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39화 (39/252)
  • 39화. 합격만 하면 되지

    공유경제, 사회 문제와 경영의 조화.

    그 내용은 대회 준비를 할 때 학생회장인 2학년 민주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준비를 하면서 학생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고, 그 내용 중 일부는 담임선생님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어째서 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공정무역을?”

    “사회학이랑 경영이랑 같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훨씬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정석은 누군가 옆에서 말을 입력해 주는 것처럼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아빠가 하는 일이 철강이잖아? 내가 잘은 모르지만, 해외에서 원자재 받아오는 것도 있지 않아? 그럼 그걸 공정무역의 형태로 해서 수출입 때 원산지나 품질서 같은 거도 정확하게 적고 하면 기업 이미지도 올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는 잠깐 말을 멈추고 장난스레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혹시나 해외에서 공부가 잘 안 되면 국내대학 선배들이나 교수님들한테 빌붙어 보지 뭐.”

    정석이 민망하게 웃자 정석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따라서 웃었다.

    정석의 아버지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던 아들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언제 이렇게 고민을 많이 했어?”

    “나 친구들하고 학교 쌤들이랑 이런 얘기 많이 해.”

    “근데 왜 여태 우리는 몰랐지?”

    “그야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정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들의 반응에 정석의 부모는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실제로 두 사람은 맞벌이를 하느라 아들과 대화를 나눈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석과 부모는 이 자리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었고, 그 필요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기부입학이라도 알아볼까?”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말에 정석이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됐어! 그걸로 들어가면 학교 부끄러워서 어떻게 다녀.”

    정석은 담임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하면서 말을 이어 갔다.

    “논술 공부할 거야. 목표는 성실성대 인문계열로 정했어. 아직 내 수학 점수가 높지 않아서 경영학과를 준비할 수는 없고, 이제 6개월도 안 남은 시점이라 수능 공부하기도 힘들어. 그래서 올해는 논술에 집중해 보려고 해.”

    “올해는?”

    “응. 내년에 재수까지 생각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재수를 한다 그러면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 하지만, 지금 정석은 부모의 염원인 학벌을 이루기 위해 1년 더 공부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오히려 두 사람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기특하네. 재수까지 계획해 두고.”

    “학원도 알아봐야겠네.”

    유독 신이 나 보이는 부모를 보며 정석은 이게 코스프레의 힘이구나 생각했다.

    “조만간 학교에서 논술 특강도 열린대. 그거 먼저 들어 보고 학원도 알아볼까 싶어.”

    정석은 아버지의 녹차를 빼앗아 마셨다. 아버지는 그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생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들어보니까 학교 국어 쌤 중에 대치동 논술 강사 출신 쌤도 계신대. 그래서 그거 듣고 부족하면 그때 학원 특강 알아볼 거야.”

    이미 정석의 부모는 아들의 이야기를 메모하고 있었다.

    “여보, 그럼 유학 컨설팅은 취소할까?”

    메모를 멈춘 정석의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가 잠깐 고민하더니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진짜 열심히 할 자신 있어?”

    “진짜 열심히 할 거야. 나 변했다니까? 논술도 내신 점수 평가해서 이번에 성적도 올렸고, 최저등급도 맞춰야 해서 수능 공부도 하고 있어.”

    아들이 가지고 온 성적표와 대회 상장. 정석의 어머니는 두 성과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여태 학원에서 말고는 놀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분명 정석은 성실한 아들은 아니었다. 학창시절 적당히 공부를 잘해 왔던 아들이라,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명문대를 목표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열심히 안 하니 방법이 있나.

    아무리 좋은 선생을 붙여도, 유명한 학원에 보내도 아들의 성적이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내외 대회는 준비한 적도 없었다.

    그랬던 아들이 향상된 성적표, 그것도 모두가 열심히 공부한다는 3학년 1학기 성적표를 들고 왔다.

    게다가 강문고 인문계열에서는 가장 큰 대회인 인문 융합 탐구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해 왔다.

    ‘변했나?’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에 있는 아들은 꽤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남편도 그런 아들을 응원해 주려 하는 것 같았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정석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사실 유학을 보내려고 했던 것도 부모의 욕심에 불과했다. 그런 와중에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생겼다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단, 추가적인 조건이 필요했다.

    “대학 입학 전까지는 공부에만 매진해. 지금 만나고 있다는 여자애랑도 헤어져.”

    “알았어.”

    생각보다 빠른 답변에 정석의 어머니가 당황해했다.

    정석은 큰 결심을 한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헤어졌어.”

    그렇게 말하면서 정석은 핸드폰을 꺼내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정석이 여자친구인 미란과 나눈 문자메시지가 띄워져 있었다.

    두 남녀가 평범하게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나눈 내용이었다.

    “잘했어. 핸드폰도 착신만 되게 바꿔.”

    “아예 없애는 게 낫지 않아?”

    “그럼 엄마 아빠가 아들한테 연락을 못 하잖아.”

    정석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괜찮겠어, 아들?”

    이쯤에서 정석의 아버지는 아들이 걱정되었다. 아무리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해도 조금 갑작스러웠고,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공부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정석과 미란이 거짓으로 헤어진 사실은 모른 채 말이다.

    “많이 변했네. 언제 이렇게 변한 거야?”

    신이 난 정석의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와인을 꺼냈다.

    “아들도 한잔할래?”

    “여보!”

    “아 왜, 이런 날은 기념하면서 반 잔 정도는 마셔도 괜찮아. 지금 너무 기특해서 그래! 하하하!”

