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이해들은 하겠어요?
류지훈은 퇴근하기 전에 이상한 남성을 만났다.
학생들의 성적 입력을 마치고 저녁 때가 되어서 밖으로 나왔을 때는, 여름 해도 슬슬 지고 있을 시간이었다.
‘얼른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교문을 나서려는 때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반이 넘어 보이는 남성이 다가왔다.
“강문고 선생님이신가요?”
동네주민 같지는 않은 모습에, 가볍게 지나가려다 붙잡혔다는 점 때문에 다소 경계심을 가지고 답했다.
“네, 맞습니다만, 어떤 일로 오셨을까요?”
“아, 제가 이 학교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도통 내부 지도를 봐도 어디가 어딘지…….”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학부모는 아니고, 학교 관계자 중 누군가를 만나려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죄송한데 제가 뒤에 일정이 있어서…… 경비에게 물어보면 알려줄 겁니다. 그리고 학교는 8시 넘으면 외부인 출입금지입니다.”
류지훈은 눈앞의 수상한 남성에게 경고를 했다. 남성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더니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원래 8시가 넘으면 문을 닫나요?”
“사립고등학교여서 주민들이 사용할 경우 문제 발생 소지가 있거든요.”
“선생님은 어느 과목을 가르치시나요?”
“저는 수학 교사입니다.”
“성함은?”
“제가 그것까지 알려드려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질문에 류지훈은 짜증을 냈다.
“학교에 일 없으시면 이만 나가 주시겠어요? 아니면 경비 부릅니다.”
“아이고, 알았습니다, 알았어. 친구한테는 연락을 따로 해야겠네요.”
남성은 그 길로 학교 교문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류지훈은 그 모습을 무시하고 근처에 세워져 있는 차량에 탑승했다.
“왜 이리 늦어?”
“죄송합니다, 부장님. 교문 앞에서 어떤 아저씨? 할아버지? 한테 붙잡혀서…….”
민지정은 류지훈을 한번 쏘아보고는 좌석 옆에 비치해둔 물병을 땄다.
“마셔.”
“감사합니다.”
류지훈이 물을 한 모금 마실 때쯤 민지정이 말했다.
“강명문 어때?”
“열정이 과하다 못해 지금은 넘쳐서 영향력도 꽤 커진 것 같습니다.”
민지정은 그 말에 짧게 신음했다.
“방해가 될까?”
“얼마 전에 김은장이에 대해 물어보기는 했는데…… 그 뒤로는 정말 열정 많은 초임교사 그 자체로만 보이기는 합니다.”
강명문이 최근 이례적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입시에 관심도 없었던 대다수의 교사들과는 다르게 입시 준비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명문이 독특한 점은 수능 준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대다수의 강문고를 비롯한 강남, 서초권 학교 교사들은 수능 위주의 수업을 했다.
아니,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강명문은 이상한 대회를 열었다. 때로는 학생들로부터 신임을 얻는 상담을 하기도 하면서 초임교사라고는 믿을 수 없는 행보를 이어 가고 있었다.
민지정은 그런 강명문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류지훈의 말처럼 열정 넘치는 초임교사의 모습이기도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인 상황이었다.
“내일 한목대 특강.”
류지훈은 그녀의 말에 숨을 삼켰다.
“강명문이 에스코트하기로 한 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민지정은 깊게 숨을 내쉬고는 류지훈을 향해 서류를 하나 건넸다. 서류에는 이번 한목대 의과대학장의 방문 시간을 비롯한 특강의 구체적인 일정표가 들어 있었다.
“이대로 두면 안 돼.”
민지정은 조급했다. 그녀는 강문고의 여러 교사들 중에서도 가장 권력욕이 강한 교사였다.
그렇기에 한명심 교감과도 친밀하게 지내고자 노력했다. 교무부장을 달고서는 차기 교감은 그녀가 될 거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래서 자신의 세력을 늘리고 힘을 키워 가고 있었건만.
‘대체 어떻게……?’
한 초임교사가 최근 교감의 눈에 들어오더니 이제는 이사장의 눈에도 들어왔다. 십 년 넘은 경력자 교사도 아닌, 이제 막 2년 차인 초임교사가 말이다.
“벌써 교감라인 잡은 사람이야. 류 선생도 못 한 일이고.”
류지훈은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으며 강명문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고민 중이야. 이대로 지켜볼지, 우리 쪽으로 데리고 올지. 아니면…….”
민지정이 말끝을 흐렸다. 류지훈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파악했다.
“일단 참고만 해두세요. 중요한 건 내일 한목대 특강에서 강명문이 활약하게 놔두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만약 이번 특강에서마저도 강명문이 의과대학장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면 한명심 교감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어렵게 세력을 키운 민지정은 차기 교감이라는 타이틀이 있어도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태로는 교감이 되어 봤자야.’
그녀는 확실하게 강문고라는 사립고등학교를 휘어잡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는 자신의 힘이 절대적이어야 했다. 어차피 정년만을 바라보는 공무원 마인드의 교사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류지훈, 임대원처럼 사립학교인 강문고에서 권력을 쥐고, 조금이라도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자들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도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가능했다.
그리고 그 힘은 한명심 교감의 신임을 받는 시점에서나 가능했다.
