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54화 (54/252)
  • 54화. 수륙양용

    서너 시간 전.

    박은환은 강명문과 동석의 대회 현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조언을 듣고 있었다.

    “그거 말고는 없어요?”

    [아마 동석이는 대회 현장의 분위기도 분위기인데, 밀착 취재하려고 하는 기자 때문에 힘들어할 겁니다.]

    강명문은 이번에 동석이 참가하는 대회가 전국대회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서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에 따라 당연히 취재진도 올 수밖에 없고, 관심이 있는 다른 학교 방송부원들도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든 팀에게는 학부모들이나 교사들이 접근하기도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접근했을 때 어떤 로봇인지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본방 때는 더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그러면 대회 수상이 물 건너가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불안한 말에 강명문이 웃으면서 답했다.

    [그래서 은장이네가 가는 거죠. 걔네들이 바리케이드를 세워 주면 됩니다.]

    그러더니 강명문은 학생들의 역할에 대해 알려 주었다.

    [동석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일상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대회 장소는 동석이에게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박 선생님께서 잘해 주셔야 합니다.]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강명문이겠지만, 그는 지금 한명심 교감에게 불려가 있었다.

    그래서 강명문은 가장 믿을 수 있는, 동석과 가까운 교사 중 한 명인 박은환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해 볼게요.”

    [고맙습니다. 부담만 드리고 있네요 최근.]

    “하…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나중에 봐요.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전화를 끊으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박은환은 동석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현재.

    지금 박은환은 동석으로부터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학생들의 역할에 맞춰 모든 세팅은 해두었다.

    그 덕분에 동석의 주변을 자신의 작품으로 꾸며두었다. 굳이 학교 책걸상을 들고 간 것도 익숙한 자리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동석의 주변에서 취재진을 막아 주면 좋았겠지만, 그건 대회 운영에 맞지 않아 거부되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취재진이 왔을 때 박은환이 먼저 선수를 쳐 동석의 로봇에 대한 설명을 듣는 방법이었다.

    “쌤 그래서 여기에는 제가 기준쌤한테 배운 코딩에….”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동석은 마치 자신의 보물을 자랑하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도저히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박은환에게는 익숙했다.

    그녀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몇몇 취재진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뭐, 뭐야.”

    “쟤 방금까지 말 더듬던 애 맞아요?”

    처음 동석에게 다가왔던 인터뷰어는 물론이고 다른 취재진도 동석의 새로운 모습에 서서히 다가왔다.

    “담아, 담아.”

    동석은 이제 능숙하게 건담인섹터Mk-3를 조종했다.

    “제가 분리수거 로봇으로 만들기는 했는데, 역시 데빌즈 건담 참고한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확실히 동석의 로봇은 중심이 잘 잡혀서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어 보였다.

    로봇에 대한 지식이 건담 같은 애니메이션 로봇 이외에는 없던 박은환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대단한데? 윤기준 선생님께서 도와주신 거야?”

    “아니, 그건 동석이가 혼자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한 발짝 멀리서 지켜보던 윤기준이 어느새 다가와서 설명을 보탰다.

    “솔직히 놀랐지. 과학고도 아닌데 어지간한 대학생 이상의 지식을 갖고 있더라고.”

    윤기준은 일부러 인터뷰어, 취재진들이 잘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특히 다리쪽. 저거 곤충형 구동을 하려고 여러 실험을 한 결과야.”

    그는 손가락으로 동석이 제어하는 로봇의 다리를 가리켰다.

    “사족 보행로봇의 보행동작도 참고하면서 만들었거든. 그래서 Walking motion의 각도가….”

    윤기준은 설명을 이어나가다가 살짝 박은환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윤기준이 담당할 차례였다.

    지도교사로서 학생이 얼마나 깊은 탐구심을 통해 지금의 로봇을 만들어 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만큼의 지식과 호기심을 충족해냈는가.

    그 점들이 로봇 대회의 평가요소에 고스란히 들어가게 된다.

    “이번 주제에 맞게끔 분리수거에 특화된 로봇을 선보이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중 창작부분에 좀 더 집중했어요.”

    윤기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석의 말이 이어서 들려왔다.

    “여기 보시면 곤충다리처럼 만들었잖아요? 여기에서 아크릴관을 사용하면 물에서도 움직일 수 있게 만들 수 있어요.”

