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56화 (56/252)
  • 56화. 당연하죠!

    “K과기원이요?”

    윤 선생이 말하는 K과기원은 우리나라 최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교였다.

    포항에 있는 P공과대학교와 더불어 어지간한 스카이 준비하는 학생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과학, 공학 전문 대학교였다.

    솔직히 대회에서는 장려상만 받으면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서 우수상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성과였다.

    그런데 여기에 K과기원 부교수가 명함을 주고 갔다고 한다.

    대회에서 특이한 로봇, 좋은 실력을 선보인 학생들에게 대학 교수들이 흥미를 갖고 보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명함을 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래! K과기원! 동석이에게 같이 연구해 볼 생각 없냐고 제안했어!]

    게다가 연구 제안까지.

    아쉽지만, 지금의 동석이가 K과기원에 진학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나마 가능할 수 있었던 전형인 1차 전형은 이미 5월 중순에 원서접수가 마감되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 전에 회귀했다 해도 실적이 없었기에 동석이의 천재성을 보여 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설령 지금 부교수가 뒷배경으로 나타나 2차 전형에서 합격시킨다 해도 그건 입시 부정행위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고 제대로 경쟁을 하면 자사고, 특목고 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해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즉, 동석이가 올해 K과기원에 진학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보면 되었다.

    “아쉽네요.”

    [맞아. K과기원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나중에 어느 대학을 가든 연락하라고 했으니까 어쨌든 좋은 징조이지 않겠어?]

    “맞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제가 말씀드린 방법들은 잘 쓰셨죠?”

    내 질문에 윤 선생이 크게 웃었다.

    [당연하지! 아 박 선생? 잠깐만, 잠깐만.]

    박 선생이 옆에서 전화를 바꿔달라 했는지 잠시간의 적막이 있었다.

    [강 선생님.]

    싸늘하게 식어 있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네, 네. 박 선생님.”

    […소고기 사야 해요.]

    “소고기를 사라고요?”

    [논술 캠프 예정에 주말 동석이 대회까지. 이자를 몇 십 배 불려서 받아낼 테니까요. 그리고 오늘은 애들도 고생했는데 저녁 안 사세요?]

    나는 잠시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동석이 대회 준비하라고 지원해 준 돈이 학교 예산을 넘어간 게 많아 백만 원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제가 돈이 없….”

    “제가 사죠. 산다고 하세요.”

    어느새 이사장이 옆에 다가와서 나를 향해 카드를 하나 건넸다. 나는 얼떨결에 그 카드를 받아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애들한테는 꼭 제가 샀다고 이야기해 주시고요.”

    다시 교감실로 들어가는 이사장을 보면서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한 번 더 꾸벅 숙였다.

    “사겠습니다, 소고기.”

    [얘들아! 너네 담임쌤이 소고기 쏜댄다!]

    우와아아-!!

    우렁찬 함성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울려퍼졌다. 나는 살짝 핸드폰에서 귀를 떨어뜨려 놓았다가 다시 가까이 댔다.

    “아무튼, 이제 학교로 오시죠?”

    [네. 정리하고 출발하면 2시간 정도 후에는 학교 도착할 거예요.]

    “그럼 곧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환호했다.

    됐다.

    이제 동석이가 연천대에 지원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

    다른 대회도 아니고 전국로봇경진대회였다.

    로봇 대회 중 로봇올림피아드 다음가는 큰 규모의 대회였기에 의미가 있었다.

    ‘이제 추천서랑 자기소개서 준비만 잘 하면 된다.’

    나는 논술캠프와 함께 자기소개서 특강을 언제 오픈할지 고민해 보면서 다시 교감실로 들어갔다.

    * * *

    일산의 한 행사장.

    동석은 상장과 상패, 상금이 적힌 팻말을 들고서 겨우겨우 단상에서 내려왔다.

    내려오자마자 친구들이 달려왔다.

    “야 진짜, 넌, 야! 내가 너 해낼 줄 알았어!”

    정석이 소리를 질렀고

    “동석아, 꺼흑, 동석, 어윽, 축하해!”

    은장은 이내 소리내어 울며 축하를 했다.

    태성과 정아도 크게 기뻐했고, 상금이 적힌 팻말을 대신 들어 주었다.

