 눈짓을 했다.

    그러자 수행비서가 곧바로 트렁크를 활짝 열었다.

    “이것 좀 들어 주세요.”

    “이게 뭐죠?”

    활짝 열린 트렁크.

    그 넓은 공간 안에는 작은 포대가 몇 개 들어 있었다.

    “약입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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