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66화 (66/252)
  • 66화. 나만 믿고 따라 와

    학부모회장은 기가 막히다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소리쳤다.

    “거짓은 뭐가 거짓이라는 거예요!”

    그 소리에 교무실에 있는 다른 고3 교사들이 놀라 내 자리를 돌아봤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말했다.

    “이게 이번 한목대 모집 요강 중 면접 평가 요소입니다.”

    이번 2011학년도 입시에서 한목대는 1단계 10배수에만 들어가면 2단계에서는 면접만 100% 반영한다.

    즉, 명천이처럼 성적이 다소 애매하더라도 10배수 안에만 들어가면 면접 점수로 역전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런 희망은 학부모회장 같은 사람에게는 희망고문처럼 느껴지는 항목이었다.

    “그럼 면접을 만점 수준으로 봐야 한다는 거잖아요.”

    이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니까.

    “거기에서 거짓 활동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어차피 의대 면접은 수리논술면접이랑 저번에 특강 때 나온 MMI면접으로 보는 거 아니에요? 학교 활동은 다 필요 없잖아요.”

    나는 학부모회장의 답변에 간호학과의 면접 기출 문제를 보여 주었다.

    2010년에 진행했던 면접 문제로 상황제시문제였다.

    “작년 기출문제입니다. 간호학과 문제이긴 하지만, 충분히 의예과에서도 물어볼 법한 문제죠.”

    <인류의 건강을 해친다는 목적으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 실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지원자의 생각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미리 인쇄해둔 종이를 명천이와 학부모회장 각자에게 한 장씩 건네주자, 두 사람은 그 문제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는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학부모회장이 질문을 했다.

    “그니까 이게 왜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목대 상황질문은 이런 일반적인 의학계열 상식이나 시사 이슈를 중점으로 제출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MMI면접 때도 나올 수 있습니다.”

    나는 한목대 특강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의과대학장 교수님 설명회 때도 들으셨죠? MMI면접에서는 의료 윤리나 인턴 시절 때의 대처법 등을 물어보게 됩니다.”

    일부러 내가 알고 있는 기출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괜한 의심을 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명천이 한번 이 문제에 대답해볼래?”

    나는 명천이에게 지난번 서윤수 의과대학장이 설명회 때 보여 준 기출문제를 적은 한글 파일을 열어서 보여 주었다.

    명천이는 그 문제를 쭉 읽더니 대답했다.

    “저는 교수님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명천이는 대답을 끝냈는지 어떻냐며 나와 학부모회장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괜찮은 답변….”

    “이유도 같이 말해 봐.”

    학부모회장이 뭐라 말하려 해서 그 말을 끊고는 바로 질문을 했다.

    “어… 그래도 교수님에게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왜?”

    “…저는 인턴이니까요.”

    “인턴이면 왜 교수님에게 알려야 하지?”

    “인턴… 말단이라?”

    “땡. 다른 답변.”

    “…이 중 가장 권위자니까.”

    여기까지 명천이의 답변을 들은 후 나는 학부모회장을 향해 모니터를 돌렸다.

    “회장님은 답변하실 수 있겠습니까?”

    “레지던트면 인턴보다는 선배니까 괜히 자기 책임 지면 더 어려워져서 교수님에게 알려야죠. 자기가 잘못한 게 아니라 인턴이 실수했다고 해야 하니까요.”

    학부모회장은 이게 현실적인 답변 아니냐며 자신 있게 말했다. 명천이는 그 답을 들으면서도 괜히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정도 답변만 하게 될 겁니다.”

    “무슨 뜻이죠?”

    “지금 이런 답변으로는 면접 점수를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둔 모범답안 예시를 보여 주었다.

