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58화 (58/252)
  • 58화. 주제 정도는 괜찮잖아?

    소고기를 실컷 먹은 다음 날, 나는 류 선생의 연락을 받았다.

    모처럼이니 테니스라도 해 보지 않겠냐는 연락이었다.

    ‘한 교감의 말도 있었으니.’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의 나에게는 쉽게 말해 ‘편’이 부족했다.

    온전하게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교사는 지석 선배, 박 선생, 윤 선생 정도. 그나마도 이들은 교내에서 연차가 높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물론 한 교감, 이사장도 있었지만, 교감은 몸을 사리려고만 하는 사람이고, 이사장은 학교 내에서 교육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류 선생하고는 친해지면 안 되는데.’

    나는 류 선생이 갖고 있는 깨끗하지 못한 취미활동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미래에는 그 취미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으니까.

    그럼에도 오늘은 류 선생의 권유에 알겠다고 답했다.

    우선, 은장이에게 내 뒷조사를 시킨 사람이 류 선생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만약 류 선생이 맞다면 왜 그런 일을 계획했는지를 알아낼 생각이었다.

    “오 강 선생! 여기야 여기!”

    학교 테니스장 앞으로 가자 류 선생이 나를 반겼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챙겨온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왔다.

    “테니스 실력은 어때?”

    “솔직히 말씀드리면 초보 중에서도 초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오늘이 처음이에요.”

    나는 꾸밈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류 선생은 걱정 말라면서 테니스의 기초부터 알려 주었다.

    한 시간 정도 치고 나자 팔이 얼얼했다.

    잠깐 휴식을 하기 위해 코트에 마련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류 선생이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이온 음료를 마셨다.

    “강 선생, 동석이는 어떻게 됐어?”

    “우수상 받았습니다.”

    “…그래? 잘됐네, 축하해.”

    어쩐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류 선생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궁금해하던 걸 먼저 선수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류 선생님.”

    “왜?”

    “제 뒷조사 하고 다니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내 말에 류 선생이 놀라서 마시던 이온음료에 사레가 들렸다.

    “컥, 케헥, 큽.”

    흐르는 음료를 손등으로 닦은 그가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뒷조사라니.”

    “방금 그 반응을 보고도 믿지 말라고 하시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처음부터 강압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먼저 류 선생이 자발적으로 한 건지,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한 건지를 알아야 했다. 그렇기에 나는 류 선생을 독려하면서 이야기를 꺼내 볼 생각이었다.

    “선생님 탓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도움 드릴 일이 있으면….”

    “그런 거 아니라니까, 왜 그래 하하하.”

    류 선생은 평소의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답했다. 누가 봐도 억지로 지은 표정이었다.

    “아, 아무튼 오늘 재밌었어. 다음에도 종종 치자. 또 불러도 괜찮지?”

    “네, 연락 주십시오.”

    그는 빠르게 짐을 정리하고는 아직 덜 마신 음료수 병을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그가 사라지는 방향을 보면서 나는 무언가 불안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강문고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기운이었다.

    불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다시금 생각했다.

    역시 사교활동은 나랑 안 맞아.

    * * *

    “망할, 개같은.”

    그의 손이 움직이자 요란한 타자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류지훈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연신 두들기고 있었다.

    “네 까짓 게… 개자식!”

    류지훈은 점심 즈음에 테니스를 같이 쳤던 강명문을 떠올렸다.

    은장으로부터 받는 보고가 있었지만, 자신도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개인 과외 자리가 박탈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이미 강문고 수학 교사로 지내면서 과외로 번 돈만 수천은 물론이고 억을 넘겼다.

    교사 봉급은 봉급대로, 과외비는 과외비대로 받아서 류지훈은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 오늘 초임 주제에 나대는 병신교사 썰 푼다.

    그의 모니터에 강명문과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적히기 시작했다.

    즐겨 다니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그것이 류지훈의 취미활동 중 하나였다.

    -그런 새X도 선생임? 내가 더 잘할 듯.

