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49화 (49/252)

49화. 빚더미

‘짜식들.’

은장이가 누군가와 만나서 모종의 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우선 놀랐으면서도 분노가 치밀었다.

‘감히 내 실적을 건드려?’

그 생각이 들었지만, 이어진 정석이와 은장이의 말에는 다른 의미에서 놀랐다.

학생들이 내가 상담을 할 때 이야기했던 점들을 적극적으로 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내가 알고 있었던 은장이와 정석이는 이 정도로 적극적이고, 창의적이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학교에서 주어진 일에 맞춰서 할 때만 적극적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변했으니 됐지 뭐.’

학생들의 성격이든, 학업 역량이든 무엇이라도 변화하면 그건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적극성과 창의성. 이 두 영역을 은장이와 정석이가 갖추게 되었으니 언제든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교실 한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대회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동석이가 최종적으로 윤 선생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어때요?”

잠시 숨을 돌리러 온 윤 선생에게 물었다.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엄지를 들어 올렸다.

“장난 아니야. 어지간한 과고 애들보다 더 잘 알겠어.”

“그 정도입니까?”

“응. 이전에 과고 애들 가르쳐도 봤는데, 동석이보다 못한 애들이 훨 많아. 아니, 어쩌면 과고에서도 전교1등 급일 수도 있어.”

미래에 천재 공학자로 이름을 날리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전혀 그런 일은 모른다는 듯 놀란 표정을 하고서는 동석이를 바라봤다.

“동석아.”

로봇의 관절을 만지작거리던 동석이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괜찮을 것 같냐?”

“네 괜찮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겠어?”

“어…… 해 보겠습니다!”

동석이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쁘시고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해서 이번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토요일에라도 내가 가 줄까 했는데, 동석이는 끝까지 괜찮다고 했다.

“흐음…….”

“왜, 왜요?”

“아니, 그냥. 진짜 괜찮은가 싶어서.”

나는 동석이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고민했다. 그리고는 고민을 끝내면서 윤 선생에게 말했다.

“윤 선생님, 지도 선생님이셔서 같이 가시죠?”

“응, 왜?”

고개를 갸웃거리는 윤 선생에게 다가가서 살짝 옷깃을 잡았다.

“커피나 한 잔 하실래요?”

* * *

우리는 동석이를 두고 학교 앞 카페로 걸어왔다.

간단히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 선생님, 토요일에 애들도 같이 보낼까 하는데 괜찮습니까?”

내 말에 윤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어떻게 보내려고?”

“제가 태우고 가야지요.”

“강 선생 차 없지 않아?”

“택시 타거나 렌트해서 기사를 쓰거나 해야죠 뭐.”

나는 입시코디를 하던 시절에도 차를 구매하지 않았었다. 아니, 구매했다가 하도 안 타고 다녀서 팔았었다. 보험료, 세금이 너무 아까웠으니까 말이다.

“은장이랑 정석이 데리고 오려고?”

“걔네는 기본이고, 다른 친구들도 데리고 가야죠. 그리고 박 선생님도요.”

윤 선생의 질문에 빙긋 웃으면서 답했다. 진동벨이 울렸고, 우리는 각자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시 교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강 선생, 이렇게 동석이한테 힘쓰는 이유가 뭐야?”

“이유요?”

“렌트 해서라도 친구들 보낸다는 것도 그렇고. 응원시키려는 거 아냐?”

“뭐 응원이라면 응원이지만…… 플랜카드 들고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걔네는 왜 데리고 오려고?”

“현장체험학습 같은 거죠. 학교 바깥 세상을 좀 보여 주려고 합니다.”

사실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거짓말인 내 핑계를 들으면서 윤 선생이 알겠다며 커피를 마셨다.

“동석이 어떨 것 같습니까?”

“발표나 인터뷰 때만 잘 하면 문제 없을 건데, 그게 좀 걱정이네.”

“걱정 없을 겁니다. 다만, 장소의 문제는 있겠지요.”

동석이가 지금까지 연습했던 장소는 학교 교실이었다.

발표 상대라고 해 봤자,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발표 대상의 변화는 지난 시사RPG대회에서 경험을 해 보았다.

하지만, 장소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서 발표나 토론을 해 본 적이 없는 동석이에게, 이번 전국창작지능로봇경진대회는 새롭고 낯선 무대였다.

‘그렇다고 3학년인 애들을 다른 데로 보내기도 뭣하니까.’

만약 동석이가 2학년만 되었어도 체육대회든, 다른 대회든 해서 외부에서의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회귀한 시점이 5월 말이기도 했고, 학생들도 입시를 앞두고 있다보니 다른 활동을 제안하기가 어려웠다.

“장소가 너무 낯설면 또 어려워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금요일만 잘 버텨 주세요. 토요일은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발표를 준비하기 어려워하는 동석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부의 도움이 동석이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교감선생님은 이제 뭐라고 하십니까?”

“맞다, 그렇지 않아도 한목대 특강이 꽤 만족스러우셨나 봐. 이제 대회 준비 전적으로 맡기겠다면서, 학생들 발표 실력도 꼭 확인해 보라고 하시더라.”

“됐네요 그럼.”

나는 처음 윤 선생에게 동석이 일을 부탁한 일을 떠올렸다.

“이제 빚은 없는 겁니다?”

“야, 나는 이번 주말까지도 정신없는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강 선생 이럴 거야?”

