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55화 (55/252)
  • 55화. 은밀한 회의

    동석이가 한창 대회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나는 한 교감의 호출을 받아 교감실로 불려가 있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박 선생과 통화를 마친 이후부터 쭉 교감실에 잡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최동석이 대회였지?”

    한 교감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가 다시 넣으며 답했다.

    “맞습니다.”

    “안 가 봐도 되겠어요?”

    내 말에 대답한 사람은 한 교감이 아닌 강은숙 이사장이었다.

    “윤기준 선생님과 박은환 선생님이 계십니다.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걱정되지는 않아요?”

    지금 이 자리는 강문고의 입시 실적 향상을 위한 입시 대책 회의였다.

    여기에 아직 2년차밖에 되지 않은 내가 참석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먼저, 소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했던 최동석의 변화가 주목받았다.

    수행평가 항목을 다양하게 만든 게 장학사로부터 입시 전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거기에 시사RPG대회에서는 학생들이 숨겨 놓은 끼를 마음껏 보여 줄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한목대 특강을 통해 이제는 공부만 잘 하는 입시는 끝났다는 것을 여실히 밝혀주었다.

    이런 평가를 이사장과 한 교감이 함께 내렸고, 그 결과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두 사람으로부터 내가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상담을 해 주었는지 궁금해하였기에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 주었다.

    사실 한 교감은 이사장의 들러리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이들에게 동석이의 입시 준비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 이사장은 내가 열심히 준비해온 동석이의 외부대회에 신경이 쓰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었다.

    “어차피 대회 현장에는 지도교사 아니면 참가자를 도와주는 소수 학생들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로봇을 알려 주지도 않았으니 입장 자격도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잠깐 이사장을 바라봤다. 그녀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듯 양손으로 턱을 받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궁금할 텐데요?”

    “두 분 선생님과 애들한테 동석이 도와주라고 설명 모두 해뒀으니까 정말 괜찮을 겁니다.”

    내 말에 이사장은 그들에게 어떤 설명을 했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곧이어 오늘 회의의 주제에 대해 꺼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제가 이 자리에 정말 있어도 되는 건가요?”

    보통 이런 입시 전략 회의는 연차가 높은 교사가 하거나 부장 교사들이 주도한다. 그런데 오늘은 임 부장도, 민 부장도 없었고 나보다 연차가 높은 지석 선배나 류 선생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에 불려왔다. 이사장과 교감, 단 둘만 있는 이 자리에.

    분명 평범한 입시 전략 회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실 이 자리는 비밀리에 진행되는 회의야. 자네도 다른 사람들에게 오늘 여기서 나눈 이야기는 하지 말게.”

    혹시나 싶었는지 한 교감이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알겠습니다.”

    “강명문 선생님은 우리 강문고의 분위기를 대번에 바꿔 놓은 유능한 선생님이에요.”

    갑작스런 이사장의 말에 나는 무슨 의미인가 싶어 눈을 가늘게 떴다.

    “의심하는 거예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왜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지난 미팅 때 말씀드린 것처럼 선생님의 업적이 정말 뛰어나기 때문이죠.”

    그렇게 말하며 이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작은 막대사탕을 하나 들고 나에게 권했다.

    나는 그 사탕을 거절하지 않고 포장지를 뜯어 입에 넣었다.

    “달달하죠?”

    “네, 정말 다네요. 제 취향은 아닙니다만.”

    나의 마지막 말에 한 교감이 입을 떡 벌리고 미쳤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모습에도 이사장은 호호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을 오늘 뵙자고 한 거예요.”

    “사탕 때문에요?”

    한 교감이 그만 좀 하라며 내 몸을 쿡쿡 찔렀다.

    “사탕도 사탕이죠. 그거 해외에서 사 왔거든요.”

    “어쩐지 너무 달다 했습니다.”

    “네, 바로 그거예요.”

    이사장은 나에게 건넨 사탕을 한웅큼 쥐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지금까지 우리 강문고는 달콤함에 빠져 있었어요.”

    테이블 위에서 막대사탕들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이사장은 사방으로 뻗어 있던 사탕들을 다시 한쪽으로 모았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 가지 방향으로만 생각했던 거죠.”

    2010년 이전까지, 강문고는 철저하게 수능 위주의 공부를 해 왔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면 수업에서 배제되었다. 그런 학생들은 강남서초권의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들이 발생해 왔었다.

    갖고 싶은 물건을 가져 보겠다며 도둑질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공부가 조금만 안 된다 싶으면 학교를 빠지고 학원만 돌겠다고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것도 안 되면 정석이네 부모처럼 자식을 해외로 일찍부터 보내겠다며 유학을 결정하기도 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이사장은 그런 사건들을 모두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이 보기에는 왜 그랬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지나친 실적 위주 수업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없이 큰 목소리로 한 교감이 대답했다.

    “교감 선생님, 지난번에는 한국고를 넘어서는 입결을 내야 한다고….”

    “에잉 이 사람아! 입시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하는 게 교육자 아닌가! 그 과정에서 대학교도 잘 가면 좋은 거고!”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게 드러나는 한 교감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먹던 막대사탕을 입에서 빼냈다.

    “교감 선생님 말씀도 맞아요.”

    “네?”

    “우리는 한국고를 넘어서는 입결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학교에 오죠.”

    이사장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면서 세속적인 답변을 했다.

    “학교 운영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점 이해하시죠?”

    “네.”

    “하지만, 경영과 학생들 교육을 모두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면요?”

    그리고는 테이블에서 한쪽 방향만 가리키던 막대사탕이 이제는 여러 방향으로 펼쳤다.

    “이제는 수능 위주의 공부만 파서는 안 됩니다.”

    이사장의 말은 꽤나 무게감이 있었다.

