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52화 (52/252)
  • 52화. 딱 하루만

    “그게 무슨 뜻이에요?”

    박 선생은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나에게 되물었다.

    “부모님이 과도하게 무언가를 요구했을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국제중학교에 보내려고 했다거나, 중학생 때는 자사고나 특목고에 보내려고 했다거나. 그런 사례는 많이 들어보셨죠?”

    “네, 들어는 봤지만 그게 준기랑 왜 연결이 되는 건가요?”

    나는 박 선생에게 준기의 성적표와 학생부의 내용을 한 번 더 읊어 주었다.

    “모의고사는 잘 보는데, 내신은 낮다. 하지만, 특정 과목은 높다. 하고 싶은 공부만 하는 거다. 그럼 왜 준기는 하고 싶은 공부만 하는 걸까요?”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는 아닐 테고….”

    거기까지 말한 박 선생이 무언가 알겠다며 눈을 빛냈다.

    “다른 과목은 자신이 없어서 아닐까요?”

    “그러면 모의고사도 성적이 안 좋아야죠.”

    틀렸다고 땡, 소리를 내며 박 선생에게 다시 답안을 제출하라고 재촉했다.

    다시 머리를 끙끙 앓던 박 선생이 답했다.

    “잘 하는 게 국어뿐이라서?”

    “아까랑 다를 게 없군요. 땡.”

    “내신 공부가 맞지 않는다?”

    “땡.”

    “수능식 문제풀이가 자신 있다?”

    “땡.”

    “글을 좋아해서… 도 아닐 거고요.”

    “네. 당연히 아니죠.”

    이쯤 되자 박 선생이 오기로라도 정답을 찾겠다면서 열을 냈다.

    “슬슬 수업 올라가야 할….”

    “아 놔 봐요. 맞춰 볼 테니까.”

    박 선생은 잡히지도 않은 소매를 누군가의 손으로부터 털어내듯이 마구 휘저었다.

    교재를 들고 이동을 하면서도 그녀는 머리에서 김이라도 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씩씩댔다.

    “아!”

    계단을 올라가던 박 선생이 이번에야말로 맞추겠다며 나를 향해 손가락을 휘적거렸다.

    “사춘기 반항!”

    “절반은 정답이네요.”

    “엥…. 왜 절반이에요?”

    이제야 맞췄나 기대하던 박 선생이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단순한 반항은 아니에요. 이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여러 생각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학생들은 정말 꿈과 희망 전공이 명확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또 어떤 학생들은 부모님의 가업을 잇기 위한 공부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부모님과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기도 했다.

    준기는 부모님과 반대 의견을 가진 학생이었다. 여기에서도 정말 대놓고 부모님과 다투는 학생이 있고, 소심하게 반항을 하는 경우가 있다.

    준기는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소심하게 표출하는 쪽이었다.

    “복수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 대부분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부모님 말대로만 살지는 않을 거예요.]

    [엄마 말만 들었다가 다 실패했어요. 그러니까 내 맘대로 할 거예요.]

    준기는 지금 딱 이런 마인드다.

    지금까지 입시 상담을 해왔던 여러 학생들 중 부모님과의 갈등을 겪었던 학생들을 떠올리면서 박 선생에게 말했다.

    “제가 교무실에서 말씀드린 거 기억나세요?”

    “네, 부모님 때문에 인생 꼬였다고….”

    나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어릴 때부터의 스트레스가 지금까지 준기에게 쌓여 있을 겁니다. 학생만 따로 상담을 해 보셨나요?”

    “아뇨, 지난번에는 어머님 동반 상담이었어요.”

    “그럼 이번에는 학생만 따로 불러 보세요. 아마 이번 학평도 아주 잘 볼 겁니다. 탐구만 빼고요.”

    그러자 박 선생이 설마 그러겠냐면서 되물었다.

    “그것도 반항인가요?”

    “네. 일부러 틀렸을 겁니다.”

    “하고 많은 과목 중에 왜 사탐인가요?”

    “국수영 기본은 잘 해야 학원 다니라는 잔소리는 안 들을 테니까요. 적당히 잔소리도 안 들으면서 부모님 심장 쪼이게 하려면 항상 2등급 정도 찍던 사탐이 5등급 찍어주는 겁니다.”