    <저는 교수님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생명과학 동아리 축제 때 준비물을 잘못 사 와서 부스 준비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를 동아리 선생님께 알려야 할지, 말지 친구들과 의논했습니다. 그 결과, 자칫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도 선생님께 말씀드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했습니다. 선생님은 좋은 실험을 보여 주는 것도 좋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결국 예정된 실험을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체험형 실험을 빠르게 준비해서 원활하게 동아리 축제를 마쳤습니다.

    주어진 문제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최씨는 즉각 대응을 받아서 치료를 받았다고 하지만, 이는 인턴과 레지던트의 판단입니다. 교수님의 최종 판단과 함께 이후의 조치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도 미리 예방해야 할 것입니다.

    부족하다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오히려 이번 실수를 기반으로 더 성장하겠다는 점을 어필하면 좋을 것 같다고 판단됩니다.>

    내가 적어둔 답변을 보며 명천이와 학부모회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작성한 모범 답안입니다. 어떤 특징이 있는지 좀 보이시나요?”

    나는 한글 프로그램에서 동아리 축제 이야기 부분을 붉은색으로 칠하고 밑줄을 그었다.

    “많은 학생들이 빼먹는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본인의 경험.”

    이번에는 명천이의 학생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명천이의 학생부를 보면 동아리 축제 준비 때 준비물 문제로 실험 주제를 바꿨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명천이는 자신의 생기부를 받아보면서 눈을 찡그렸다.

    아마 기억조차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MMI면접은 단순히 문제에 대한 답만 구하면 되는 단답형 주관식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보여드린 모범답안처럼 자신의 실제 경험을 근거로 삼아 답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명천이의 생기부를 보세요. 명천이도 봐봐라. 기억이 제대로 나는 활동이 하나라도 있니?”

    명천이는 이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학부모회장도 당황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었다.

    “그래서 거짓이 많아 문제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명천이는 모든 활동 내용이 자신이 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동물실험에 대한 에세이 대회 대상은 명천이 아버지의 대필이었다. 동아리 활동은 학원을 핑계로 참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봉사활동도 어디 병원에서 했다고 나와 있지만, 그 병원은 명천이 아버지 친구의 병원이었다. 생명과학 도서를 읽고 암세포 논문을 읽고 소논문을 만들었지만, 이것 역시 아버지의 대필이었다.

    그러나 생기부에는 꽤나 구체적인 내용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건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뜻이 되었다.

    당시 입학사정관제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 돈을 받은 교사가 전반적으로 다 챙겨준 것이 분명했다.

    “이 내용들 중, 단 하나라도 명천이가 면접 때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까?”

    돈 좀 있는 집안에서 의사로 만들어내고자 했던 학생. 그러나 학생 본인의 실력과 의지 부족으로 수능이나 내신 성적만으로는 의대에 진학하기 힘든 학생.

    그렇다고 의사를 포기하기는 싫어서 외국 의대까지 생각하고 있는 학생.

    그런 학생이 바로 명천이었다.

    그리고 명천이를 이 지경까지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학부모회장이었다.

    “제가 도와주겠습니다.”

    나는 자신있게 모니터를 한 번 더 가리켰다. MMI기출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을 볼드체로 바꾸면서 강하게 이야기했다.

    “어설프게 유학 가서 허송세월 날리지 말고, 한목대 의예과 입학사정관제로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명천이가 의대 갈 수능 성적은 안 되지만, 최저 등급은 맞추고도 남습니다.”

    학부모회장은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편으로는 걱정된다는 눈빛을 하기도 했다.

    “서류평가 10배수에는 충분히 들어갈 겁니다. 이번 한목대에서 교과 평가는 10% 이내만 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나 의예과에서만요.”

    “그 말은 성적 낮아도 역시 뽑아줄 수 있다는 거군요!”

    “면접을 잘 본다면 말이죠.”

    한목대는 이번 특강에서도 밝혔듯이 공부만 잘 하는 애들을 뽑을 생각이 없었다. 그건 모집요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른 학과는 교과성적은 30% 이내로 반영하는 데 반해, 의예과만 10% 이내로 반영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신 여러 비교과 영역을 반영하고, 2단계 면접에서 거를 녀석들은 전부 거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왜냐하면 면접 1000점 만점에서 250점 이하는 과락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과락인 애들 많을 겁니다.”

