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50화 (50/252)

50화. 자존심

“수시를요?”

류지훈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학부모회장은 무언가 희망을 가진 눈빛을 하고서는 명천의 수시 가능성을 물었다.

“어떻게 보세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내신이 의대 넣기 좋은 편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류지훈은 이게 무엇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떠올렸다.

‘한목대 특강.’

윤기준과 강명문이 주도했던 한목대 특강에서 한목대 의과대학장 교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내신이 부족해도 역전할 수 있다고.

그래서 지금 명천의 어머니, 학부모회장이 기대를 걸고 있다고 생각했다.

류지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님, 명천이가 3배수에 뽑힐 정도인지는…….”

“그래서 내가 류 선생님에게 우리 애 맡겼잖아요.”

학부모회장의 그 말에 류지훈은 할 말이 없었다. 민지정의 소개로 명천을 봐준 지가 벌써 2년째였다.

그러나 명천의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류지훈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유를 학부모회장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됐어요. 우리 애가 그나마 지금 성적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죠.”

학부모회장도 류지훈에게만 과외를 받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 아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명천은 그렇게 똑똑하지는 않았다. 병원장을 하고 있는 지 아빠만큼 머리가 좋지는 않았으니 이렇게 성적 올리는 거 하나로도 고생하고 있다.

그 생각이 학부모회장에게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위안하는 거랑 당장 닥친 입시를 보는 거는 다르잖아요?”

학부모회장은 탁자에 올려둔 파우치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받아요.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회장님?”

“못 들을 정도로 작게 말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류지훈은 그녀가 건넨 봉투를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쥐었다. 그 안에는 평소 과외비로 받는 비용보다 조금 더 많은 현금이 들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류 선생님에게 쓴 돈이 얼마인지 알아요?”

“……알고 있습니다.”

“그 돈이 어지간한 대치동 일타 강사급은 된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그럼.”

“……물론입니다.”

봉투를 쥔 손을 뒤로 옮겨 열중쉬어 자세를 한 류지훈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학부모회장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학부모회장이 류지훈에게 지불한 과외 금액은 억이 넘었다. 부족한 아들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서 내신 공부, 수능 공부를 모두 해 왔었다.

처음에는 반짝 점수가 오르기는 했다. 그래서 학부모회장도 류지훈에게 투자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상위권으로 갈수록 최상위권이 되기는 어려운 법이다. 명천은 딱 그 기로에 멈춰서 있었다.

6월 모의고사도, 7월 기말고사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기말고사는 조금 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 수행평가에 발표항목이 추가된 교과목이 생기면서 명천의 성적은 결국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었다.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아시겠죠 이제?”

류지훈은 입술을 꽈득 깨물었다.

그로서도 억울한 마음은 있었다.

명천은 머리가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공부법을 알려 주고, 풀이방식을 쉽게 설명을 해 줘도 이해를 하는 건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 아들을 의대에 보내겠다고 하는 게 부모의 욕심이라는 것을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맞춰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범인은 넘보기 어려운 최상위권의 벽. 명천은 그 앞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도 수능에서는…….”

“수능에서는 다를 거라는 걸 어떻게 믿죠?”

“곧 학평이 있습니다. 수학만큼은 최상위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류지훈은 명천이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이번 7월 학력평가에서 최상위 점수를 노려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실수가 잦아서 항상 1등급과 2등급을 왔다갔다 했다.

그래서인지 학부모회장은 류지훈의 말에도 콧방귀를 뀌었다.

“류지훈 선생님.”

“……네.”

“거기 봉투에 내가 조금 더 넣어 놨죠?”

류지훈은 손에 쥔 봉투를 살짝 내려보았다.

“왜 더 넣어 놨는지 알아요?”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명천이 도와주고 싶으면 그 사람을 데리고 오세요.”

학부모회장은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강명문을요.”

류지훈이 그 이름에 잠시 놀라 대답을 하지 못하자 학부모회장이 그를 돌아봤다.

“강명문 몰라요?”

“아니, 알고 있습니다만 강 선생은 왜…….”

그 물음에 학부모회장이 한숨을 쉬었다.

“이전의 대회 기억나세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때도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어요. 내가 그래서 강명문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민 부장님이랑 찾아보라고 했었죠? 최근에는 민 부장님한테 연락도 받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시사RPG대회가 있었던 당일, 대회가 끝나자마자 학부모회장은 류지훈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때 학부모회장은 강명문이 어떤 사람이기에 소심했던 학생들을 발표 자리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자기 아들 명천에게는 그만한 변화가 지금까지 없었기에 관심이 더 갔었다.

그래서 강명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필요하다면 명천의 입시 과외 선생으로도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이번 한목대 특강 못 봤어요?”

며칠 전에 진행된 입시 특강인 한목대 특강. 류지훈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의 특강이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특강이, 학부모회장에게 강명문이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목대 의대 전형, 류 선생님은 알고 있었어요?”

한목대 의과대학장인 서윤수의 강연 내용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학부모회장은 의대라 하면 단순히 공부만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서윤수는 MMI라는 이상한 면접 방식을 도입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면접 덕분에 내신이 조금 부족해도 면접만 잘 보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도 답변을 들었다.

