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68화 (68/252)

68화. 언론플레이

강은숙 이사장은 교감실에서 소파를 뒤로 하고 서 있었다. 한 교감은 그 뒤에서 죄라도 지은 마냥 손을 공손하게 모아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교감 선생님.”

“…네, 네 이사장님.”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이사장의 목소리는 듣기에는 부드러웠으나 날이 설 대로 서 있었다.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한 교감은 아마 더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예상이 맞았는지 한 교감의 목소리는 방금 전보다도 더 떨려 왔다.

“그, 그게….”

“아무리 학교를 알리기 위한 거라고는 하지만, 학생에게 아무런 소식 하나 전하지 않고 이렇게 합니까?”

이사장은 처음 언론에 동석이 기사가 나갔을 때 박수를 쳤다. 이렇게 알릴 수 있는, 긍정적인 요건이 있다면 활용할 수 있는 만큼 활용하라고도 말했었다.

그러나 그 언론보도까지의 인터뷰, 취재 과정을 동석이에게 전해 듣고는 바로 교감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증인 같은 형태로 불려왔다.

“강 선생님은 알고 있었나요?”

“아뇨, 저도 취재 끝나고 은장이에게 전화 받고서야 알았습니다.”

나는 거짓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금 시점에서 한 교감의 폭주를 한번 눌러 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내가 하기보다는 나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사람이 해야 했다. 그렇기에 이사장이 움직일 거라 생각하고서 동석이에게 살짝 언질만 해두었었다.

[내일이나 모레 기사 뜨면 교장선생님 찾아가 봐. 그리고 이사장님한테도 연락하고.]

언론에 동석이 기사가 뜨자마자 은장이와 정석이가 먼저 알려 줬고, 동석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동석이가 들어오자마자 마주한 류 선생에게 먼저 말했던 멘트가 결정적 한 방이었다.

[교장 선생님이랑 이사장님 어디 계세요? 따질 게 있습니다.]

너무나 당돌하게 말한 그 멘트에 멀리서 수업 준비를 하던 나도 살짝 놀랐다.

당연하게도 류 선생 역시 동석이의 그런 모습은 처음 봤기에 놀라서는 교장실을 가리켰다.

동석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당돌한 동석이의 모습에 교장 역시 당황했다. 유리창으로 살짝 비치는 모습만으로도 강 교장이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동석이에게 혼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이사장님한테도 연락할 거예요. 어디 계세요?]

교장실을 나와서 이사장을 찾는 과정까지, 동석이는 확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동석이가 이렇게 움직이게 된 이유는 분노였다.

제목부터 시작해서 동석이의 집안 사정을 허락 없이 넣은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문제인 건 한 교감이었다.

바로 그가 동석이의 대화 수상까지 모든 활약을 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었던 점이었다. 동석이는 이 점에서 화가 가장 많이 났다.

“교감 선생님, 지금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동석이의 개인사를 마음대로 유출한 것, 동석이의 업적을 개인의 업적으로 과대포장한 것. 이 두 가지가 이사장의 성질을 건드렸다.

“교감 선생님이 동석이 위해서 해 준 게 뭐가 있죠? 키트라도 사 줬나요? 차량 지원을 해 줬어요? 밥이라도 사 줬습니까? 대회 당일에 응원 케이크라도 보냈어요?”

그녀의 말에 한 교감은 고개만 숙이고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당신이 한 게 없는데 왜 인터뷰가 이딴 식으로 나올 수 있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동석이 취재하다가 개인사 기사에 써도 되는지 동의는 받았어요?”

“그, 그건 동석이가 인터뷰 도중에 답을 해서….”

“그 인터뷰가 동석이 동의를 받고 진행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별도로 동의를 받는 절차를 밟으셔야지요!!”

지금껏 보이지 않은 분노한 모습의 이사장은 한 교감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한 교감은 이제 조금만 더 압박되면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보였다.

“강 선생님, 동석이는 괜찮나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조심스레 말했다.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 교감이 숨을 크게 삼키며 흡, 신음을 내었다. 이사장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악마의 편집처럼 기자들이 드라마 같은 스토리에 꽂힌 것 같습니다. 아직 대학교 입학이나 직업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타이틀을 이렇게 뽑은 것도 그렇고요.”

나는 이사장이 인쇄해둔 종이를 들며 한 구절을 가리켰다.

“동석이가 이 부분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반지하에서 키워 온’, ‘부모님의 관심 없이’, ‘친구 없이 혼자 공부’ 이런 부분들입니다.”

분명 인터뷰 때는 친구들이 도와준다고도 했는데, 기사에는 그 내용은 쏙 빠져 있었다. 부모님의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반지하 가정이면 부모님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기자들이 속단한 것이었다.

이런 스토리들이 엮어지면서 동석이 인터뷰 기사가 만들어졌다.

“동석이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테니 잠깐 내려오라고 해 주세요. 아니, 제가 직접 갈게요. 지금 어디에 있죠?”

“동석이 지금 집에 있을 겁니다.”

사실 도서관에 있었지만, 살짝 거짓말을 했다.

“찾아갈게요. 교감 선생님도 같이 가시죠.”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이사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반지하라는 점이 공개된 것만으로도 상처를 받은 아이입니다. 직접 찾아가면 더 상처받고 아예 마음의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전화해서 잠깐 상담차 오라고 하겠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동석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잠깐 가볍게 안부를 물은 후 교무실로 오라고 말했다.

“다행히 오늘은 도서관에서 공부 중이었다 합니다. 지금은 친구들하고 도서관 앞 계단에서 대화 중이었다고 하는데, 잠깐만 오라고 했습니다.”