    “아, 어, 아냐. 나 진짜, 어, 받았지?”

    사실 동석도 지금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대회에 온 어제만 해도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나 싶었으니 말이다.

    “그래! 동석아 너 우수상이다!!”

    옆에서 지도교사인 윤기준이 다가와서 그를 껴안았다. 두 팔이 으스러지듯이 강하게 껴안는 윤기준을 동석도 거부하지 않았다.

    “전부 쌤 덕분이에요!”

    “아냐 인마. 네가 잘 했지!”

    그렇게 서로를 축하하는 와중에 최우수상 시상까지 끝났다. 최우수상은 한국과학고 2학년 학생들에게로 돌아갔다.

    “한과고 애들은 1학년 때부터 준비하니까 쟤네랑 비교할 것 없어. 넌 겨우 두 달, 아니 한 달 준비했잖아.”

    윤기준이 동석을 위로하기 위해 말했다. 그때 윤기준의 뒤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다가왔다.

    “이게 한 달 준비한 결과물이라고요?”

    K과기원 부교수는 다시 한번 놀랐다며 동석과 윤기준을 바라봤다.

    “허어, 이건 지도한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학생 혼자 이걸….”

    “한 달이요?”

    “진짜 한 달 만에? 일반고에서?”

    어느새 취재진으로 K과기원 부교수의 주변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의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맞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작품은 바로 창작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최동석 학생의 작품, 건담인섹터Mk-3입니다.”

    그는 동석을 손으로 소개하며 말을 이었다.

    “과학고도 아니고, 일반고 과중반도 아닌 일반고의 문과반 학생입니다.”

    “과중도 아니라고요?”

    “네. 맞지요 선생님?”

    그의 질문에 윤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럼 이 학생의 담임선생님도 문과 선생님입니까?”

    “아 저희 담임쌤은 국어 선생님이에요.”

    그 말에 좌중이 한 번 더 놀라 뒤집어 졌다.

    문과 담임쌤이 가르치는 문과 반 학생이 전국로봇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게다가 심사위원인 K과기원 부교수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소개까지 했다.

    취재진은 이미 동석의 사진을 연신 찍어댔고, K과기원 부교수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나중에 아주 훌륭한 공학자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주변에 좋은 선생님, 친구들이 많아요.”

    그는 윤기준, 박은환을 바라보고는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동석의 친구들을 바라봤다.

    “그래서 이번 대회가 참 의미 있었습니다. 제 소감은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부교수는 대회 막바지 순서인 심사소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교수에 이어서 권운대 교수들과 기업체의 CEO 등 여러 심사위원들의 심사 소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내 공식적인 대회 폐막이 선언되었다.

    “최동석 학생.”

    대회가 폐막되자 K과기원 부교수가 다시 동석에게 다가왔다.

    “자네 우리 학교로 올 수 있나?”

    그 말에 동석도 윤기준도 깜짝 놀랐다.

    “어, 제가요?”

    “그래. 혹시 어려우려나?”

    동석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솔직히 공부를 잘 하지 않았고, 활동도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가. 아쉽구먼…. 재수할 생각은 없지?”

    “네, 없습니다.”

    K과기원 부교수는 아쉽다며 입맛을 다시고는 동석에게 물었다.

    “그럼 어느 대학을 목표로 하나?”

    “저 연천대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연천대? 거기가면 아이고, 후배 놈한테 뺏기겠네.”

    부교수는 아쉽다고 중얼거렸다.

    “알았어. 그럼 대학교 어디를 가든 내년에 나한테 연락해. 같이 연구 한번 해 보면 좋겠거든.”

    그러면서 부교수는 자신의 명함을 꺼내 동석에게 건네주었다.

    동석은 떨리는 손으로 그 명함을 받아 들었다.

    “저, 정말요?”

    “그래. 우리 학교 어디인지는 알지?”

    공학 전문 대학교 중에서도 탑을 찍는 이 학교를 모를 리가 없었다.

    명함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K과기원 마크. 그걸 보면서 동석은 고개를 연신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대신 연천대에 있는 그… 아니다 이것도 잘못 말하면 문제 되겠지. 아무튼 연천대 가든 고구려대를 가든 어딜 가든지 간에 나한테 제일 먼저 연락해야 해. 알겠지?”

