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숨겨둔 모습
동석이는 학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어차피 집에 있어봤자 덥기만 하고, 집보다는 더 시원한 학교에서 공부나 하자는 셈이었다.
그런 동석이에게 류 선생이 다가온 건 월요일 오전이었다.
<강문고 수리논술 특강 오픈!>
어딘가의 학원가 특강처럼 명명된 특강이 한 번 더 오픈된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동석이의 계열에 맞는 수리논술 특강이었다.
[동석이 넌 전국로봇대회에서 우수상도 받을 정도니까 수리논술은 쉽겠지?]
류 선생은 일방적으로 동석에게 신청서를 건네주고 이따 오후에 받으러 오겠다고 하고는 사라졌다.
동석은 이걸 적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담임선생님에게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 온 동석이가 내 앞에 있었다.
“쌤, 저 이거 신청할까요?”
동석이는 논술 특강 교실 앞에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복도에서 동석이 내민 종이를 받아봤다.
“류 선생님이 찾아오셨니?”
“네.”
지금 시점에서 동석이가 수리논술을 공부하면 스카이에 합격할 정도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정답은 No였다.
“너 수리논술 해 본 적 없잖아.”
“네, 그래서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억지로 건네셔서….”
이 상황이 류 선생 혼자 생각한 건 아닐 것이다. 아마 민 부장이나 한 교감이 같이 생각한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로봇 대회 우수상인 학생이다. 그것도 전국 대회. 그런 학생이면 수리 논술 문제 정도는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을 터였다.
“음? 잠깐만.”
내가 종이를 들고서 고민을 하자 동석이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흐음… 동석아 이거 들어라.”
그러자 동석이가 곧장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즉답하지 말고, 그래도 좀 거절은 해야….”
너무 쉽게 승낙하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동석이는 눈을 빛내면서 자신감 넘치는 자세를 취하고는 말했다.
“쌤 말씀이신데 생각이 있으시겠죠! 열심히 듣겠습니다!”
갑작스런 동석이의 모습에 나도 조금 놀랐다.
아무래도 전국대회 우수상 결과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 그래. 근데 일단 듣기는 듣는데,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어.”
그 말에 동석이가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해했다.
“왜, 왜요?”
“아니 뭐, 그냥 그런 게 있어. 미리 공부해서 갈 필요도 없고, 그냥 평소 실력대로 들어. 보니까 특강비도 이사장님 지원인 것 같은데?”
수리논술 특강 신청서 안내문에는 ‘별도 참가비 없음(강은숙 이사장 전액 지원)’이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었다.
이번 여름방학 특강에 이사장도 힘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 그럼 저 진짜 그냥 듣고만 오면 돼요?”
“그래. 그거보다 더 중요한 자기소개서가 있으니까 수리논술에 너무 힘 빼지 마.”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동석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녀석은 뭐가 부끄러운지 헤헤 웃으며 다시 어깨를 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리논술은 대충 듣고 오겠습니다!”
“야야, 누구 듣겠다. 조용히 말해.”
동석이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신청서를 들고 다시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동석이가 어떤 애인지 한 번 맛 좀 봐야 정신 차리지.’
나는 한 교감과 민 부장, 류 선생이 수리논술로 재미를 보려는 생각이 우습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류 선생이 기획한 수리논술 계획표에 맞춰 수업하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강문고 자연계열 학생들 중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학생들은 이미 대치동 일타강사들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학원에서 들었고, 또 어떤 학생들은 그룹과외식으로 수강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번 수리논술 특강을 듣는 학생들 대부분은 올해 입시를 포기한 학생들일 게 분명했다. 아니면 구색 맞추기로 인원만 채운 학생들이거나 말이다.
“게다가 동석이는 수리논술식 풀이는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애인데.”
교실 한쪽에서 내 혼잣말을 듣던 박 선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에이, 그래도 동석이가 물리랑 수학을 그렇게 잘 하는데요?”
“박 선생님, 천재한테 과외 받아 본 적 있어요?”
박 선생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천재는 뭐라고 가르치는지 아세요?”
“뭐라고 하는데요?”
“이걸 왜 모르지?”
