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62화 (62/252)

62화. 박은환의 상담

은장이는 어머니 최예진과 함께 상담을 마치고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도착했다.

<옆에서 응원 많이 해주겠습니다. 오늘 상담 감사했어요.>

은장이 어머니로부터의 문자였다.

지금 은장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유리멘탈을 어떻게 잡느냐였다.

학교에서의 활동이나 공부로의 동기부여는 이미 충분히 되었다.

그러나 집에서의 이야기는 또 다른 문제였다.

내가 24시간 옆에 붙어 있어 주지 않는 이상 은장이는 언젠가 부모님과 한번 마찰이 있을 수 있는 학생이었다.

나름의 고집이 있으면서도 부모님에게는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착한 학생이 바로 은장이였기 때문이다.

<네, 은장이가 뭘 준비해도 뭐라 하지 마시고 응원 많이 해주셔요. 감사합니다 ^^>

어울리지도 않는 이모티콘을 써 가며 문자에 답장을 보냈다.

오늘 상담은 은장이의 어머니에게 은장이 입시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을 내포하는 상담이었다.

지금의 은장이 정도면 충분히 자기주도적으로 활동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존경하는 롤모델인 부모님이 자신이 하는 공부와 활동을 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이번 일처럼 공든 탑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게 된다.

‘언젠가 터질 폭탄이었지만 이 정도면 뭐.’

다행히 은장이 어머니인 최예진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했다.

하지만, 명천이 어머니인 학부모회장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상담 방식을 달리해야 하기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그리며 교실로 돌아갔다.

* * *

시간은 흘러 논술 특강 3일째가 되었다.

박은환은 논술 특강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글을 첨삭해 주고 있었다.

‘혼자만 또 어디 빠져가지고.’

막상 이번 특강을 주도한 강명문은 로테이션으로 감시역을 맡으면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행히 학생들은 열심히 따라와 주었다.

박은환이 첨삭해주고 주의를 주는 사항들을 기억해두고 수정본을 들고 오기도 했다. 글씨체가 엉망이던 정석도 그간 연습을 많이 했는지 나름 정돈된 글씨로 작성을 해왔다.

“어우 팔이야….”

물론 곡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많이 힘들어?”

“쌤 진짜 죽겠어요. 손이 아파서 못쓰겠다니까요.”

하루씩 여유를 두기는 했지만, 벌써 3일째 수기로 글만 쓰다 보니 학생들의 손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쉴….”

좀 쉬면 어떻겠냐고 말하려다가 박은환은 말을 멈췄다.

강명문이 심지석과 박은환에게 강조한 말이 생각나서였다.

<학생들이 힘들어해도 정해진 시간 이외에는 절대 쉬게 놔두면 안 됩니다.>

그의 말을 떠올리며 박은환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는소리를 하는 정아에게 말했다.

“강 선생님 말씀 기억 안 나? 제대로 준비 안 하면 큰일 나는 거.”

“그래도 팔이 너무 아픈데요.”

“그럼 지문이라도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어. 저기 책들 많이 놔뒀으니까 책 읽어도 되고.”

교실 한쪽에는 강명문이 별도로 주문해 온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모두 인문사회학과 관련된 교양서적들이었다.

논술 공부하다 상식이 부족하다 생각되거나 머리가 안 돌아갈 때 읽으라고 놔둔 책들이었다.

“으… 저거 보기도 싫은데….”

“그래도 안 돼. ‘쉬는 시간에는 책을 봐라.’ 담임쌤 말씀대로 해야지?”

정아는 쉬면서도 공부를 하라고 하는 강명문의 말을 떠올렸다. 팔 한쪽에 소름이 돋으면서 괜히 몸이 으스스 떨려왔다.

“알겠습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정아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이 정말 불쌍해 보였지만, 강명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학생들 대부분은 대치동의 학원을 다닌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아니었다.

자유분방하게 혹은 동네 학원에서 적당히 수학, 영어 수업 정도만 다니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저소득층에 속하는 학생들은 학원 한번 다니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런 학생들을 논술로 대학에 보내려 하니 이 정도의 특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박 선생, 교대합시다.”

