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60화 (60/252)
  • 60화. 하지 마.

    “인문 논술도 열었는데 수리 논술도 열 수 있으면 좋잖아요?”

    류 선생에게 수리 논술을 제의한 사람은 바로 민 부장이었다. 옆에 있는 한 교감은 민 부장이 중요한 지점을 지적했다며 기뻐했다.

    “그럼 그럼! 인문 논술, 수리 논술 이렇게 두 개를 오픈하면, 문이과 모두를 위한 수업이 열린다! 이렇게 언론에 뿌리기도 좋지!”

    내가 이번 논술 특강을 준비할 때 수리 논술을 이야기하지 않은 게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류 선생은 교내에서 한 교감의 라인이라기보다는 민 부장의 라인이었다.

    물론, 류 선생이 여러 교사들과 두루 친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른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민 부장 옆이라면 아마….’

    류 선생이 나를 뒷조사하는 이유도 그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민 부장의 입장에서 내가 한 교감의 신임을 받으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 테고, 그렇기에 자기 심복 한 명을 끌어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민 부장은 오늘 내가 교감실에 들어오고부터 계속해서 불안한 듯 다리를 떨고 있었으니 말이다.

    “민 부장이 참 아이디어가 좋아. 내가 이러니 민 부장과 함께하지!”

    “과찬이십니다, 교감 선생님.”

    머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는 민 부장을 따라 류 선생도 미소를 보였다. 그는 앞으로 와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교감 선생님, 수리 논술 특강과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류 선생은 잠시 민 부장을 바라봤다. 민 부장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류 선생이 말을 이어갔다.

    “수리 논술반에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 위주로 선별해볼까 합니다.”

    “잘 하는 애들로?”

    한 교감이 잠시 미간을 좁히고는 고민을 했다.

    “하긴, 특강을 열었다면 그만큼 실적도 있어 주기는 해야 해….”

    그러더니 그는 나에게 바톤을 넘겼다.

    “강 선생이 생각하기에는 어떤가?”

    한 교감이 나에게 의견을 묻자 민 부장과 류 선생의 얼굴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풀어졌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티가 너무 많이 나잖아.’

    솔직한 심정으로는 류 선생이 언론에도 알려지는 이 특강의 강사로 뛰는 것을 반대하고 싶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로만 선별된 특강반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도 문제였다.

    가장 큰 문제는 류 선생 본인이었다.

    혐오 사이트 사용자가 강문고의 교사로 있는데, 그 교사가 특강까지 해서 수당을 받아갔다면?

    그리고 그 수당은 당연하게도 정상적인 수당이 아닐 가능성도 높았다.

    “저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걸리는 거라도 있어?”

    내가 말끝을 흐리자 류 선생이 불만이라는 듯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닙니다, 수리 논술도 언론에 홍보하실 생각이 있으신 걸까요?”

    한 교감은 두 번 말해 무얼 하냐며 내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방향성이 확실하게 정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한 교감이 건네준 종이를 들고 문장을 하나씩 짚었다.

    “우선 이번 인문 논술 특강의 취지는 강남 대치동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렇지.”

    “그렇기에 인문논술은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우선 학원을 다니지 못하거나 소득이 좋지 않은 학생들 위주로 선발했습니다.”

    “아….”

    여기까지 말하자 한 교감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며 오른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강문고에 다니는 학생들 중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경제적 여건이 좋으면 좋았지, 없는 집 자식들은 아니었다.

    물론 그중에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자연계열 진로를 꿈꾸지 않았다.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면 수학, 과학 등에서 내신 최상위권이나 수능 최상위권을 확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학생들은 인문계열에 많았다. 게다가 자연계열 학생들은 부모님이 의사이거나 고위직 공무원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 강 선생 말은 특강 오픈 취지에 맞는 학생들로 선별해야 한다는 말이군 그래.”

    “맞습니다. 언론에 알릴 생각이 없으시면 그냥 오픈하셔도 되지만….”

