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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57화 (57/252)

57화. 쉴 틈이 어딨어!

동석이네가 도착했을 때는 서서히 해가 지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한 교감, 이사장과 함께 향후 학교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꽤 긴 시간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이번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할 것.

둘째, 그 과정에서 부정 입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할 것.

셋째, 입시 이외의 교육 목적의 활동을 할 것.

전체적인 방향은 시사RPG대회가 끝나고 이사장과 나눈 대화 내용과 비슷했다.

그 구체적인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선 첫째로 구상중인 입결 문제는 여름방학 특강에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진짜 이거 써도 되나요?”

나는 이사장의 신용카드를 들고서 물었다. 이사장은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 모두 고생했는데 당연히 그래도 되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사장님.”

내가 잠깐 말을 멈추고서 이사장을 바라보자 교무실 옆 복도에 침묵이 깔렸다. 한 교감은 아직 교감실에서 학교의 방향을 고민 중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교무실 옆 복도에는 나와 이사장만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장 궁금해했던 점을 물어봤다.

“이사장님께서 이렇게 학교에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사장이 아무리 강진 어른의 자손이라고는 해도 결국 이사장일 뿐이었다. 오히려 이런 학교의 변화나 발전이라면 교장이나 교감이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사장이라서 하면 안 되는 게 있나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내가 대답을 함과 동시에 이사장이 조용히 말했다.

“어떤 분하고의 약속 때문이에요.”

“약속이요?”

“네.”

그 약속이 어떤 약속인지까지는 이사장도 알려 주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교감실의 문이 열리면서 한 교감이 나오고 나서야 낯선 침묵이 깨졌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갈게요. 동석이에게는 축하한다고 꼭 전해 주시고요. 참, 학교 문 앞에다 플래카드라도 걸어두면 어떨까요? 언론에도 좀 뿌릴까 하는데.”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럼 내가 아는 언론사 기자들 몇 명에게 전달해 둘게요. 내용만 생각해서 알려 줘요.”

이사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학교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밖에는 수행비서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이사장은 수행비서를 따라 차량에 탑승했다.

“강 선생, 당장 월요일부터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데 괜찮겠나?”

한 교감은 멀어져 가는 이사장의 차를 뒤로 하고 나에게 물었다.

“논술에 애들 상담에 정신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해내야지요. 어렵다 싶으면 다른 분들에게 도움 요청 드릴 예정입니다.”

“심지석, 박은환, 윤기준 선생님인가?”

그도 내가 어떤 교사들과 친한지는 파악하고 있었다.

“더 계실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제가 2년차라….”

2년차라 정말 친하다 싶은 선생님이 별로 없다는 뜻으로 말끝을 흐리자 한 교감이 그럴 수 있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 아직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그가 말을 잠시 멈추자 나는 잠깐 핸드폰을 바라봤다. 곧 도착한다는 은장이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자 한 교감이 말을 이었다.

“자네 마라톤이나 테니스 같은 활동 해 볼 생각 없나?”

“운동을요?”

한 교감이 말하는 마라톤은 정말 선수급으로 준비하는 마라톤은 아니었다. 강문고 교사들 중에는 하프 마라톤까지를 즐겨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교사들은 대부분 경력이 꽤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류지훈 선생이 우리 학교에서 가장 친화력 좋은 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여러 체육활동을 해서 그런 게 커.”

실제로 류 선생은 윤 선생과 치던 테니스를 비롯해 마라톤, 등산, 축구까지 모든 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실력이 좋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열심히 참여하다 보니 많은 교사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을 외부에 말할 생각은 없지만.”

한 교감이 나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비밀리에 진행한다고 해서 자네 한 명에게만 온전히 맡길 수는 없어. 분명히 쓰러질 거야.”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도 애초에 나 혼자 모든 걸 해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다른 선생님들과 좀 친해지는 건 어떤가 싶어서 말이지.”