나는 동석이가 평소 물리문제를 친구들에게 알려 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종례를 하기 전이나 수업 시작 직전, 태성이가 동석이에게 물리 문제를 몇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동석이는 태성이가 가지고 온 문제를 보더니 바로 정답을 도출했다.
-와 동석아, 어떻게 풀었어?
-응? 그냥 보니까 나오던데?
그게 동석이가 말한 설명의 전부였다.
“걔는 본인만 알지 다른 사람들한테 설명을 전혀 못 합니다. 논술은 논리정연하게 문제 풀이 과정을 보여 줘야 하는데, 동석이는 그거 못해요.”
내 말을 들은 박 선생이 짧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럼 이거 계획한 사람들은….”
“재밌어질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고민하던 박 선생은 논술 답지를 들고 온 정석이의 부름에 자리를 이동했다.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새 상담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려가 있겠습니다. 이따 시간 되면 불러 주세요.”
오늘은 명천이와 명천이 어머니 상담이 있었다.
미리 교무실에 내려가 명천이 상담자료를 꺼냈다. 어떤 이야기부터 해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명천이와 학부모회장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명천이도 어서 와라.”
명천이는 학교가 아니라 외부 학원에서 관리형 자습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녀석의 얼굴은 제법 피곤해 보였다.
학부모회장의 표정은 생각보다 침착해 보였다. 며칠 전 과외 제의를 거절해서 조금은 날이 서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명천이에게는 그 사실이 비밀인 듯 나에게 살짝 눈치를 주었다.
나는 거기에 따로 답하지 않고 두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
“오늘 먼저 대입 이야기를 해 볼 건데요….”
“강 선생님, 잠시만요.”
갑자기 학부모회장이 내 말을 끊었다.
“우리 아이 국내 대학 안 갈 거니까 해외로 잘 가는 방법이나 알려 주세요.”
말하는 방식에서 싸가지가 없었지만, 일단은 참고 넘어갔다.
“해외로요?”
“명천이 성적으로는 우리나라 의대가기 힘들잖아요. 한목대도 그냥 질러나 보는 거라 크게 기대는 안 되고. 그럴 바에야 필리핀 같은 데로 의대 보낼까 싶거든요.”
그런 이야기였군.
나는 학부모회장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 웃음을 알아차렸는지 학부모회장이 나를 도끼눈을 뜨고 노려봤다.
“아, 죄송합니다. 명천이가 해외 의대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네요.”
“전 하나도 안 웃겨요.”
학부모회장은 기분이 팍 상했다는 듯 인상을 잔뜩 구겼다. 자기 때문에 내가 기분 상했던 사실은 기억 못하는 것 같아서 짜증은 났지만,
그래도 알려줄 건 알려줘야지.
“필리핀 의대 나와서 의사할 거면 거기서 미국의대로 가거나 필리핀시민권 취득해서 필리핀 국적을 가져야 현지에서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면허시험 자체를 못 봐요. 어머님이 알고 계신 그 편법은 명천이보다 5년 이상 선배 정도 때나 통했던 수법입니다.”
학부모회장은 내 말에 놀라 다급히 핸드폰을 열어 자판을 눌렀다.
“동남아 전체에서 의대 나와 봤자 국시 못 봐요.”
“유럽은요?”
“헝가리요? 예비고사 합격률이 10%도 안 되는데 거기를 보내시게요? 가서도 고생이고 졸업 못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다시 국내 4년제부터 보낼 거예요?”
나는 학부모회장의 한심한 판단을 쉴 새 없이 공격했다.
“잠시만요.”
학부모회장은 문자 답장을 받았는지 잠시 핸드폰을 보다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했다. 아마 어딘가의 유학 전문 컨설팅이라며 받은 곳일 것이다. 명천이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차 표정이 어두워져 갔다.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이전에 강문고에서 근무할 때 많이 겪었던 일이 이런 일이었다.
이전에 지석 선배가 한탄했던 것처럼, 뼈 빠지게 가르쳐 봤자 수틀리면 해외로 떠나려고 하는 게 이 동네 학생들이었다.
