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제가 사겠습니다
“윤 선생님 말로는 의대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이 많아서 선호하는 의예과가 있는 대학교를 찾다가 선택했다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 학교를 강 선생님이 추천하기도 했다면서.”
그는 카페 사장에게 마카롱을 추가로 주문했다. 이러다 박스째로 사 갈 기세였다.
“이사장에게 이야기는 들어서 이 동네 사정이 어떤지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을 보면 대충 윤곽이 나오기도 합니다.”
새로 리필된 마카롱을 집어서 한입 베어물었다. 달달한 맛이 입안에 퍼져왔다.
“강 선생님, 우리 학교에 온 학생들 중 제대로 된 의사로 성장하는 애들이 몇 명이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 시점에서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미래에 여러 사고들을 치게 된다.
어떤 녀석들은 동기 남학생들과 짜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 술에 취한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을 한다. 또 어떤 학교의 재학생은 성희롱으로 집단 징계를 받기도 한다.
“많은 학생들이 의대를 철밥통이라 생각하거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일이라 여기면서 들어옵니다.”
서윤수는 입술을 까득 깨물면서 말을 이었다.
“특히나 사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왔던 학생들이 대학교에 와서 사고를 많이 칩니다. 그뿐입니까, 의사가 되어서도 면허를 취득하면 다들 도심지 병원에만 지원하고, 지방 대학병원은 겨우 정원을 채울 수준입니다.”
앞으로 10년만 있으면 지방대학병원 지원자 수는 점차 줄어들고, 비인기과들은 미달이 나기도 한다.
많은 학생들이 수도권을 선호하고, 인기학과를 가려고 하기 때문도 컸다.
“게다가 다들 편하게 공부할 생각들만 하고 있습니다. 의대에 올 정도면 생각이라도 똑바로 박힌 놈들이 와야 하는데, 영 그렇지 않아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잠시 듣고 있다가 마카롱을 하나 집어서 그에게 건넸다.
“하나 드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맛이 다양하니까 여러 개 먹어도 질리지가 않네요.”
나는 너무 달아서 금방 질렸지만,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이번 입시방향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MMI 도입 배경이 그와 관련이 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서윤수는 먹던 마카롱을 잠시 내려놓고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MMI도입 배경도 알고 계십니까?”
“대략은 알고 있습니다. 의사로서 생명윤리의식을 지녀야 하는데 이런 의식을 지니지 못한 지원자가 많아서이지 않습니까?”
“거기까지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사장이 눈독을 들일 만합니다, 허허.”
그는 이제 내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물었다.
“MMI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되어야 할까요?”
“환자와 소통할 줄 알아야 하고, 윤리성, 공감능력 역시 중요합니다. 만약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깐 숨을 삼켰다. 서윤수는 내 말에 동의하면서 열을 올렸다.
“맞습니다. 공부만 잘하고 남들한테 도움만 받아온 싸가지 없는……. 죄송합니다, 버릇이 없는 학생들이 오면 전체 물을 다 흐리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MMI 면접은 도입 당시 욕이란 욕을 다양하게 먹어 왔다.
특히, 공부만 잘하는 학생들을 어떻게든 의대로 보내려고 했던 학부모들로부터 말이다.
한목대를 시작으로 서울한국대 등으로 MMI 면접이 커지면서는 명문 의대를 입학하기 위해 MMI도 사교육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 교육도 내가 진행을 했었다.
그리고 교육을 하다 보면 엉망진창인 학생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돈 받고 가르치면서도 이런 애를 의대에 합격시켜야 하나, 싶기도 할 정도인 녀석들도 제법 있었다.
“어떤 문제가 나와 주면 좋을까요?”
“의료사고 상황을 목격했을 때의 대처 능력이나, 연령대에 맞도록 쉽게 설명하는 질문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 나올 기출문제들의 주제였다.
“그리고 아직 임상시험이 되지 않은 신약을 친구나 가족이 아파할 때 비밀리에 투약할지 말지 고민하는 형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한목대 기출문제고 말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자 서윤수는 헛웃음을 날리면서 의자 등받이로 몸을 기댔다.
“허어, 이렇게까지…… 족집게 강사 하셔도 되겠습니다.”
“괜찮은 주제들입니까?”
“괜찮다마다요! 전부 저희가 내부에서 논의 중인 주제들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고개를 젖히며 껄껄 웃었다. 기출문제를 일부 유출했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는 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강 선생님.”
“네, 교수님.”
“이따 특강 때 좀 강하게 멘트를 날릴 수도 있습니다. 괜찮을까요?”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그가 단호하게 앞으로의 의대가 변화할 것임을 암시할 생각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네 물론입니다. 다만, 설명회 끝나면 공격적인 질문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은 감안해야지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대가 되었다. 강남, 서초 학생들을 싫어하는 서윤수는 분명 학부모들로부터 수많은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화살을 쳐내는 것도 발표자인 서윤수의 역할이었다.
우리는 한 시간여가량 더 이야기를 나누고는-서윤수의 한탄을 들어준 게 다였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에헤이, 내가 사야지,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
어느새 말까지 놓은 서윤수는 내가 꺼내려는 카드를 막았다.
“이거 이사장님 카드라서 괜찮습니다.”
“아 강은숙이 카드야? 그럼 결제해 버려!”
꽤나 기분이 좋아진 서윤수는 마카롱 세트까지 추가로 구매해서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이사장의 카드를 꺼내 결제를 했다. 카페에서 먹은 금액만 둘이 5만 원이 넘어갔다.
‘누가 이렇게 먹었냐 물어보면 서교수님이 먹었다 해야겠다.’