물론, 한 교감이 이렇게 말하는 건 단순히 나보고 다른 교사들과 친해져서 일을 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교감실에서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 받았으니 그와 관련이 되어 있겠지.

최근 은장이에게 내 뒷조사를 의뢰한 누군가와도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고.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 아무튼 이따 동석이 오면 축하해 주고. 난 먼저 가네.”

한 교감이 자리를 떠나고 십 여분이 지나자 윤 선생의 차량이 먼저 도착했다. 그는 능숙하게 주차를 하고서 자리에서 내렸다.

차에는 중간에 합류했는지 지석 선배도 타고 있었다.

“혼자 있네?”

“네, 선배. 이사장님하고 교감선생님은 먼저 들어가셨습니다.”

지석 선배, 윤 선생과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학교 안쪽으로 대형차 한 대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조수석에서 내린 동석이가 힘차게 대답했다. 녀석의 품에는 우수상장과 상패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 상장과 상패를 보면서 동석이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짜식, 잘했다!”

“헤헤, 감사해요.”

그리고 연이어 다른 학생들이 여러 짐들을 챙기면서 내렸다. 몇몇은 윤 선생 차량의 트렁크에서 내가 사전에 요청했던 키트들을 챙겨왔다.

“쌤 이것들 어디에 둘까요?”

“일단 교무실에 두자. 과학실에도 자리 없죠?”

“아직은 없어. 교무실 구석에 빈 자리 있으니 거기 쓰지.”

우리는 짐을 함께 옮기고서는 곧장 회식을 하러 이동했다.

렌트카를 반납도 할 겸, 회식 장소는 렌트카 업체 주변의 소고기집이었다.

“오늘 이사장님이 동석이 우수상 축하한다면서 카드를 주고 가셨습니다.”

내가 이사장의 카드를 한 손에 쥐고서 보여주자 다들 오오, 감탄을 내뱉었다.

“이야, 우리 후배님이 이사장님하고 친하니까 이런 일도 생기네!”

딱 한 명, 박 선생만 아쉽다며 말했다.

“그럼 강 선생님 돈 뜯는 건 실패인가요?”

“아니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습니까?”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대회 준비 때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주고 받았다. 현장에서의 이야기는 내가 없을 때 이루어진 일들이라 나는 오늘과 어제 대회 현장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K과기원 부교수의 관심과 취재진이 몰려왔을 때 동석이의 표정들이 재미있었다.

“참, 오늘 어떤 이야기 나눈 거예요?”

박 선생이 중간에 물었다. 오늘 이사장과 한 교감과의 회의 때 나눈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회의 사항을 꺼냈다.

“논술 캠프 이후에 자기소개서 캠프 오픈하기로 했습니다.”

“자기… 뭐?”

“자기소개서입니다. 입사관제 지원하는 학생들이 있으니 이것도 캠프 형태의 특강을 오픈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오늘 구두 승인도 받았습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한껏 들어올렸다. 그러자 지석 선배, 박 선생이 미쳤냐며 소리를 질렀다.

“이거 또 14시간짜리 아니에요?”

“미쳤네 이게 진짜. 야! 아무리 그래도 하루 14시간 특강을 어떻게 계속 도와줘!”

“네? 이번에는 14시간 아니에요. 12시간입니다.”

“그게 그거지!”

시끌벅적한 우리들 사이로 은장이와 동석이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쌤, 자소서 특강은 언제부터 해요?”

“일단 논술 특강 하다가 방학 직전에 알려 줄 거야. 은장이랑 동석이 너흰 꼭 신청해라.”

“넵!”

힘차게 대답하는 학생들 사이로 정석이와 정아는 14시간 특강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태성이는 자기소개서 수업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에 별 타격이 없어 보였다.

그런 태성이에게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안태성, 너도 준비해.”

“네? 뭘요?”

“뭐긴 뭐야, 자기소개서지.”

