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거짓과 진실 사이
특강이 끝나고 주말에 다시 학교에 나왔다.
학생들의 상담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수업과 행정일에 치이다 보니 상담 준비를 제대로 할 겨를이 없었다.
‘최근에는 대회랑 특강도 있었고.’
숨 가쁘게 달려온 7주간을 생각해 보면서 괜히 추억에 잠겼다.
‘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 교무실 문을 열고 성인 남성 둘이 들어왔다.
“오셨어요?”
“강 선생 빨리도 왔네. 얼마나 기다렸어?”
“한 10분, 아니 20분 정도 기다린 것 같습니다.”
나는 지석 선배와 윤 선생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 뒤를 이어서 박 선생도 안으로 들어왔다.
“제가 제일 늦었나요?”
“우리도 방금 막 왔어. 모여모여.”
지석 선배의 리드로 다들 자리를 하나둘 잡아갔다.
“그나저나 오늘은 왜 학교에서 만나?”
“학교 프로그램을 봐야 할 수도 있어서요. 우선 중요한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자리는 다가올 입시, 즉 여름방학을 앞두고 어떤 입시 전략을 구상하면 좋을지 회의하는 스터디 자리였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이런 자리까지 마련해서 스터디를 하지는 않는다. 입시라는 건 학생들이 알아서 하는 일이었다. 학종이 유행을 하게 된 때에도 손 놓고 있는 교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강문고에서의 또 한 번의 삶. 이 삶에서만큼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먼저 제가 말씀드릴 케이스는요.”
즉, 이 자리는 내가 만든 자리였다.
당연하게도 지석 선배, 박 선생, 윤 선생 모두 일요일에 학교로 불러내서 여간 짜증을 낸 게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고집을 부렸고, 결국 셋은 지금까지 내 실적을 보고 오늘 자리에 참석해 주었다.
그런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나는 지금까지 학생들을 상담했던 내용들을 들려주었다.
그중에서 힘을 준 부분은 정석이에 대한 부분이었다. 정석이가 유학을 포기한 것. 퓨쳐 컨설팅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사실. 미란이와는 헤어지고 공부에 집중하기로 한 점.
물론, 헤어지지 않은 건 나와 정석이만의 비밀이었지만, 아무튼.
여기에 은장이와 동석이, 명천이 등 다른 학생들의 상담 결과도 들려주었다.
“정석이가? 그 어머니 고집이 장난이 아닐 텐데.”
“저희 반 애들도 그렇게 의욕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그렇게 의문을 보내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학생들이 의욕을 가지면 해결할 수 있겠더라고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교사들 중 둘은 사학 비리 폭로 사건 때 나를 지지해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윤 선생은 억울하게 학교를 그 전에 떠났었지만,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선생님들이 잘못된 길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들….”
지석 선배는 미래에서 조찬오를 비롯한 아이들의 입시 비리를 눈감아 준 사실에 약점을 잡혀 왕따로 지내게 된다.
윤 선생은 대회 평가 문제로 한 교감과 다투다 결국 퇴직하게 된다.
박 선생도 사학 비리 폭로 때 힘이 없던 나를 지지해 주다가 학교에 환멸을 느껴 공교육을 떠났다.
그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 내 앞에 있는 교사들의 미래가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선배, 조찬오 있죠?”
“응. 걔 왜?”
“조심하세요. 걔 분명 퓨쳐 컨설팅 이야기할 겁니다.”
선배는 그 말에 살짝 미간을 좁히더니 미리 사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걸로 끝내지 마시고요, 못하게 막으셔야 합니다.”
“내가 무슨 수로 막냐?”
윤 선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강 선생이 해 온 그런 상담법을 나는 잘 못하겠단 말이야.”
“제 상담방법을 사용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참고만 하시면 됩니다.”
이제는 박 선생도 다리를 꼬면서 관심없다는 듯 손짓을 했다.
“강 선생님, 주말에 우리를 이렇게 불렀으면서 무슨 이런 무거운 이야기만 해요?”
그러자 지석 선배와 윤 선생도 맞다며 나에게 항의를 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나는 머릿속으로 잠깐 계산을 했다. 이번 달 월급에서 월세 빠지고 대출 이자 빠지고, 남은 돈으로 주식 사려고 했는데….
“오늘 끝나고 제가 고기 쏩니다!”
“좋아, 그렇게 나와야지!”
지석 선배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말했다.
“나는 소고기.”
“아 선배.”
“농담 아니야. 오늘 너 좀 이상해. 이렇게 다른 사람들 모아놓고 작당모의 한 적이 없던 녀석이 오늘은 왜 그러는 거야?”
생각해 보면 나는 대학교를 다닐 때도 따로 무리를 지어 다니지는 않았다. 조용히 공부를 했고, 팀 과제가 있을 때만 동기들과 어울렸다.
“그건….”
여기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 말을 해도 될까.
“야, 강명문.”
지석 선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너 뭔가 알고 있지?”
철렁, 가슴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직까지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아니었기에 회귀를 들킨 건 아닐 것이었다.
설령 회귀했다해도 아무도 안 믿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단은 발뺌하기로 했다.
“뭐가요?”
“요즘 강 선생님 이상하잖아요. 뭔가 드라마에 나오는 멘토처럼 애들 다 상담해 주고, 성과도 나오고, 인기도 많아지고….”
“그뿐이야? 한목대 특강 때 교수님께 예상 질문 알려드렸다며? 그게 싹 다 들어맞았고.”
“무슨 족집게 선생이야?”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애를 대학교 보내겠다면서 대회를 준비시키지를 않나.”