    여러 기출문제들을 알고 있고 답변의 방향까지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내가 MMI 준비를 도와준다면 명천이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심층면접과 상황면접 준비 열심히 해서 면접 만점 받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할 게 많지만, 그렇기에 마련해둔 특강도 많습니다. 자기소개서 특강, 면접 특강. 이렇게 두 개, 명천아 꼭 들어라.”

    그리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명천이 입시, 저만 믿고 따라오면 됩니다.”

    * * *

    학부모회장은 후련한 기분으로 교무실을 나왔다. 아들 명천은 아직도 반신반의한 채 몸을 움직였다.

    강명문이라는 교사.

    처음에는 재수 없게 느껴지고, 건방지다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평가가 바뀌었다.

    의대 유학의 문제점을 바로 캐치해 주고, 목표로 했던 한목대 의대를 향한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게다가 그가 작성한 면접 문제의 모범답안을 보니 자신도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엄마.”

    “왜?”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탑승하자 명천이 말했다.

    “담임쌤 믿어도 될까?”

    “왜?”

    “류지훈 쌤은 담임쌤이 수상하다고 그랬거든.”

    학부모회장은 그게 무슨 뜻인지 대강 이해했다. 류지훈은 최근 명천이의 과외 선생에서 박탈되었다.

    “어떤 점에서?”

    “뭐냐… 맨날 교감 쌤하고 어울리고 그래서 비리를 저지르고 있을 수 있다고….”

    지금까지 본 강명문은 그녀가 판단하기로는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그런 일을 강행하는 사람이었다면, 이전에 자신의 과외 제안도 수락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아들 명천이만 가르칠 수는 없다며 이를 거절했었다. 거액의 보수와 교육부 지위까지 약속해 주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사람이 움직이는 이유는 명예 때문이 가장 많지.’

    실제 강명문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 채, 그녀는 강명문에 대한 평가를 계속해서 갱신해나갔다.

    “엄마가 볼 땐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 일단, 담임선생님 말씀 믿고 해 보자. 남은 기간 죽었다 생각하고 해 봐야지.”

    입시까지 남은 시간은 5개월.

    학부모회장은 그 짧은 시간 동안 강명문이 어떤 마법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만약 올해 안 되면 그때 유학준비해도 늦지 않을 거야.”

    그녀는 1순위는 한목대, 2순위는 헝가리 의대를 세팅해두었다.

    “설령 담임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고 해도 뭐 어때? 이 정도로 입시 정보 많은 선생은 대치동 학원가에서도 찾기 힘들어.”

    오늘 상담 중 첫 번째로 놀랐던 건 의대 유학의 허상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퓨쳐컨설팅 관계자에게 따지니 제대로 답변은 하지 않고 말을 빙빙 돌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해 저희가 미리 교육과정 수업도 준비해두었습니다.]

    문자로 전송해 준 수업과정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쌌다.

    1개월에 500만 원.

    아무리 본인이 입시에 대해 잘 모른다 해도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런데 이게 강 선생이 말하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단 말이지.’

    본인이 겪은 일을 생각해 보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조수석에 앉은 자신의 아들을 바라봤다.

    공부를 곧잘 하기는 하지만 최상위권은 아닌 아들. 그래서 더 눈에 밟히고 남편처럼 의사를 시키고 싶은 아들. 성적이 부족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아들.

    그리고 목표한 의대에서 멀어지자 이제는 유학까지 생각하는 아들.

    그런 아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학부모회장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했다.

    “걱정 마, 아들.”

    차의 핸들을 꽉 쥐며 학부모회장이 중얼거렸다.

    “엄마가 네 담임이랑 꼭 개인 과외 하도록 만들어 줄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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