다음 첨삭 담당인 심지석이었다. 그는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심스레 다가왔다.

“네.”

박은환은 상담자료를 보다가 심지석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학생들 특이사항을 정리한 메모지를 전달했다.

“정아가 손이 아프다 그래서 책 읽으라고 했어요. 태성이는 2008년 선하대 기출 풀고 있고, 정석이는….”

간단히 학생들의 현 상황을 인수인계하고서 박은환은 교무실로 향했다.

지금쯤 강명문도 교무실에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교무실로 가는 이유는 강명문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조준기 때문이었다.

강명문에게 준기 상담에 대한 조언을 구한 뒤 그녀는 7월 학력평가 성적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성적표가 나왔다.

이날에 맞춰 준기와 상담을 잡아두었다.

“어, 박 선생님?”

교무실에는 예상대로 강명문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열심히 서류를 돌아보다 컴퓨터로 무언가를 두드리던 강명문은 박은환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특강 수업 할 만하세요?”

“무슨 본인이 주도해 놓고 본인이 제일 많이 빠진대요? 다음 주에는 강 선생님이 풀로 보세요!”

박은환이 씨익씨익 화를 냈다. 강명문은 미안한 얼굴을 하면서 사과를 했다.

“이번 주는 교감 선생님이 하도 불러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제가 풀로 볼게요.”

바로 사과를 하는 강명문을 보며 박은환은 괜히 무안해졌다.

“됐어요. 사과만 하면 단가요?”

“오늘 준기 상담 있으시죠?”

“네.”

“지난번에 말씀드린 내용만 잘 기억하시면 문제없을 겁니다. 사탐 5등급이던가요?”

“4등급이에요.”

준기는 강명문의 예측대로 탐구영역만 4등급이고 국수영은 1등급이었다. 준기의 성적을 들은 강명문이 웃으며 말했다.

“5등급 받으려다 잘못 찍어서 4등급 됐나 보네요.”

그때 강명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는 핸드폰을 들면서 표정을 구겼지만, 이내 밝은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교감 선생님, 강명문입니다.”

그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박은환에게 먼저 가보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박은환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기에 저렇게 교감과 자주 만나러 가나 궁금해하면서 준기를 기다렸다.

“…쌤.”

“준기야, 어서 와.”

준기는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나고서야 교무실에 도착했다.

방학이었지만, 준기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상담 시간에 늦은 이유는 이 자리가 그리 달갑지 않다는 뜻일 터였다.

“갑자기 불러서 놀랐지.”

“일주일 전에 말씀하셨으니까 갑자기는 아니죠 뭐. 그런데 왜요? 대학 이야기 때문에요?”

준기는 별것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쌤도 제 성적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정시로 갈 거예요.”

“나도 알아. 그걸 물어보려는 게 아니야.”

박은환은 준비해둔 상담자료들을 꺼냈다. 자료에는 지금까지 준기의 모의고사 성적표와 내신 성적표가 들어 있었다.

“내신에 비해 모의고사가 잘 나와. 그리고 모의고사도 성적이 왔다갔다 하고. 게다가 이번 학평 때는 탐구만 4등급이고 나머지는 다 1등급이야.”

아 5가 아니네. 준기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박은환은 그 혼잣말을 들었지만 듣지 못한 척 말을 이었다.

“준기야, 너 왜 일부러 시험을 안 보니?”

박은환은 처음부터 솔직한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준기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쌤이 알아서 뭐 하게요.”

“도와주려고 그래.”

“뭔 줄 알고 도와준다 그래요?”

준기는 슬슬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며 몸을 뒤로 뺐다. 그래서 박은환은 천천히 마음을 진정하며 말했다.

“부모님하고는 이야기 많이 해 보니?”

“별로 안 해요.”

박은환은 언어를 잘 한다는 점, 부모님에게 복수를 하는 것 같다는 점을 토대로 강명문이 추측했던 내용을 그대로 말했다.

“어릴 때 외고 가려다 실패했지? 아니, 정확히는 준기가 면접에서 깽판 친 거 같은데.”

