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63화 (63/252)

63화. 성과

박은환의 말에 준기는 조금 의아한 듯 물었다.

“안 가는 게 아니고 때려치워요?”

그 질문에 박은환은 이것 보라며 웃었다.

“부모님이 준기한테 바라시는 건 뭘까?”

“좋은 대학교 가는 거요.”

“그래. 그런데 넌 왜 대학교를 다니려고 하니?”

그녀는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준기야, 대학교는 겉치레가 아니야.”

준기는 어느새 그녀에게 집중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야.”

박은환은 덤덤하지만, 기대가 된다는 듯 표정을 변화시키면서 준기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걸 쉽게 버린다면 어떨 것 같니? 특히나 스카이 중 하나를.”

그녀의 질문에 준기가 설마 하며 물었다.

“쌤, 혹시 그 복수라는 게….”

“응, 맞아.”

강명문이 말했던 힌트인 복수. 그리고 그 복수는 그녀가 생각하기에 한 차원 높은 복수여야 했다.

“서울한국대, 연천대, 고구려대. 전부 합격해서 어디든 다녀.”

“그리고요?”

준기가 눈을 빛내면서 기대감에 차서 물었다.

“입학하면 바로 군대 가. 그리고 군대 전역하자마자 자퇴해. 그렇게 부모님이 강조하시는 스카이, 네가 합격해서 간 다음에 당당하게 때려치우라고.”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준기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조금씩 소리를 내면서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 하하하하! 쌤 그거 선생님이 말해도 되는 거예요? 하하하하!”

준기의 웃음에 살짝 민망해진 박은환이 짐짓 아무렇지 않다는 듯 팔짱을 꼈다.

“뭐 어때! 학교가 대학교 보내라고 있는 곳이니? 너 같은 학생들 상담도 해 주고, 인생 재밌게 살게 도와줘야지.”

준기는 속이 시원하다며 여전히 웃음을 그치지 않고서 말했다.

“아 진짜 쌤, 미치겠다, 하하하. 그럼 저 스카이 가요 진짜?”

“갈 수 있으니까 하는 소리야. 실력 발휘 제대로 하면 어지간한 중간 레벨 학과 정도는 넣어 볼 수 있잖아?”

준기의 모의고사 성적은 그야말로 최상위권이었다. 일부러 잘 보지 않은 과목들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스카이의 어지간한 학과들에는 지원해 볼 법한 점수였다.

“대신, 국문이나 영문학과 같은 어문학 계열로 합격해.”

“이과가 아니고요?”

“그래. 스카이에 합격했는데 부모님이 희망하는 이과가 아니라 인문대에 합격하면 그걸로 우선 소심한 복수, 그리고 군대 다녀와서 자퇴하면 커다란 복수. 이런 그림으로 가야지.”

이제는 복수 계획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그녀를 보며 준기가 밝게 웃었다.

“쌤 같은 선생님 처음이에요.”

“나도 이렇게 상담하는 거 처음이야.”

“그럼 우리 서로에게 처음이네요. 비밀 지켜 주셔야 해요?”

“당연하지. 너나 발설하지 마. 대신 9월 모의고사는 잘 봐야 한다. 알겠지?”

준기는 알겠다며 힘차게 답했다.

상담을 마무리한 박은환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선생인데, 이렇게 대학교 때려치우라고 말을 해도 되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강명문이 교감실에서 나왔다.

“잘 끝나셨어요?”

박은환은 준기와 상담한 내용들을 강명문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걱정되는 부분까지도 말했다.

강명문은 별 문제 될 것 없다며 기지개를 켰다.

“어차피 애들 학교 가서 대학생활 하다 보면 다니고 싶어질 겁니다. 특히 준기 같은 경우에는 더 그럴걸요?”

“왜요?”

“지금까지 마땅한 친구가 없었다면, 좋아하는 분야 공부하는 동기들에게 동질감을 느낄 테니까요. 어문학과 입학해서 순수문학회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면 더 그렇겠죠. 오히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될 겁니다. 독립은 하려고 하겠지만요.”