    내 말에 류 선생과 민 부장이 입술을 살짝 떨었다.

    이들은 이번 수리 논술 특강을 오픈하면서 나를 견제하고, 실적면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수리논술은 수학, 과학을 잘 하는 학생이면 스카이 공대 정도는 합격할 수도 있었다.

    아쉽게도 동석이는 시험머리가 없어서 논술로 지원하라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반 학생들 중에는 논술을 준비하면 높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학생들은 꽤 있었다.

    아마 류 선생도 그 학생들을 생각하고서 지금 말을 꺼냈을 것이다.

    눈치를 봐서는 민 부장과 같이 논의해서 내린 결정이었던 것 같고 말이다.

    “언론에 이번 방학 논술 특강의 취지를 알려서 ‘한국고는 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해내겠다’는 걸 보여 주시려면 인원 설정은 고민을 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일부러 한 교감 들으라고 한국고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나, 그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얼굴을 붉히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 이번에 동석이 덕분에 우리 학교 체면이 살았는데, 논술로 더 끌어올려야지!”

    한국고를 이기고 있다는 생각에 한 교감의 의욕이 더욱 커진 듯했다.

    “교감 선생님, 그래도 이번에 특강까지 열었는데 실적이 별로면 의미가 없습니다.”

    민 부장이 흥분한 한 교감에게 조곤조곤히 말했다. 한 교감은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는 민 부장에게로 눈을 돌렸다.

    “인문 논술을 수강하는 학생들 명단을 저도 모두 확인해 봤습니다만….”

    그녀는 손을 모으며 고민하는 척 자세를 취하더니 심각하다며 조용히 속삭였다.

    “솔직히 실적을 낼 만한 학생은 몇 없었습니다.”

    민 부장의 말은 사실이기는 했다.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 중 기초가 닦여 있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학원을 다닐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다.

    정석이나 태성이는 학원 다닐 여유는 있었지만, 본인들이 준비를 안 한 거기는 했고.

    그렇다 보니 인문논술로 좋은 학교를 준비하기에는 어렵다는 건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없었으면 말이지.’

    이미 기출문제와 논술의 평가요소를 모두 꿰고 있는 내가 강의를 하니 실적 면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다만, 이들에게 내가 회귀를 했다고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이들을 설득할만한 근거가 필요했다.

    “게다가 자연계열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 하는 애들이 많습니다. 인문계열은 자연계열로 들어오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으니까요.”

    민 부장의 말에 류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고, 한 교감도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 어중이떠중이들로 제가 실적 제대로 뽑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만, 나는 거기에 맞장구를 치지 못했다.

    “강 선생?”

    “인문계열의 어중이떠중이들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민 부장이 코웃음을 치면서 나에게 답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동석이도 제가 없었으면 그 어중이떠중이 안에 포함되었을 겁니다.”

    동석이의 실적, 녀석의 전국대회 우수상은 나에게 무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무기를 사용해야 했다.

    “그 전까지 동석이에게 집중하신 선생님 한 분이라고 계셨습니까?”

    이전까지 동석이에게 집중했던 교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착한 학생, 로봇을 좋아하는 학생 정도였다. 입시에 직결되는 수능이나 교과 내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외면 받아 왔던 학생이었다.

    “그건….”

    “저는 이번 논술 특강 수강생들이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실력은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 역시 꾸준한 연습을 하지 못해서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연습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이번 특강의 취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연결됩니다. 대치동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성적이 부족합니다. 그런 학생들을 지원한다는 건, 교육의 불평등이나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돕겠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언론에 뿌리기로 한 보도자료 인쇄물을 들었다. 그리고 한 문장을 가리켰다.

    “‘강문고에서 교육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위해 입시 특강을 오픈한다.’ 이 문장에서 보도문 전체가 시작이 됩니다. 하지만 자연계열 학생들 중 공부 잘 하는 애들로만 선발하면, 그 취지가 무색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거기에 원래 잘 하는 애들보다 잘 못 하는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내면 그게 더 실적이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한 교감이 턱을 만지작 거렸다.

