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41화 (41/252)

41화. 색다른 경험이 뭔데?

이번 2011학년도 입시부터 대한민국의 입시 트렌드가 변화한다. 수시든, 정시든 기존의 방향과는 다른 평가요소가 도입되고, 학교에서도 이로 인해 여러 혼란을 겪게 된다.

하지만 강문고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이번 입시 변화의 중심에 강명문 선생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명심 교감이 만들었다고 나오겠지만, 강명문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강명문이 보여 준 수행평가 발표, 시사RPG대회. 이 두 개만으로도 그는 강문고에서는 일례가 없었던 특이한 이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사장은 다가올 한목대 특강에서도 그에게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그래봤자 초임교사인데 아는 게 있겠어?]

전화기 속 주인공이 이사장에게 관심 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니야, 직접 만나 보면 다르다니까?”

[뭐가 다른데?]

전화기 속의 남성은 이사장과 비슷한 60대 이상의 연륜이 깃든 목소리로 퉁명스레 답했다. 이사장은 싱긋 웃었다. 그 미소를 남성은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마치 알고 있다는 듯 반응했다.

[기분이 아주 좋은가 봐?]

“들렸어?”

[당연하지. 아주 강은숙 이사장님이 새 칼을 갈고 가는 것 같은데.]

“칼 같은 거 아니야.”

이사장은 강명문이 이야기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대회 준비를 위해서 강진 어르신을 대회 주제로 삼은 일, 중식당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강 선생이라면 다를지도 모르겠어.’

강명문은 지금까지 봤던 교사와는 달랐다. 지금까지 이사장이 봐왔던 교사는 사립 고등학교라는 간판 아래에서 편하게 노후까지 살아가려는 사람이 많았다. 다르다고 해도 학교 내에서 나름의 권력과 지위를 잡아 승진하려는 사람들뿐이었다.

지금 교장, 교감을 하고 있는 강철면, 한명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강명문은 초임교사여서 가지고 있는 패기 따위가 아니었다. 진지하게 입시대박을 노리기보다는, 학생들을 챙겨 주다 보니 자연스레 입시를 준비하게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김은장, 최동석, 이정석. 이 세 학생만으로도 강명문이 학교 내에서 얼마나 활약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잘못 들어가면 안 되는데.’

그렇기에 이사장은 강명문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의과대학장님은 언제 오려고?”

[강 이사장 부탁이라면 밥때 전에도 가야지. 오래간만에 술이라도 한 잔 할래?]

“낮부터 술 마시면 안 돼. 대학교가 아니라 고등학교라는 거 잊었어?”

의과대학장의 농에 이사장이 가볍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런 장난마저 그리웠는지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좋았지 예전에는. 그때 우리 처음 만나자마자 낮술 마시던 땐…….]

“아 이제 미팅 가야 한다. 끊을게. 연락해.”

[아 잠깐ㅁ…….]

전화를 툭 끊고는 이사장은 한숨을 쉬었다. 한목대 의과대학장 서윤수.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라 지금은 꽤나 막역한 사이였다.

‘설마 이런 인맥이 이번에 도움이 될 줄은.’

강명문과 윤기준이 준비하는 한목대 입시특강. 왜 한목대인지에 대해 이사장은 윤기준이 아닌 강명문에게 물었었다.

윤기준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예측은 들어 맞았다.

[올해 한목대가 의예과 입시에서 큰 변화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강명문이 이야기해 준 사실을 떠올리면서 이사장은 곧 다가올 한목대 특강날이 적힌 달력을 바라봤다.

의대가 자식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부모가 많은 강남서초 일대. 강문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학부모들 사이에서 한목대 특강이 어떤 파란을 일으킬지 이사장은 기대 반, 걱정 반인 심정으로 특강일을 기다렸다.

* * *

“제대로 안 써?”

“쌤, 근데 진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오늘도 반 학생들의 입시 상담을 해 주면서 하루를 보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각종 대회들도 마무리가 되었다. 영어토론대회와 시사RPG대회를 비롯해 일본어경시대회, 독서토론대회, 고사성어알기대회, 신문스크랩대회 등.