“자꾸 이러시면 저 빚더미에 눌러앉습니다 정말.”

장난스레 묻는 윤 선생을 향해 살짝 웃어주면서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교실로 돌아온 우리는 여전히 로봇을 조정하고 있는 동석이를 발견했다.

“새로운 것 좀 찾았어?”

가까이 다가가서 묻자 동석이가 온갖 이론들을 술술 읊어댔다.

“사실 이번에는 아쉬운 게 많아요. 설비가 조금만 더 갖춰져 있었으면, 아니 대학교에서 했었다면 더 정교한 로봇을 만들었을 것 같아요. 이번 설계도면을 토대로 보면 자율쓰레기분리수거도 가능할 것 같고……. 꼭 사람 손처럼 움직일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해요. 결국 쓰레기를 잘 옮기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에는 건프라를…….”

“그래, 그래 알았어. 그렇게 이야기하면 되는 거야.”

“헉! 쌤?”

동석이는 이제야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뭘 그리 놀래?”

“아, 아뇨, 전 물리쌤인 줄 알았어요.”

그 반응에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무언가에 집중하면 다른 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됐고, 금요일에 잘 하고 와. 토요일까지 대회 이어지는 거 알지?”

“네!”

“윤 선생님 지도 잘 따르고. 이번에 꼭 상 받자!”

미래에 천재 공학자로 불리게 될 동석이가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장려상 이상을 받아야 했다. 그래야 연천인재전형에 지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해 줄 수 있는 만큼 많은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윤 선생과 동석이에게 손을 흔들며 교실을 나온 후 나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어머, 강 선생님.]

“안녕하세요 박 선생님. 토요일에 시간 되세요?”

[데이트 신청하는 거예요 뭐예요?]

박 선생의 실없는 농담에 반응하지 않고 나는 본론을 바로 이야기했다.

“그게 아니라 동석이 대회 있잖아요.”

[네.]

“토요일 날 대회장에 참석해 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요.”

내 말에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던 박 선생의 목소리가 잠깐 끊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무언가 결심한 사람처럼 말을 해 왔다.

[좋아요. 대신 저도 조건이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강 선생님만 너무 도와드리는 것 같아서요. 지난번 대회 도움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어째 불안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긴장을 하고 있는데, 박 선생이 말했다.

[준기 상담 준비 도와주세요.]

“조준기요?”

박 선생은 내가 며칠 전에 말한 그 준기가 맞다면서 준기의 상황을 설명했다.

[준기가 부모님하고 말도 안 하는 것 같아요. 이거 좀 잡아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그 정도라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약속한 거예요?]

나는 걱정 말라며 호언장담을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조준기는 박 선생의 반에서 가장 특이한 학생이었다. 문과 최동석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본인만의 세계가 확실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건 국어 실력만큼은 꽤 봐 줄 만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회귀하기 전의 미래에서도 국어에서 만큼은 꽤 두각을 드러냈던 학생이었다.

“자료 요청드려야겠네.”

준기는 내가 담임을 맡은 적이 없었기에 정보가 부족했다. 때문에 자료가 필요했다.

준기 자료와 동석이 건으로 내일 아침에 보자고 박 선생에게 문자를 남겨두었다.

혼자 잠깐 걸으면서 앞으로 있을 일들을 하나씩 생각해 보았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만 갔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다른 지금의 모습에 희열을 느끼고도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생각도 못할 견제를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찰까지 하려고 한다 이거지.’

그만큼 내 존재가 학교의 누군가에게는 위협적이라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게 누구인지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편하게 임기 마치려고 하는 교사 생활에서 권력 싸움에 집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추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추궁하고, 밝혀내려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고 우선 입시에 집중해야 했다.

“아, 맞다.”

그리고 나는 은장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이후 은장이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내가 오늘 동석이 대회 준비를 도와준 일, 윤 선생과 커피를 마신 일을 알려 주었다.

* * *

류지훈은 그날도 어김없이 은장이 하교하는 길에 나타나 강명문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어제부터 강명문의 행보는 이상하다 못해 이게 초임교사의 행보인가 싶은 일이 많았다. 한명심 교감과 아침부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점, 외부대회 준비를 타과 선생님과 협업하고 있다는 점.

어딘가로부터 뒷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 부임했을 당시 실력이 좋거나 친화력이 좋지도 않았다.

실제로 강명문은 자신처럼 친목활동을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인기도 없었다.

‘그랬던 선생이 불과 한두 달 만에 이렇게 변한다고?’

그 점이 류지훈은 이상하게 여겨졌다.

강명문이 일으킨 사건들이 정말 실력으로 일으킨 건지, 아니면 운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소문처럼 이사장의 숨겨진 친척이나 자식 정도로 혈연이 있는지.

그런 여러 의문들이 있었기에 민지정이 심복을 심으라 했을 때도 동의를 했었다.

“류 선생님.”

류지훈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학부모회장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명천이는 어때요?”

학부모회장은 류지훈에게 명천이의 수학 성적과 수능 준비에 대해 물었다.

“곧 있을 학력평가에서는 점수가 오를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군요.”

“내신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명천이는 수능으로 갈…….”

류지훈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학부모회장이 입을 열었다.

“아뇨, 그거 말인데요.”

학부모회장은 한껏 기대에 가득 찬, 한편으로는 정말 기대를 해도 되는지 걱정이 된다는 눈으로 물었다.

“명천이 한목대 수시 넣어 보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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