    -그래서 과외 짤려?

    -관리자님 개고생하는 듯. 때려치고 사이트나 운영하자.

    -ㅅㅂ선생이 가르치는 거 잘 하면 됐지 뭘 더 바람?

    -새X 아는 척 오지네 ㅋㅋㅋㅋ 나였으면 면상 후려갈겼을 듯

    류지훈이 글을 올리자마자 십여분이 채 되지 않아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들로부터 위로를 받으면서 류지훈은 한결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근데 님네 학교에 쩌는 여학생들 많다며?

    질문이 달리자 류지훈은 씨익 웃으면서 키보드를 두들겼다.

    -ㅇㅇ걔 내 노예임 지금

    -미친, 여고생이 노예라니 쩐다.

    -미모의 여고생 노예로 만든 썰 푸냐?

    류지훈의 댓글은 글을 보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글 본문보다도 댓글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류지훈의 타자 속도도 빨라졌다.

    -예쁨?

    단순한 질문에도 류지훈은 생각나는 대로 댓글을 달았다.

    -얘 정도면 학교 얼굴 몸매 탑. 반년만 지나면 성인이라 그때 덮칠까 생각 중.

    -고3보다 더 어린 노예는 없음?

    -성적으로 약점 잡고 노예로 만든 거?

    -반년 뒤 합법 연애 가나?

    류지훈의 입꼬리가 올라간 채 계속 씰룩거렸다. 그는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며 커뮤니티 이용자들과 자신이 겪은 일들에 대해 글을 남겼다.

    과장과 허상이 절반 이상이었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갖는 성취감에 도취되어만 갔다.

    -그럼 그 개자식한테는 어쩔 거임?

    그러다 류지훈은 한 댓글에서 키보드를 멈췄다.

    과외 자리도 빼앗길 처지고, 한명심 교감의 눈에서도 멀어졌다. 민지정 교무부장 역시 이제는 자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강명문 때문에 교사직뿐 아니라 그 외의 일과 권위가 실추되었다고 느꼈다.

    ‘그 개자식이 설치지만 않았어도.’

    순간적으로 주먹을 쥐고는 키보드를 세게 내리쳤다.

    쾅!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서너 번을 더 내리쳤다.

    쾅! 쾅쾅! 쾅!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면서 그는 그 질문에 대댓글을 달았다.

    -매장시켜야지. 다시는 나대지 못하게.

    * * *

    고3에게 있어서 방학식은 그다지 환영할 만한 순간으로 남지 않는다.

    방학이기 때문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그건 교사들도, 학생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얼굴 봐라, 으이구.”

    그렇기에 나는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논술 캠프의 첫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정아야.”

    “네 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얼굴 구길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앞자리 구석에 앉아 있던 박 선생이 말했다.

    “… 지금 이 분위기에서 얼굴 안 구기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선생님?”

    “왜요?”

    “그게… 아니다, 됐어요. 말을 말아야지.”

    주위를 둘러봐도 내 기준에서는 하등 이상할 것 하나 없었다.

    일단 뒷문은 자물쇠로 잠가 두고 앞문만 열어둔 상태로 교실 입출입 체크표를 만들어 두었다.

    이 표를 보면서 학생들은 자신이 얼마나 자주 집중력을 잃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교탁 앞에는 대형 초시계를 올려 두었다.

    그 옆에는 간이 책상을 두고서 자양강장제 세트, 졸릴 때 찌르면서 공부할 수 있는 지압용봉을 놔두었다. 거기에 오리지널 블랙커피 100g짜리 두 개에 1회용 숟가락 세트를 놔뒀다.

    <물에 타지 말고 그대로 퍼먹을 것>

    이런 문구를 하나 추가해둔 상태였고.

    하루 14시간 공부가 쉬운 건 아니기에 피로를 이길 수 있도록 사비를 탈탈 털어서 준비를 해두었다. 그나마도 오늘은 방학식도 있어서 12시간밖에 못하지만.