강명문의 말에 박은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짜 때려치우지는 않겠죠 그럼?”

“네. 어디까지나 상담 전략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자퇴하면 뭐 어떻습니까? 그때 되면 다 성인인데, 본인 앞가림은 본인이 해야죠.”

조금은 단호한 말에 박은환은 무언가 반박을 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어쨌든 강명문 덕분에 준기 상담을 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상담 스킬이 지금의 자신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감사해요, 선생님.”

“그럼 빚진 거 없는 겁니다?”

강명문이 씨익 웃었고, 박은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긍정의 표시가 앞으로 어떤 고난을 겪게 될지는 상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 * *

“선생님, 여기에는 이 내용으로 적어 주시고….”

“아뇨, 거기는 자치활동이고요. 교과목 세특은 좀 더 아래에….”

다음 날이 되고 나는 학생부 영역 중 영어 교과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입력하기 위해 박 선생을 찾았다.

박 선생은 학생부 기재에 익숙하지 않은지 계속 기재란을 헷갈려했다.

“강 선생님….”

“은장이 내용에는 꼭 이걸… 네?”

“…이거 저한테 빚지시는 거죠?”

박 선생의 말에 나는 그럴 리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이제 빚지는 거 없다고 하셨으면서. 저도 선생님 반 애들 국어 세특 써 주니까 이건 주고받는 거죠. 기브 앤 테이크.”

“말이나 못 하면 어휴.”

실제로 지금 나는 박 선생의 시간을 1시간은 빌리고 있었다. 은장이, 동석이는 물론이고 태성이는 세특을 확실하게 챙겨야 했다.

여기에 학생이 개입하는 것보다는 담임인 내가 움직이는 게 효과적이었기에 직접 움직였다.

물론, 생기부에 들어갈 문구도 내가 정리를 해서 들고 왔다.

“그냥 제가 쓴 거 복사 붙여넣기 해주셔도 돼요.”

“안 돼요. 저도 써 줄 내용들 있으니까 줄여야 한다고요.”

그렇게 옥신각신하고 있자 지석 선배가 교무실로 내려왔다.

“다음 명문이다. 올라가라.”

지석 선배는 손이 아프다는 듯 손을 흔들고 손목을 마사지했다.

“괜찮으세요?”

“애들도 애들인데, 이제는 우리가 죽겠다. 야, 특강 날도 아닌데 애들 봐줄 필요가 있어?”

오늘은 특강일은 아니었고, 주말에 이 녀석들을 그대로 두면 또 허송세월 보낼 것 같아 억지로 붙잡아두고 있는 보충자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덩달아 학생들을 감독해야 하는 지석 선배와 박 선생도 출근을 해야 했다.

“어떤 의미인지 이해는 하겠다만…. 요즘 특강에 힘을 엄청 쓰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냐?”

선배의 말에 나는 류 선생과 민 부장, 한 교감과 함께 교감실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아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던 그들에게 반전의 결과를 내야 한다.

동석이만으로도 이미 한번 결과를 보여 주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동석이 같은 천재가 아니라 평범한 레벨의 학생들로 보여주어야 했다.

“이번 특강 제가 우겨서 하는 것도 있으니까 성과 제대로 내야죠.”

나는 자세한 내막은 빼고서 이렇게만 말했다.

“작년하고는 참 달라졌어. 이렇게 입시에 목매던 애가 아니었는데.”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필요한 자료들을 챙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올라가 보겠습니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 주십시오.”

그렇게 교실로 향하려 했으나, 교무실 바깥에서 중년의 아주머니가 한 분 나를 찾고 있었다.

“강명문 선생님.”

명천이의 어머니인 학부모회장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직 명천이 입시 상담을 제대로 해 준 적이 없었다. 그 상담 건을 떠올리면서 일부러 밝게 웃으며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학부모회장님. 주말에 어쩐 일이세요?”

“류지훈 선생님한테 들었어요. 주말에도 논술 특강 학생들 자율학습 도와주신다고요.”

어쩐지. 주말에 정확하게 나를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류 선생이 내 일정을 몰래 흘려서인 듯했다.

