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기출문제
가볍게 목례를 한 윤 선생은 곧바로 이어서 특강을 진행했다.
[그럼 오늘 한목대 입시특강을 진행해 주실 김철웅 한목대 입학사정관님 먼저 모시겠습니다.]
사람들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학부모들은 배부된 입시전형 자료를 펼쳐두고 펜을 쥐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목대 입학사정관 김철웅입니다.]
김철웅은 능숙하게 준비한 PPT자료를 토대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중간중간에 배부된 입시 책자 내용을 언급하면서 학부모들이 자연스레 책자를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약 30분가량 설명회가 진행되었을 때였다.
[……그중에서도 이번 입시 변화의 가장 큰 사항은 의대 면접 전형의 새로운 시도입니다. MMI 면접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되었는데, 이 부분은 서윤수 교수님께서 추가로 설명해 주실 예정입니다.]
그러자 학부모들 사이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우리가 의대 내용 보자고 왔잖아?”
“맞아. 이건 언제 끝난데?”
“우리 애는 성적 때문에 간호대 갈 거야.”
“어머 한목대 간호대도 좋지. 우리 아이랑 같이 다니면 정말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들이 있었고,
“……한목대라도 가야지.”
“여기를 왜 가 엄마.”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 학부모도 있었다.
서윤수를 돌아보니 그 역시 참석자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상이 찌푸려진 채 수근대는 학부모들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이상으로 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시간이 조금 되지 않은 시점에 김철웅의 강의가 끝났다. 기계적인 박수소리가 들려왔고, 윤 선생은 다음 순서로 서윤수를 소개했다.
[다음으로 의대 전형 변화에 대해 설명해 주실 한목대 의과대학장이신 서윤수 교수님 모시겠습니다.]
서윤수가 단상 위로 올라오자 턱을 괴고 있던 학부모들, 졸고 있던 학생들이 졸린 눈을 비벼 뜨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한목대 의과대학장 서윤수입니다.]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이야기한다며 학부모들이 배부된 펜을 곧게 쥐었다.
[먼저 이 화면을 보시겠습니다.]
서윤수는 자신이 준비한 PPT화면을 열었다. 거기에는 신문기사가 몇 개 올려져 있었다.
<사교육과 우울증의 관계성 입증>
<00병원 의사 폭행 사건으로 고소>
<00대학 의대생 신입생 집단 성폭행>
강당의 커다란 빔스크린에 나온 기사들을 보여주면서 서윤수는 눈을 부릅떴다.
[한목대 의예과에서 올해 입시부터는 MMI라는 신규 면접 방식을 도입합니다.]
학부모, 학생들이 침을 꼴딱 삼키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의대는 공부만 잘 하는 학생들이 입학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보시는 것 같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즉,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학생들이 입학을 했던 것입니다.]
서윤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청중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들은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희는 학생의 인성적 영역도 평가를 하기 위해 MMI면접, 다중미니면접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인성 영역도 평가한다는 말에 학부모들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성을 본다고?”
“그럼 면접 때 착한지 아닌지를 보는 건가?”
그때 서윤수가 PPT화면을 변경했다. 바뀐 화면에는 MMI면접의 도입 배경이 적혀 있었다.
[MMI 면접에서는 기본적인 생명윤리의식, 의료윤리 등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서 기출문제를 보여주었다. 기출문제를 확인한 학부모들이 다시 한번 웅성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왜냐하면 기출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원자는 병원 레지던트다. 어느 날 자신의 후배인 인턴A가 최씨에게 혈압약이 아니라 진정제를 투여한 사실을 알게 된다. 다행히 최씨는 즉각적으로 대응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때 인턴A는 지원자에게 교수님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한다. 이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미래에는 당연한, 자주 볼 수 있는 질문이 되지만, 당시의 학부모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질문이었다.
[이러한 형식의 질문을 토대로 학생이 갖추고 있는 인성 역량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서윤수는 슬라이드를 넘기면서 MMI면접이 갖고 있는 장점을 이야기했고,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렇게 설명이 이어지다 보니 마지막 페이지가 나왔다.
그리고 그 페이지에는 다소 공격적인 멘트가 적혀 있었다.
<더 이상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은 선발하지 않겠다>
페이지를 잠시간 응시하며 물을 한 모금 마신 서윤수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저희 한목대 의예과는 MMI를 도입함과 동시에 공부만 잘 하는 학생들을 선발하지 않으려 합니다.]
학부모들은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는 표정을 했다.
[기본적인 생명윤리의식이나 인성, 소통능력도 없는 학생을 MMI 면접을 통해서 걸러낼 것입니다.]
실제로 수능만점자도 MMI면접을 망쳐서 의예과에 떨어진 케이스도 많았다.
게다가 올해를 기점으로 의대 입시에서 면접의 중요도가 높아지게 된다.
한목대는 그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저희 한목대와 한목대 의예과의 입시 방향성을 이해해 주시고자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다소 조용하지만, 묵직한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몇 학부모들은 불안해했고, 몇몇 학생들은 자신감을 내비쳤다.
[궁금한 점 있으신 분 계십니까?]
윤 선생의 말에 한 아주머니가 손을 들었다.
“그럼 이제는 내신 올1등급이나 수능 만점 받아도 면접 못 보면 떨어지는 건가요?”
학부모의 질문에 서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내신등급 1.0이어도 면접 못 보면 떨어뜨릴 겁니다.]
서윤수의 답변에 좌중이 떠들썩해졌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아니 공부 잘하는 애들이 좋은 학과 가는게 뭐가 어때서요?”