    주기적인 환기 시스템을 도입해서 시간표에 맞춰 창문을 열고 닫고 할 것이었다. 당충전 하라고 커피사탕과 계피맛 사탕, 제일 쎈 박하사탕 봉지도 놔두었으니 당이 떨어질 일도 없을 거고.

    공부를 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데, 반응은 영 기대하는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

    “뭐 잘못됐습니까?”

    “쌤 아무리 그래도 이거는 저희를 말려 죽이겠다는 뜻 아닌가요?”

    정석이가 나름 반항을 해 보겠다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그런 정석이를 향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정석. 논술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루 평균 공부 시간은?”

    “10시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말해.”

    “…7시간 정도요.”

    “입시까지 남은 기간은?”

    “…죄송합니다.”

    연이은 내 질문에 정석이가 시무룩해하며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현재 교실에 모인 인원은 총 26명이었다.

    하루 14시간 특강이라는 데에 겁을 집어 먹은 학생들 몇 명이 취소를 했기 때문이었다.

    ‘근성 없기는.’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학생들 사이에서 이거 문제 삼을 수 없나? 학부모들은 별 얘기 없어? 하는 말들이 속닥속닥 들려왔다.

    그 이야기에 피식 웃으면서 교탁을 한 번 두드렸다.

    “조용. 너희들 하루 14시간씩 격일로 봐준다 그러니까 학부모님들은 제발 더 봐달라고 하셨다.”

    “말도 안 돼….”

    “진짜…?”

    학생들 사이에서 절망의 눈빛이 서려졌다.

    실제로 이 자리에 있는 학생들 중에는 저소득층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녀석들은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입시를 타이트하게 봐 준다하면 다들 좋아했다.

    그래서 학부모들의 반발은 없었고, 오히려 더 봐달라는 분들이 생길 정도였다.

    “여기 있는 너희들은 행운아들이야. 내 논술 수업 제대로만 따라오면 어지간한 시험은 만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준비해 온 프린트물을 내려놓았다.

    쿵!

    인원도 인원이고 하다 보니 인쇄물의 양이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여기 있는 녀석들은 논술의 니은 자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논술 초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기초적인 부분부터 알려 줄 생각이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2011학년도 논술시험 주제들을 토대로 기출지문, 문제까지 싹 다 정리해서 보여 줄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 시험 유출로 의심 받으면 그게 더 피곤하지.’

    내가 회귀한 사실을 모르고 믿어 줄 리도 없는 상황에서 기출문제를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적당히 기본적인 독해법, 작문법을 기반으로 알려 주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늦었으니 빨리 자료부터 전달한다. 읽어 봐.”

    학생들에게 건넨 자료는 논술 기본과 예시 기출 주제를 책자처럼 엮은 제본 책이었다.

    “우선 오늘 오전과 오후에는 논술의 기본부터 해서 지금까지의 기출문제를 토대로 직접 작성해 보는 시간을 가질 거다.”

    칠판을 한번 팡 치고서 학생들을 바라봤다.

    인상이 구겨져 있던 녀석들도 책자를 받아들면서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논리적 사고력이다. 그래서 먼저 글을 분석하는 방법과 나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어필하는 논술 전개방식부터 알려 줄 거다.”

    들고 있던 책자에서 작년 주요 대학교 논술 기출문제를 한번 보여 준 후 기출 주제를 정리한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이틀 뒤인 수요일부터는 이 기출 주제들과 관련된 지문을 토대로 예상 문제를 풀어 보게 될 거다.”

    그 표에는 주요 대학교의 예상 기출 주제들이 적혀 있었다.

    ‘제시문 그대로가 아니라 주제 정도는 괜찮잖아?’

    당연히 그 안에는 실제 2011학년도 논술 기출 문제의 주제들도 전부 포함되어 있었다.

    제시문 그대로 보여 주지만 않으면 나중에 생길 의심도 피할 수 있고, 족집게 교사라는 타이틀도 얻을 수 있다.

    그게 이번 논술 캠프에서 내가 추구하는 핵심 목표였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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