“네, 정신없이 바쁘네요. 그렇지 않아도 명천이 입시 상담 때문에 연락드리려 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부모회장이 마침 잘 이야기했다며 입을 열었다.

“이전에 선생님께서 하셨던 여러 일들, 솔직히 시건방지다는 생각은 좀 했어요.”

시사RPG대회나 한목대 특강은 물론이고 동석이의 전국로봇대회 우수상까지. 학부모회장은 지금까지 내가 벌인 여러 일들의 결과에 대해 들었을 것이었다.

그래도 교사한테 시건방지다는 좀 아니지 않냐 이 아줌마야.

“그런데 하나하나 거치다 보니까 정말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들에 맞춰 입시가 바뀌더군요.”

이제는 언론에서도 새로 변화된 입시 전형에 대해 알려 주고 있었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점, 자기소개서와 면접, 학생부의 중요성 정도는 담겨 있는 기사가 많았다.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이 선생님은 어떻게 아직 발표되지도 않은 입시 전형들을, 아니면 곧 발표할 예정인 그런 변화지점들을 정확하게 짚어냈을까, 말이죠.”

나는 학부모회장의 말에 따로 대꾸하지는 않았다.

회귀까지 생각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제가 내린 결론은 교육부 같은 기관에 지인이 있거나, 가족이 그쪽 관계자, 그것도 꽤 높은 직급의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교감선생님께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그냥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성인되고 얼마 뒤에 돌아가셨고, 슬하에 형제자매도 없습니다.”

“그럼 이런 입시 정보들은 어디서 얻는 거죠?”

“그야… 요즘은 인터넷이 워낙 잘 되어 있기도 하고, 입학처에 전화해서 자주 물어보고 그랬던 게 도움이 된 것뿐입니다.”

적당히 내가 둘러대었지만, 학부모회장은 끝까지 물러서지를 않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더더욱 이걸 요청 드려야겠네요. 우리 아들 상담 있잖아요?”

학부모회장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빳빳한 종이에 인쇄된 명함이었다.

“이게 뭡니까?”

“이미 선생님이 돈으로 회유될 사람은 아니라는 거 다 알고 왔어요. 우리 명천이, 이번에 한목대 합격하게 해 주면, 내가 여기로 꽂아 줄게요.”

학부모회장은 교육부 대학지원실장의 명함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나는 명천이 어머니가 교육부 대학지원실장과 아는 사이라는 점에서 우선 놀랐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내 정보에 대해 꽤 알고 있다는 점에서도 놀랐다.

“저에 대해 교감 선생님과 류 선생님께 들으셨나 봅니다. 봉투를 꺼내지 않은 분은 처음이시네요.”

“제가 제대로 잡았나요?”

그녀는 교육부 감투면 꽤 구미가 당길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교사가 교육부에 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정상적인 루트로 가려면 시간과 노력이 말도 안 되게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게 소개로 들어가서 자문위원 같은 형태로 한다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었다.

“당연히 계약 조건도 공무원과 동일하게 들어갈 거예요. 별정직이지만 영구 별정직인 거죠.”

이제 명함은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학부모회장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나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조건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명천이가 이번에 수시로 합격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는 겁니다. 1주일에 두 번씩 주기적으로 수시 준비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과외 선생님처럼 봐주세요.”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우리만 발설 안 하면 누가 알죠? 상관없어요.”

학부모회장은 단호했다.

“저는 명천이 꼭 한목대 의대까지는 보내고 싶거든요. 당연히 선금과 성공보수도 드릴 거고요.”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학부모회장은 명함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죠? 명천이 의대만 보내 줘요.”

명천이의 모의고사 성적은 확실히 의대를 갈 성적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한목대의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고, 수능 최저까지는 맞추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명천이를 나름대로 한목대 의대로의 가능성을 두고서 상담을 하려고 했었다.

그랬는데 명천이의 어머니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생각이 많아졌다.

교육부, 그것도 대학지원실이었다.

입시에 관련된 사항들을 관리하고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이었기에 그 파워도 막강했다.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고민을 하다가 대답했다.

“싫습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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