왜 이걸 대회로 하는지도 알 수 없을 수상경력 채우기용 대회가 하루이틀 만에 몰아쳤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학생부 내용을 정리해야 하는 은장이가 앉아 있었다.

“대회 준비할 때 느낀 점 내가 적어두라 했어, 안 했어.”

“하지만 진짜 이게 다인 걸 어떡해요 쌤…….”

나는 은장이가 적어온 내용을 한 번 더 읽어 보았다.

[대회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친구들을 도와주다 보니 색다른 경험도 해 보고 공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색다른 경험이 뭔데?”

“무대 뒤쪽에 챙길 게 더 많다!”

“뭘 챙겼지?”

“어…… 부족한 물건들 챙겨오거나 과자들도 가지고 오고 그랬어요.”

그 말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은장이를 향해 컴퓨터 모니터를 돌렸다. 그리고는 생각나는 대로 타자를 쳤다.

[학교 행사의 주인공이 아닌 서포터로 활동하기를 자처하면서 행사를 진행할 때 무대 위뿐 아니라 무대 뒤편에서도 빛나는 역할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음. 방송부 활동 때의 경험을 살려 교내 각종 대회, 행사 준비, 뒷정리를 도맡아 하였으며, 빠뜨린 준비물도 체크리스트를 준비해 꼼꼼하게 확인하여 행사 진행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데 기여함.]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내리고 은장이를 바라봤다.

“여기에 뭐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냐?”

“느낀 점이요…….”

“그래. 학생부는 기본적으로 학교 선생님이 적어 주는 게 맞아. 하지만, 결국 그 활동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이 무엇인지는 학생에게 직접 듣지 못하면 적어 줄 수가 없어.”

은장이가 가지고 온 메모지에서 ‘색다른 경험’과 ‘공부’에 빨간색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이게 뭔지 나와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야.”

입시코디를 할 때 만났던 학생들 대부분은 자신이 해왔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명확해서 하루종일 희망 분야만 생각하고 있는 동석이 같은 학생이 아니라면,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은장이는 자신이 방송계열에서 일을 하고 싶고, 광고제작 스탭으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렇기에 활동을 하는데 흥미를 가졌고, 이 정도까지 올 수 있었다.

‘만약 그런 꿈마저 없었다면 벌써 포기했겠지.’

그런 은장이가 기특하게 생각되었다.

“빨리빨리 말합니다. 하나…… 둘…….”

이거 정리하는 건 별개고.

내가 손가락을 책상 위에 톡톡 두들기며 초를 세자 은장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쌤! 잠깐만요! 아 진짜 금방 떠올려 볼게요. 머릿속에는 있단 말이에요, 진짜로요!”

“다섯…… 여섯…… 십까지만 센다, 여덟…….”

은장이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는 고민하더니 퍼뜩 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눈을 빛냈다.

“박스를 날라 봤다!”

“…… 열. 땡.”

들고 있던 학생부를 돌돌 말아서 막대기처럼 움켜쥐자 은장이가 흠칫 놀라 의자를 뒤로 움직였다. 나는 그 모습은 신경도 쓰지 않고 은장이의 바로 옆 탁자를 탕탕 때렸다.

“우리 은장이 뭐가 문제일까아?”

“쌤! 진짜 잠깐만요! 거의 됐어요! 쪼끔만!”

다급하게 소리를 친 은장이가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색다른 경험! 그건 무대 뒤에서의 스텝 일이 매우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게 왜 인상 깊었지?”

“항상 사회자만 했었는데 후배인 민주를 사회자로 준비시키고, 제가 스텝을 해 보니까 무대 위보다는 뒤에서 준비할 게 훨씬 많았습니다!”

나는 은장이의 말에 거들었다.

“음향 체크, 사회자와 선생님들 동선, 평가자들이 앉는 책걸상, 토론 테이블, 간식, 청중들이 앉을 의자 간격 등등.”

여기까지 말하자 은장이가 알겠다면서 손뼉을 쳤다.

