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두 교사의 음모
수리논술 특강이 있는 첫날, 교실은 류지훈의 강의로 꽤 떠들썩했다.
“작년 기출문제의 경우에는 정사영의 넓이 구하기와 입체도형의 부피 구하기를 기본으로 정사영넓이의 합을 구하는 문제가 나왔다. 다들 이 개념은 기억하고 있지?”
류지훈은 능숙하게 칠판에 정사영의 넓이를 구하는 식과 그림을 그렸다. 공간상의 평면과 넓이를 그리고 옆에는 점과 평면 사이의 거리 공식을 적어 갔다.
“아마 배운 지 시간이 좀 지나서 까먹은 녀석들도 있을 거다. 수리 논술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 이상으로 나오지는 않아. 그러니 꼭 지난 개념들을 다시 짚어 보자.”
미리 준비해둔 책자를 열면서 개념이 정리된 목차를 보여 주었다. 학생들은 류지훈의 강의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한 손은 열심히 필기를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기출문제들의 설명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이다. 다음 주까지 나눠준 책자에 있는 기출문제 풀어 보면서 어려웠던 문제는 하나씩 정리해 보도록 하자.”
수업이 끝나고 류지훈이 교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학생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달려와서 질문공세를 했다.
“쌤, 여기서는 도형에 적용할 때….”
“말씀하신 방향코사인이….”
학생들의 질문을 모두 받아 주자 수업을 마치고 어느새 30분이 지나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자 학생들도 류지훈을 보내 주었다. 교실 밖을 나가면서도 학생들은 감사하다거나, 강의가 정말 재미있다거나, 멋있었다는 등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그래, 그래야지.’
강문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생을 꼽으라면 류지훈이었다. 훤칠한 키와 또렷한 이목구비의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호감을 주었다. 목소리는 배우처럼 무게감도 있었다.
게다가 강의력도 알아 주는 편이었다. 인근 학교에서 류지훈의 강의법을 배우러 가끔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류지훈은 강문고 내에서 어지간한 스타강사급의 인기를 끌고 다녔다. 실력도 있었고, 학생들과의 사이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원하는 바를 그때그때 정확하게 잡아내 주었다.
“아 선생님!”
교실을 나와 교무실로 내려가려는 류지훈의 뒤로 여학생 한 명이 달려왔다. 손에 들고 있던 논술 특강 문제집을 펼치고는 류지훈에게 책의 문제를 물었다.
“여기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요….”
조심스레 묻는 여학생에게 류지훈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복도 끝 창틀 앞에서 간단한 강의를 해 주었다. 여학생은 모르는 내용을 이해했다며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교실로 돌아갔다. 류지훈은 또 모르는 게 생기면 교무실로 내려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돌아가는 여학생을 보면서 류지훈은 여학생의 몸매를 가늠했다. 오늘 커뮤니티에 풀 만한 썰이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최동석이 문제인데….’
류지훈은 이번 수리논술 특강이 문제없이 잘 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교내에서의 인기도 인기였고, 수리논술이라면 자신의 특화분야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특강 성공에는 억지로 데리고 온 동석의 결과가 중요했다.
사실 수업 중간에 동석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동석은 곧장 정답을 말하곤 했다. 그렇기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걱정된단 말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은장의 문자였다.
<담임쌤 지금 자소서특강 준비한다고 바쁘세요. 최근에는 이사장님한테 혼났어요.>
‘혼났다고?’
그게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알아보기 위해 류지훈은 은장을 매점 앞으로 불러냈다. 일부러 학생들이 자주 왔다갔다 하는 장소에서 이야기를 해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아… 안녕하세요.”
은장이 류지훈을 발견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역시 네가 제일이다.’
매점을 오가는 여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류지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류지훈은 은장에게 미리 준비해둔 캔커피를 하나 건넸다. 은장은 캔을 받아들고 불안한 눈동자로 류지훈을 바라봤다.
“담임쌤이랑 이사장님이랑 무슨 일 있었어?”