    이런 학생들의 경우 정말 치밀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일부러 고3 들어가기 직전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숨기다가 완전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모의고사는 모두 1, 2등급을 찍다가 수능 때만 일부러 3등급 아래로 받아서 재수, 삼수, 사수, 오수를 반복하는 학생도 있었다.

    다양한 방식 중에서도 지금 준기는 본인이 혼나지 않으면서도 부모님의 기대를 무너뜨리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준기만 불러서 이야기를 해 주세요.”

    “어떻게 할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방금 말씀드린 그 단어, ‘복수’입니다.”

    그러자 박 선생이 눈살을 찌푸렸다.

    “부모님에게 복수를 하라고요?”

    “우선 복수할 만한 사연이 있었는지 파악은 해야겠지만요. 아마, 있을 겁니다. 진학과 관련되어서 말이죠.”

    그리고 우리는 각자 수업할 교실에 도착해서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돌아서면서까지 박 선생은 복수를 중얼거렸다.

    아직은 상담 방향을 명확히 떠올리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박 선생이라면 상담 현장에서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게다가 여기서 더 조언을 해 주는 것도 오지랖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뭣하면 동석이 대회 전에 한 번 더 설명해드리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교실에서 출석부를 불렀다. 마찬가지로 3학년 교실이었고, 마침 3학년 1반 수업이었다. 나는 구석에서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준기를 찾았다.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지만, 너무 멀어서 어떤 내용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준기는 저런 학생이구나, 생각하면서 수능 준비를 위한 문제 풀이 수업을 이어나갔다.

    * * *

    7월 학력평가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했던 녀석들은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애초에 수능에 큰 힘을 싣지 않던 학생들도 이번 학평만큼은 긴장했던 모양인지, 시험이 끝나고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왔다.

    다른 게 아니라 논술 상담이었다.

    “쌤 여기 신청서들이요!”

    논술 상담이 이어지면서 결국 논술 특강 신청자 수가 늘어났다.

    최종적으로 은장이가 걷어 온 신청서는 열두 장이나 되었다. 전체 학급 인원이 25명이니 절반 가까이 되는 학생이 신청한 것이었다.

    “짜식들. 학평 보고 나니까 급한가 보지?”

    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래 점수 안 되면 논술이라도 봐야지. 그래야 인서울이라도 찍지.”

    “강 선생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혼잣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지석 선배가 나를 음흉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아?”

    “무려 저희 3반에서만 12명이나 신청했습니다.”

    “이야 인기 많은데? 우리 반에서도 3명 하겠다 그랬어.”

    “우리 반은 4명이에요.”

    지석 선배와 박 선생으로부터 추가 신청지를 건네받았다. 그 외에 다른 반 학생들까지 추가하니까 어느새 신청자가 30명이 넘었다.

    “이거는 어… 좀 많은데요?”

    솔직히 의외라는 듯 내가 중얼거리자 다른 교사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봤다.

    “30명이면 많기는 하지?”

    “네, 선배. 그것도 그렇고, 애들이 이렇게 논술에 관심이 많았나 싶기도 하고요.”

    “네가 요청한 대로 깜냥은 되는데 학원갈 형편 안 되는 애들 먼저 받은 거야. 걔네들부터 잡자며?”

    나는 이전에 한 교감에게 이야기했던 점을 떠올렸다.

    그때 한 교감은 논술 특강을 어떻게 열면 좋겠냐고 물었고, 언론에 알리기 좋은 형태로 모집하면 좋겠다고 답했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네요.”

    손을 턱에 괴고 이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킬까 고민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좀 많으면 도와줄까?”

    “그래도 두 분께 폐 끼칠 순 없죠.”

    분명 지석 선배가 물었지만 나는 일부러 박 선생을 포함시켜서 두 분이라고 지칭했다.

    “아니에요, 저도 학원 갈 형편 안 되는 학생들 도와주는 명목도 있어서 뿌듯하고 좋을 것 같은걸요. 그리고 저도 글 꽤나 써요.”

    “하지만….”

    내가 정말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자 지석 선배가 어깨를 두드렸다.

    “시즌인데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특강 열리는 것도 다 강 선생 덕분이잖아? 우리도 대치동 덕 못 보는 애들 좀 도와주자고.”