나도 몇 개 집어먹기는 했지만, 서윤수가 다 먹은 건 사실이니 말이다.
* * *
“이야, 그 카페 끝내줍니다! 이거 드셔 보세요!”
학교로 돌아온 서윤수는 강당에서 대기하고 있던 윤 선생과 김철웅 입학사정관에게 포장해온 마카롱 세트를 건넸다.
“오 이거 맛있네요.”
“강 선생님, 여기 그 카페 아닙니까?”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둘을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저 두 사람도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지, 방금 전보다도 훨씬 친해진 모습을 보였다.
“이제 곧 시작됩니다. 30분 남았어요.”
윤 선생이 신청자 명단을 인쇄한 종이를 들고 와서 말했다.
“학생들에게도 자유참여하라고 이야기를 하기는 했는데, 애들이 올까요?”
아마 학생들이 오면 자리가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혹시나 더 오면 계단에라도 앉혀야죠 뭐.”
“맞네 맞아! 젊은 놈들이 의자는 무슨, 바닥에 앉아서 들으면 충분하지!”
내 말에 서윤수가 동의하면서 요즘 것들은, 으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학생들에게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쌤! 저 왔어요!”
학생회장인 민주와 학생회 인원들 셋이 강당에 들어왔다.
시험이 끝난 시점이어서 학생회의 다른 인원들도 행사를 도우러 온 것 같았다.
“그래, 와서 이거 배치해둔 거 있지? 오시는 분들 나눠드리고, 명단 체크해.”
나는 설명회에 참석하는 인원들에게 배부할 한목대 입시 책자와 음료수, 볼펜을 가리켰다.
모두 한목대에서 준비해온 것들로, 입시 책자에는 올해 입시 전형의 변화가 정리되어 있었다.
물론, 나도 한 권 챙기는 건 잊지 않았다.
“이거 받고.”
윤 선생과 나는 민주와 학생회 학생들에게 명단 종이를 나눠 주었다.
“명단은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어. 오시면 이름 체크해. 학부모님 성함만 적혀 있으면 학생 이름도 여쭤봐.”
명단을 쭉 훑던 민주가 꽤 많은 신청자 수에 놀라며 물었다.
“쌤, 이분들 다 오세요? 엄청 많이 오시겠는데요?”
“그래도 체크 다 해야 해. 나중에 쓸 일이 있어.”
명단 체크는 오늘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추후 상담을 할 때 참고하기 위한 자료였다.
“신청 안 하고 즉흥으로 오는 분도 계실 테니 그분들도 성함 꼭 여쭤보고. 학생 이름도 같이.”
민주는 진행 방식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번호도 받아요?”
“아냐. 전화번호는 안 받아도 돼. 기존 신청자 명단, 추가 참석자 이름만 체크해.”
“자리는요?”
“저기 1열부터 10열까지는 사전 신청자 전용 자리야. 그 뒤는 현장 참석자분들. 혹시 자리 부족하면 계단에 앉으셔야 하는데 괜찮냐고 여쭤보고.”
자리 배치에 대해서도 설명을 마치고 민주에게 궁금한 거 있으면 달려오라고 이야기를 했다.
민주는 알겠다며 자신만 믿으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런 거 보면 은장이와 성격이 비슷해 보였다.
이제 입구는 민주와 학생회 학생들에게 맡기고 강당의 단상 앞으로 향했다.
거기에서는 최종 리허설도 마친 김철웅이 긴장한 채 레이저포인터를 들고 있었다.
“하, 하. 그래도 좀 긴장은 되네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이거 먹어.”
서윤수는 남은 마카롱을 꺼내서 김철웅의 입에 우겨 넣었다.
“우물, 감사, 홥니, 쩝쩝, 다.”
갑자기 입에 들어온 마카롱에 놀라 당황한 김철웅이 다 녹지 않은 마카롱을 입에 머금으며 말했다.
“들어오네요.”
강당으로 들어오는 인원들을 보니 신청자 수보다 더 많은 인원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들어오는 사람들은 절반은 사전 신청자, 절반은 현장 참석자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많은데?”
윤 선생은 어느새 조금 걱정이 된다며 강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를 확인했다.
얼추 잡아도 사전 신청자인 104명은 훨씬 넘어가 보였다.
“민주야!”
그리고 전 학생회장인 은장이도 도착했다. 옆에 동석이와 정석이를 데리고서 말이다.
“너희는 왜 왔어? 공부하라니까.”
“에이, 그래도 쌤 엄청 크게 준비하셨는데 어떻게 빠져요! 민주야 도와줄 거 없어?”
“앗 도와주실 거예요?”
이미 은장이는 민주 옆에 다가가서 행사 진행 스텝을 자처하고 있었다. 시사RPG대회 이후부터 계속 스텝 일에 관심을 두더니 거의 놀러온 모양새였다.
“너희도 가서 도와.”
내 말에 동석이와 정석이도 머리를 긁적이며 은장이와 민주 쪽에 합류했다.
[곧 한목대 입시특강-변화하는 입시 전형, MMI면접 최초 도입! 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참석자분들께서는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윤 선생의 안내멘트가 울리자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최종적으로 강당에 들어온 참석자들을 살펴보았다.
사전 신청자 중에 열 명 정도는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현장 참석자들과 학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학생들도 많아서 조금 놀라기는 했다.
그중에는 아는 얼굴도 보였다.
‘놀러온 건지, 정말 궁금해서 온 건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윤 선생의 안내 멘트를 들으며 서윤수와 김철웅을 돌아봤다.
[저는 오늘 특강 사회를 맡은 윤기준입니다. 강문고 과학 선생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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