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스포트라이트
“끝!”
“났!”
“다!!!!!!”
교실에서 정석, 태성, 정아가 소리를 질렀다. 셋은 기쁨에 겨워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오늘은 논술 특강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옥 같았다….”
“그래도 우리 버텨냈다. 그치.”
“죽는 줄 알았다고.”
서로 감상을 한 마디씩 뱉으면서 마치 전장에 다녀온 전사처럼 자신의 활약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용, 조용!”
그런 분위기를 깬 사람은 바로 이 특강을 오픈한 당사자인 나였다.
“아주 신났다, 신났어. 합격도 안 했는데 끝나긴 뭐가 끝나?”
“그래도 쌤, 이 지옥 특강이 끝났으니까 좋지요!”
정석의 대꾸에 내가 피식 웃었다. 나는 칠판에 크게 캘린더를 표로 그린 후 날짜를 적었다.
그 표를 보던 학생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공식 특강은 끝났지만, 너희들에 대한 지도는 끝난 게 아니야. 비공식으로 매일 1회 나에게 기출문제를 직접 만들어서 가지고 온다.”
내가 제시한 방법은 뉴스 기사 아무거나 3개를 골라 논술 형태의 질문을 만들어서 나름의 답변을 적어보는 것이었다.
“쌤 이걸 저희가 어떻게 해요!”
“하라면 해. 너희들 특강 끝나면 싹 다 흐트러질 거라는 거 모를 줄 알아?”
전체 특강 수강자 중 모든 과정을 완수한 학생은 전체 신청자의 60% 정도인 20명이었다. 아무래도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한 학생들이 많은 탓이었다.
그런 학생들을 딱히 나무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 버티고 있는 나머지 학생들에게 집중했다.
무엇보다도 특강을 잘 따라와 준 학생들이 이번 특강에서 익힘 감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생각이었다.
“논술은 꾸준함이 생명이야. 학원을 따로 다니기가 어렵다면 내가 말한 식으로 꾸준히 숙제라도 해 와.”
그렇게 말하면서 칠판에 노란 분필로 동그라미를 마구 쳤다.
“이 과정들을 다 마치면 9월에 수시 접수, 10월, 11월에 논술, 11월 수능이다. 최저 준비도 빡쎄게 하고, 입사관제도 같이 준비하는 녀석들은 자소서 특강도 신청해라.”
내 말에 입사관제를 준비할 예정인 태성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정석이와 정아가 옆에서 힘내라며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고생들 했다!”
교탁을 탕 치며, 간식 책상에 있던 사탕을 하나 꺼내 먹었다. 알싸한 향이 도는 박하사탕이었다. 그 사탕을 아득아득 씹는 것을 신호로 녀석들이 몸을 뒤로 추욱 늘어뜨렸다.
잘 따라와 준 녀석들이 기특했다. 그렇기에 이 특강을 들은 학생들은 논술에서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잘하면 여기 이 녀석들만으로도 입결 대박이다.’
교실을 나가면서 나는 음흉하게 웃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런 복도쯤에 와서는 키득키득 소리도 냈다.
회귀하고 첫 입시, 이번 입시부터 대박의 징조가 느껴졌다.
* * *
“야, 동석아 이게 말이나 되냐?”
동석은 논술 특강이 끝나고 한숨 돌리고 있는 친구들과 교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겨우 이 지옥 특훈이 끝났다고 생각했더니 자소서도 하라 그러신다. 이게 악마지 선생이냐?”
“그래도 그거 준비해야 입시 성공할 수 있다 하시잖아. 담임쌤 말씀 중에 틀린 게 있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동석은 수리논술 특강 수강자들에게 사전 배부한 기출문제 자료집을 펼쳤다.
“너 그거 결국 들어?”
“응, 담임쌤이 들으라 하셨어.”
“엥? 담임이?”
정석의 질문에 동석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리논술로 지원할 거야?”
“그건 아닌데… 한번 들어는 보라고 하셨어. 이거 류지훈 쌤이 만드셨거든.”
아… 동석의 말에 은장이 짧게 신음했다.