여기까지 말하자 준기가 흠칫 놀라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어디서 들었어요?”

“대충 맞나 보네. 추측이야 어디까지나.”

강명문의 예측이 들어맞았다는 점에서 그녀는 자신감이 생겼다.

“부모님한테 복수하고 싶지?”

준기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준기에게 설명했다.

“내가 말하는 거 잘 들어 준기야. 내가 하라는 대로 잘 따라오면 이전에는 없었던 완벽한 복수를 할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준기가 박은환을 돌아봤다. 이제는 조금 호기심이 생긴 준기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요?”

“네가 부모님이랑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려 주니? 먼저 말을 해 줘야 나도 알려 주지.”

박은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교묘한 웃음을 흘렸다.

‘강 선생님한테 이상한 거만 배워가지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으면서 준기를 바라봤다.

“그럼 쌤 비밀 지켜주셔야 해요?”

“알았어, 걱정 마.”

준기는 혹시나 싶어 수 차례 진짜 비밀 지켜 주셔야 한다고 당부한 뒤에야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부모님은 계속 공부하기도 싫은 걸 강요하세요.”

그렇게 준기는 어릴 때부터 이어졌던 강요된 공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많은 과외들을 해왔다. 중학생 때는 전국 단위 자사고나 외고를 가기 위해 내신 관리도 했다. 그 과정에서 준기는 쉬는 시간도 없이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았다.

그러다 자투리 시간이 나면 준기는 책을 꺼내 소설을 읽었다.

“그래서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구나.”

박은환의 질문에 준기가 그렇다며 답했다.

“저는 공부만 해 왔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절친이라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책 읽다 보니까 책에서는 많이들 그러더라고요. ‘네 인생을 살아라.’ ‘현재를 즐겨라.’ 그때부터 조금씩 제 의견을 내기 시작했어요. 학원 안 다니게 된 것도 2학년 때부터 모의고사 잘 나오고 나서부터였고요.”

박은환은 준기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교 레벨 올려야 한다고, 이과로 지원하라고 그러세요. 저보고 토목공학과를 가래요.”

“싫다고는 해 봤니?”

“네. 물리고 수학이고 다 싫다고도 했어요. 그래도 안 들으세요.”

준기는 억울한 마음이라도 들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손을 덜덜 떨기도 했다.

“그래서 그 뒤에는?”

“…스카이도 못 갈 녀석은 내 자식이 아니라고 소리 지르시더라고요.”

“아버지께서?”

“두 분 다요.”

준기의 부모님은 행정고시 출신의 고위 공무원으로, 공부를 곧잘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서울한국대, 어머니는 연천대를 졸업했으니 자식도 스카이 정도는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 스카이 가기 싫어요. 전 중문대 가고 싶어요.”

“안성캠퍼스 가고 싶지?”

박은환은 중문대 안성캠퍼스에 있는 문예창작학과를 떠올렸다. 글을 좋아하는 준기에게 어울리는 학과이기도 했지만.

“안성 정도로는 가야 부모님한테서 독립할 수도 있을 거고. 그치?”

핵심은 이거였다.

부모님으로부터의 독립.

준기는 아직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쌤 무슨 관심법 써요?”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무슨.”

박은환은 준기의 말을 들으면서 강명문을 떠올렸다.

‘관심법은 오히려 강 선생님이 쓰시는 거 같은데.’

그녀는 머릿속에서 강명문을 지우고는 다시 준기에게 물었다.

“지거국(지방거점국립대)은 가기 싫지?”

“네, 싫어요.”

“등록금이 싸서?”

이제 준기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면서 신기해했다. 박은환은 강명문이 알려준 예측들이 모두 들어맞는 게 또 신기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등록금 비싼 사립대로 가야 부모님한테 최대한의 복수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실제로 준기는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에 계속해서 놀라기만 했다.

“그런데 준기야. 너무 약하다 복수가.”

“네?”

“그게 무슨 초딩 마인드니? 그리고 등록금 비싸게 가려면 예체능으로 가야지. 안 그래?”

준기의 이야기를 들은 박은환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그깟 대학교, 때려치우자.”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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