그는 최대한 다른 이들이 들었을 때 오해를 사지 않게끔 돌려 말했다. 은장도 눈치가 있어서인지 정답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네, 교감 쌤이랑 같이 가셨는데… 동석이 때문인 것 같았어요.”
“동석이? 왜?”
“최근에 동석이 억지로 인터뷰한 거는 알고 계시죠?”
은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물었다. 류지훈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동석의 인터뷰가 끝난 직후 민지정으로부터 시끄러운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알아. 그런데?”
“그게 동석이 동의 없이 진행된 거여서 동석이 개인사랑 이런 게 다 올라갔나 봐요. 교감 쌤은 무슨 인터뷰를 그런 식으로 하냐고 혼나시고, 담임 쌤은 학생 보호도 못 한다고 혼났다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내용을 말한 은장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류지훈의 눈치를 살폈다. 류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말하고는 은장을 다시 올려보내기로 했다.
“공부는 할 만하니?”
“네? 아… 네, 그럼요.”
그는 손을 흔들면서 힘내라고 말하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방금 은장과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토대로 생각해 보았다.
강명문이 이사장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게 아니었나?
지금까지 그는 강명문이 이사장과 한명심 교감의 지원 아래 학교에서 여러 일들을 꾸미고 다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도 그렇고, 은장의 보고도 그렇고, 강명문이 그 둘에게 보호 받는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단축키를 눌러 민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류지훈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민지정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그 내용을 전해 들은 민지정도 정말이냐며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음…. 정확한 정보 맞아?]
“네, 은장이의 보고도 있지만, 제가 어제오늘 강 선생을 살펴본 바로는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민지정도 잠시 생각을 하고는 말했다.
[만약 강 선생이 이사장과 교감 라인이 아니면 일은 더 쉬워져. 최동석이만 잘 붙잡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류지훈은 어떻게 하면 최동석을 논술 특강에서 활약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류 선생.”
그런 그의 앞에는 방학임에도 여러 행사를 준비 중인 또 다른 교사가 서 있었다.
“엇, 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토요일인데 웬일이세요?”
“웬일은. 어제까지 과학주제발표 대회였으니까 여기 있지. 애들 수상 내역 정리도 해 주고, 대회 보고도 올려야해.”
윤기준은 손에 들고 있는 서류 뭉치를 보여 주면서 할 일이 산더미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수리논술 오픈했던데, 첨삭 인원 필요 없어?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아이고 아닙니다, 제가 벌인 일인데 선생님께 폐 끼칠 수는 없죠.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류지훈은 이후에 있을 공로를 다른 이와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번 특강은 오로지 류지훈 한 명만을 위한 특강이었다. 따라서 성과가 나온다면 류지훈만의 성과가 될 것이었다.
“그래도 힘들면 이야기해. 도와줄 수 있는 만큼 도와줄게. 참, 물리 학생부 써야 하는 애 있지 않았나? 그 학생 나한테 보내고. 상담하면서 잘 적어 줄 테니까.”
“호준이 말씀이시죠? 네, 네, 감사합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는 윤기준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윤기준이 기분 좋게 웃으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류지훈은 윤기준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가 또 누군가의 손에 고개를 돌렸다.
“류 선생님.”
돌아보니 앞에는 사회과 교사 심지석이 서 있었다.
“수리논술 수업은 할 만해?”
“뭐야 지석이 네가 주말에도 나왔어?”
동기여서 그런지 둘은 편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힘들지는 않나 해서. 작년까지는 이런 거 없었잖아.”
“내가 하겠다고 했으니 뭐. 그리고 초임교사 후배들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가만있어서야 쓰나.”
류지훈은 강명문을 비롯해 박은환도 지칭해서 말했다.
“열심히 해라. 아, 그리고 우리 반에서 경영학과 가려는 애가 있는데, 걔 수학 세특 좀 써 줄래?”
심지석은 학생이 준비한 보고서 요약본과 수행평가 요약본을 들고서는 류지훈에게 보여 주었다.
“당연히 적어 줘야지. 내가 여기 내용에 좀 더 플러스해서 적어 줄게.”
“고맙다, 역시 동기가 최고다.”
류지훈의 어깨에 손을 올린 그는 슬쩍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그때 그건 미안했다.”