    정석은 담임선생님이 예측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지금 너한테 부족한 건 열정과 노력, 그리고 그걸 가족에게 보여 주는 전략이야.]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만 말씀드려도 확 바뀌실걸? 그리고 4년, 5년 뒤에 네가 무언가 도전하고 싶을 때, 대입 성공했던 사례를 이야기하면 어떠실 것 같아?]

    실제로 정석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금 정석의 이야기만으로도 아들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만약 정말로 자신이 이번 입시에 성공해서 성실성대에 합격한다면 어떻게 될까.

    4년의 시간이 흐른 뒤엔, 내 성과를 인정해 주면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믿어 주지 않을까.

    정석은 그런 가능성이 엿보이는 지금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담임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유학은 취소하자. 올해는 논술 공부 열심히 해 봐.”

    “고마워, 엄마!”

    “으휴, 됐어. 그나저나 그렇게 외국으로 가는 게 싫었니?”

    정석은 잠시 고민하고는 질문에 답했다.

    “싫다기보다는 부담되기는 했지. 나 혼자서 가야 하잖아? 스무 살 되자마자 혼자 덩그러니 남는 것도 무섭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는 정석의 앞으로 와인잔이 다가왔다.

    “자, 한 잔 받아.”

    “당신 정말…….”

    “자자, 당신도 받고.”

    정석의 아버지는 총 세 개의 와인잔에 와인을 조금씩 따르고는 가볍게 건배를 했다.

    “제대로 하는 거다 아들! 알았어?”

    “응! 꼭 합격할게.”

    “중간에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뭐 사야 할 거나 독서실 등록해야 하면 언제든 이야기하고.”

    “엄마가 학원 어디가 좋은지 알아볼 테니까 나중에 같이 고민해 보자.”

    정석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렇게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준 적이 처음이었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성적 문제와 진학 문제 때문에 냉랭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오늘은 조금 풀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이게 코스프레를 한 덕분에 생긴 일이라 조금 아쉽기는 했다.

    “제대로 합격만 하면 되지, 그래도.”

    “응? 뭐라고?”

    “아, 아니야 아무것도.”

    혼잣말이 조금 커서 정석의 부모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묻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오늘은 두 사람의 아들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목표를 당당하게 밝힌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 * *

    다음 날, 등교 시간이 되면서 정석이의 표정을 살폈다.

    ‘성공했네, 성공했어.’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밝아 보이는 얼굴을 한 정석이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득달같이 뛰어와서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쌤!”

    “그래, 좋은 아침이다.”

    정석이는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녀석이 설마 은장이처럼 울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싶은 순간 정석이가 소리를 질렀다.

    “대박! 성공했어요! 쌤 진짜 예언가 아니에요? 와!”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정석이를 향해 복도에서 정숙하라고 주의를 줬다. 민망했는지 살짝 웃으면서 자세를 고쳐 잡은 녀석을 향해 말했다.

    “내가 뭐랬어? 된다니까.”

    “은장이한테 듣기는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너희…….”

    어쩐지 지난번 은장이의 학습 의욕을 불어넣어 주었을 때의 사건이 생각나서 잠깐 긴장했다. 주변을 휙휙 돌아봤지만, 다행히 평소와 다르지 않아 안도했다.

    “쌤, 논술 특강 언제 열려요?”

    “다다음 주에 학평 끝나면 열릴 거야. 그때쯤 마침 방학식도 있고.”

    며칠 전 한참 대회 때문에 시끄러울 때 한 교감에게 논술 특강 오픈일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시작 일자는 7월 26일. 22일에 열리는 학력평가도 마무리되고, 동석이 대회도 끝난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그럼 그때 일주일 하는 거예요?”

    “이번 특강은 열흘이야. 기출문제, 모의논술문제, 예상 기출문제까지 연습 다양하게 할 거다. 책 많이 읽고 있지?”

    “네!”

    녀석이 내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짜식, 어제 이야기가 많이 잘됐나 보네.

    “좋아. 긴장 풀지 말고, 이제부터 시작이야. 7월 학평도 최저 맞춰야 하니까 잘 봐야 해. 아무리 성실성대 일반선발을 노린다 해도 방심하다가는 그것도 못 맞추는 경우가 생겨.”

    “명심하겠습니다!”

    “글씨체도 연습하고. 그리고 연필로 쓰는 것보다는 볼펜으로 쓰는 연습 해. 연필은 잘 안 보일 수 있어.”

    “넵!”

    정석이는 다시 한번 힘차게 대답하고는 교실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손을 꽉 쥐었다.

    ‘정석이도 판은 깔렸고…….’

    이제 정석이는 대치동 스타 강사였던-과장이 좀 섞였지만- 내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에게도 논술 담당 선생님의 경력을 읊으면서 설득했을 거고.

    물론, 부모님에게 내가 수업한다는 사실을 숨겨야겠지만 말이다.

    ‘최동석, 김은장, 이정석.’

    올해 가장 큰 목표를 두고 있는 세 학생의 이름을 되뇌면서 교정을 잠깐 걸었다.

    셋이 2011 입시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낸다면, 앞으로 학교에서의 내 입지는 더 올라갈 게 분명했다.

    물론 명천이처럼 폭탄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학부모회장이 한목대 특강을 들으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 여겼다.

    ‘이상한 사건만 안 터졌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혹시 모를 일을 걱정하면서 다시 건물로 들어가려는 순간,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었네! 강 선생!”

    목소리가 나온 방향을 돌아보니 윤 선생이 뛰어오고 있었다.

    “강 선생, 한참 찾았어!”

    “무슨 일 있습니까?”

    내 물음에 윤 선생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말했다.

    “한목대 특강…….”

    그는 심각한 듯 목소리를 떨었다.

    “의과대학장님이 직접 오셔서 강의하신대.”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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