    동석은 챙겨온 아크릴관을 보여 주면서 박은환에게 자랑을 했다. 박은환이 신기한 듯 로봇을 만져보면서 물었다.

    “그럼 이게 물 위에서도 쓰레기를 줍는 거야?”

    “아뇨, 물 위에서도 쓰레기를 주울 수 있기는 한데 그렇게 되면 균형을 잃어버려서 물 위에 떠도 금방 가라앉을 거예요. 대신.”

    건담인섹터Mk-3에 달려 있는 다리들을 한족으로 모아 몸을 웅크리게 만든 동석은 아크릴관 내부를 보여 주었다.

    “여기 있는 관으로 녹조나 기름 같은 것들 있죠? 그런 오염된 부분을 흡수하는 거예요.”

    “정말? 그럼 정화도 되고?”

    “정화도 되죠. 최대한 내부 필터로 오염물질을 걸러내고 다시 배출하는 형태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동석은 머리를 살짝 긁으며 아쉽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근데 아직 재료도 부족하고 솔직히 인원도 부족했고…. 재료랑 팀원들 몇 명만 더 있었어도 훨씬 더 완성도 높아졌을 거예요.”

    실제로 동석이 이야기한 건담인섹터Mk-3는 단순히 물건을 집어서 옮기는 형태의 로봇으로만 제작되지 않았다.

    데빌즈 건담에서 하체의 힌트를 얻었고, 비행과 육지, 수상을 오가는 건담 로봇의 변신 형태를 참고해서 수륙양용 분리수거 로봇을 구상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건담인섹터Mk-3였다.

    물론, 이제는 건담의 팔이라거나 몸통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크기 역시 처음 구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커졌다.

    그래도 이 이름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었다.

    “근데 왜 계속 건담인섹터야?”

    박은환의 질문에 동석이 약간 쑥스럽다며 웃었다.

    “그냥 처음 만들었던 로봇이름에 애착이 가서요.”

    말 그대로 순수한 답변에 박은환도 할 말을 잃었다.

    그건 주변에서 동석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지금 수륙양용이라 그랬어?”

    취재진 중 한 명이 동석의 말을 캐치하고는 옆의 동료에게 물었다.

    “그런 것 같은데….”

    “저걸 일반고에서 만들었다고?”

    “과고나 자사고는 아니죠?”

    “강문고야. 강남서초권 명문고이기는 하지만….”

    “저걸 혼자 만들었어?”

    “네? 부원이 없어요?”

    “저기 저 선생이랑 학생 혼자 했나 본데?”

    “진짜 수륙양용이 되는 거야?”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윤기준과 박은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분위기는 만들었다.

    남은 건 동석의 구동 시연과 대주제, 소주제에 대한 설명이었다.

    “다음 준비해 주세요.”

    그때, 인터뷰어를 비롯한 취재진 옆으로 심사위원단이 다가왔다.

    “강문고 로봇동아리 최동석 학생 맞나요?”

    “그래서 이게 물에 뜨기만 하면 4대 강 녹조도….”

    “…최동석 학생?”

    “동석아, 너 부른다.”

    박은환이 동석에게 일러 주고서야 동석은 심사위원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헙, 네, 넵! 최동, 최동석 여기, 여깄습니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전까지 열심히 로봇의 원리와 디자인의 창작과정을 설명하던 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얼빠진 답변이었다.

    “학생 로봇 설명들은 사실 방금 전부터 다 듣고 있었어요.”

    “어, 어, 언, 언제부터요?”

    “데빌즈 건담 어쩌고 하는 부분부터요.”

    온화한 미소를 가지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웃으면서 말했다.

    “반가워요. 그럼 이거 어떻게 구동되는지 한 번 보여 줄래요?”

    “네, 네! 알겠습니다!”

    동석은 떨리는 손으로 건담인섹터Mk-3를 리모콘으로 조종했다. 긴장하기는 했지만, 동석의 로봇은 심사위원이 원하는 주제인 분리수거의 창의성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호오, 흐음.”

    중년 남성 심사위원이 동석의 로봇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이거 보니까 변신도 되는 거 같던데?”

    “아, 넵!”

    “지금 해 볼 수 있어요?”

    아크릴관을 손에 쥐고서 동석은 살짝 불안해했다. 하지만, 이내 눈을 빛내고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네!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바로 하겠습니다!”

    “그럼 1시간 뒤에 다시 올 테니까 그때까지 조립해 둘래요?”