    “원래 잘하는 애들은 그냥 놔둬도 알아서 합니다.”

    실제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누군가 따로 코칭을 해 주지 않아도 상위권,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중위권 학생들 중에는 자기주도 학습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도 많았다.

    “원래 잘하는 애들을 가르쳐서 실적이랍시고 보여 주는 것보다는, 잘 못하던 학생을 학교에서 도와주는 것이 좋은 그림이지 않을까요?”

    나는 일부러 잘하는 애들에만 집중하던 류 선생과 민 부장을 깎아내렸다.

    “강 선생 말이 맞아.”

    한 교감은 내 말을 들은 후 마음을 결정한 듯했다.

    “이번 특강 오픈 이유는 한국고를 넘어서는 강남 명문이 되기 위한 것도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에 우리를 잘 알리는 것도 중요해.”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류 선생을 돌아봤다.

    “실력 좋은 학생들 절반, 성적 낮은데 괜찮을 것 같은 애들 절반으로 추려 봐.”

    나름의 절충안이라 생각하고서 말한 한 교감을 류 선생이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왜? 싫은가?”

    “…아닙니다.”

    “민 부장이랑 같이 준비 잘 해 봐. 거 이번에 강 선생이 하는 건 너무 일정이 타이트하기는 했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니까 적당히 괜찮다 싶은 정도까지만 기획해 봐.”

    한 교감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류 선생을 밖으로 보냈다.

    셋만 남게 되었을 때 한 교감은 민 부장을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네.”

    “민 부장이 류 선생 많이 도와줘.”

    민 부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마치 류 선생이 테니스를 치다가 나에게 지은 것처럼.

    “알겠습니다.”

    그날 미팅은 그렇게 종료되었고, 나는 한 교감에게 인문 논술과 함께 수리 논술 특강 오픈 날짜를 조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날짜 조율은 어렵지 않았기에 금방 일을 마무리했다.

    * * *

    다음 날, 논술 특강의 이틀째가 되었다.

    녀석들은 이틀째라 아직 적응을 하지 못했는지 침침해지는 눈을 계속 비비며 준비해 준 사탕을 먹었다.

    “음… 크허….”

    코를 골며 곯아떨어져 있는 태성에게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잡았다.

    “태성아.”

    “크흡, 헙! 네 선생님.”

    “먹어라.”

    준비해둔 종이컵에 커피 가루를 한 숟갈 담아온 나는 태성의 입에 밀어 넣었다. 태성은 똥 씹은 표정이 되더니 옆에 놔둔 물병을 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쌤 진짜 이러다 죽겠어요!”

    “죽긴 뭘 죽어. 좋은 대학 가고 싶다며? 그럼 이 정도 고통은 즐길 줄 알아야지!”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고서야 무슨 입시를 성공하겠다고. 이 녀석들의 썩어빠진 근성부터 고쳐야 제대로 공부를 할 것 같았다.

    “여기 있는 주제들 토대로 공부 열심히 해두고, 기출문제 풀고 있어라.”

    나는 박 선생에게 자리를 잠시 비우겠다고 말하고 교실 밖으로 향했다.

    교무실에는 이미 은장이가 도착해 있었다.

    “쌤….”

    어째 은장이는 힘이 많이 빠져 보였다.

    “어제 인터뷰는 잘 했고?”

    내 질문에 은장이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밤새 고민했다면서 이야기했다.

    “…저 스탭 안 하려고요.”

    은장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스탭을 안 하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방송국이나 광고쪽 스탭으로 일하고 싶다고 했었잖아요….”

    은장이는 몸을 축 늘어뜨리며 힘없이 이야기를 이었다.

    “아무래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아 그런 거였구나.

    무슨 뜻인지 이해한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하지 마 그럼.”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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