“입시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던 은장이 부모님도 설득했고 말이죠.”
“거기에 이정석도 새로운 목표를 잡았고.”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지 세 사람은 나에게 품고 있었던 수상함을 전부 쏟아냈다.
“아니, 다들 좀 진정하고….”
“이게 진정 안 하게 생겼어? 너 이러다 논술 기출문제까지 다 뽑아내겠다?”
여기서 또 한 번 뜨끔했다. 사실 논술 특강 때 2011학년도 논술 기출문제를 두고 수업을 하려고 했었다..
막말로 이 당시의 논술 기출 문제는 모든 지문은 아니어도 주제는 전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선배. 제가 뭘 알겠습니까.”
“흐음….”
선배는 이제 커피도 마시지 않고 나를 두 눈으로 응시했다. 아니, 윤 선생, 박 선생도 나를 노려봤다.
아 뭐라 말하지.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숨을 한 번 삼키고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여기 계신 분들과 오래도록 강문고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세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듯 반응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뭐, 우리가 선생 관둔데?”
“아 혹시!”
박 선생이 손뼉을 치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야기했다.
“강 선생님, 이사장님이나 교감선생님께 뭔가 들으신 거 아닐까요?”
“뭐? 어떤?”
“보면 강 선생님은 불법적인 걸 하려 한다거나, 제대로 된 학생 평가가 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걸 다 막아 왔잖아요?”
지석 선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윤 선생도 그게 맞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랬지.”
“이사장님이나 교감 선생님이 그런 모습의 교사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하신 건지도….”
거기까지 말한 박 선생이 혹시 몰라 걱정이 되는지 교감실을 살짝 훔쳐봤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비슷하기는 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여기서는 거짓말 좀 할게요.
“이사장님도 최근까지 이어진 입시 비리와 관련해서 교사들의 안일한 대응을 탐탁지 않게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올해 여러 방안을 실험해 보면서 자질이 부족하다 판단되는 교사에게는 징계를 내리시려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사장이라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교사에게 징계를 내리면 그건 이사장 해임감이었다.
하지만, 그게 만약 불법 입시 비리나, 과도한 대가를 요구한 거래가 있었다면 어떨까.
강문고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세 사람은 내 이야기에 동의하고 있었다.
“맞아, 비리로 대학 보낸 건 사실이지.”
“그것 말고도 대회는 봉투 좀 낸 애들에게 돌아갔고.”
“그것뿐인가요, 재작년인가에는 이사진 누군가가 돈 받고 와서 내신 성적 조작도 했을 걸요?”
“그게 진짜야!?”
지석 선배와 윤 선생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나는 더 큰 오해가 생기기 전에 말을 끊기로 다짐했다.
“아무튼, 세 분은 그런 일에 연루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조찬오처럼 불법 입시비리를 저지르려는 학생은 미리 예방도 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지석 선배는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우리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거 아는 사람은 누구누구야?”
“저랑 이사장님입니다. 그 외에는 여기 계신 선생님들뿐이고요.”
이제는 거짓말이 그냥 술술 나왔다.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세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내가 이번 특강 때 이사장과 친밀하게 지낸 모습을 보여서인지, 내 말을 믿는 눈치였다.
“이사장이 갑자기 칼을 빼든 이유가 뭐야?”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뭐긴 뭡니까, 당연히 이 자식 때문이지. 네가 대회로 자극만 안 했어도.”
지석 선배가 한숨을 푹 쉬면서 끊었던 담배라도 피워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키득 웃고는 다시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그래서 우리는 뭘 해야 해?”
“다른 건 없습니다. 학생들 중 불법을 저지르려는 학생이 있다면 꼭 상담을 해 주세요. 부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있으면 거절해 주세요. 선생님들이 노력했다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학원에서 상담을 할 때도, 학교에서 상담을 할 때도 꼭 내 앞에서 이야기하던 것과는 다르게 말하는 녀석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학생들을 대할 때 입시 코디를 하던 시절에는 녹취를 했었다. 물론, 학생 동의 하에 말이다.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되는 애들은 따로 명단을 만들어두세요. 상담 과정을 기록해두는 것도 좋고, 학생 동의 하에 녹음을 해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나?”
“네. 쌤이 상담 내용 정리해야 하는데 나중에 잊어버릴까 봐 그런다, 녹음을 좀 해도 괜찮을까? 이런 식으로 물어보고 하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을 보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선배는 조찬오가 가장 문제가 될 소지가 커요. 걔를 조심하세요. 걔 대학 갔다가 잘못되면 그 잘못을 선배에게 싹 다 뒤집어씌울 수도 있습니다.”
“윤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이랑 대회 이야기 다시 해 보세요. 이제는 이전보다도 더 호의적으로 받아 주실 겁니다. 계속 공정한 평가가 될 수 있도록 계속 디벨롭 해주세요.”
“박 선생님은 준기 있죠? 걔가 국어 수업할 때 보니까 생각이 딴 데 가 있고 글만 쓰더군요. 부모님하고 계열 고르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상담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최대한 기억을 살려가며 그들이 강문고에서 떠안게 되는 실수를 피해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세 사람은 내 말을 반신반의하다가도 이내 그럴지 모르겠다며 동의를 했다.
사학 비리 폭로 때 실수가 있었다면, 사전에 내 편을 만들지 않은 점이었다.
그저 불도저처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혼자 달려들었던 것이다.
이번 생에는 다를 것이다.
지금부터 내 편을 만들 거니까.
그것도, 먼지 나게 털어도 문제가 없는, 청렴한 사람들로 말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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