류지훈이 동석에게 접근한 이유가 자신과 담임인 강명문 때문일 것이다. 은장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듣기 싫으면 억지로 듣지 마 동석아.”
그러나 그 속마음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이렇게 돌려 말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담임쌤이 들으라고 하신 건 뭔가 이유가 있어서일 거야.”
“아주 강명문교 교주 납셨네.”
동석의 뒤에서 명천이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동석이 놀라 뒤를 돌아봤다.
“수리논술 특강 나도 들을 거야.”
“명천이도 듣는구나! 열심히 하자!”
“…그리고 자소서도 들을 거야.”
“엥? 진짜?”
“왜, 난 들으면 안 되냐?”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좀 의외다 싶어서.”
“뭐가?”
“명천이 너 변했다?”
명천의 말에 가장 놀란 사람은 은장과 정석이었다. 3학년 3반에서 강명문을 누구보다도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던 학생이 명천이었다.
그런 명천이 자소서 특강을 듣겠다고 한 건, 모종의 계기가 있었기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명천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도 입사관제 준비하라고 하셨어?”
“…맞아.”
“와, 너도? 뭘로 할 수 있다고 하셔?”
“내가 그런 걸 너희한테 왜 말해 줘야 하는데?”
점차 명천이 짜증을 내자 정석도 어깨를 으쓱 올리며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아무튼, 내가 올라온 건 너 때문이야.”
명천은 손가락으로 동석을 가리켰다.
“어, 나?”
“내려가 봐. 너 취재하고 싶다고 여기저기서 왔더라.”
“취재!?”
정작 동석보다 놀란 사람은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었다.
“왜? 뭐 때문에?”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교감 선생님께 전달 받은 거야.”
명천은 내가 왜, 라며 투덜거렸다.
당사자인 동석 역시 왜 사람들이 몰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알았어, 내려갈게.”
동석이 자리를 비우자 친구들이 수근거렸다.
“괜찮겠지?”
“쟤 얼어 있는 거 아냐?”
친구들이 걱정을 하자 은장이가 말했다.
“내가 가 볼게.”
“나도 갈래.”
은장과 정석은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동석이 내려간 길은 3학년 층인 4층에서부터 1층 교무실까지였다. 거기까지 내려가기도 전에 아래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있다!”
정석이 먼저 동석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딱 봐도 동석은 대여섯 명의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곤란해하고 있었다.
“최동석 군 맞습니까?”
“이번에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하는데, 어떤 대회였습니까?”
“준비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일반고여서 과학고만큼의 시설은 없었을 텐데요?”
쏟아지는 질문들에 동석은 대답을 망설이기만 했다. 그런 동석의 옆으로 다가온 사람은 한명심이었다.
“자, 자. 하나씩 질문하세요 하나씩.”
한명심은 기자들의 질문 중 본인이 답할 수 있는 것들은 대답을 했다.
“옆에 있는 이 학생이 바로 그 최동석입니다.”
“이번에 참가한 대회는 전국로봇대회였습니다. 맞지 동석아?”
“전국창작지능로봇경진대회요….”
“그, 그래 그 창작 로봇 대회! 그리고 일반고여서 설비가 부족한 건 맞습니다만, 저희 선생님들끼리 사비까지 지출하면서 채워 갔습니다. 최동석 학생의 케이스를 기반으로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연과학, 공학 계열 학생들을 위한….”
은장과 정석은 한명심을 보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동석이를….”
“학교 선전에 쓰려고 저러는 거야?”
실제로 한명심은 미리 답변을 준비라도 한 것처럼 일사천리의 대답을 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한명심은 생각했다.
‘생각한 것보다 더 좋아!’
그는 동석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면서 동석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학교에서 열정적이었는지를 떠들었다.
“안 되겠어. 우리라도 가서….”
“기다려 봐.”
내려가려는 은장을 제지한 정석이 기자 중 한 명을 바라봤다.
그 기자는 동석에게 ‘이런 걸 물어봐도 되나 싶기는 한데…’ 라며 운을 띄웠다.
