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저는 싫습니다
“다중미니면접으로, 학생은 정해진 3개 내지 4개의 강의실을 번갈아 가면서 들어가게 됩니다. 각각의 강의실에서는 여러 상황을 보여 주는 인적성 제시문과 질문에 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시문 해석시간 15분, 면접시간 10분 내외로 전체 면접 시간은 약 2시간이 소요될 예정이고요.”
서윤수는 짐짓 놀란 모양이었다. 내 답변을 흥미롭게 듣고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류 선생이 가지고 온 음식을 하나 들었다.
“어떤 주제의 제시문일까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응급 환자 중 치료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지와 같은 상황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상황에 맞춰 답변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일부러 이야기를 멈췄다.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 이외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여기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를 풀어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수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알 수 있는 내용과 예상 질문들 정도만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서윤수의 눈에 들어오는 데는 충분했다.
지금 시점에서 MMI면접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교사나 강사는 거의 없었으니, 지금 내가 신기해 보일 것이었다.
“여기 강명문 선생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럼 학부모님들,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강문고에서도 선생님 이외에는 잘 모르신다는 거네요?”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자리를 요청드린 것입니다.”
윤 선생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살짝 거들었다. 서윤수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조곤조곤히 물었다.
“설명회가 끝나고 누군가 남아서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군요. 그러면 설명회 컨셉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한 나도 빙긋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 편하신 스타일로 해 주시면 됩니다.”
이야기를 마친 후 우리는 적당히 교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하는 내내 류 선생이 옆에서 서윤수를 보필하려 했다. 그런 류 선생을 부드럽게 떼어내는 서윤수,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민 부장 때문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런데 류지훈 선생님은 원래 좀 수다스러운 편인가요?”
식사를 마친 서윤수에게 요구르트를 하나 따주는 류지훈에게 질문이 들어왔다.
“아, 아닙니다. 교수님만 제가 특별히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 거면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제처럼 경비 부른다고 하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합니다, 허허허.”
류 선생은 서윤수의 말에 몸을 굳히고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왔다. 민 부장은 류 선생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귓속말이었지만, 선명하게 들려왔다. 저게 무슨 소리인지 해명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서윤수는 요구르트를 한입에 마시고는 쓰레기통에 빈 병을 버렸다.
“그나저나 우리, 아니 이사장님은 오늘 안 나오셨나요?”
역시, 이사장은 이 사람과 직접적인 연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도 꽤 가까운 사이일 것으로 추측되었다.
“이사장님은 이따 특강 시간에 자리하실 예정입니다. 일정이 있다고 하셨어요.”
“허허, 그렇군요. 아쉽네요.”
서윤수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하고는 윤 선생에게 특강 진행에 대해 물었다.
일반적인 입시설명회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준비할 사항은 없었다. 윤 선생도 기본 진행 방향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 주었다.
다만 이사장의 지시로,
<한목대 입시특강-변화하는 입시 전형, MMI면접 최초 도입!>
이라는 타이틀의 현수막을 걸어두었다.
현수막 우측 하단에 진행자인 입학사정관과 교수의 얼굴을 넣은 건 당연했고.
“뭐 저런 부끄러운 사진을 올려놨데.”
서윤수는 강당에 달아둔 현수막을 보면서 눈을 찌푸렸다.
“이사장님께서 저 사진이 좋다고 하셔서 저렇게 진행했습니다.”
나는 태연하게 답하면서 서윤수의 표정을 살폈다. 이사장을 언급하자 서윤수는 찌푸린 미간을 다시 펴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껄껄,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지! 오늘 예상 인원은 몇 명 정도인가요?”
“신청자는 104명입니다. 미참석자가 있어도 당일 참석자도 있으니 아마 100명 전후로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윤 선생이 명단을 한번 훑어보고는 대답했다.
그 명단 안에는 익숙한 이름들도 몇 명 들어 있었다.
예를 들면 학부모회장인 나명천의 어머니.
‘역시.’
학부모회장은 명천이를 한목대 의대에 입학시키는 게 최소한의 마지노선일 것이었다. 때문에 오늘의 자리는 의대입시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리가 된다.
“강 선생님은 이후 수업 있습니까?”
“아뇨, 오늘은 진로체험주간이라 학생들 모두 자습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만들어둔 진로체험주간에는 외부에서의 진로 특강을 듣거나, 동영상을 틀어두고 자습을 한다.
지금쯤 우리 3반 녀석들도 은장이가 틀어둔 Teod 영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뭐 한두 명이라도 깨어 있으면 다행이지.’
대부분 학원 숙제를 하거나, 새벽까지 과외를 받느라 밤샘한 녀석들의 쉬는 시간이 진로시간이었다.
어쨌든, 이런 시간이 있는 덕분에 한목대 특강을 윤 선생이 제안할 수 있었다. 즉, 오늘 한목대 특강도 진로체험주간에 진행하는 진로교육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특강에 학생들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관심 있는 사람은 학부모들이었다. 오늘 같은 특강은 학부모도 참여할 수 있게 오픈되었고, 학생들은 선택에 의해 자습과 수업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습을 택한다.
