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40화 (4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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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과대학장이요?”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놀란 토끼인 척 윤 선생을 바라봤다.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번 특강에서 한목대 교수를 초청해달라고 이사장에게 요청한 건 바로 나였으니까.

    [이사장님, 한목대에 아는 교수님 계십니까?]

    이전에 시사RPG대회가 끝나고 마련된 식사자리에서 이사장은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었다.

    [마침 몇 명 있네요. 연결해 줄까요?]

    [특강에 한 분만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에 이사장은 전화기 너머로 알 수 없는 침묵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짧게 답했다.

    [강 선생, 원하는 학과라도 있나요?]

    아마 이사장은 이번 특강이 윤 선생의 주도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내 의견이 크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대 교수님이면 가장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사장은 지금 내 능력을 꽤나 흥미롭게 느끼고 있었다.

    [강 선생님이 그렇다면 이유가 있겠죠. 알겠어요. 내가 힘써 보지요.]

    그렇다면 이사장의 요청을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향후 이사회를 통해 강제 퇴진을 하게 될 이사장이었다.

    그렇다면 사학 비리 문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사람과 손 안 잡는 게 더 이상하지.’

    그래서 이번 한목대 특강에 교수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설마 의과대학장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일반적으로 입시전형에 대한 특강을 열면 입학사정관이 주로 온다. 입학에 관련된 사항은 입학처에서 담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도 함께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역시 자주 있지는 않았다.

    ‘일반 의대 교수기만 해도 땡큐인데, 의과대학장이라니.’

    다른 학과 교수도 아니고, 의과대학이면 한목대에서의 주요 학과였다. 다른 학과는 포기하더라도 의예과만큼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중요 학과의 학장이 특강을 하러 강문고에 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 요청을 받은 강문고 이사장 때문에 말이다.

    “언제 연락 왔어요?”

    “방금 교감 선생님 통해서 들었어. 그렇지 않아도 강 선생 찾아서 같이 오라고 하던데, 같이 가자. 빨리!”

    나는 윤 선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쯤 한 교감은 특강 당일에 누굴 진행 담당으로 할 것인가 고민 중일 게 분명했다.

    그 특강 진행으로 나를 지목했을 때 어떻게 답변을 할지 고민하면서 윤 선생을 따라갔다.

    * * *

    한명심은 방금 민지정을 통해 한목대학교 교수의 전화를 받고 놀랐다.

    “한목대 의과대학장 서윤수 교수님?”

    서윤수는 이번 한목대 특강에서 본인이 직접 와서 설명해 주고 싶은 입시 전형이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금요일에 있을 특강 때 입학사정관 한 명과 자신이 방문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민 부장.”

    “네.”

    “의전 준비해야겠지?”

    한목대는 대한민국 의과대학 중 그래도 중상위권에는 속하는 대학교였다. 게다가 제법 규모가 있는 대학 병원도 여럿 소유하고 있어서 졸업생들의 미래가 창창한 학교로도 유명했다.

    딱히 수도권에서 생활하겠다는 욕심만 없으면 지역에서는 한목대 의대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몇 억씩 쓸어 담을 수 있었다.

    ‘그 정도 의대의 학장이 온다고?’

    때문에 한명심은 지금의 사건에 놀랐고, 자칫 잘못해서 교수의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학부모회장의 희망 대학교이기도 하다.’

    한명심은 나명천의 어머니인 학부모회장이 자신의 아들을 한목대 의예과에 입학시키려 하는 사실을 떠올렸다.

    “누가 적임일 것 같나?”

    “아무래도 류지훈 선생이 좋지 않을까요? 호감형 외모에 말도 예의 바르게 하고, 윗 사람의 기분도 잘 맞춰 주는 사람입니다.”

    류지훈이라는 선택지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잠깐 턱을 긁으며 고민했다.

    “윤기준과 류지훈이라…….”

    그는 고민을 마치고 민지정에게 둘을 교감실로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어진 민지정의 답변 때문에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류 선생은 지금 수업 중인가?”

    “아직 조회 전이라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아.”

    한명심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잠깐 말을 멈췄다. 민지정은 그 잠깐의 공백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목대 측에서는 누구와 연락을 주고받으면 될지 담당자를 빨리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기본 담당자라면 당연히 윤기준이었다. 하지만, 한목대에서 이야기하는 건 실제 특강 당일에 연사들을 안내할 사람을 물어본 것이었다.

    그리고 강문고에서는 의과대학장이 오는데 윤기준 한 명만 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을 했다.

    “강 선생은 어떻겠나?”

    “강명문 선생이요?”

    강명문의 이름이 들리자 민지정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반대입니다.”

    “왜지?”

    “최근 강명문의 행보에 다른 선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많습니다. 교감 선생님께서 뒤를 봐주고 있는 건 아닌지, 이사장님의 숨겨진 애인이 아닌지…….”

    “민지정 선생.”

    한명심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냉랭하게 말했다. 민지정은 급히 손을 모아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제넘게 그만…….”

    숙인 고개가 살짝 떨리는 모습은 민지정이 얼마나 지금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명심은 날카롭게 민지정을 노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강 선생이 요즘 특출나게 보이는 건 맞는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그런 뜬 소문을 자네가 방치하고 있었다는 건 믿을 수가 없군.”

    “……대응하겠습니다.”

    민지정의 말에 한명심이 손을 휘적거렸다.

    “됐어. 지금 그딴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강 선생에게 연락해.”

    한명심은 그렇게 말하고는 교감실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강남, 서초권 학교들끼리 합격 실적으로 경쟁을 할 때 자주 오르내리는 입결 중 하나가 의대 입결이었다.