    동석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모습에 중년 남성 심사위원이 기분 좋게 웃었다.

    “잘 만들어 봐요. 이따 봅시다.”

    심사위원이 다른 팀으로 이동하자 동석이 서둘러 아크릴관 여분을 꺼내왔다.

    “도와줄까?”

    옆에서 윤기준이 물었다. 그러나 동석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만들어야 해요.”

    동석의 단호한 말에 윤기준도 더 권하지 않았다.

    [분위기만 형성되면 동석이 독무대가 될 겁니다.]

    강명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박은환에게 다가갔다. 박은환 역시 강명문이 했던 말을 떠올렸는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동석이 로봇을 변신시키는 과정을 구경했다.

    “된 것 같죠?”

    박은환의 물음에 윤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윤기준은 방금 지나간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보았다.

    ‘K과기원 부교수가 주목할 정도면….’

    심사위원 중에서도 기업 CEO나 로봇신문 편집자보다 지금의 동석에게는 대학 교수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중요했다. 게다가

    ‘정말 수상용으로 제대로만 만들면….’

    충분히 수상을 노려볼 수 있다. 윤기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박은환에게 말했다.

    “한 시간만 버티자.”

    윤기준의 말에 박은환도 긴장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를 했다. 혹시나 취재진이 다가와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봐라 저기.”

    방금 K과기원 심사위원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몇몇 인원들이 동석에게 무언가를 물으려 다가왔다. 그들을 막아서려는 때 윤기준보다 앞서서 남학생 한 명이 나타났다.

    “죄송해요. 지금 제 친구가 초집중 상태라 말 걸어도 뭐라 답변도 못 할 거예요.”

    정석의 뒤로 태성이 다가와서는 능청스레 말했다.

    “동석이한테 궁금한 거 있으시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저 쟤랑 친해요.”

    정아는 그런 태성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친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뭐? 야, 그래도 친한 건 친한 거지 안 그래?”

    티격태격대는 학생들, 그들을 말리는 은장, 취재진을 막는 정석을 보면서 윤기준은 신기한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학교들 중 이렇게 활기찬 학교가 있었나.

    윤기준은 지금까지 근무했던 여러 학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적어도 지금만 한 곳은 없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학생들과 그들을 인솔해 온 박은환을 돌아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대회의 주인공인 동석을 향해 눈을 돌렸다.

    이제 동석은 수상용 로봇 조립의 완성을 앞두고 있었다.

    “동석아.”

    “네, 쌤!”

    “온다. 준비해.”

    윤기준은 서서히 다가오는 K과기원 부교수의 방향으로 고갯짓을 했다. 그의 옆에는 젊은 남성 연구원 한 명이 같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 완성했구나. 원리는 방금 말했던 것처럼 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호오 흐음… 이게 그런 원리로… 그렇단 말이지.”

    혼잣말을 반복하던 K과기원 부교수는 옆에 있던 남성 연구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나?”

    “물에서 제대로 뜨고 작동 잘 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치? 이거 꽤 괜찮은 아이템인데 말이야.”

    턱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던 부교수는 결심이라도 한 듯 동석에게 물었다.

    “영어 좀 하나요?”

    “나, 나쁜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얘 영어 논문 보는데요?”

    남성 연구원은 동석의 책상에 펼쳐진 로봇도감 중 일부를 부교수에게 보여 주었다.

    “이걸 다 읽었니?”

    눈을 크게 뜬 부교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자신이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네, 네.”

    “여기 적어둔 건?”

    “그… 읽고 요약하거나, 궁금한 거, 그런 거 적어둔 거라… 좀….”

    동석이 보여 주기 부끄럽다며 머리를 긁자 K과기원 부교수가 신기한 녀석이라며 가볍게 웃었다.

    “재미있구먼. 좋은 로봇 잘 봤네. 고마워.”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있을 시상식이 기대 되는구만.”

    부교수가 동석의 로봇을 평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팀의 심사가 마무리되었다.

    <이번 대회 심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낸 사회자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연스레 동석과 친구들, 윤기준, 박은환도 모두 사회자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여러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로봇을 보여 준 참가 학생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상식을 위해 준비된 무대 위로는 심사위원 다섯 명이 올라왔다. 그중에는 K과기원 부교수도 자리해 있었다.

    사회자는 심사위원들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힘차게 말했다.

    <그럼 2010년 전국로봇경진대회 시상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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