“면접에 변별력은 있겠습니까? 당연히 공부 잘 하는 애들한테 점수 더 주는 거 아닌가요?”
학부모들의 수도 없는 질문이 쏟아져내렸다. 그런 질문들을 받으면 당황해할 법도 한데, 서윤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이미 이런 질문을 예측해서 알려 주었으니까.
* * *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윤수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은숙이한테 듣기로는 이 동네가 극성이라던데, 설명회 때 질문이 뭐가 나올 것 같은가?”
그 질문에 나는 빙긋 웃으면서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답했다.
“변별력이 있겠는지, 내신이 부족해도 역전이 가능한지 등이 있죠. 그리고 이런 질문도 나올 겁니다.”
나는 서윤수의 눈을 응시하면서 흘리듯 가볍게 이야기했다.
“한목대 주제에 유세떤다, 의예과가 별거냐, 너희 말고 갈 수 있는 대학 많다, 이제는 사교육을 더 조장하는 거 아니냐, 꼴랑 10분 면접으로 평가가 되겠냐, 왜 너희만 이런거 만들어서 피곤하게 만드냐, 사람들이 외면한다는 생각 안 해 봤냐…….”
“됐네, 됐어. 그렇게나 많은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겁니다.”
평소 강문고 학부모들, 그리고 MMI면접이 도입된 후부터 미래의 그때까지도 꾸준히 이야기가 나오는 불만사항이 있었다.
강문고에서도 이 질문이 무조건 나올 게 분명했다.
“의사가 공부만 잘하면 됐지 뭘 더 바랍니까?”
“허어…….”
내 말에 서윤수가 탄식을 내뱉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네.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은숙이 부탁이어도 안 오는 건데.”
서윤수는 농을 섞으며 답했다. 그러나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뭐라고 답하면 좋을까?”
“공부 이외에도 바라야 한다고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5년, 6년만 지나면 판가름이 날 겁니다. 공부만 잘하는 수능 점수, MEET 위주의 학생들이 술기 능력을 지니지는 않는다는 연구가 말이죠.”
실제로 MMI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대학교에서 필기, 술기 모두 성취도가 높게 측정되었다.
반면 수능, 내신만으로 선발된 학생들은 공부는 잘 할지 몰라도 그 이외의 역량이 부족해 술기 점수가 낮았다.
“학부모들이 질문을 하면 절대 기싸움에 밀려서는 안 됩니다.”
나는 입시 코디를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학부모들의 특징을 생각해 보았다.
그때의 나는 교육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데에 집중하느라 학부모들에게 휘둘리며 살았었다.
하지만 회귀한 지금은 강남에 위치한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솔직히 말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애가 의사 해서야 쓰겠습니까?”
학부모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고, 내 실력으로 실적을 내서 인정을 받으면 됐다.
게다가 오늘 단상에 올라가는 서윤수 교수는 학교 관계자도 아니니까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물론 이 사람 성격을 보면 기죽을 타입은 아니긴 하지만.
“한번 기싸움에서 밀리면 질타만 받고 내려오시게 될 겁니다.”
서윤수는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이내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메모지를 꺼냈다. 내가 이야기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작성하고는 말했다.
“정말 그럴지 기대가 되는구먼.”
* * *
서윤수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1분여 동안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열을 내고 있는 한 학부모를 향해 말했다.
[자녀분이 발표력이 조금 부족합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열을 내던 아주머니가 헛기침을 하고는 대답했다.
“우리 애는 조용한 성격이고 과묵해요! 다른 의대들도 이 이상한 면접이 생기면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나요! 우리 아이 같은 학생들은 의대는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건가요!”
“맞아! 혹시 다른 학교들도 이 M뭐시기 면접을 하겠다고 합니까?”
“그런거면 전국 학부모들 다 모여야 합니다! 의사가 공부만 잘하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장내가 떠들썩해지면서 학부모들이 자기들끼리 토의를 열었다. 이 면접 방식이 도입되면 자기 자식들에게 어떤 점에서 유리할지, 불리할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학부모들을 향해 서윤수가 묵직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공부만 잘 하는 학생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서윤수의 답변에 학부모들이 잠시 이야기를 멈췄다.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는지 서윤수가 말을 이어나갔다.
[발표도 못 하고 말도 못하는 학생이 의예과를 꿈꾸고 있습니까? 성격을 바꿔야죠. 의대 진학하면 뭐합니까? 의사 되어서 환자 진찰도 제대로 못할 텐데.]
놀랍게도 서윤수는 내가 조언했던 사항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었다. 그가 강단 뒤에 서 있는 나를 향해 살짝 고갯짓을 했다.
나는 그 얼굴에 살짝 화답하고는 다시 청중을 돌아봤다.
[저는 사교육으로 점철된 학생들을 싫어합니다.]
나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자리에 앉은 학부모들을 둘러보았다.
자식을 의대에 합격시키는 게 본인인생의 꿈으로 자리하고 있는 학부모들.
밤 11시까지 학원에서 굴리고 자식들을 또 태우러 다니는 학부모들. 새벽까지 과외를 시키고도 모자라 8차선 도로의 양변 2차선 도로를 모두 차지하고서 자식들을 픽업하겠다고 하는 학부모들.
그리고 그런 일상이 당연하다는 듯 길들여져 있는 학생들.
서윤수는 MMI면접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을 향해 마이크를 굳건히 잡았다.
[아이들을 사교육에 적응시켜 버린 학부모들을 싫어합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