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폭주
“싫습니다.”
학부모회장은 무언가 잘못 들은 건 아닌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헛웃음을 지으면서 기가 막히다며 따지고 들었다.
“지금 싫다고 하셨어요?”
“네, 싫습니다. 명천이 개인 과외는 거절하겠습니다.”
내가 명천이의 개인 과외를 거절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먼저 이걸 수락하는 순간, 나는 명천이의 개인 과외 선생님이 되면서 다른 학생들을 봐주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의대를 준비한답시고 지금부터 MMI면접을 준비하고, 세특도 신경을 써 줘야 하는 등 챙길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명천이 한 명 의대 합격시키는 것이 다른 열 명의 학생들의 입시를 포기하는 것과 비교할 만한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명천이가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 있었다.
합격 사례를 이야기할 때 가장 좋은 학생은 스토리가 있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명천이는 집안도 좋고 부모님도 잘 나가는 강남권 학생이다.
이런 학생은 강문고에 얼마든지 있었다.
‘동석이나 은장이, 정석이처럼 에피소드가 있어야지.’
그런 이유가 하나 있었고, 또 하나는 잘못해서 돈과 지위를 약속 받고 과외를 해 준 사실이 추후 밝혀질 경우의 문제였다.
잠깐 생각을 할 때 3년 뒤 사학 비리 폭로 사건 때의 나를 떠올렸다. 만약, 내가 명천이의 개인 과외를 해 준 뒤에 그 사건을 맞닥뜨린다면?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을 게 뻔했다.
<사학 비리를 폭로한 강남 명문고 교사, 알고 보니 비리에 앞장선 위선자>
벌써부터 기사 헤드라인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럼 회귀하고 나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나는 학부모회장에게 싫다고 말한 것이었다.
물론 이 일련의 사고과정을 학부모회장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표정을 붉히고 있을 뿐이었다.
“왜, 왜 싫다는 거죠? 뭐 강 선생님은 깨끗하다, 이런 건가요?”
학부모회장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내가 명천이의 과외를 거절한 상황이었고, 나는 학부모회장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했다.
그래야 애들 논술 봐 주지.
“그게 아니라, 명천이만 따로 봐주고 그럴 수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나는 속내는 숨긴 채 말을 이었다.
“저는 3학년 3반 담임입니다. 명천이 역시 최선을 다해 상담을 해 주겠지만, 오직 명천이만을 위한 과외 선생님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고요.”
그리고 교육부 대학지원실장의 명함을 다시 건네주었다. 학부모회장은 그걸 받지 않고 나를 계속 노려봤다.
“조건이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면 되겠어요?”
“정말 필요 없습니다. 지금도 학생들 논술 봐주러 가야 합니다. 명천이랑 같이 상담일자 잡고 그때 오시죠.”
급하다며 몸을 계속 움직이자 학부모회장의 눈을 더 분노가 가득 서려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내일이나 다음 주 평일에 어떠실까요?”
더 지체했다가는 학생들 감독 시간이 애매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약속을 잡고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
“이 자리 쉽게 갈 수 있는 자리 아닌 거 알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피하기 위해 슬며시 복도 한쪽으로 물러났다.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오죠. 그때까지 다시 생각해 보세요. ”
학부모회장은 들고 온 핸드백을 고쳐매면서 건물 입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서 본인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교실로 올라가 보니 녀석들이 죽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뭐야, 왜 다들 넉다운이야?”
학생들은 더운 여름에 에너지 절약이랍시고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숨이 막히는지 남는 용지로 부채를 만들어서 부채질을 했다.
“쌤 진짜 더워 죽겠어요….”
정석이가 몸을 축 늘어뜨리면서 힘없이 말했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많이 힘드냐?”
“네….”
“내가 그럴 줄 알고 음료수 좀 사 왔다. 들어와!”
내 신호가 울리자 동석이와 은장이가 양손 가득 음료수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음료수가 담긴 캔에 서리가 살짝 끼어 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서늘한 기운이 교실 안으로 확 돌자 학생들의 표정이 펴졌다.
“주말에는 에어컨을 제대로 켜기가 어려우니까, 특별히 쌤 사비 털어서 사 왔다. 마시고 힘내자!”
“감사합니다!”
학생들은 감사 인사를 외치면서 음료수 박스로 우루루 달려왔다.
그러나 녀석들은 음료수의 정체가 무엇인지 발견하자 썩은 구정물을 본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쌤 이거 설마….”
“뭘 모르는 척해. 너희도 잘 아는 그레이불이잖아.”
내가 준비한 음료는 에너지드링크로 유명한 그레이불이었다. 회색 소가 정면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로고는 용맹하기 짝이 없었다.
음료를 마시기만 하면 마치 전방의 모든 벽을 부수고 달려갈 수 있는 힘이 솟구칠 것만 같은 로고였다.
“으아아아아악!”
음료를 본 정석이가 소리를 지르며 음료수를 집어 던졌다.
콰앙!
“더는 못 참겠어! 이러다 카페인 중독으로 죽을 거야!”
정석이가 던진 음료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한쪽 면이 비틀렸다. 나는 조용히 그 음료를 다시 집었다.
“쌤… 진짜 저희 죽을 거 같아요… 살려주세요….”
정아와 태성이도 내 앞에 와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포즈를 취했다.
“아무리 애원해도 안 돼. 너희들 논술 실력 끌어올리려면 아직도 멀었어. 적당한 휴식? 그건 3월달 정도에나 허용되는 말이야. 지금은 휴식 따위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내 포기한 녀석들은 그레이불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그래도 더운 날 시원한 음료를 마셔서 그런가 음료를 마신 학생들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시원하긴 하네, 젠장.”
