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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59화 (59/252)
  • 59화. 이용자

    은장은 논술 특강이 끝난 다음 날 정석의 앞에 있었다. 정석뿐 아니라 논술 특강을 수강한 태성, 정아도 단 하루 만에 눈이 풀리고 다크써클이 잔뜩 내려온 모습이었다.

    “…괜찮아 너희?”

    “악마야 그 사람은….”

    “커피, 이거라도 마실래?”

    옆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동석이 안쓰러운 얼굴로 믹스 커피 한 봉을 건넸다.

    “으아악!!!! 저리 치워!!”

    “카페인… 쳐다도 보기 싫어….”

    그러나 정석과 태성은 커피는 꼴도 보기 싫다며 손을 휘저었다. 동석은 나름 좋은 의도로 말한 거였지만, 친구들의 반응을 보면서 괜히 시무룩해졌다.

    “알았어….”

    “동석아! 아냐, 얘네 지금 정신이 나가서, 아니 너희 진짜 왜 그러는데?”

    “은장아… 우리 어제부로 담임쌤 별명 정했다….”

    그 말에 은장이 궁금하다며 물었다.

    “진짜? 뭔데?”

    “사대천왕… 이제 오대천왕이야….”

    강문고에는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교사들이 있었다. 성격이 좋지 않은 교사도 있었고, 하나하나 수업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사람도 있었다. 또한,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갑자기 폭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교무부장인 민지정과 성적처리 연구부장인 임대원, 3학년 학년부장인 김영호가 전자에 속했다. 그리고 역사 교사 오석상은 후자에 속했다.

    학생들은 이 네 명 교사들을 두고 강문고 사대천왕이라고 불렀다.

    정석의 말은 그런 사대천왕에 이제 한 명을 더 껴서 오대천왕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이었다.

    “에이 무슨 담임쌤이 사대천왕이야. 그런 쌤이 어딨다고.”

    “천사의 탈을 쓴 악마라고 들어봤냐?”

    태성의 말에 정아와 정석이 맞아맞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은장과 동석은 친구들의 반응이 믿기지가 않았다.

    “너도 자소서 캠프 들어보면 무슨 소리인지 알 거야….”

    정석을 비롯한 3학년 3반의 논술 특강 캠프 수강자들은 어제 첫날, 하루종일 글씨만 썼다.

    실제로 강명문은 논술문의 분석 방법을 알려 주고,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비법을 설명해 줬다.

    그 후에는 기출문제를 읽고 계속해서 제시문 분석, 글쓰기였다.

    [논술에 목마른 개처럼 달려들어라! 절박함을 가지고 글에 임하란 말이야!]

    정석은 수업 때 강명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몸을 으스스 떨었다.

    “앞으로 4일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정신적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친구들을 보면서 은장은 나약하다며 혀를 찼다.

    “으이그. 야, 입시가 쉽냐? 대학 가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너 자소서 캠프 듣고서도 그 말 나오나 보자. 난 은장이 자소서 듣자마자 우리 말에 동의한다에 한 표.”

    “나도.”

    “나도.”

    세 친구들의 반응에 은장이 가당치도 않다며 웃었다.

    “내가 진짜 그러면 너희한테 밥 한번 쏜다.”

    은장은 은장 나름대로 수시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오늘은 방송부에서 방송 스탭 현직 일을 하고 있는 직업인 종사자 특강을 하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섭외해주려고도 했지만, 은장이 중간에 고집을 부려서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좋으니 자신이 직접 구해 보겠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강명문은 은장이 직접 움직일 수 있다면 학생부에 기재하기 좋다며 알겠다고 했었다.

    거기에 담임은 이번 활동이 은장 자신에게 인생의 큰 변환점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말을 들어서인지 괜히 더 긴장을 하게 되었다. 긴장은 활동의 노력으로도 이어졌다. 직접 인터넷 사이트들을 뒤적이며 방송국 스탭 일일 알바를 뛰는 사람들을 찾았다.