가끔 학생들이 오기도 하지만 와서 듣는 시늉만 하고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 잠깐 티타임 괜찮을까요?”
그 말에 놀란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한 교감과 민 부장, 그리고 류 선생이었다. 오히려 윤 선생은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특강 준비사항을 체크하고 있었다.
“아, 교수님 그럼 저희도…….”
“아니요, 다른 분들은 바쁘실 것 같으니 괜찮아요.”
윤 선생을 제외한 셋은 서윤수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을 무시한 채 서윤수는 나에게 가볍게 이야기를 했다.
“어제 보니까 학교 근처에 카페도 많던데, 어때요?”
“저야 함께 하면 영광입니다. 제가 맛있는 카페를 알고 있는데 디저트도 끝내줍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단 거 좋아하는데! 잘 됐군요, 이참에 강남 맛집 좀 다녀 봐야겠습니다 허허.”
서윤수는 손목시계를 살짝 보더니 김철웅 입학사정관에게 물었다.
“사정관님, 30분 전까지만 오면 되겠지요?”
“네, 어차피 앞서 내용은 제가 발표하니까요. 교수님은 설명회 시작하고 1시간 정도 뒤에 올라오실 겁니다. 여유 있게 즐기고 오십쇼.”
그 역시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은 아니라는 듯 김철웅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윤 선생 옆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그는 USB를 꺼내 미리 준비해둔 노트북에 연결해서 PPT화면을 띄워두고 리허설을 준비했다.
“능숙하시네요.”
“저야 이게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생각보다 죽이 잘 맞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괜히 안심이 되었다.
“그럼 우리는 이동을 하기로 하고…… 교감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강 선생이 입시에 관심이 아주 많아요. 우리 학교에서 입시 전문 일타강사로 키워 볼 생각이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듣도 보도 못한 말에 내가 한 마디 반대 의견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서윤수의 호탕한 웃음에 반박할 의욕을 상실했다.
“어쩐지 좀 다르다 했습니다! 국어 선생님이라 하셨죠?”
“네, 3학년 국어 담당입니다.”
“그럼 추천서나 자기소개서도 잘 아시겠네요. 이거 참 기대가 됩니다.”
그렇게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민 부장과 류 선생만 똥 씹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행색을 하는 두 사람을 살짝 돌아보고는 서윤수와 강당 밖으로 걸어갔다.
학교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카페. 여름이지만 바람이 제법 불고, 나무 그늘도 많아 걸어가는 길은 덥지 않았다.
내가 서윤수에게 소개한 가게는 정석이와 미란이의 만남을 따라가다가 발견했던 마카롱 카페였다.
“여기 마카롱과 커피가 제법 괜찮습니다.”
“한눈에 봐도 동네 맛집인 게 보이네요. 그런데 마카롱이 뭐죠?”
우리는 들어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마카롱을 하나씩 주문했다. 서윤수는 마카롱을 먼저 집어서 입에 넣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맛있군요!”
“더 주문하셔도 됩니다.”
“그래야겠네요. 사장님, 이거 종류 또 뭐뭐 있습니까?”
단 걸 좋아한다고 하더니 서윤수는 생각 이상으로 달달한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여기 참 맛있네요. 강 선생님은 여자친구분이랑 이런 곳 많이 다니시죠?”
“아…… 그냥 학교에서 가까워서 동료 교사들과 퇴근길에 한 번씩 들르는 정도입니다.”
학생 뒷조사 하다가 알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
“이사장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얼음이 조금 녹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참 그렇지. 이사장과 내가 어떤 사이인지는 들으셨나요?”
서윤수는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살짝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아뇨, 따로 말씀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쩝.”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서윤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아직까지도 그리 생각하나 이 사람 으이그.”
“교수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커흠!”
그가 당황해 했기에 나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지금 입시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입시 전반적인 부분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내 물음에 서윤수는 한 번 더 한숨을 푹 쉬었다. 물론, 방금보다는 덜 깊은 한숨이었다.
“우리 학교에 오는 학생들 대부분은 의과대나 간호대만 바라보고 옵니다.”
한목대는 다른 학과들 보다도 의대와 간호대의 명성이 높았다. 사실 그 두 개 학과가 아니라면, 학생들은 지방으로 갈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특히, 공부를 좀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일수록 말이다.
“그래서 이사장이 연락 줬을 때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 학교 특강을 강남서초권에서 진행한 적은 거의 없거든요.”
“그렇습니까?”
강남서초권 학생들에게 1학년부터 강원도 사립대로 진학하라고 하면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날 게 뻔했다. 그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입시설명회는 가급적 인서울 상위권 이상의 학교들에게 요청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서윤수 입장에서 강문고의 한목대 특강 요청은 다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방금 이걸 준비하는 윤기준 선생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우리 학교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요.”
“아.”
그러고 보니 식사가 끝나고 이동하면서 윤 선생과 서윤수가 특강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때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강 선생님.”
서윤수는 남은 마카롱 반 조각을 마저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저는 강남, 서초 학생들이 싫습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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