“됐어. 마음 두지 마. 안 맞으면 받아먹다가 체한다.”
다시 거리를 둔 심지석이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는 반대방향으로 사라졌다.
류지훈은 심지석에게 건네받은 A4용지 두 장을 기출문제집 사이에 끼었다.
“류 선생님.”
“누구… 박 선생님?”
또 누군가 자신을 부르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려다 말을 누그러뜨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은환이었기 때문이었다.
‘치마만 입으면 완벽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류지훈은 짐짓 점잖은 척 물었다.
“박 선생님도 고생많으시네요.”
“고3 담임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걸요 뭐. 근데 그러다 보니까 저도 요청드릴 게 많아서….”
박은환의 말에 그는 괜히 호탕하게 웃었다.
“박 선생님 요청이면 못 들어드릴 게 있나요.”
“감사해요. 저희 반에 지은이랑 철웅이가 통계학과로 준비하고 있는데 얘네들 추천서 좀 써 주실 수 있으세요?”
류지훈도 지은과 철웅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이미 둘의 학생부를 정리해 주기도 했고, 수학경시대회 때 수상도 직접 해 주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서도 당연하다며 밝게 웃었다.
“당연하죠. 어떤 내용으로 적어 주면 될까요?”
“선생님 시간 되실 때 알려 주시면 애들 내려보낼게요. 그래도 되나요?”
“네, 그렇게 하셔요.”
“정말 감사합니다.”
가볍게 인사를 하는 박은환에게 류지훈이 괜히 과장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이걸 이렇게 공짜로 도와줘도 되나… 얘들 대회도 챙겨 줬는데….”
“…다음에 커피 한번 살게요. 얘들 통계학과 정말 보내 주고 싶어요.”
류지훈은 박은환의 말에 의외라면서도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약속한 겁니다?”
그는 박은환으로부터 지은, 철웅의 자료를 건네받았다. 대략 살펴보니 평소 수학에 관심이 많고 특히 통계와 데이터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는 내용을 적어 주면 될 것 같았다.
그는 수시 지원이 마무리된 후 어떤 카페로 가면 좋을지 생각했다. 남은 방학 기간 동안의 특강이 기분 좋게 마무리될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든다고 확신했다.
* * *
“끝났어요?”
나는 마지막으로 돌아온 박 선생에게 물었다. 박 선생은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며 양 어깨를 붙잡고 몸을 떨었다.
“부탁 하나 했다고 저렇게 속내 다 보이는 소리나 할 줄은 몰랐네요.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하면 어쩌나 했어요.”
“커피 산다고 하셨죠?”
“네, 했죠. 그거 나중에 강 선생님이 사셔야 해요.”
박 선생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그 말에 하하,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입시 준비하려면 류 선생님의 협조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교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입력해야 하는데, 각 교과목 선생님들의 협조가 필요했다. 특히 동석이와 태성이의 경우에는 학과가 공학계열, 경영학이다 보니 수학 내용이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류 선생은 나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학 교과목 세특에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오늘 모인 세 사람에게 부탁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요청을 받은 류 선생은 이제 다른 교사의 부탁도 거절하기 어려워질 상황이 되었다.
‘특히 동석이는 생기부 내용이 부실하면 한 교감에게도 한 소리 들을 게 뻔하고 말이지.’
지석 선배가 한숨을 쉬었다.
“저 녀석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명문이 뒷조사나 하고 그런다는 게 참 믿기지가 않는다.”
나는 류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박 선생이 소름 끼친다고 했던 말도, 류 선생이 지저분하게 접근하려는 낌새가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입시니까요.”
결국 류 선생이 하고 있는 특강도 그렇고, 내가 만든 특강도 모두 입시 결과에 따라 지도 교사의 실력이 판가름 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류 선생을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가 아군이든 적군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가 주요 교과인 수학 담당 교사인 이상 그의 도움은 필수였으니까.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나는 류 선생이 꾸미고 있을 일들을 예측해 보았다. 그의 성격과 목표, 숨겨진 행실 등에 맞춰 대비책을 떠올리며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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