“대회 상금은 어떻게 썼어요?”
한명심은 그 질문에 밝게 웃었다. 그는 동석의 성격상 부모님께 드렸다거나 학비를 위해 저축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기자들도 그런 멘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이 나오니까.
“저 그거 밀린 월세 내니까 끝났어요.”
그러나 동석의 답변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혹시 학생 자취하나요?”
“아니요, 부모님이랑 살아요.”
“여기 강남인데….”
“월세 살아요?”
기자들이 조금 얼이 빠진 상태로 동석에게 물었다. 동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평온하게 말했다.
“네, 저희 집 월세 살아요.”
“아… 교육 때문에 이 동네 아파트로 왔나 봐요.”
“네? 저희 집 반지한데요.”
그 말에 은장과 정석도 놀랐다. 동석이네가 어려운 형편인 건 알고 있었지만, 반지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건 기자들은 물론이고 한명심도 마찬가지였다.
“교, 교감 선생님은 동석 학생의 형편을 알고 계셨습니까?”
“아, 그, 그럼요! 그러니까 저희가 이렇게 준비한 거지 않겠습니까.”
“그럼 수상 가능성을 어떻게 예측하셨습니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아뇨, 결과는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기자의 질문에 답한 건 당사자인 동석이었다.
“저는 제가 만든 로봇에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걸 도와준 선생님들이 모두 잘될 거라고 해 주셨어요.”
“그 선생님들은 어디 계시죠?”
“어떤 교과목 선생님들인가요? 과학? 정보?”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동석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처럼 자세도 똑바로 섰다.
그리고 계단 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눈짓을 했다.
[괜찮아.]
동석의 신호를 이해한 은장과 정석은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 내려갈 준비를 했다.
“쟤 갑자기 왜 저러지?”
정석이 불안한 마음에 손가락을 이리저리 돌리며 동석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우선 저희 담임쌤이 국어, 동아리쌤이 영어, 특별 지도교사쌤이 물리 선생님이에요.”
“국어, 영어, 물리…요?”
기자들은 그게 말이나 되냐며 자기들끼리 수근댔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기자가 다시 질문을 했다.
“대부분 물리 선생님이 도와주신 거 아니에요?”
“제작할 때는 그랬지만, 담임쌤이 아니었으면 대회 나갈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동아리쌤 아니었으면 대회 때 로봇 시연도 제대로 못했을 거고요.”
“같이 만든 친구는 없어요?”
“로봇 제작 때는 아니고 전체적으로 준비할 때 많이 도와준 친구들이 있어요.”
동석이 살짝 은장과 정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까지 말한 동석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교감선생님도 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기자들의 시선이 한명심에게로 쏠렸다. 한명심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표정을 풀면서 동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 이제 들어가도 되죠? 담임쌤이 입시 준비 때문에 부르셨는데….”
동석은 일전에 곤란한 일이 있으면 자신이나 한명심 교감이 불렀다고 핑계를 대라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대며 기자들에게 물었다.
기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입시 준비라는 단어에 꽂혀서 한명심에게 물어봤다.
“동석 학생이 준비하는 대학교는 어디입니까?”
“당연히 서울한국대인가요?”
“공학 전문 대학교로도 생각 중입니까? 유학은요?”
이제는 아예 질문이 한명심에게 쏠리는 걸 확인한 동석은 슬며시 자리를 피해 계단을 올라갔다. 은장과 정석이 동석을 데리고 빠르게 이동했다. 복도를 조금 지나서 동석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풀썩 주저앉았다.
“야, 괜찮아?”
“얼른 가자. 안 되겠어.”
정석이 동석을 부축하는 동안 은장은 강명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명문이 전화를 받자 은장은 방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오히려 잘됐어.]
은장의 이야기를 다 듣고 강명문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 말에 은장이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내일 되면 알게 될 거야. 재밌겠네.]
그리고 내일 아침 포털 사이트 뉴스 게시판에 한 기사가 도배하게 된다.
<반지하에서 키워 온 공학자의 꿈, 강남의 한 교감이 이끌어 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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