아마 은장이, 정석이와 같이 기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오면 교감 선생님, 제대로 사과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기사 내릴 수는 없나요?”

“벌써 인터넷 여기저기에 퍼져서….”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사장이 관자놀이를 꾸욱 꾹 눌렀다. 그리고는 무겁게 말했다.

“교감 선생님, 우리가 강문고를 변화시킬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을 이용하고 거짓, 과장된 내용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네, 네, 물론입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때는 징계위원회에 올리겠습니다. 주의하세요.”

이사장의 말에 한 교감은 벌벌 떨며 고개를 연신 숙였다.

얼마 후 동석이가 내려왔고, 한 교감과 이사장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 * *

그리고 며칠 뒤, 동석이는 연세창의IT인재전형에 지원했다.

앞서 지원을 할 때 우수성 입증자료로는 전국로봇대회를 활용했다. 추천서에는 평소 동석이가 즐겨보던 논문 제목들을 보여주면서 동석이가 독특한 학생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2단계 평가 대상자가 되면 그때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면 되었으니 지금 준비를 하면 되었다.

“동석아, 괜찮냐?”

그렇기에 지금 동석이의 멘탈 관리가 중요했다.

“네, 괜찮습니다.”

다행히 동석이는 정말로 괜찮았다. 처음에는 분노가 일었지만, 그게 집안이 노출되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동석이가 집안 사정을 부끄러워했다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반면, 한 교감의 과대포장에는 화가 잔뜩 났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의 노력이 한 교감 한 명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에 분노해서 동석이 본인의 마음 그대로를 교장과 교감에게 표출했다.

그런 점이 조금 고맙기는 했다.

지금은 그때의 분노는 정말 다 잊었다는 듯 녀석은 밝게 웃고만 있었다.

“수리논술도 무리하지 말고 잘 받아라. 중요한 건 다음 주 자소서 특강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늘 오픈된 수리논술 반으로 이동하면서 동석이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쌤.”

“감사는 합격하고 해. 얼른 가라.”

동석이의 기사가 나오면서 며칠이 지나는 동안 학교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돌았다.

한 교감이 동석이를 이용했다는 이야기보다는 한 교감이 정말 이 정도로 학생을 생각했느냐 였다. 그래서 이후에 다른 미디어 매체들로부터도 인터뷰 요청이 왔었다.

그러나 그 인터뷰 자리에서 한 교감은 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장이 앞으로 추가 인터뷰가 나올 때 반드시 내 이야기를 메인에 넣으라고 명령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 교감이 내 이야기를 한 뒤에는 나에게 인터뷰 요청이 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선은 다 거절했다. 입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어설프게 인터뷰를 했다가는 오히려 표적이 되기 쉬웠다.

아무리 이사장과 한 교감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잡음은 없는 게 가장 좋았다.

‘이후의 타이틀도 생각할 수 있고 말이지.’

지금은 한 교감의 발목을 한번 잡은 것, 이사장의 취지를 명확히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었다.

“쌤, 자소서는 언제부터 시작해요?”

동석이가 지나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에게 은장이가 물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바로 들어가야지. 지원할 대학은 이제 다 정했잖아?”

논술 특강을 하면서 짬짬이 학생들과 쉬는 시간을 통해 입시상담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은장이가 결정한 학교는 서울한국대, 고구려대였다. 연천대를 비롯한 그 아래 대학교는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학부모가 그 아래 대학은 거절했기 때문도 있었지만, 은장이가 서울한국대에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정석이는 처음 목표 그대로 성실성대 논술 전형이었다. 그 외에 중문대, 연희대도 논술 전형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태성이는 국인대, 숭일대, 선하대로 결정했다. 셋 다 입학사정관제로 지원을 할 예정이었다.

그 외에도 정아는 연희대, 국인대, 일화여대, 숭민여대를 지원하기로 했다.

‘실력들은 좋아지기는 했지만….’

논술 실력, 비교과 정리 실력 등 모든 면에서 학생들은 짧은 시간 안에 성장했다.

그러나 결정적 한 방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너에게 마지막 한 방은 자소서야. 힘내보자.”

나는 은장이에게 말하며 어깨를 토닥였다. 은장이는 동아리를 비롯한 여러 비교과 영역을 채워 가면서 은장이의 자기소개서 소재도 점검해 볼 예정이었다.

태성이는 아직 채우지 못해 내가 추천했던 활동들을 기반으로 경제경영에 맞는 활동을 해 올 계획이었다. 수학 교사인 류 선생이 도와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쪽은 도움을 받기가 지금 바로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태성이의 비교과는 지석 선배와 박 선생, 윤 선생에게 부탁했다.

“안태성, 다큐 좀 봤어?”

내 말에 태성이가 흠칫 놀라며 답했다.

“아뇨….”

“논술 특강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봤어? 빨리 다큐 보고 심지석 선생님 찾아가 봐.”

태성이는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꺼내서 이것저것 검색을 했다.

내가 녀석에게 내준 숙제는 바로 최근 2010년까지의 경제 이슈에 대해 알아보고 미래 경제 문제를 예측해 보는 것이었다.

관련 다큐는 이미 많으니 어렵지 않겠지만, 예측을 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부분은 지석 선배가 도와주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나는 남은 일정을 생각하며 은장이와 태성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두 학생이 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앞으로 한 달여 남은 수시 접수 기간. 그 기간 동안 준비해야 할 하이라이트.

자기소개서 준비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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