    “아뇨, 수능이 문제가 아니라, 공부 잘 하는 학생을 편애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꽤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듯 막힘없이 술술 이야기를 해나갔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라서 교사가 개인 과외를 해 주어서도 안 될 것이고.”

    그 말에 한 교감이 몸을 움찔했다.

    “공부를 못 하는 학생이라고 무작정 사교육이나 받으라고 상담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갑자기 입시코디를 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움찔했다.

    “그런 점에서 강 선생님의 최근 행보가 제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네?”

    “특히 한목대 특강 때 의과대학장이 선생님 칭찬을 침이 마르게 하더군요.”

    그녀는 서윤수 의과대학장이 나에 대해 평가했던 말들을 하나씩 꺼냈다. 족집게 강사가 따로 없다는 둥, 상황판단력이 뛰어나다는 둥, 그런 선생이 있는 강은숙이는 좋겠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낯간지러운 말을 들으면서 나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반대로 묻고 싶군요. 저와 한 교감이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요?”

    이사장이 지긋이 한 교감을 바라보자 그도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이사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최대한 강 선생님을 지원해 주시라는 말씀이죠. 아니면 교감 선생님도 이전처럼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상담해 주시려고요?”

    뼈있는 이사장의 말에 한 교감이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하고 쭈뼛거렸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 가장 입시 변화에 민감한 선생님이 바로 강 선생님이에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그건… 그럴 수 있습니다.”

    내 답변이 꽤 재미있었는지 이사장이 크게 웃었다. 한 교감도 미친 소리 그만하라면서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자네 무슨 그런 소리를 하나!”

    “아뇨, 그게 아니라 저는 정말 입시 정보에 해박합니다.”

    “명문대쪽에 아는 교수라도 있나봐요?”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영업비밀인 걸로 하겠습니다.”

    또 한 번 한 교감이 미쳤냐며 한 소리를 했지만, 이사장은 반대로 소리내어 웃기만 했다.

    “좋아요. 그럼 어떤 걸 도와줄까요?”

    나는 잠시 생각을 해 본 후 필요한 사항들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먼저 이번 방학 때 논술 특강이 열립니다. 이 특강은 5일로 한정인데, 필요시 제가 임의로 특강일자나 다른 특강 오픈을 해도 괜찮을까요?”

    “좋아요. 편한대로 하세요. 그리고요?”

    “곧 수시 원서 접수 기간입니다. 여름방학 동안 학생들이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자기소개서 특강도 오픈했으면 합니다.”

    “자기소개서도 논술처럼 캠프로 할 생각인가?”

    “맞습니다. 다만, 자기소개서는 하루 14시간이 아니라 하루 12시간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가 더 떠올라서 급히 말했다.

    “참, 자기소개서 특강을 할 때 학생들에게 사무용 노트북 하나씩 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학교 예산 사용하기는 힘들지. 애들이 컴퓨터가 없나?”

    “어느 지역이나 소득격차는 있죠. 동석이네도 저소득층과 일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고요.”

    한 교감의 질문에 이사장이 대신 대답했다. 오히려 이 동네 학생들의 사정은 이사장이 더 많이 알고 있는 듯했다.

    “그건 제가 개인 노트북을 지급해 주도록 할게요. 아는 분한테 렌트할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30대 정도 부탁드립니다.”

    “아니 30대나 필요한가?”

    나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세 개 들어 보였다.

    “이번 논술 특강 신청자만 30여 명이 됩니다. 논술은 다행인 게 인쇄만 많이 하면 됩니다. 현장에서 수기로 작성하기 때문이죠. 반면….”

    “아, 자기소개서는 인터넷에서 써야 하는군!”

    한 교감이 이제야 알겠다며 내 말에 반응했다.

    “맞습니다. 인터넷 접수를 해야 하기에 자기소개서는 컴퓨터로 작성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소개서 특강 때는 개인 노트북을 반드시 지참해야 합니다. 데스크탑을 한 교실에 30대 설치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루에 12시간인 이유도 그것 때문인가요?”

    “네. 멀티콘센트를 쓰더라도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도 제한적이고, 풀충전 하더라도 6시간 내외가 최대입니다. 배터리 부족하면 충전하는 도중에 책을 읽거나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효율이 좋지는 않습니다.”

    “컴퓨터실을 사용할 수는 없을까?”

    “교감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 컴퓨터실 컴퓨터 성능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인터넷 창 하나 여는 데 5분은 걸립니다.”

    “으음….”

    실제로 강문고 컴퓨터실의 컴퓨터는 성능이 매우 좋지 않았다. 2000년에 일괄 구매한 이후 업그레이드를 전혀 하지 않았고, 관리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한글 프로그램에서 글자를 쳐도 반 박자 늦게 타자가 입력되는 컴퓨터도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선생님들이 수시 상담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까지는 정시 상담 위주였으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입시 준비와 강문고의 변화를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열띤 토론을 했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만, 우선 여름방학 자기소개서 특강은 반드시 준비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좋은 의견이 많이 나오네요. 그럼….”

    이사장이 시계를 바라보며 식사시간도 늦었는데 슬슬 마무리를 하자고 말했다.

    어느새 몇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아, 잠시 전화만 받겠습니다.”

    “네, 받고 오셔요.”

    이사장의 허락에 나는 교감실을 나가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핸드폰을 열었다.

    “윤 선생님?”

    [강, 강 선생! 강 선생!]

    전화기 너머로 윤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끝났어요?”

    [동석이! 동석이 우수상이야!!]

    그렇지 않아도 옆에서 은장이와 정석이 목소리, 그리고 박 선생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잘 됐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야.]

    윤 선생은 잠시 기침을 하며 숨을 고르더니 말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K과기원 부교수가 동석이에게 명함을 주고 갔어!]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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