    부교수는 동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동석을 격려했다.

    “그때 되면 국제대회 한번 나가도 좋고. 조금만 더 보완하면 이거 무조건 수상이야. 대학교는 우리 학교로 못 와도 대학원도 있으니까.”

    그 말을 들으며 동석은 부교수의 명함을 소중하게 손에 쥐었다.

    “네 교수님!”

    “고생 많았네. 내년에 꼭 보자고.”

    부교수가 사라지자 윤기준이 동석에게 다가왔다. 그는 동석이 쥐고 있는 명함을 보면서 역시, 하며 말했다.

    “K과기원 부교수 하동기가….”

    그는 정리가 되어가는 대회장 안에서 핸드폰을 들어 강명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동석의 우수상 수상 소식과 K과기원 부교수 하동기가 명함을 주고 간 사실까지 모두 전했다. 그리고 박은환도 강명문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소고기를 쏜다며 학생들에게 외쳤다.

    학생들이 고기를 먹으러 가는 사실에 기대감을 가지면서 짐을 하나 둘 정리했다.

    동석은 대회에 제출했던 건담인섹터Mk-3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벌써 Mk-4 생각하냐?”

    그런 동석을 움직이게 만든 건 정석이였다. 동석은 정석의 말에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응.”

    정석은 그런 동석의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이제 짐을 옮기자고 말했다. 동석이 알겠다고 하자 옆에서 태성도 와서 다 같이 동석의 짐들을 차로 옮겼다.

    “쌤 진짜 피곤한데 차에서 좀 자도 돼요?”

    태성이 묻자 박은환이 그러라고 답했다.

    “야, 너 쌤 운전하는데 잘 수 있겠어?”

    정석의 말은 당연하게도 박은환의 운전 습관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번에는 급할 일도 없으니까 안전운전할 거야. 걱정들 마.”

    그 속내를 박은환도 파악하고 정석을 노려봤다.

    “아, 하하, 넵.”

    “내가 옆에 탈게.”

    동석이 조수석에 앉겠다고 말하자 다른 친구들이 말렸다.

    “동석아 진짜 다시 생각해봐. 차라리 기준쌤 차 타고 가는게 편할 거다.”

    “어제 오늘 고생했는데 무슨. 내가 옆에 앉을 테니까 넌 뒤에서 좀 쉬어 응응.”

    친구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동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 안 피곤해. 생각하고 싶은 것도 있고.”

    동석이 끝까지 고집을 부렸기에 다들 알겠다고 수긍하고는 차에 탑승했다. 박은환이 안전운전을 하겠다고 말한 것도 있었고 말이다.

    윤기준은 개인 차량으로 이동하겠다고 해서 차를 홀로 끌고 갔다.

    학교까지 앞으로 20여 분쯤 남았을 때 뒤에 앉은 학생들은 모두 곯아떨어졌다. 박은환이 정말 안전운전을 하는 모습에 안도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운전을 하는 박은환과 조수석에 앉은 동석만이 눈을 뜨고 있었다.

    “쌤.”

    “응?”

    박은환은 시선을 정면으로 유지하면서 동석의 물음에 답했다.

    “감사합니다.”

    “뭐가?”

    “중간에 건담 이야기해 주셔서요. 그때 안 오셨으면 아무런 설명도 못했을 거예요.”

    동석은 박은환과 친구들이 와서 도와준 일들을 떠올렸다.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인터뷰어와 취재진들의 관심 속에서 평소처럼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역할이 컸다.

    그 중에서도 동석은 평소 동아리 시간에 이야기를 자주 나누던 박은환과의 수다가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게. 우리가 와 준 덕분에 우수상도 받고, K과기원 부교수님 명함도 받고. 그치?”

    “헤헤, 진짜 감사해요. 나중에 대학 붙으면 제가 선물 쏠게요.”

    “됐어. 선물은 무슨.”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동석을 잠깐 바라봤다. 여전히 상장과 상패를 몸에 안고 이동하는 동석의 손에는 부교수의 명함도 들려 있었다.

    그런 동석을 보면서 박은환은 대회가 끝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동석아.”

    “네 쌤.”

    밝게 웃으면서 무언가를 또 생각하고 있었던 동석에게 그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재밌었니?”

    이에 동석이 환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당연하죠!”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