    그들이 자주 다니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고, 참여자들에게 쪽지를 보냈다. 그들 중에서도 배우 단역 아르바이트는 찾지 않았다. 가능하면 여름방학 일정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쪽지를 보냈다.

    그중 한 명이 지난 주에 광고 영상 단기 촬영이 끝나서 이번 주에 시간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잡은 날짜가 오늘이었다.

    ‘물어볼 것들이 산더미야.’

    인터뷰 질문지는 이미 뽑아두었다. 남은 건 방송부원들과 함께 동아리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이번 인터뷰가 끝나면 자신도 학생부 정리와 함께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친구들이 논술 특강 캠프를 듣더니 힘 빠지는 소리만 하고 있어서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힘 좀 내. 다 입시 잘 되려고 도와주시는 거잖아. 우리 학교에서 언제 이런 특강 열어 준 적 있어?”

    “그건 맞지만….”

    “동석이도 담임쌤 덕분에 전국대회 우수상도 받았잖아. 현수막 걸린 것도 봤지?”

    동석이 우수상을 받은 이틀 뒤, 학교 교문에는 커다랗게 현수막이 걸렸다.

    <[경] 전국창작지능로봇경진대회, 강문고 3학년 3반 최동석 우수상 수상 [축]>

    비록 방학이라 학교에 공부하러 오거나 활동하러 오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현수막을 보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힘내서 하자. 알았지?”

    “…에휴, 그래 반년도 안 남았다.”

    한탄 섞인 한숨을 쉬는 정석의 말에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쓰자….”

    “그래….”

    그리고는 커다란 제본 책자를 펼치고는 그 안에서 기출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강명문은 논술 특강이 끝나기 10분 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아니면 독서실에서 풀 생각 하지 마라. 교실 3개 정도 오픈해둘 테니까 교실에 모여서 풀어.]

    그리고 덧붙인 말 한 마디.

    [아,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는 그 얼굴은 마치 악마와도 같았다.

    담임의 강요 아닌 강요가 있었기에 이들은 모두 3반에 모여 있었던 것이었다.

    은장과 동석은 각자 활동을 위해 오다 들른 것이었고 말이다.

    “아무튼 힘들 내. 우린 간다.”

    “힘내, 이거라도 먹어.”

    동석은 다시 한번 가방에서 커피믹스를 3개 꺼내서 하나씩 나눠 주었다.

    “…동석아.”

    “응?”

    “우리 커피 많이 먹어…. 마시는 게 아니고 진짜 먹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껌뻑거리는 동석을 은장이 교실 밖으로 잡아당겼다. 강명문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친구들 공부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너희도 할 거 해.”

    그렇게 말한 담임이 교실로 들어가자 교실 안에서는 살려달라는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은장과 동석은 괜히 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이내 모른 척 하며 각자 활동을 준비하러 움직였다.

    * * *

    방학이지만, 고3 담임 교사들은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건 심지석과 박은환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수능을 위주로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시를 버리는 학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봤을 때는 국인대보다는 숭명대가 작년 컷 점수에 걸치니까….”

    심지석은 자신이 맡은 반 학생들의 입시 상담을 해 주고 있었다.

    특히, 내신에 비해 모의고사 점수가 좋지 않은 학생들은 이번 상담이 중요했다.

    “잘 지원해서 성공해 보자. 그리고 혹시 모르니 수능 준비도 하고.”

    상담에 감사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학생과 학부모가 꾸벅 인사를 했다. 심지석도 그에 답하며 인사를 하고는 교무실을 둘러봤다.

    한눈에 봐도 북적북적할 수밖에 없는 고3 교사들.

    그 교사들 사이에서 심지석은 강명문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들어간 지 좀 지났는데.’

    강명문은 학교에 오자마자 논술 특강 수강생들의 논술 공부를 감독했다. 그러다 갑자기 교감실로 불려갔다. 그 안에는 민지정과 한명심 교감이 있었다.