    하지만, 강문고는 한국고보다 매년 의대 합격생에서 열세였다.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자식을 의대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는 많았다. 하지만, 강문고는 몇 년째 실적을 내지 못하고 한국고에게 밀리고만 있는 실정이었다.

    ‘만약 서윤수만 잘 붙잡는다면…….’

    이미 한명심은 특강 이후에 서윤수 한목대 의과대학장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서윤수가 강문고의 입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강남서초권의 의대입결에서 한국고를 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평판도 올라갈 수 있다고도 판단되었다.

    현실적인 고민과 기분 좋은 상상을 번갈아 하는 한명심에게 민지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감 선생님, 윤기준 선생과 강명문 선생이 지금 같이 들어오고 있다 합니다.”

    “바로 들여보내.”

    저 멀리서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보면서 한명심은 이번에도 강명문이 수를 썼는지를 생각했다.

    그러다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설마 초임교사가 의과대학장이랑 알고 지내겠어?’

    그 생각이 한명심에게 이후 큰 곤란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교감실로 들어오는 두 교사를 맞았다.

    * * *

    교감실로 들어가자 한 교감과 함께 민지정 교무부장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한 교감과 민 부장에게 인사를 했다. 옆에서 윤 선생도 고개를 숙여 안부를 물었다.

    “잘 왔네. 윤 선생에게 이야기는 들었지?”

    “네. 한목대 의과대학장님이 오신다고…….”

    내가 짐짓 놀란 것처럼 말끝을 흐리자 한 교감이 진지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자네가 의전을 맡을 수 있겠나?”

    나는 한 교감의 물음에 고민을 잠깐 하고는 이내 대답했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

    “강 선생만 믿네. 한목대 의과대학장이면 의대 입결로도 직결될 수 있는 정보도 많을 거야. 꼭 잘 모셔야 하네.”

    대치동에서 입시코디를 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이 동네에서 입시 실적을 논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실적 종류가 있었다. 스카이를 비롯한 상위 10개 대학 실적, 과학기술원 계열 실적 그리고 의대 실적이었다.

    이는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남의 어떤 고등학교가 의대를 몇 명이나 보냈다는 이야기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들렸고, 그게 학교 평판과도 직결되었다.

    그래서 한 교감이 따로 요청을 주지 않았어도 내가 의과대학장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 가지 요청드릴 게 있습니다.”

    내 말에 민지정이 미간을 좁히며 투덜거렸다.

    “뭔데?”

    “특강 당일에 식사자리도 마련을 해 볼까 합니다. 그래서 교감선생님도 같이 오시면 좋을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실지요?”

    민 부장이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일축했다.

    “아니, 잠깐만.”

    그러나 한 교감은 내 의견에 반응했다.

    역시, 한 교감은 내가 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로서는 지금 나의 요청이 권력을 잡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게 뻔했으니까.

    ‘놓쳐서는 안 될 제안이라 생각하겠지.’

    나는 한 교감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손을 공손하게 앞으로 모았다.

    “가능하겠나? 그분들 다시 한목대로 돌아가셔야 할 텐데.”

    “다행히 특강은 금요일입니다. 다음 날이 주말이니 그분들도 부담이 덜 하실 겁니다.”

    “그래도 교수와 학교 관계자들이 밥을 먹는 건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잘못하면 청탁하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나.”

    “특강 시간은 방과후입니다. 조금 일찍 오셔서 준비하시도록 말씀드리고, 오신 김에 점심으로 학교 급식도 드시게끔 하면 괜찮을 겁니다.”

    급식실 이야기를 하자 한 교감의 눈이 커졌다. 민 부장도 이야기를 듣다가 의외의 제안이었는지 깜짝 놀라했다.

    “급식실을?”

    “교사식당도 결국 급식 메뉴입니다. 조금 더 좋은 반찬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급식 메뉴입니다. 학생들이 먹는 식사 중 교사용으로 마련된 메뉴를 정당하게 식사비용을 지불하시고 드신다면 문제없지 않을까요?”

    게다가 급식 비용도 받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이제는 윤 선생까지도 놀라서 눈만 껌뻑거렸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가지려는 이유가 뭔가?”

    한 교감이 의문을 담은 채 물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그 이유를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강문고 학생들, 학부모님들에게 필요한 입시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고 특강 내용에 반영해달라 요청드리려 합니다.”

    “전화나 이메일로도 충분히 요청이 가능할 텐데?”

    민 부장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현장에서 직접 들어야지만 더 느껴지는 게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강문고는 강남, 서초의 명문고등학교로 소위 말하는 강남 8학군에 위치한 학교로만 알려져 있다.

    실상은 한국고에 밀리고, 주변의 다른 영훈고나 서초고, 강남고 등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학부모들의 눈은 높았고, 학생들의 목표도 비현실적이었다.

    그런데 그 비현실적으로 높은 눈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었다.

    이번 특강은 변화하는 입시에 맞춰 학생, 학부모, 학교, 교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냉정하게 소개하지 못한다면, 그저그런 대학교 입학처의 강의로만 낙인찍힐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학부모회장 같은 학부모들에게 내 수업 방식을 고수하기가 어려워.’

    비록 이전에 수행평가 일화로 내 의견이 나름 설득력 있는 의견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너도나도 의대, 스카이를 꿈꾸는 강문고 학부모들에게 제대로 된 현실을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내가 아닌, 현 시점에서의 최상위 학과 권위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그 식사 자리, 제가 주도하게 해 주십시오.”

    나는 한 번 더 한 교감, 민 부장을 향해 말했다. 한 교감은 조금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이내 승낙을 해 주었다.

    민 부장이야 한 교감 의견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기에 옆에서 공허하게 주먹만 쥐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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