    “저도 괜찮아요. 시즌에 바쁜 거는 적응해야죠.”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에게 나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아 진짜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제가 혼자서 30명을 다 첨삭해 주고 그러지는 못하거든요? 일단 선배랑 박 선생님이 그래도 인문계열 공부하셨으니까 잘 봐 주실 것 같은데 가능하시죠? 참, 최근에 책도 많이 보시나요? 책을 자주 보셔야 논술문 봐 주기에 좋습니다. 다른 것보다는 인문사회학 관련 책이 좋고요.”

    “야.”

    “감사합니다.”

    이제야 낚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배와 박 선생이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와 이거 보게. 연기를 했어?”

    “근데 두 분이 도와주시면 좋기는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 기재된 날짜는 하루종일 다 비워두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논술특강 포스터에 있는 날짜들을 가리키자 박 선생이 포스터를 다시 집으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루 14시간?”

    “뭐라고!?”

    지석 선배도 그건 몰랐는지 박 선생이 들고 있는 포스터를 확인했다. 박 선생이 포스터의 한쪽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와 학생들한테 줄 때만 해도 몰랐는데 이거를….”

    박 선생은 멍하니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러다 겨우 하나의 질문을 꺼냈다.

    “식사 제공되나요?”

    “…개인 부담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지석 선배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당장 밖으로 나와! 사람이 호의를 갖고 이야기를 해 주니까 감히!”

    “참, 참아요, 심 선생님!”

    지석 선배는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내가 앉은 의자를 발로 퍽퍽 찼다. 옆에 있던 차 선생이 지석 선배를 말리기 위해 양팔을 붙잡고 낑낑댔다.

    “끝나면 삼겹살에 소주 쏩니다!”

    “이런 미친, 이게 삼겹살로 끝날 일이야! 몇 달이고 너한테 술 얻어 마실 거니까 그렇게 알아!”

    씩씩거리는 지석 선배의 뒤에서 나는 빙긋 웃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이번 논술 특강 때 꼭 합류하도록 설득할 생각이었다.

    애초에 하루 동안 한 사람이 봐줄 수 있는 첨삭 인원의 한계는 10명 전후였다. 논술 시험 하루이틀 남겨둔 파이널 특강이 아닌 이상, 학생들이 작성한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그 할당량을 채우려면 신청자 30명을 나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독만 되고 실적도 안 생길 거야.’

    전체 공통강의 때야 그렇다 쳐도 첨삭만큼은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의 합류는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이제 논술 특강 준비까지 다 완료가 되었고, 이제 코앞에 닥친 건 동석이의 전국로봇경진대회였다.

    * * *

    다음 날, 전국로봇경진대회 첫째날이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던 나는 윤 선생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강 선생, 강 선생!]

    “동석이 어떤가요?”

    내 질문에 그는 전화기 너머로 최대한 작은 소리를 냈다.

    [큰일 났다. 동석이 몸이 그냥 굳어 있어.]

    “아아, 역시 그렇죠?”

    [역시는 무슨 역시야! 제대로 어필도 못 하고 끝나게 생겼다니까?]

    윤 선생은 어떻게 안 되겠냐면서 동석이의 현재 모습을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 주었다. 그러자 주변에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면서 만들어둔 건담인섹터 Mk 3-그새 또 버전이 바뀌었다- 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윤 선생님. 동석이한테 가서 오늘은 만들고 싶은 거 이것저것 만들어 보라고 해 주세요.”

    [대회 당일에 뭘 만들어?]

    “쓸 만한 재료들 좀 들고 가시지 않았어요?”

    대회 장소로 출발하기 전에, 나는 윤 선생에게 동석이가 현장에서 가볍게 가지고 놀 만한 과학 키트들을 전달했다. 윤 선생은 이걸 왜 주냐며 의아해했지만, 내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일단 차에 실어두었었다.

    “그거 동석이한테 전해 주시고, 로봇은 그냥 자동모드 켜두라고만 하시면 됩니다.”

    [이 대회가 켜두기만 한다고 어필되는 대회가 아니니까 그게 문제지!]

    윤 선생의 외침에도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딱 하루만 그걸로 버텨 주세요. 내일은 또 오늘과는 다를 겁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