수능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재수를 시킬 생각이었지만, 내년에는 서울한국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 MMI가 적용이 된다고도 했다.

그러니, 이제 어지간한 의대를 가는 데에는 면접 실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런 입시 정보를, 다른 누구도 아닌 이제 막 2년차가 된 초임교사 강명문이 파악하고, 윤기준과 함께 이번 특강을 진행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여태 아무 말이 없었죠?”

류지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학부모회장도 그가 자존심 때문에 꺼낸 허세임을 알고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자 류지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어쨌든 의대를 가기 위해서는 성적이 최우선입니다. 그 새롭게 도입되는 면접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한목대 의과대학장 교수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건가요?”

“원래 그런 입시특강에서는 입에 발린 소리도 많이 하지 않습니까.”

“학부모들한테 윽박지르는 거 못 봤어요? 그 사람이 그럴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사실 류지훈도 이번 한목대 의대 입시전형에 도입되는 MMI면접은 처음 들은 정보였다.

그 정보를 강명문이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상당히 큰 충격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학부모회장이 자기 대신 강명문을 찾는 게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강 선생이 온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류 선생님이 있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 않았나요?”

학부모회장은 류지훈의 반박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건넨 봉투를 눈길로 가리켰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강명문을 내 앞으로 데리고 와요. 그 돈 받아 처먹은 거 싹 다 신고하기 전에.”

저 멀리 방에서 명천이 나오다가 둘을 발견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명천이 보낸 눈빛이 류지훈에게는 멸시처럼 느껴졌다.

“뭐해요? 빨리 안 가고.”

류지훈은 문 밖으로 자신을 내쫓는 학부모회장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오면서 무엇이 강명문보다 부족했는지를 떠올렸다.

굳게 쥐어진 주먹에서 학부모회장이 건넨 봉투가 심하게 구겨져만 갔다.

* * *

교실에 들어가자 낯빛이 어두워진 학생들이 나를 반겼다. 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히죽 웃으며 교탁 앞에서 조회를 시작했다.

“자, 벌써 내일이 7월 학평이다!”

내 말에 학생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망했다느니, 큰일 났다느니, 난 벌써 재수를 준비한다느니 하는 여러 비명들이 들려왔다.

그런 녀석들을 향해 교탁을 탁탁 두드렸다.

“그렇게 소리 지른다고 뭐 해결이 되냐! 지금 공부 제대로 안 하고 있는 놈들은 내일 바로 들통날 거니까 시험 끝나면 싹 다 개인 면담이야!”

7월 학평이 끝난 이후 학생들은 수시냐 정시냐, 아니면 둘 다냐를 선택해야 했다.

2010년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시보다는 정시를 준비했다. 내신이 좋지 않으면 인서울 상위권 대학교는 꿈도 꾸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강문고 학생들은 눈만 높아서 경기도권 대학교는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다.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재수하면 성공하겠지, 라든가 수능 때는 오르겠지, 하는 헛된 희망이다.”

실제로 학생들은 자신들이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곤 했다. 그렇게 재수, 삼수, 사수를 이어 남학생은 군대를 다녀와서 또 수능을 준비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그러니 다들 허튼 생각하지 말고, 이번 학평 최선을 다해서 봐라. 그리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보도록 하자.”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동석이를 바라봤다.

유일하게 동석이만 내가 하는 말에 의기소침해 있지 않았다.

완전 수시로 지원할 생각이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지금 동석이의 관심은 오로지 대회뿐일 것이었다.

“최동석.”

“네 쌤!”

“대회 준비한다고 학평 다 찍고 자면 안 된다.”

“네, 네!”

나름 씩씩하게 대답하는 동석이를 향해 웃어 주면서 준비해둔 파일철을 꺼냈다.

“곧 있을 학평에 두들겨 맞을 너희들을 위해 내가 방학 특강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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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고 3학년 인문논술캠프!]

내용: 인서울 최상위권 대학들의 인문논술 문제 족집게 특강!

어설픈 대치동 특강은 가라! 강문고 일타 선생님이 알려 주는 2011 인문논술 합격 비법!

담당: 3학년 국어 강명문

일시: 7월 26일, 28일, 30일, 8월2일, 4일 총 5일 진행

시간: 08시~22시(14시간)

(문의 폭주 시 일정은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신청문의

3학년 3반

담임 강명문(00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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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앞에 나는 당당하게 포스터를 한 장 꺼냈다. 거기에는 팔짱을 낀 내 사진과 함께 인문논술특강 안내 정보가 적혀 있었다.

사진이 조금 민망하기는 했다. 며칠 전 박 선생, 지석 선배랑 같이 학교 운동장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라 조악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인문논술특강을 준비하고, 우리 반에서도 논술로 합격시킬 수 있는 학생들이 꽤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 14시간이요!?”

일정에 놀라는 녀석들부터 나왔지만.

“그럼 인서울 명문대가 대충해도 갈 수 있는 학교인 줄 알아? 준비하려면 빡쎄게 해야지!”

이미 기출문제를 모두 알고 있는 나로서 녀석들을 합격시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혹하기만 하면 되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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