“인정하기는 싫지만 시원해 응.”
“…이거 사육당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
학생들이 소곤대는 소리를 모른 척하면서 정석이에게 다가갔다.
“이정석.”
“네 쌤.”
“너에게는 내가 특별 음료를 제조해 주마.”
이런 일이 있을지 몰라 미리 준비해두었던 텀블러를 꺼냈다.
그러자 주변에서 학생들이 오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석이도 자기만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 주었다는 생각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 행동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내 학생들의 오오, 는 아아… 로 바뀌었다. 정석이의 눈은 다시금 어두워지기만 했다.
“마셔.”
내가 만들어 준 음료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박x스 한 병과 그레이불 한 캔으로 만든 붕붕드링크였다.
“살려 주세요 쌤….”
“입시에 성공해야 너도 살고 나도 산다. 힘내자!”
나는 상자에 남은 음료들을 간식들이 올려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학생들은 똥 씹는 표정으로 그레이불의 뚜껑을 땄다.
“주말이라 놀고 싶겠지만, 고3에게는 주말이 없다. 기출문제 푼 사람부터 순서대로 첨삭받으러 와라.”
자리에 앉아 나도 기출문제집을 펼쳤고, 입시 자료집을 꺼냈다.
자료집을 보는 척하면서 학생들을 돌아봤다.
‘며칠 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졌네.’
처음에는 주어진 지문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해 펜을 움직이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 이해를 했다고는 해도, 어떻게 작성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해 펜이 놀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녀석들 중 펜이 놀고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어.’
스파르타식 특강이 끝나면 녀석들 개개인의 논술 공부 시간표를 짜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도 그레이불을 한 캔 마셨다.
“오….”
“오대천왕….”
동석이와 은장이가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서는 다 마신 음료수 캔을 책상 위에 놓았다.
“크으! 시원하다!”
* * *
월요일이 되자 언론에서는 강문고의 논술 특강을 예찬하는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강남 명문고에서 대치동 학원가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대치동 이상의 수업을 오픈했다는 내용이었다.
댓글들의 반응은 긍정적인 반응 절반, 부정적인 반응 절반이었다.
-그래도 없는 집 애들 챙겨준다니까 좋네.
-근데 거기 못사는 애들도 있었음?
└어딜가나 부익부빈익빈이지.
-대치동 일타강사 출신이라는데 진짜야? 저 선생 아는 사람?
└나 예전에 다녔던 학원 선생님이 강문고 갔다는 소리 듣기는 했음.
└진짜면 대박. 쟤네 공짜로 일타급 수업 듣겠네
└듣는다고 합격하겠음? ㅋㅋㅋㅋ 그거도 머리가 따라가줘야 합격하지
└너보단 나을 듯
-근데 요즘 강문고 잘 나간다. 저번에는 누가 전국대회 상도 받았다며?
-일반고에서도 열심히 노력해주시는 모든 선생님들 파이팅~^^
어쨌든 강문고의 이번 논술 특강은 학교에 있어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얼마 전 최동석의 전국로봇대회 우수상 수상부터 이번 논술 특강까지.
한명심의 입이 귀에 걸리지 않는 날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교감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민지정이 그의 옆에서 미리 인쇄해둔 인터넷 기사를 보며 말했다.
“한국고는 올해 강문고를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암, 당연하지! 이거 봐봐. 우리 학교에서 이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나?”
한명심은 소리내어 웃으면서 앞으로 있을 여러 특강들에 대해 생각했다.
특히 그중 그가 기대하는 건 류지훈의 수리논술 특강이었다.
이번에 인문계열을 챙겼으니 이과계열도 챙기면서 전천후 관리를 해주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우리 강문고가 올해는 참 기인들을 많이 만났어. 안 그런가?”
“네, 맞습니다. 류지훈 선생님 같은 사람 또 만나기 힘들 겁니다.”
“그럼그럼! 류 선생뿐 아니라 강 선생이나 심 선생, 박 선생, 윤 선생 등등. 올해 정말 복이 터졌단 말이야!”
한명심은 겉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속내는 꺼내지 않았다.
강명문. 지금 있는 모든 일들의 중심이 되는 교사였다.
그가 움직인 이후 학생들의 변화는 물론이고 교사들도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이제는 학교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신기한 사람이란 말이지.’
분명 처음에는 권력욕이 있기에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또 막상 정치싸움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중한 건가?’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강명문의 행동들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교사로 지내게 되면 초임교사여서 열정을 갖고 움직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들고 오는 입시 전략이나 프로그램들은 하루이틀 고민한 흔적을 보이는 게 아니었다.
어지간한 베테랑 이상, 아니 당장 대치동 입시시장에서도 먹히는 전략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인가?”
“네, 수리논술 홍보지가 오늘부터 뿌려질 겁니다.”
그리고 한명심은 이번 특강들을 보면서 어떤 교사가 더 능력이 있는지 판가름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 안에 자신의 목적도 확실히 해둘 계획이기도 했다.
“좋아. 신청자 최대한 많이 받고, 가능성 있어 보이는 이과 애들 전부 모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걔는 꼭 포함시켜.”
한명심의 말에 민지정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는 인물이 없었는지 조심스레 한명심에게 물었다.
“누구를… 말씀이십니까?”
민지정의 질문에 한명심을 그것도 모르냐며 혀를 찼다.
“최동석이 말이야. 최동석이를 수리논술 반에 반드시 넣으라고.”
한명심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교감실 창으로 바깥을 바라봤다. 전국대회에서 수상을 한 최동석은 수리논술도 잘 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녀석만 잡으면 스카이 중 한 명은 확보야.’
한명심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석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동석의 실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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