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말
강단을 내려온 서윤수는 곧장 나를 찾아왔다.
“강 선생!”
그가 갑자기 나를 와락 껴안았다.
“교, 교수님?”
“은숙이 눈이 정확했구만! 자네 물건이여 물건! 족집게 선생이야 완전!”
신이 난 서윤수를 어렵게 품에서 떼어내고 몸을 툭툭 털었다.
“자네가 이야기한 기출문제에서 전부 나오지 않았나!”
“저는 추측을 했을 뿐이지 답은 교수님께서 하셨지 않았습니까. 제가 알려드린 모범답안을 교수님 스타일에 맞게 버무리셨으니 교수님이 잘 하신 게 맞죠.”
나는 서윤수에게 그저 예상 질문과 그에 대한 모범답안을 알려 주었을 뿐이었다. 결국 답변으로 만든 건 서윤수였다.
‘이렇게 이끌어 주는 것도 좋은 선생의 역량이기는 하지만.’
내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하는 서윤수는 계속해서 껄껄 웃기만 했다. 정말 방금 전 상황이 너무나 통쾌해서 참을 수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교수님, 아드님 이야기는 진짜입니까?”
“아아 그거? 반은 진짜고 반은 뻥이야.”
그 말에 나는 황당하게 웃었다.
“네?”
“아들이 교수 질문에 입 한번 뻥긋 못한 거랑 피 보기 무서워서 수술도 못 했던 것도 맞아.”
“지금은 고쳤나 보군요.”
“고럼고럼! 2학년 때 싹 다 고쳤어. 아직도 발표는 어려워하지만 말이야.”
이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하자면 사례를 이야기할 때 거짓말을 한 게 아닌가.
“그런데 MMI 면접 도입을 아들 때문에 생각한 거는 맞아. 내가 그놈 자식 성격 고치려고 개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어휴!”
“저도 놀랐습니다. 연기력이 좋으시네요.”
“사실에 입각한 허구 아닌가. 문학작품에도 많잖아?”
웃으면서 짐을 챙기는 서윤수는 마지막에 질문을 던진 학부모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해도 마지막에 묻는 게 결국 합격 가능성이구먼. 이 동네도 참 유별나.”
“뭐 그렇지요.”
서윤수가 말한 건 특강이 끝나자마자 손을 들고 질문을 했던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강이 마무리 될 때 즈음, 서윤수의 말을 경청하던 청중들 사이에서 한 학부모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예상대로 학부모회장 역시 이 자리에 있었다.
-그럼 교수님, 성적이 조금 부족해도 면접을 잘 보면 합격할 수도 있나요?
서윤수는 손을 든 학부모회장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합니다.
서윤수는 지금도 그 질문을 생각하면 참, 신기한 동네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은숙이한테 들은 거보다 훨씬 심해. 이사장이라고 학교 사정을 너무 모르는 거 아니야 이거?”
그는 껄껄 웃으면서 김철웅 입학사정관을 찾았다. 김철웅은 먼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교수님, 방금 정말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하하하!”
김철웅은 크게 기뻐하면서 서윤수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한목대는 의예과가 아니면 주목받기 어려운 대학교라는 점을 말이다.
중위권 학생들부터는 한목대를 노려보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입시가 목전에 처했을 때 이야기다.
지금의 고1, 고2에게 한목대를 이야기하면 의예과나 간호대 정도만 목표로 둘 뿐이었다.
만약 고1, 고2 한목대의 일반 학과에 진학하라고 말한다?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러다 강문고에서 한 명도 지원 안 하는 거는 아니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확신을 갖고 말했다.
“오히려 작년보다 많이 지원할 겁니다.”
“확신하나?”
“그럼요.”
마지막에 학부모회장의 질문은 명천이를 두고 한 질문이었다.
내신 성적이 높기는 하나 의예과를 가기에는 부족한 성적. 이번 3학년 1학기 때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사실상 정체상태인 자기 아들이 한목대에 갈 수 있는지를 물어본 것이었다.
이제 명천이는 수시든 정시든 면접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스피치 연습을 해야 했다. 잘만 준비하면 한목대 의예과를 추가합격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물론, 발표력은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럼 성적은 아쉬운데 발표력은 좋은 학생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명천이보다 합격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이를 생각한 학부모들은 내신이 낮아도 한목대 의예과를 목표로 지원을 하게 될 것이다.
실제 미래에도 MMI면접 도입 때문에 성적이 좋아도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내신이 낮아도 활동과 스피치 역량이 좋으면 종종 합격하기도 했다.
‘그런 미래가 곧 올 테니까 말이지.’
게다가 한목대의 의과대학장 교수가 임팩트 있는 강연을 하고 나갔다. 그 결과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학부모들에게는 ‘한목대’라는 학교 이름이 뇌리에 박히게 되었을 것이다.
정석이 어중간하게 나오는 학생들은,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한목대를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남은 장비들을 정리했다.
“뭐 강 선생이 그렇다 하면 그런 거겠지. 참 신기한 사람이야.”
서윤수는 여전히 나를 향해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돌려보니 민주와 학생회 학생들도 쓰레기 정리를 하고 있었다. 잠깐 학생들을 도와주려 했는데 서윤수가 식사라도 하자며 붙잡는 바람에 그러지도 못했다.
“에이, 가서 한 잔 해야지. 어딜 가려고.”
그가 섭섭하다며 내 소매를 꽉 붙잡았다. 차마 그 손을 떨쳐내지 못해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그런데 저희끼리만 가는 겁니까?”
이사장의 식사 자리에 초대된 사람은 서윤수, 나로 두 명이었다.