“사회자만 할 때는 그런 일들의 중요성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가 전부 다 해 보니까 챙길 게 정말 많았어요! 아마 중간중간에 동석이랑 정석이가 안 도와줬으면 못해 냈을 거예요.”

“그럼 내년에도 이런 행사 만들어 보고 싶겠다 그치.”

내 말에 은장이가 당연하다며 당차게 답했다.

“아마 3년쯤 뒤에는 대학교 학생회장 한다고 할 수도 있을걸요?”

은장이의 말에 가볍게 웃어 주고는 다시 모니터로 얼굴을 돌렸다.

“좋아. 그럼 이렇게 정리한다.”

은장이의 이야기를 토대로 나는 은장이의 학생부 내용 중 ‘자치활동’ 영역에 글을 입력했다.

나중에는 자치활동이 자율활동, 진로활동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의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자치활동, 적응활동, 행사활동이 하나의 항목으로 묶여 있었다.

그중 은장이의 대회 스텝 이야기는 자치활동이었다. 학생회에 속해 있었기도 했고.

[교내 영어토론대회, 인문융합탐구대회의 서포터로 활동하기를 자처하여 활약함. 학생회 후배를 도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멘토역할을 해냄. 이후 무대 뒤 스텝 역할의 중요성을 깨달음. 음향, 준비물, 의자 배치 등 다양한 항목을 체크해야 했기에 스스로 체크리스트를 준비해 빠뜨린 준비물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함. 이 과정에서 부족했던 의자를 추가하기도 하는 등 학생의 철저한 준비성이 돋보임. 또한 스텝 일을 혼자서 할 수 없고 여러 팀원들과 함께해야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협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함께 준비하는 즐거움을 대학 입학 후에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목표를 가져봄.]

두들기던 키보드를 멈추고 은장이를 돌아봤다. 은장이는 내가 쓴 글을 멍하니 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쌤, 이거…….”

“네가 말한 내용 다듬은 거야. 자기소개서 소재로 쓸 거니까 내용 까먹지 말고.”

“네, 네! 메모해 가도 되나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장이가 편하게 메모지에 적어 가도록 했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되냐는 말에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잘못했다가 유출이라도 되면 큰일 나지.’

최대한 조심할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하는 것이 맞았으니까.

학생부 내용 정리는 동석이의 경우에 이미 많은 부분은 정리가 끝났다.

은장이의 방금 활동 정리가 글자 수가 많아 보여도 사실 35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때의 학생부는 미래에 바뀌는 형식과는 달랐다. 이번에 은장이의 활동을 기재해 준 특별활동상황, 그중 자치·적응·행사활동 특기사항은 총 2000자까지 기재할 수 있다. 반면,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자율활동 500자, 진로활동 700자로 글자 수가 확연하게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는 은장이나 동석이 같은 애들이 유리하지.’

1, 2학년 내용이 텅텅 비어 있어도 3학년 활동으로 한가득 채워 줄 수 있으니까.

은장이를 교실로 돌려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그런 내 등 뒤에서 윤 선생이 말을 걸었다.

“강 선생, 내일 진짜 괜찮아?”

“괜찮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건 또 없을까요?”

내 물음에 윤 선생이 됐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거 알아? 자네가 나한테 해 준 조언들 덕분인지, 자네가 여태 해 온 행보 때문인지, 한 교감이 많이 달라졌어.”

“그런가요?”

“요즘은 불러서 나명천이 챙기라고 닦달도 안 하고, 억지로 대회를 만들라는 이야기도 안 해. 물론, 준비하던 과학대회는 만들어야 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윤 선생이 내 앞으로 초코바 하나를 꺼냈다.

“힘들 텐데 이거라도 먹어.”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도움받은 것만 해도 술을 몇 번을 사야 할지 감도 안 온다. 초코바 하나면 싸게 먹힌 거지.”

“올해 입시 마무리되면 한잔하시겠어요? 저도 동석이 도움 많이 주셔서 보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윤 선생이 기분 좋게 웃으면서 그러자고 답했다. 그런 윤 선생을 향해 마주 웃으며 내일 한목대 의과대학장과의 만남을 준비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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