    “별일 없겠죠?”

    옆에 있던 박은환이 심지석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반 학생들 상담을 해 주고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려는 듯 커피를 마시면서 박은환이 조용히 말했다.

    “교무부장님이 태클 걸려는 건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 뭐하러?”

    “아니, 그냥요. 아까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아서….”

    실제로 민지정의 표정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라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거야.”

    * * *

    한 교감은 내 앞에 종이 신문을 펼쳤다.

    <일반고 학생이 전국 로봇대회 수상! -K과기원 부교수, 이번 대회 최고의 학생이라 극찬>

    기사의 헤드라인은 동석이와 건담인섹터Mk-3, K과기원 부교수가 함께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강 선생! 정말 잘했어! 고생했어!”

    “아닙니다, 동석이랑 윤기준 선생님이 수고했죠.”

    나는 겸손한 태도를 갖춘 채 말했다. 그러자 한 교감이 그런 태도도 마음에 든다며 크게 웃었다.

    “민 부장, 어때! 강 선생이라면 해낼 줄 알았다니까!”

    “겨우 전국대회 수상했을 뿐입니다. 진짜 입시는 지금부터….”

    “그래도 말이야, 어디 일반고에서 과고 애들이랑 이렇게 경쟁해 본 적이라도 있었나. 한국고도 이루지 못했잖아?”

    실제로 이번에 한국고에서 동석이와 함께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입상을 하지 못했다.

    한 교감은 강문고가 한국고를 이겼다는 사실이 기뻐해 마지않는 듯했다.

    “그래서 말인데 강 선생.”

    한 교감은 나에게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이번 특강들도 제대로 해 보자고.”

    종이에는 이번 논술 캠프 특강의 취지와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소개하는 보도용 글이 적혀 있었다.

    처음 논술 특강 오픈을 제안했을 때 이야기를 나누었듯이, 이번 논술 특강의 취지는 명확했다.

    <강문고 여름방학 논술 캠프 오픈! 교육 사각지대에 집중하다>

    강문고가 이번 논술 특강을 통해 강남, 서초에 거주하지만 가난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대치동 논술 일타강사 출신 국어 교사가 이끄는’ 이라는 문장도 적혀 있었다.

    ‘확실히 언론 플레이에는 능하군.’

    사학 비리 폭로 사건 때 한 교감은 언론을 장악하고, 그들을 활용할 줄 알기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잘못은 서서히 묻히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은 한 번에 키워나갔다.

    그런 방법으로 나 역시 학교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그런데 지금은 그런 한 교감의 언론 플레이 능력이, 훗날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용할 건 싹 다 이용하자.’

    언젠가 이들이 나에게 그렇게 했듯이, 이번에는 내가 이들을 이용할 차례였다.

    나는 한 교감이 건넨 종이를 읽으면서 연신 감탄을 했다.

    “전달될 내용 모두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감선생님께서 작성하셨습니까?”

    “암, 내가 작성하고, 민 부장이 수정하고 그랬지.”

    민지정 교무부장이?

    그렇다면 한 교감의 언론플레이 능력에는 민 부장의 실력도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조금 곤란해지는데.’

    어찌 되었든 이들은 품고 가기는 하나, 내가 폭로해야 할 대상들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급격하게 친해지거나, 이들의 방식에 익숙해져서는 안 되었다.

    “참, 오늘은 한 명 더 소개할 사람이 있네.”

    한 교감이 민 부장에게 손짓을 하자 그녀가 일어서서 문을 열고는 누군가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자 이번 방학 때 수리논술 특강을 담당해 줄 거야. 둘이 친하던데? 테니스도 같이 친다며?”

    “네, 맞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류 선생이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앞으로도 종종 치게 될 것 같습니다.”

    류 선생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간단히 고개를 까딱 움직이며 똑같이 빙긋 웃어 보였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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