내 말에 태성이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물었다.

“쌤 저 논술 빼고는 버렸는데요?”

“버리긴 뭘 버려. 6 논술 쓸 거야? 모의고사 3등급도 턱걸이로 찍으면서 최저 못맞추면 어쩌려고? 그리고 내신은 상승세잖아. 너 국인대 경영 지원할 수 있어.”

나는 미리 준비해둔 종이를 보여 주었다. 종이에는 <국인대 글로벌 프런티어 특별전형(입학사정관전형)>이라고 제목이 적혀 있었다.

“준비해. 지금 너 학생부도 3학년 활동만 적당히 챙겨두면 가능해. 내가 괜히 너까지 동석이 대회 도와주러 간다 했을 때 놔뒀겠냐? 활동 채우라고 보냈지.”

태성은 내가 건넨 종이를 보면서 이게 정말 가능한가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1단계는 서류평가 100%. 경영학부만 선발하는데 인원이 50명이라 여유도 있고, 국인대면 추가합격도 노려 볼 수 있어. 제출 서류에 교사추천서랑 지인추천서는 어렵지 않고, 자기소개서만 잘 쓰면 돼. 어차피 학생부도 내가 작성해 줄 게 훨씬 많을 거고.”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을 바라봤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사회랑 영어 교과 세특은 여기 두 쌤이 도와주실 거고 말이야. 그리고 너 낯 두껍잖아. 면접도 준비하면 만점 받을 수 있을 거다.”

“쌔, 쌤 저 진짜 국인대 넣어도 돼요?”

태성이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면서 말을 더듬었다.

하긴 모의고사가 잘 나올 때나 3등급이지, 태성이의 성적은 평균 5등급 선이었다.

그러니 인서울 4년제 중에서도 국인대를 넣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을 것이었다.

“대신 태성이 네가 진짜 빡쎄게 준비한다고 가정했을 때야. 합격가능성 조금이라도 높여야지?”

“알겠습니다! 반드시 신청하겠습니다!”

녀석은 내가 건넨 종이를 소중하게 품으면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나 국인대 갈 수 있데! 소리가 가게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직 합격 한 것도 아닌데 저렇게 설레발을… 어휴.”

“그래도 강 선생님이 봤을 때 가능성이 보이니까 추천하신 거 아니에요?”

박 선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태성이가 작년 활동 보면 축제 때 부스 만들어서 뱃지 판매한 경험이 있더라고요. 그걸 경영이랑 엮을 수 있거든요.”

“어떻게요?”

“수익구조를 계산해 보거나 실제 경영 체험 사례나 모의 창업 계획서 작성, 다음 해 축제 때는 단점 개선, 수익의 사회 환원, 구성원들의 역할 분배로 인사 경영 활동 등등이요.”

내 말에 지석 선배가 고개를 저으면서 태성이를 불쌍하다는 듯 바라봤다.

“저 녀석도 고생 좀 하겠다….”

“그냥 캠프 특강 듣는 애들은 싹 다 고생길 아니에요?”

“동석이는 이제 막 대회 끝났는데 힘들겠네.”

세 교사의 혼잣말에 나는 손에 쥔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지금 입시가 코앞인데 무슨 한가한 소리란 말인가!

“이래서 쉬고 저래서 쉬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연민을 느껴서 봐주면 입시에서 어떻게 성공하겠습니까! 쉴 틈이 없어야죠! 자고로 입시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그날그날의 뉴스부터….”

“고기 나왔어요!”

은장이의 외침에 일행들이 일제히 고기로 눈을 돌렸다. 고기가 구워지는 불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서 잠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 정도는 뭐.

동석이의 대회 수상을 위해 모두가 힘써 주었다. 앞으로의 특강들에도 도움을 받은 선생님들이니 잘해 주어야 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당장 월요일부터 있을 논술 특강에서 녀석들을 어떻게 굴릴까 구상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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