“류 선생도 이번에 잘 좀 해 봐요. 요즘 똥볼만 차는 거 같아.”
“네, 신경 쓰겠습니다.”
그 신임을 받기 위해서는 현재 경쟁자가 되어버린 강명문을 끌어내릴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민지정은 류지훈을 향해 눈빛을 보냈다.
“이거.”
민지정은 품에서 작은 종이를 하나 꺼내고는 류지훈에게 건네주었다.
“회장님 부탁.”
종이를 받아든 류지훈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알겠습니다.”
류지훈은 서류봉투를 챙기고 다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서류봉투를 자신의 가방 안에 넣었다.
‘나쁘지 않네.’
주머니로는 회장이 대리 전달한 종이와 그 안에 끼어 있던 수표 한 장을 넣으면서 류지훈은 심지석을 떠올렸다.
‘같이 좀 도와주지 그러니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류지훈은 내일 의과대학장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했다.
* * *
특강 당일인 16일 금요일. 민 부장과 한 교감, 류 선생 셋은 점심도 거른 채 한목대 입학사정관과 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목대 의과대학장인 서윤수라고 합니다.”
“입학사정관 김철웅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류지훈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윤수는 자신의 서류 가방을 들고서는 잠시 류 선생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고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아, 아!”
류 선생은 갑자기 새파랗게 지린 얼굴을 하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류 선생님?”
“아, 강 선생. 괜찮아, 그럼그럼.”
그의 반응에 서윤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류 선생을 노려보다가 이내 표정을 풀며 말했다.
“이렇게 또 보네요.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죄송은 뭘. 사립학교 선생님이면 외부인 출입 막는 거야 당연하지.”
서윤수는 서류가방을 들고 뒤에서 강 교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김철웅에게 말했다.
“사정관님, 그러다 시간 가요, 얼른 갑시다.”
그의 말에 김철웅이 허겁지겁 가방을 챙기고 달려왔다.
“제가 챙기겠습니다.”
그런 김철웅을 류 선생이 잽싸게 챙겼다. 그는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면서 류 선생을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무슨 일 있나?’
유독 류 선생은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분명 오늘 의과대학장과 입사관을 챙겨야 할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류 선생과 민 부장이 나와 있었다.
그런 거라면 대충 상황은 예상이 되었다.
아마, 민 부장이 나를 견제하라고 류 선생을 데리고 왔을 것이었다.
‘차기 교감이라 불렸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
여기까지는 이해가 갔지만, 류 선생이 지나치게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방금 둘의 이야기로 미루어보면 어제 지나가는 길에 만난 모양이었다.
그때 류 선생은 찍힐 만한 행동을 했을 것이고.
“강명문 선생님이 누구십니까?”
류 선생과 서윤수 학장의 관계에 대해 추측하던 중 서윤수 의과대학장이 나를 불렀다. 그의 말에 한 교감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 선생이라면 여기! 여기 있습니다. 강 선생! 어서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강명문입니다. 학교에서 국어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 담백한 소개에 의과대학장이 가볍게 웃으면서 화답했다.
“반가워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지 못했기에 묻고 싶었지만, 류 선생이 우리 앞을 쓱 막고 나섰다.
“시장하시죠? 가볍게 학교 둘러보시면 곧 점심시간이니 저희 학교 교직원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서윤수는 그런 류 선생을 보면서 웃는 표정을 잠깐 풀었다가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요. 기대되네요.”
우리는 급식실로 걸어가면서 행사 진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중에 수업 때문에 늦게 나온 윤 선생이 합류했다. 윤 선생은 행사장인 강당의 위치와 진행 순서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어려울 건 없겠습니다.”
김철웅 입학사정관이 윤 선생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은 거 맞나?”
반면 서윤수 학장은 무언가 불만이라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네 동선은 그리 어렵지 않고…….”
“아니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에요.”
어느새 교직원 식당에 자리한 서윤수가 식판 앞으로 다가서서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 의대 입시전형 변화를 알려 줬으면 한다면서요?”
그 말에 윤 선생이 맞다고 화답했다.
이전에 한목대 특강을 허가받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한목대 의대 전형 변화였다. 변화된 의대 입시 전형을 아직 잘 모르는 교사, 학부모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류지훈 선생님은 우리 학교 의대 입시 방법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고 있나요?”
갑작스런 서윤수의 질문에 류 선생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물컵을 쏟을 뻔했다.
옆에서 민 부장이 빨리 대답하라며 부추겼다. 하지만, 그녀 역시 답을 전혀 모르는지 구매한 지 얼마 안 된 스마트폰 화면만 전전긍긍했다.
“당장 이걸 요청한 강문고측에서도 잘 모르는데, 한번 듣는다고 이해들은 하겠어요?”
서윤수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나는 서윤수를 보고는 곧장 한 교감의 눈치를 살폈다. 한 교감은 빨리 뭐든 말하라며 재촉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답했다.
“이번 한목대 의예과에서는 MMI라는 인적성 상황 면접을 대입에서 국내 처음 도입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 말에 서윤수가 몸을 가까이 끌어당겨 앉았다. 마치 대담을 하겠다기보다는 테스트를 해 보겠다는 듯 다가온 서윤수는 하나씩 질문을 던졌다.
“MMI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도 알고 계시나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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