윤 선생도, 한 교감도 없었다.
“아, 그렇지. 이 자리는 비밀일세. 우리는 그냥 아까 행사 끝나고 빠이빠이 한 거야. 알겠지?”
서윤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검지를 입술 앞에 올려보였다.
“입사관님도 알고 계십니까?”
“말했지. 친구랑 더 놀다 갈 거니까 먼저 가라고 했네.”
서윤수는 곧 이사장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는 듯 보였다. 나이에 맞지 않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가는 그의 뒤를 나도 조용히 따라갔다.
“그래도 이사장님은 초대해야하지 않을까요?”
내 말에 서윤수가 아쉽다는 듯 입술을 꿈틀거렸다.
“알았어. 그럼 은숙이도 초대하지.”
그 길로 우리는 근처 선술집으로 향했다. 간단히 안주와 술을 주문하고, 식사 겸 술자리를 가졌다. 자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어두운 밤이 되어 있었다.
서윤수 교수는 나에게 명함을 주면서 언제든 연락하라 말했다.
호탕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알겠노라 답했다.
한목대 의과대학장 정도면 언젠가 도움을 받을 일이 분명 있을 것이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명함에 적힌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했다.
* * *
“미쳤어?”
민지정은 학교 뒤편의 공터에 주차해둔 차에서 류지훈을 만났다.
“미쳤냐고.”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류지훈을 향해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을 했어야지!”
“설마 그 어르신이 교수님일 줄은….”
“동네 어르신이 뭐하러 그 시간에 사립학교로 들어오겠어! 지인이 있으니까 왔을 거 아냐!”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민지정은 양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류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민지정이 관자놀이를 누르던 손가락을 내리고 고개를 자동차 천장을 향해 올렸다.
“이사장이래.”
“…예?”
“서윤수 교수 지인이 강은숙 이사장이랜다.”
류지훈은 민지정의 말에 숨을 삼켰다. 강은숙은 현재 민지정을 비롯한 주위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 다른 이사회 인원들이 가장 견제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처음부터 다 짜여진 판이었던 거야.”
민지정은 당했다는 생각에 손톱을 까득 깨물었다. 류지훈도 민지정의 말에 놀라 입을 멍하니 벌리고는 중얼거렸다.
“그럼 강 선생은 이사장 라인….”
“그걸 모르겠어. 강명문이 이사장 라인인지, 아니면 한명심 교감 라인인지.”
그녀는 강명문이 누군가의 라인에서 학교 내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번 한목대 특강으로 인해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졌다.
다만, 지금 생각하기로는 그가 누구의 라인을 잡으려는 건지는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한명심의 라인이라고 하기에는 이사장과 절친했다. 그렇다고 이사장의 라인이라기에는 한명심이 강명문에게 보여주는 호의적인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아니면 둘 다 인가?’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 생각하면서 민지정은 손톱을 입으로 물었다.
“긴장 타자, 지훈아.”
“…네.”
“너 교사 월급으로는 힘들다 그래서 내가 과외도 소개해 주고 그랬는데, 이럴거야?”
“…신경쓰겠습니다.”
류지훈은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욕을 삼켰다. 민지정도 이번 일에 잘한 거라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재수도 없게 한목대 의과대학장과 만나 버리기도 했었다.
“확실하게 견제해. 아니, 끌어내려. 초임교사 따위는 학교에서 꼬리 말고 쥐죽은 듯 다녀야 한다고. 아예 해고시켜도 좋아. 약점을 잡아.”
민지정의 분노는 강명문을 넘어서 강은숙 이사장에게로도 향했다.
“네가 학교 멀쩡히 다니면서 강남 명문고 현직 수학 교사라는 걸로 알바 뛰려면 내 말 들어야 할 거야.”
“….”
그녀의 말에 류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했다. 민지정이 소개해 준 과외. 그건 강문고를 비롯해 다른 학교의 학생들 일부를 1:1 과외해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과외를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류지훈의 실력보다도 강남 명문고 현직 교사라는 타이틀이 큰 몫을 했다.
민지정은 그 사실을 알고서 류지훈에게 과외를 소개했고, 류지훈도 그걸 이용해서 월급 외의 급여를 두둑히 챙기고 있었다.
“고개 들어. 줄 수 있는 힘은 최대한 줄 거니까.”
“알겠습니다.”
“이제 확실히 정신차리고 가자. 강명문, 더 힘 키우면 너도 나도 위험해. 한명심이 딴 생각 품는 순간 우리는 끝이야.”
만약 한명심 교감이 강명문에게 휘둘린다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특히, 강명문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어지간한 경력직 교사 이상의 실력이었다.
그런 강명문이 이사장과 한명심 교감까지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 후 마음 먹고 자신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면? 지금까지의 부정을 저지른 교사들을 선별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반드시 그런 일만은 막아야 한다.’
생각을 마친 민지정은 류지훈에게 명령했다.
“내일부터 강명문 조사 철저히 해. 혼자가 힘들면 심복이라도 심어. 수상한 일을 하지는 않는지 체크해.”
그 말에 류지훈은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제발. 제발 좀 쓸모있는 정보들을 가지고 와. 지난번처럼 소개팅 이야기나 들고 오면 입술 채로 찢어 버릴 테니까.”
그녀는 류지훈에게 이제 가라며 고갯짓을 했다. 류지훈은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는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실 민지정은 류지훈이 썩 미덥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약점이 잡혀있으니 이런 명령도 따르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부리기 좋은 말은 부려야지.’
일 잘 하고 부리기 힘든 말보다는 일 못 하고 부리기 좋은 말이 낫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시동을 걸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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