우선 돈이 있으니 유학 비용 같은 건 걱정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개인병원이라도 하고 있으면 적당히 면허 취득해서 병원을 이어받으려던 학생들도 많았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간과했던 사실이 있었다.
바로, 유학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높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대표적인 의대 유학지인 헝가리에 진학한 학생들 대부분은 졸업을 하지 못했다.
아니, 적어도 나는 단 한 명도 헝가리 의대를 졸업한 학생을 보지 못했다.
“그럼 우즈벡은….”
“유학 쉽게 보지 마십쇼.”
전화를 끊은 학부모회장의 질문을 단칼에 잘라냈다.
물론 우즈벡 소재의 의대에 입학해서 국내 의사 국시에 응시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학비 자체는 저렴하고 통역도 붙여 주는 등 혜택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기부금 명목으로 유학원을 끼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학생들의 실제 유학비용은 많게는 2억이 훌쩍 넘어갔다.
‘명천이네가 그걸 못 낼 집은 아니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해외로 잘못 넘어간 학생들이 저지르는 사고였다.
해외에서는 대마가 허용되는 국가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끼리 모여서 대마 파티를 자주 열었다.
이 파티에 잘못 중독되면 국내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못하거나 들어와도 범죄자가 된다.
그리고 명천이처럼 친구도 별로 없고, 자기주장만 강한 학생은 대마 같은 유혹에 빠지기 쉬웠다.
그런 위험성을 저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강 선생님, 거짓말 하지 마세요. 여기 대치동 유학컨설팅학원에서는 어렵지 않다고 하는데요.”
학부모회장이 나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퓨쳐컨설팅입니까?”
“!!”
“거기는 끊으시는 게 좋습니다. 사기꾼들입니다 거기.”
나는 명천이도 역시나 퓨쳐컨설팅, 해외 유학 서류 조작 학원과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보다는 한심함이 앞섰다.
“명천아. 유학 가지 마.”
“저….”
“유학 갈 거면 제대로 언어 공부도 하고, 가서 어떤 거 배워야 하는지도 직접 알아보고. 그렇게 가야지, 그런 사기꾼 컨설팅 받지 마.”
그리고 나는 학부모회장을 돌아봤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이 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핸드폰을 꽉 쥐고 있었다.
“한목대 의대, 지금부터라도 준비할 수 있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한목대 의대 입학사정관전형 인쇄본을 꺼냈다.
“저도 이미 봤어요. 그런데 명천이가 가능성이 있나요?”
“모집요강은 많이 살펴보셨죠?”
“네. 의예과만 10배수로 뽑고, 2단계 면접이던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쇄한 종이를 넘겼다.
“그런데 아무리 10배수를 뽑는다고 해도 명천이 성적은….”
확실히 명천이의 내신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강남 명문고라는 장점을 고려해도, 다소 아쉬운 성적인 건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한목대 입시는 특이했다.
“명천이도 10배수에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올해는 한목대 의예과의 경쟁률도 낮았던 해였다. 그리고 1차에서 교과로만 평가되지 않고 서류평가가 더 많았기에 10배수 정도에는 포함될 것으로 예견되었다.
다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서류평가에서 명천이는 그래도 이야기할 내용이 많습니다.”
동아리 시간에 했던 생명과학 실험들, 진로탐색을 위해 의사 진로보고서를 작성한 일들, 자유연구주제로 뇌신경과 세포에 대해 연구한 경험, 그리고 각종 과학대회에서의 수상내역들.
“서류만으로 봤을 때 명천이의 점수는 높은 편입니다. 어떻게 보면 비교과 영역을 잘 만들어온 겁니다.”
돈과 인맥으로 말이죠. 이 말은 속으로 삼키면서 말했다.
“그래서 지금 정도로만 봤을 때 명천이는 충분히 추가합격으로 합격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서 나는 잠시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한목대 의대를 갈 수 있다는 말에 둘은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이런 말을 예상했는지 학부모회장이 빠르게 물었다.
“뭔가요?”
나는 명천이의 학생부를 펼치고는 손가락으로 종이를 팡 튕기며 말했다.
“이 활동들이 싹 다 거짓이라는 점입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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